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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나이테, 신앙의 나이테

1309호 · 2025-06-08
세상을 보는 창

삶의 나이테, 신앙의 나이테

나무를 잘랐을 때 동심원처럼 그려진 고리들이 보인다. 이것을 우리는 ‘나이테’라고 부른다. 나이테가 중요한 이유는 그 나무의 세월이 가장 선명하고 아름답게 기록된 흔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무마다 나이테를 관찰해보면 어느 해는 가뭄과 추위로 힘겨웠고, 또 어느 해는 풍요로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신앙의 나이테는 어떻게 생기는 것일까? 신앙의 나이테는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고난에 대한 반응이 신앙의 나이테를 만들어간다. 신앙의 고비 고비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을 경험하거나 은혜의 단비를 경험하면서 조금씩 자라난 그 고난의 흔적들이 우리 영혼 깊은 곳에 나이테처럼 새겨지기 때문이다.

처음 예수님을 영접했을 때의 감동과 감격의 눈물,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고백 되어지는 수많은 기도 응답들…, 삶의 나이테는 시간의 흐름이라 말할 수 있지만, 신앙의 나이테는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의 흔적들이다. 왜냐하면 어려운 시기를 지나면서도 믿음을 지켰던 날들의 흔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시련을 당했을 때 남들이 몰라주는 아픔과 외로움 속에서 하나님의 위로를 경험했던 새벽기도의 시간과 금식하며 작정 기도했던 시간들이 우리 신앙을 더 깊고 넓게 만들어왔기 때문이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욥23:10). 욥의 멋진 고백처럼 고난과 시련은 내 신앙의 나이테를 더욱 단단하고 멋지게 만든다. 사도 바울 또한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고후4:16)라고 고백했다.

바울의 고백처럼 우리는 매일의 선택과 순종, 기도와 헌신을 통해 신앙의 나이테를 그려가고 있다. 나무가 바람과 비에도 뿌리 깊이 견디듯, 신앙의 나이테가 단단한 사람은 어떤 고난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오늘의 작은 순종이 내일의 단단한 나이테가 되며, 주님은 그 모든 과정을 아시고 귀히 여기실 것이다.

결국 우리가 주님 앞에 설 때, 그분은 우리 삶과 신앙의 나이테를 보시고 ‘착하고 신실한 종’이라 칭찬하실 것이다. 지금 외롭고 지친 상황이라도, 더 깊고 단단한 나이테를 만들어가고 있음을 믿고 주님을 바라보며 힘차게 일어서기를 소망한다.

이정금 전도사

소망의 언덕

마음의 안팎을 닦자!

얼마 전, 유독 거실 창문 얼룩이 더럽게 느껴졌다. 유리세정제로 정성껏 창문을 닦아보았지만, 여전히 창문은 뿌옇다. 문제는 건물 바깥쪽의 외창이었다. 창문을 반쯤 열고 손을 뻗어 닦아보려 했지만 닿을 수 있는 범위가 제한적이었고, 무엇보다 창밖으로 몸이 기울며 위험했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좋은 제품이 있었다. 실내에서 손으로 청소 도구를 움직이면, 자력으로 붙어 있는 반대쪽 도구가 외창을 함께 닦아주는 원리였다.

정말 효과가 있을까 잠시 망설이다가 제품을 주문했다. 제품이 도착하자마자 창문을 닦기 시작했다. 설명서 대로 위에서 아래로 차분하게 창문 구석구석을 쓸어내려 청소를 마치고 나니 “와우!” 조금 과장하자면, 신세계가 펼쳐졌다.

‘진작 바깥 창을 닦았어야 했는데.’ 하는 생각이 들 무렵, 문득 큰 깨달음을 얻었다. 창문의 안과 밖이 모두 깨끗해야 세상을 온전히 볼 수 있는 것처럼, 나 자신도 그렇다는 사실이었다.

많은 크리스천들이 주일이 되면 회개를 한다. 그래서 지은 죄들을 눈물로 고백하고 통회하며 깨끗한 삶을 다짐한다. 그러나 자신의 일상생활로 돌아가면 보고 듣고 접하는 것들이 여전한 경우가 많다. 마치 세상 사람들이 건물 안에서 내창만 닦고 만족하는 것처럼 말이다. 내 영혼을 깨끗하게 하고, 내가 세상에서 접하는 모든 것 또한 깨끗해야 한다. 겉만 깨끗하고 속이 더럽다면, 그야말로 바리새인처럼 되는 것이다.

롯은 의인이었지만(벧후2:7), 잘못된 선택으로 소돔성에 거하게 된다. 보고 듣는 것이 모두 음란했던 소돔에서, 평생 괴로움에 사로잡힌 신앙생활을 했던 롯과 같은 삶을 살고 싶지는 않다. 내 겉과 속이 일치하여 깨끗할 때, 하나님을 온전히 뵐 수 있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 그때야 비로소 하나님께서 전대미문의 축복으로 인도하시는 길을 온전히 보고, 그 길을 따를 수 있다.

우리는 위대하신 하나님의 선한 일을 기대하며 지난 5개월 동안 기도해왔다. 혹시 지금 기대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고 마음이 불안하다면, 내 마음의 창을 먼저 닦아보자. 안과 밖이 모두 깨끗해지면, 분명히 보일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시고자 하는 아름답고 놀라운 일들이 말이다.

이현승 목사

프롬인터넷

이 세상에 내 것은 하나도 없다

프란치스코 교황(Francis, Jorge Mario Bergoglio 1936~2025)의 마지막 편지를 공유해 보고자 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나는 오늘, 이 삶을 지나가는 사람으로서 작은 고백 하나 남기고자 합니다.

매일 세수하고, 단장하고, 거울 앞에 서며 살아왔습니다. 그 모습이 ‘나’라고 믿었지만, 돌아보니 그것은 잠시 머무는 옷에 불과했습니다.

우리는 이 몸을 위해 시간과 돈, 애정과 열정을 쏟아붓습니다. 아름다워지기를, 늙지 않기를, 병들지 않기를, 그리고… 죽지 않기를 바라며 말이죠. 하지만 결국 몸은 내 바람과 상관없이 살이 찌고, 병들고, 늙고, 기억도 스르르 빠져나가며 조용히 나에게서 멀어집니다.

이 세상에, 진정으로 ‘내 것’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도, 자식도, 친구도, 심지어 이 몸뚱이조차 잠시 머물렀다 가는 인연일 뿐입니다. 모든 것은 구름처럼 머물다 스치는 인연입니다. 미운 인연도, 고운 인연도 나에게 주어진 삶의 몫이었습니다. 그러니 피할 수 없다면 품어주십시오. 누가 해야 할 일이라면 ‘내가 먼저’ 하겠다는 마음으로 나서십시오. 억지로가 아니라, 기쁜 마음으로요.

해야 할 일이 있다면 미루지 말고 오늘, 지금 하십시오. 당신 앞에 있는 사람에게 당신의 온 마음을 쏟아주십시오.

울면 해결될까요? 짜증 내면 나아질까요? 싸우면, 이길까요? 이 세상의 일들은 저마다의 순리로 흐릅니다. 우리가 할 일은 그 흐름 안에서 조금의 여백을 내어주는 일입니다.

조금의 양보, 조금의 배려, 조금의 덜 가짐이 누군가에겐 따뜻한 숨구멍이 됩니다. 그리고 그 따뜻함은 세상을 다시 품게 하는 온기가 됩니다.

이제 나는 떠날 준비를 하며, 이 말 한마디를 남기고 싶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내 삶에 스쳐간 모든 사람들, 모든 인연들, 그리고 이 아름다운 세상에.

“나와 인연을 맺었던 모든 사람들이 정말 눈물겹도록 고맙습니다.”

가만히 돌아보면, 이 삶은 감사함으로 가득 찬 기적 같은 여정이었습니다.

언제나 당신의 삶에도 그런 조용한 기적이 머물기를 바라며 이 편지를 마칩니다.

한국교회사

한국 교회 마음을 울린 대부흥운동의 주역,

하디 선교사

한국교회사에 있어 가장 중요한 전환점은 부흥운동이라 할 수 있다. 대부흥운동은 한국 사회를 풍전등화와 같은 위기상황에서 구원하고 복음화하려는 하나님의 뜻과 한국 성도들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열정과 부흥을 사모하는 선교사들의 기도가 맞물려 종합적으로 일어난 하나님의 은혜이고 역사였다.

1907년 평양 대부흥운동은 1903년 원산 회개부흥운동이 그 기원이 되었고, 이 운동의 주도적인 역할을 한 사람은 남감리회 의료선교사인 로버트 하디 선교사(하리영 1865~1949)이다.

하디는 1865년 6월 11일 캐나다 온타리오주 세네카의 감리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나이 10세에 부모님을 모두 잃었고, 1884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교사자격증을 취득해 2년간 교편을 잡고, 그 후 1886년 토론토 의대에 입학해 1890년 의학사를 취득했다.

1886년 고향 친구 마가렛 켈리와 결혼했는데, 이들은 ‘이 세상에 아주 유익한 존재가 되겠다’는 삶과 비전을 나눈 동지였다. 이 부부는 해외선교를 위한 학생자원운동에 동참하였고, 한국 선교를 결심했다.

그는 캐나다 토론토 지역 의대생들로 구성된 기독청년들의 파송을 받아 1890년 9월 30일 부산에 도착했다.

이제 갓 복음이 들어온 한국에 할 일이 많음을 안 게일은 하디를 불러들였고, 하디는 게일과 펜윅에 이은 한국에 온 세 번째 독립선교사였다.

하디 선교사는 부산에서 게일 선교사와 함께 사역하다가 상경하여 제중원에서 에비슨 선교사와 함께 몰려드는 환자를 진료했다. 이때 하디 선교사는 상당수의 죽을병에 걸린 사람을 치료하여 살렸고, 그로부터 서양 의사와 기독교에 대한 호감이 사회에 전파되었다.

1891년 당시 의료선교사가 없던 부산으로 내려가고, 다시 부산에 선교사가 늘어나자 원산으로 이동하여 시약소를 열고 환자를 돌보았다. 1893년 선교 센터를 건립하고 함경도와 강원도를 순회하며 복음을 전하였다.

1898년 그를 파송한 기독청년회와 8년 계약 기간이 종료되면서 미국 남감리회로 소속을 바꾸었다. 남감리회를 통해서 목사 안수를 받고 영덕 및 원주에 이르기까지 여러 곳을 여행하며 만나는 사람마다 직접 복음을 전하고 환자들을 돌봤다. 그리고 개성으로 자리를 옮겨 남성병원을 설립하여 환자를 돌보았다.

하디에게 원산은 고향과도 같은 곳이 되었다. 1900년 12월 15일 원산으로 다시 파송을 받은 하디는 미 북감리회 선교사 맥길로부터 의료와 복음사역을 인수 받고, 원산에 주재하면서 의료선교사역과 함께 신앙공동체를 순회하며 교회를 설립했다. 그 결과 1901년 김화군 지경터에서 장년 15명에게 세례를 주고 강원도 최초의 교회인 지경터교회를 설립했다.

1901년 10월 5일에는 현재까지 존재하는 강원도 최초의 교회인 양양교회를 설립했고, 이어 강릉 중앙교회, 고성 간성교회 등을 설립하였다.

하디는 교육 사업과 문서 선교에도 많은 활동을 하였다. 1909부터 14년간 협성신학교 교장, 피어선 성경학교 교장을 역임하였다. 1916년 를 창간하여 진보적인 신학을 소개하였고, 1930년부터 은퇴할 때까지 사장으로 활동하였다. 그는 40여 권의 저서와 170여 편의 논문을 남겼다. 특히 특정 교단에 치우치지 않고 초교파적으로 활동하였고 교파 간 연합 활동을 주도하였다. 교단 연합 기구인 조선예수교서회 및 기독신보 발행에 헌신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1935년 한국에서 은퇴할 때까지 44년간 한국 교회를 위해 봉사하였던 로버트 하디 선교사는 사역 중에 1893년 8월 9일에 딸을 얻었지만, 하루 만인 8월 10일에 딸은 주님 곁으로 갔다. 그 후 1903년 9월 1일에 둘째 딸을 얻었지만, 둘째 딸 역시 1909년 여섯 살의 나이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두 딸을 잃는 아픔을 겪었지만, 그의 선교에 대한 열정과 사랑이 이 나라에 영적 부흥운동을 일으키는 놀라운 사역을 감당한 위대한 선교사였다.

하디 선교사는 말한다.

“진짜 부흥은 내 안에 죄를 보는 눈을 뜨는 데서 시작된다.”

그의 말이 한국 교회를 울렸다.

김종춘 목사

a26881009@gmail.com

빛이 되리라

매일 승리하는 기도를 하자

요즘 매일 새벽과 저녁에 꾸준히 기도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몸 여기저기가 아프고, 걱정 근심을 떨쳐내지 못하며, 내 생각과 마음도 잘 지켜내지 못하는 상황이 생기기 시작했다. 하는 여러 일도 뜻대로 풀리지 않고 말이다. ‘무엇이 문제지? 기도도 충분히 하는 것 같은데?’ 하는 생각도 해봤지만, 그 이유를 잘 찾지 못했다.

그러다 얼마 전 수요예배를 드리다가 말씀 중에 불현듯 깨닫게 된 게 하나 있다. 바로 내 기도 자세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다. 특히 새벽기도가 그랬다. 새벽기도를 집에서 하다 보니 크게 소리 내지도 못하고, 피곤하면 누워서 하기도 해서, 나도 모르게 기도의 자세가 느슨해진 거였다. 나름 기도한다고는 하지만, 때론 잠들기도 하고, 악한 영적 권세를 뚫고 하늘까지 기도를 올리지 못하는 내 모습이 떠올랐다. ‘아~ 예전엔 그렇지 않았는데, 승리하는 기도, 성공하는 기도를 하지 못했구나. 이게 문제였구나!’라고 생각하며 다시 한번 새롭게 마음을 다잡게 되었다.

이제는 무조건 바로 일어나 무릎 꿇거나 앉거나 서서 전투하듯 기도한다. 이 영적 싸움을 반드시 이기겠다는 각오로 기도한다. 귀신을 쫓고, 천사가 기도를 돕도록 명령하고, 성령을 기름 붓듯 물 붓듯 부어달라고 성령님의 도우심을 간구한다. 그렇게 기도의 자세를 바꾸자 막혔던 문제들이 점점 해결됨을 보고 있다. 내 생각과 마음을 지키는 것도 훨씬 수월하다.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에 영으로 기도하고 마음으로 기도해서, 내 생각을 하나님의 생각으로 바꾸고, 그날 하루를 성령의 인도하심 따라 살아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깨닫는다. 부족한 우리가 의지할 것은 하나님밖에 없다. 반드시 승리하는 기도를 하자. 뜨뜻미지근하고 느슨하게 하지 말자. 방해하는 악한 영적 세력을 뚫고 하늘에 내 기도를 반드시 상달하자. 기도에 승리하고, 흑암의 권세를 물리치며 주님이 주신 하루하루를 기쁘게 살아가자.

장명훈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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