고층 건물은 기초가 다르다
고층 건물은 기초가 다르다
25학년도 2학기 예수중심제자신학원(이하 신학교) 개강예배 때 원장이신 이시대 목사님이 하신 말씀을 간추려본다.
“대나무는 5년 정도 뿌리를 내린다고 합니다. 그 기간은 눈에 보이는 성장이 미미하지만, 일단 뿌리를 깊이 내리고 싹이 나면서부터는 몇 주 만에 10미터, 20미터씩 쭉쭉 뻗어 올라갑니다. 아파트나 고층빌딩은 기초 공사를 절대 대충 할 수 없습니다. 기초가 튼튼해야 건물이 높이 올라가도 쉽게 흔들리거나 무너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배우고 익히며 목회자로서의 기초를 만드는 지금을 귀하게 여기고, 배울 수 있을 때 제대로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제사장을 세우신 데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자신과 백성들이 하나님을 잘 섬길 수 있도록 제사(예배)를 인도하는 것이고, 둘째는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백성들을 축복하는 것이며, 셋째는 백성들의 소송과 분쟁에 있어서 하나님의 뜻대로 판결해 주는 것입니다. 거기에 더하여 주의 종들은 선지자로서 백성들에게 외쳐 회개케 하는 자의 역할까지 올바로 수행하여야 합니다. 목사와 전도사는 하나님의 대리인(代理人)이자 대언자(代言者)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지 못하는 자가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예배를 드리며, 하나님을 대신하여 백성들을 축복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백성들을 판결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마음을 알려면 하나님의 말씀과 뜻이 담겨 있는 성경에 통달해야 합니다. 리더(Leader)는 다른 사람들보다 많이 알아서 그들을 이끄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성도들의 영적 리더입니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지듯, 말씀을 모르는 목회자가 성도들을 이끌면 그 영혼들을 망치게 됩니다. 판사가 육법전서를 알아야 올바른 판결을 내릴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통달한 목회자들이 되어 성도들을 푸른 초장과 쉴 만한 물가로 이끄는 선한 목자들이 되기 바랍니다.”
마부작침(磨斧作針), 도끼를 계속 갈고 닦으면 마침내 바늘을 만들 수 있고, 낭중지추(囊中之錐), 날카롭게 갈린 송곳은 주머니 밖으로 드러나게 되어 있다. 이번 학기에 선지 생도들이 기초 실력을 부지런히 갈고 닦아, 교회와 교단과 나라와 세계에 우뚝 서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고층 건물 같은 목회자들로 성장하기를 바란다.
신학원 학생처장 신혁주 전도사
우리 하나 됩시다
샴쌍둥이가 한 사람인가, 아니면 별 개의 두 사람인가에 대한 의문이 사람들 사이에 있다. 탈무드에는 이런 상황일 때 이렇게 말한다.
“한쪽 머리에 뜨거운 물을 부어보라. 이때 다른 머리가 소리를 지르면 한 사람일 것이고, 반응이 없다면 두 사람인 것이다.”
이 방법으로 유태인은 어떤 사람이 유태인인지 아닌지를 알아낸다. 유태인의 아픈 역사를 이야기할 때 눈물을 흘리며 아파하면 그를 유태인으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군대를 다녀온 사람인가 아닌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군대 얘기 하면 눈에 불을 켜고 얘기하는 사람은 군대를 다녀온 사람이다. 그런데 군대 애기에 시큰둥해 하는 사람은 분명히 안 다녀온 사람이다.
예수 안에서 우리는 정말 한 가족일까? 누군가 아파할 때 같이 아프고, 누군가 곤경에 처했을 때 기꺼이 손을 내밀고, 누군가 좋은 일이 있을 때 맘껏 기뻐하고 축하한다면 분명 우리는 피를 나눈 한 가족이다. 또 주님의 아픔이 가슴 절절히 전해오고, 주님의 죽으심에 동참하고, 주님의 부활이 내 부활이 된 자는 주님의 형제요, 주님과 하나다.
우리가 주 안에서 하나됨은 예수로 인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이고, 예수의 보혈을 공유했기 때문이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물으신다.
“누가 내 부모이고, 누가 내 형제인가?”
그리고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는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막3:35).
우리는 주 안에서 한 가족입니다.
이초석 저서 ‘사랑이 무르익어야
결혼에 골인한다’ 중에서
너 자신을 알라!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한 고대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말이다. 이쪽저쪽을 다 아우르지도 못하면서 마치 다 아는 듯이 편협하고 섣부른 판단을 하지 말란 말이다. 그만큼 자신의 무지(無知)함 자체를 못 깨닫는 게 인간이다. 그래서 그는 많은 대화 끝에 진리에 다다르지 않겠느냐는 해답을 내놓는다. 그러나 하나님 없는 대화 속엔 회의감만 있을 뿐이다.
그래서 우린 이 표현을 기독교적인 용어로 바꿔야 한다. 바로 ‘코람데오’(하나님 앞에 서라)이다. 나 자신을 정확히 알고 싶다면? 먼저 하나님 앞에 조용히 서보라는 말이다. 부정해야 할 것들이 많다. 하나님은 호렙산 떨기나무 앞에서 모세의 신을 벗기셨다. 이것은 그동안 살아온 인생 전체를 부정하는, 철저한 ‘자기부인’의 요구이셨다. 맑은 거울 앞에 서듯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만이 자기의 상태가 명확해지고 마땅히 할 일을 알게 된다.
그런데, 인간이 타락했다는 증거는? 모두 다 ‘자기중심적’이라는데 있다. 하나님의 판단으로부터 나만 제외한다. 내 판단, 기준, 식견, 경험이 최고이기에 모든 것을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한다는 데 문제가 있다. 그런 증상은 바울이 아테네에서 만났던 두 부류의 극단을 통해 나타난다(행17:18). 한 극단은 하나님이 없는 듯이 경거망동하게 살려는 사람들! 또 한 극단은 하나님 역할을 하려는 사람들! 이 모습은 옛날얘기가 아니라 지금 우리 모두에게서 나타나는 증상이다. 그러니, 하나님 앞에서 자기성찰보다는 늘 남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고 있다.
조롱과 저주에도 불구하고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의 본체이심에도 자기를 부인하고 버리신 예수님은 결국 온 세상의 구원자가 되셨다. 사도 바울도 죽는 날이 다가올수록, 자신의 상태를 더 정확히 깨달았다. 의기양양했던 ‘율법에 흠이 없던 자’에서, ‘작은 자’, ‘지극히 작은 자’, 그리고 결국 ‘죄인 중의 괴수’의 순서로 겸손히 변화되었다. 내 신앙 연륜, 나이, 직분, 경험이 나의 신앙의 질을 보장하는가? 늘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십자가 앞에 홀로 나를 세워 민낯을 발견해야 한다. 예수님은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요8:7)고 하신다. 남을 향하던 손가락을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서 나 자신을 먼저 알자!
송직화 목사
하나님 말씀으로 세워지는 가정
올해 초 드디어 성경을 통독하고 나서 다시금 처음부터 시작하려니 괜히 망설여졌다. 그러다 청장년부 예배 때 ‘말세가 가까웠으니 정신 차리고 기도하라’, ‘말씀을 읽고 예수님이 내 삶의 중심에 계시게 하자’, ‘성경이 우리 삶의 기준이 되자’, ‘더욱 하나님과 가까이 동행하자’라는 이시대 목사님의 말씀으로 마음을 다잡고, 팀원들과 바로 다시 성경 통독을 시작하게 되었다.
뉴스를 보면 중동의 전쟁과 같은 세계정세, 여러 범죄 사건과 안타까운 사고들을 접하게 되고, 그로 인해 나도 모르게 마음이 불안해질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성경을 읽는 것이 도움이 된다.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께 기도하면 주님께서 마음에 평안을 주시는 것을 경험한다.
얼마 전 사춘기에 접어든 첫째 아이가 요즘 인생이 힘들다며 신세를 한탄하는 말을 했다. 예전 같으면 “네가 뭐가 힘들어? 엄마 때는 말이야….” 하며 배부른 소리라고 나무랐을 텐데, 그날은 애써서 아이를 먼저 공감해주고 무슨 일인지 물어보았다. 알고 보니 학교에서 친구들이 아이에게 교회를 비방하는 장난을 쳐서 마음이 상한 것이었다. 그래서 아이에게 같이 기도하자고 했더니, 울먹이며 이야기하던 아이가 갑자기, “저 큐티 좀 하고 올게요.” 하며 방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밝은 얼굴로 나온 아이는, “엄마, 저 큐티 다 했는데요. 앞으로도 말씀 계속 읽고 전도도 계속 열심히 할 거예요.”라고 말했다. 기특하고 대견한 마음에 남편에게도 전했고, 남편도 함께 기도하자고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이 재택 근무하는 날, 여느 때처럼 남편은 일하기 전에 기도하고 말씀을 읽었다. 그러다 남편은 아이가 열심히 하고 있는 큐티책이 눈에 띄어 읽게 되었다. The Purpose라는 서울 중고등부 교육부서에서 발행하는 큐티책이었다. 남편은 읽어보더니 그 큐티책이 매우 좋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내가 사용하던 큐티책은 아마존 베스트셀러로 꾸준히 인기 있는 책이었는데, 남편은 그 책도 본 적이 있지만 그것보다 훨씬 더 유익하고 퀄리티가 좋다고 말하며, 앞으로 The Purpose 큐티책으로 큐티를 하라고 나에게 권하였다.
나도, 아이도, 남편도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며 성장하는 것을 느낀다. 가정과 삶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둘러싸일 때 평안과 안정감을 느낀다. 우리 가정을 늘 말씀으로 인도하시고 세워가시는 하나님을 찬양한다. 앞으로도 어떤 상황 속에서도 말씀을 삶의 기준으로 삼고,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는 가정이 되기를 소망한다.
정효경 집사
결혼식 주례를 하면서 복음을 전하면 하객들이 듣는 둥 마는 둥 합니다. 그러나 장례예배를 인도하면서 복음을 전하면 숙연한 분위기 가운데 순적히 복음을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낫다고 합니다. 잔칫집에서야 연락을 즐기며 인생에 관하여 생각할 겨를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초상집에서는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이와 같음을 깨닫고 인생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살아있다고 해서 살아있는 것이 아닙니다. 보내신 분께서 오라고 하시면 언제라도 가야 하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바요 죽은 뒤에는 심판이 있음을 마음 판에 새기고 살아가야 합니다.
젊고 건강한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젊다고 오래 사는 것도 아니요, 건강하다고 오래 사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미룰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자는 오늘 살다가 내일 죽어도 한 점 후회가 없도록 매사에 준비하고 살아갑니다. “예수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예수로 말미암지 않고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세상의 종교인들이 가는 길은 끊긴 길이요, 막힌 길입니다. 천국에 가는 길은 오직 한 길, 예수님 외에 다른 길은 없습니다.
시종을 알지 못하는 유한한 인생이기에 지체할 시간이 없습니다. 지금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영혼의 때를 준비해야 합니다.
상화평 목사
뇌졸중 예방, 운동과 약재차의 생활 지혜
중풍이라고도 하는 뇌졸중은 하루아침에 찾아와 일상의 삶을 무너뜨립니다. 하지만 예방 또한 일상의 작은 실천에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전문가들이 강조하는 예방의 세 가지 운동 원칙은 꾸준히, 균형 있게, 그리고 안전하게 입니다.
뇌졸중 예방 운동은 한두 번의 열정으로 끝나서는 효과가 없으며 하루 30분 빠르게 걷는 것, 가벼운 자전거 타기, 간단한 조깅, 수영, 등산 등을 주 3~5회 이어가는 것이 혈압을 낮추고 혈류를 맑게 하여 효과적입니다. 일주일에 몰아 하는 고강도 운동보다 매일의 반복이 훨씬 강력하다고 합니다.
걷기나 조깅 같은 유산소 운동은 혈관을 튼튼하게 하고, 근력 운동은 대사 기능을 개선하며, 요가와 같은 균형 운동은 스트레스와 긴장을 풀어 혈압을 안정시킵니다. 어느 한쪽만 치우친 운동이 아니라 세 가지가 어우러질 때 뇌졸중 위험 요인은 비로소 다각도로 줄어듭니다.
고혈압이나 당뇨가 있는 이들이 무리해서 달리기를 한다면 오히려 혈관에 큰 부담이 될 수 있기에, 체력에 맞춘 가벼운 활동, 운동 전후의 스트레칭, 충분한 수분 섭취가 필수이며, 건강을 지키려는 노력은 안전 위에서만 빛을 발하게 됩니다.
운동이 몸을 열어 준다면, 약재차는 혈관을 맑게 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천마차는 어지럼증과 혈압 안정에, 국화차는 긴장 완화에 도움을 줍니다. 산사차는 혈중 지질을 낮추고, 황기차는 기력을 북돋우며, 결명자차는 혈압을 안정시켜 줍니다. 차 한 잔의 습관이 혈관 건강을 보완하는 또 다른 협력자가 됩니다.
뇌졸중 예방은 멀리 있지 않으며 비용이 그리 들지도 않습니다. 매일의 걷기와 스트레칭, 가벼운 근력 운동, 그리고 따뜻한 약재차 한 잔 속에 그 해답이 있습니다. 꾸준함, 균형, 안전이라는 세 가지 원칙을 지키며 전통의 지혜를 더한다면 뇌혈관은 오랫동안 건강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영적인 건강과 함께 육체의 건강도 가득한 한 주간 되시기를 바랍니다.
Dr. 설재현 집사
고백
마귀가 주인 행세하는 타락한 이 세상에서 우리는 온갖 미디어에 노출되고, 나와 성격이 다른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있다. 그런 가운데 크리스천으로서 믿음을 지키며 살아간다는 것은 절대 쉽지 않다. 예수님은 마음으로 미워하는 것을 살인이라 하시고, 음욕을 품는 것만으로도 간음이라고 말씀하셨다. 즉, 죄악을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더라도 그 생각만으로 죄를 짓는 것이라고 하신 것이다. 이러한 죄는 자신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기에 회개하기 어렵고, 반복되면 죄가 아니라고 합리화하기까지 한다. 필자 또한 직장과 지인들과의 관계 속에서 죄를 짓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만약 “나는 살면서 매일 회개할 만큼 큰 죄를 짓지 않았어. 그래서 하나님께 고백할 것이 많지 않아. 나는 이 정도면 신실한 크리스천이야.”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요한일서 1장을 읽어보길 권한다.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요한일서 1장 8~10절).
매일 죄를 짓고 회개하기를 반복하는 나의 모습에 죄책감이 밀려올 때, 이 말씀을 읽으며 하나님께 큰 위로를 받았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비로소 깨달았다.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죄를 지을 것을 이미 알고 계셨고, 죄를 고백하기만 하면 조건 없이 용서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혹시 죄악에 빠져 하나님께 용서받을 자격이 없다고 자책하며 하나님을 피하는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께 고백하길 바란다. 그분은 언제든지 우리의 고백을 들으시고 죄악에서 건져내어 깨끗하게 하시는 분임을 잊지 말아야겠다.
송명국 집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