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일에 간섭 말고 내 일에 충실하라(잠26:17)
“남의 일에 간섭 말고 내 일에 충실하여 열매로 말하자.”
제가 쓴 잠언입니다.
‘남의 일에 참견하지 말고 네 일이나 잘하라’는 당부의 말입니다.
오래전, 기도원 집회 기간에 어느 장로 부부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끝에 장로님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제 친구 중에 한 사람이 남의 일에 간섭하여 옥신각신하다 시쳇말로 열을 받아 사람을 쳤는데, 그 사람이 그만 그 자리에서 즉사해버렸습니다. 정말 안타깝습니다.” 저는 그 장로의 말을 듣고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아니, 왜 남의 일에 간섭하다가 일을 당합니까? 남이 싸놓은 똥에 왜 주저앉습니까? 그래서 저는 교단의 목회자들에게 ‘성도의 가정사, 특히 부부의 일에는 관여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합니다. 괜히 참견하다가 나중에 큰코다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 사도도 말합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적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라”(벧전4:15). 사도 바울도 “다른 사람의 죄에 간섭치 말고 네 자신을 지켜 정결케 하라”(딤전5:22)고 경고했으며, 잠언에도 “길로 지나다가 자기에게 상관없는 다툼을 간섭하는 자는 개 귀를 잡는 자와 같으니라”(잠26:17)며 남의 일에 간섭 말기를 당부했습니다.
예수님도 남의 일에 참견하시지 않았습니다. 누가복음 12장에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와 예수님더러 자기 형에게 자기에게도 유업을 나누어주라고 말 좀 해달라고 했습니다. 아마 형제가 부모의 유산을 나누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일에 대해 예수님은,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눅12:14)라고 말씀하시며, 남의 일에 확실히 선을 그셨습니다.
남의 일 참견할 것 없습니다. 자기 일이나 충실히 하면 됩니다. 마태복음 20장에는 포도원 품꾼의 비유가 나옵니다. 이른 아침에 포도원에 들어와 일한 사람과 삼시에, 그리고 육시와 구시, 심지어 십일시에 들어와 일한 사람조차도 일을 마친 후 모두 똑같이 한 데나리온을 받았습니다. 그러자 아침부터 일한 자가 “쟤들은 늦게 왔지 않느냐? 그런데 왜 같은 돈을 주느냐?”라고 불평합니다. 그러자 주인은 “내가 너에게 한 데나리온을 주겠다고 했고, 주었는데 무슨 말이 많은가? 저 사람의 품삯은 내가 알아서 결정할 테니 너는 남의 일에 참견하지 말라.”고 합니다.
요한복음 21장에도 그런 내용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세 번이나 자신을 부인한 베드로를 찾아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라고 세 번 물으시면서 사랑을 확인하십니다. 주님의 물음에 베드로는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대답합니다. 예수님은 그런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라.”고 당부하셨습니다. 그리고 장차 베드로가 가게 될 길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요21:18). 베드로가 순교하게 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를 듣고 있던 베드로가 옆에 있던 요한을 가리키며,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사옵나이까?” 하고 묻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냉정하게 대답하십니다.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요21:22) 이 말인즉 ‘다른 사람 일에 쓸데없이 관심 갖지 말고 네게 주어진 일에나 마음을 두라.’는 것입니다. ‘남의 일에 참견 말고 내 일에 충실하라’는 말씀입니다.
사도행전 1장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묻습니다. “저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니이까”(행1:6). 그러자 예수님은 이렇게 답하십니다.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바 아니요”(행1:7). ‘이것은 하나님 아버지 소관이니 상관 말고 네 일이나 해라.’ 하신 것입니다. ‘네 일’, 곧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행1:8)는 것입니다.
남의 일에 간섭하는 자들을 보면 대체로 할 일이 없는 자들입니다. 할 일이 없으니까 괜히 남의 집 기웃거리며 괜한 참견하는 겁니다. 돈을 대줄 것도 아니고, 나서서 일을 처리해줄 것도 아니면서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 옛말에 ‘남의 참견 말고 네 발등의 불이나 꺼라’, ‘네 앞도 못 닦는 것이 남의 걱정은 왜 하냐’, ‘남의 잔치에 감 놔라 대추 놔라 하지 마라’고 한 것입니다. 자기 집 석가래는 썩어 물이 줄줄 새는데, 남의 집에 와서 이러쿵저러쿵하고 있으니 한심하다는 말입니다.
데살로니가교회에도 그런 자가 있었나 봅니다. 자기 일에는 게으름을 피우면서 이집 저집 돌아다니며 참견하며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 말입니다. 이에 바울은 강경하게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규모 없이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만 만드는 자들이 있다 하니 이런 자들에게 우리가 명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권하기를 종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 하노라”(살후3:11~12).
남의 일에 참견하여 일 만들지 말고, 자기 일이나 잘하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말을 순종치 아니하거든 그 사람을 지목하여 사귀지 말고 저로 하여금 부끄럽게 하라”(살후3:14)고 단호히 말했습니다. 왜냐? 자고로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미련한 자와 사귀면 해를 받느니라”(잠13:20)는 말씀대로, 그런 자와 함께 있다 보면 나도 모르게 닮기 때문입니다. 닮은꼴은 시간과 정비례하거든요.
“그렇다면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빌2:4)는 말씀은 무엇입니까?”라고 물어보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이는 간섭하라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삶과 어려움에 대해 무관심하지 말고 공감하며 도우려는 마음을 가지라는 뜻입니다. 5절에 나오는 말씀처럼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말만 하지 말고, 예수님의 마음을 본받아 서로를 돌아보고 사랑 가운데 행하는 삶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벗었을 때 옷을 입히고, 병 들었을 때 돌아보고, 옥에 갇혔을 때 가서 보라’는 말씀입니다. 이건 참견이 아니라 사랑이요, 나눔이며, 참 그리스도인의 마땅한 행동지침인 것입니다.
여러분, 제가 쓴 잠언 하나 더 소개합니다. “성공한 자들의 공통점! 침묵하며 자기 일에 충실한 자다.” 그렇습니다. 성공한 사람들은 오직 푯대만 바라보고 자기 일만 하는 사람들입니다. 확실한 목적의식, 목표를 가지고 거기에 집중하는 사람이 성공합니다. 경주마들의 눈 양쪽 옆을 가려놓지 않습니까? 이는 경주마의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서입니다. 다른 곳에 시선을 빼앗기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야 우승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목적을 향하여 경주마처럼 달려야 합니다. 이것저것 다 보고, 다 참견하고 어느 세월에 달려간답니까? 저야말로 경주마처럼 목표만 바라보고 40년을 달렸습니다. 저는 늘 ‘개가 짖어도 기차는 달린다’는 썬다씽의 말을 염두에 두고 살았고, ‘가장 무서운 사람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자기 일만 하는 사람이다’라고 되뇌며 제 일만 했습니다. 그랬더니 오늘날 세계 70개국이 넘는 곳에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빌3:13~14).
오늘 말씀은 ‘이웃과 세상에 무관심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남의 일에 도움을 줄 것도 아니면서 참견하지 말라는 겁니다. 그 시간에 내 일을 충실히 해서 열매를 맺어 나도 풍성하고, 남도 풍성하게 하라는 말입니다. “네가 자기 사업에 근실한 사람을 보았느냐 이러한 사람은 왕 앞에 설 것이요 천한 자 앞에 서지 아니하리라”
(잠22:29). 할렐루야!
입으로 말하지 말고
결과로 말하라
과정은 결과를 대변하지 못하나
결과는 과정을 대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