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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를 두려워하지 마세요

1307호 · 2025-05-25
깊은 곳에서의 울림

변화를 두려워하지 마세요

음악학원을 운영하던 집사님이 있었습니다. 처음엔 잘됐지만, 시간이 지나며 점차 운영이 어려워졌습니다. 조경 사업을 하시던 아버지는 여러 차례 함께 일하자고 권했지만, 집사님은 ‘나는 평생 음악만 할 사람’이라며 거절하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병환으로 쓰러지셨고, 사업을 맡을 사람이 없었습니다. 빚까지 떠안게 된 상황에서 집사님은 폐업을 고민하다가 목사님께 조언을 구했습니다.

“나라면 음악만 하겠다는 고집을 내려놓고, 사업을 이어받아 가정을 다시 일으킬 겁니다. 생각을 바꾸면 하나님이 도우십니다.”

조경 일을 전혀 몰랐던 집사님은 두려웠지만, 그 말씀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믿고 순종하기로 결단했습니다.

주변 반응은 냉담했습니다. ‘음악만 하던 사람이 뭘 알겠느냐’는 비웃음이 있었고, 아버지 곁에서 일하던 일꾼들도 그를 무시했습니다. 그러나 집사님은 자존심을 내려놓고, 베테랑 일꾼 한 분에게 일을 가르쳐 달라고 정중히 부탁하며 배워나갔습니다. 매일 눈물로 기도하며 피나는 노력을 이어가자 주변의 시선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신뢰가 생겨났고, 떠났던 거래처들이 다시 돌아오며 새로운 계약들도 하나둘 이어졌습니다.

작년 말, 목사님이 감동이 오셔서 축복 기도를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사흘 뒤, 서울에 117년 만의 기록적인 폭설이 내렸습니다. 이로 인해 수많은 나무가 부러지자 사방에서 복구 요청이 빗발쳤고, 평소라면 일이 끊기던 겨울에 집사님은 2주 내내 쉴 틈 없이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단숨에 빚의 절반을 갚을 수 있었습니다. 할렐루야!

밤새 그물을 내렸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했던 베드로. 지친 몸으로 그물을 걷고 있던 그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져라.”

누구보다 경험 많던 베드로는 이해되지 않았지만, 자기 생각을 내려놓고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그 순간, 찢어질 만큼 많은 고기가 그물에 가득 잡혀 다른 배까지 채우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마세요. 변화가 두려우면 현실에 만족하고 살아야 합니다. 도전과 모험 없이 절대 성공은 없습니다. 도전 없이 이룰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김진실 사모

영생에 이르는 길

약속은 신중히, 이행은 신속히!

한 성도님이 저에게 기도를 부탁하였습니다. 집이 하나 있는데 내놔도 팔리지 않아서 고민이라며 속히 팔리게 기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분의 사정을 자세히 묻고 팔 집의 주소도 확인한 후 기도뿐만 아니라 직접 가보기도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급한 일들로 미루다가 눈이 많이 오던 어떤 날 시간을 내어 드디어 팔 집을 보러 갔습니다. 차에서 내려 그 집을 보고 속히 팔리도록 기도하고 돌아왔는데, 다음 날 아침에 전화가 왔습니다. 바로 기도를 부탁한 성도님이었습니다. 좀처럼 전화하지 않는 분이라 웬일인가 하고 받았는데 기도 부탁한 팔 집에 가보았냐고 물으시는 겁니다. 가보았고 기도하고 왔다고 답변드리고 훈훈하게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 전화를 받으면서 전날 다녀온 것이 천만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전화하셔서 확인하실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만약 가보지 않았다면 저는 궁색한 변명만 늘어놔야 했을 겁니다. 더욱이 저를 향한 그분의 신뢰와 믿음은 산산조각이 났을 겁니다.

약속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봅니다. 돌이켜보니 제가 발행한 수많은 약속 중에 부도수표가 허다했습니다. 특히 ‘밥 한번 먹자’는 약속들 대부분을 부도냈습니다. 약속은 쉽지만, 이행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사사 입다는 자신의 신중하지 못한 서원으로 인해 가장 사랑하는 딸을 희생제물로 드려야 했습니다. 우리 목사님이 늘 하시는 말씀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약속하지 않는다’ 입니다. 약속할 때는 신중해야 하고, 약속했다면 손해를 보더라도 반드시 또 빠르게 이행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사람에게 신뢰받고 인정받는 자가 됩시다.

최성경 전도사

생명의 말씀

감사를 잊지 말라

“마땅히 행할 것을 자녀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느니라”(잠22:6).

감사는 배우고, 가르쳐야 한다. 부모에게, 이웃에게, 어른에게, 그리고 어떤 상황 속에서도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전하는 것, 그것은 단지 예의의 표현을 넘어 살아가는 태도이며 인생을 지탱하는 힘이다. 콩나물시루에 물을 붓는 것처럼, 감사는 어쩌면 금방 흘러내리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아래에서는 분명히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콩나물이 자라듯, 우리 영혼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라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감사를 통해 은혜를 심고 계신다. 감사가 없다고 해서 삶이 멈추진 않지만, 어느 순간 기쁨이 찢어지고, 소망이 찢어지고, 마음의 문틈으로 슬픔과 외로움, 아픔, 불안과 병이 밀려든다.

한 집사님이 있었다. 예수를 30년 넘게 믿었고, 주일예배는 물론 십일조와 선교, 구제, 봉사까지 성실히 감당한 분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 암 선고를 받았다. 억울함에 교회만 가면 눈물이 흘렀다고 한다. 호스피스 병원에 입원한 어느 날, 목사님이 심방을 오셨다. 그분은 집사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노트에 천국 가는 날까지 감사한 것과 감사하지 못했던 것들을 모두 적어보세요.” 처음엔 화가 났다고 한다. ‘지금 내가 그런 걸 쓸 상황인가?’라며 노트를 던져버렸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말씀이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고, 결국 하루 이틀…, 감사할 것들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별로 없었다. 그러나 하루하루 한 줄씩 적다 보니 어느새 노트는 감사로 가득 찼다. 그리고 깨달았다. 감사하지 못할 일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놀라운 일은 그다음에 일어났다. 의사의 재검에서 암세포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 집사님은 고백했다. “하나님은 나에게 기적을 주셨지만, 그 시작은 감사였습니다.”

감사는 기적을 만든다. 감사는 병든 마음을 회복시키고, 억울함을 평안으로, 절망을 소망으로 바꾸는 힘이 있다. 감사를 품고 살아가는 삶은 훨씬 더 단단하고, 깊고, 아름답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다짐한다. 작고 사소한 것에도 감사하며, 내가 걸어가는 이 길 위에서 감사를 잊지 않겠다고.

임택함 목사

청춘, 그 아름다운 이름

아름다운 사람, 아름다운 흔적

제가 가장 좋아하는 설교가 하나 있습니다. 다른 설교는 매번 고개를 숙이고 회개하며 듣지만, 이 설교만큼은 언제나 가슴을 당당히 펴고 기쁜 마음으로 듣습니다. 바로 십일조에 관한 설교입니다. 지난달 ‘십일조를 드려 우리 모두 잘 살자’라고 목사님이 설교하신 날에도 저의 가방에는 세 가지 십일조가 들어 있었습니다. 월급 십일조, 연차수당 십일조, 그리고 추가 수입의 십일조였죠.

어릴 때부터 용돈이나 세뱃돈을 받으면 그 자리에서 십일조부터 떼게 했던 어머니의 신앙 가르침이 저의 경제관념의 단단한 뿌리가 되었습니다. 십 대 때 처음으로 만 원을 번 날, 어머니는 첫 열매를 알려주시며 그 귀한 알바비 전액을 하나님께 드리라고 하셨죠. 드리기 아까운 마음과 순종하는 마음 사이에서 헌금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후로 인턴이 되어 처음 받은 봉급도, 광고회사에 입사해 처음 받은 월급도, 책을 출간해 처음 받은 인세도, 글쓰기 수업으로 처음 번 수강료도 온전히 하나님께 드렸지요.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요.

오래전 직장 동료들과 커피를 마시며 대화하다 십일조가 언급된 적이 있습니다. 동료 중엔 크리스천도 있고, 크리스천이지만 교회에 나가지 않는 사람도 있고, 크리스천이 아닌 사람도 있었어요. 제가 월급의 십 분의 일을 헌금한다는 말에 모두 적잖이 놀랍습니다. 일반적인 눈으로는 꽤 큰 돈이니까요. 아깝지 않으냐는 질문에 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에게 들어오는 모든 수입은 하나님의 은혜로 번 것이라 생각해요. 그런데 겨우 십 분의 일만 하나님께 드리고 무려 십 분의 구를 내가 가진다니 얼마나 감사한 일이에요!”

저는 반평생 형편이 어려운 시절을 보냈습니다. 헌금하지 못한 날도 많았죠. 고등학생 때 제가 가진 전부였던 오천 원을 하나님께 드리며 더 드릴 것이 없어 펑펑 울었던 적도 있었어요. 돈 걱정 없는 삶이, 해외로 어학연수 가는 삶이, 부모님께 용돈 드리고 해외여행 보내드리는 삶이, 아낌없이 헌금하는 삶이, 독립해서 혼자만의 공간을 갖는 삶이, 서울에 내 집 마련하는 삶이 너무나 불가능한 일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드린 십일조가 옥토에 뿌려진 씨앗처럼 하루하루 자라나고 차곡차곡 쌓이더니 어느덧 모든 소망이 현실이 되었습니다. 취업해 매달 십일조를 내기 시작한 날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물질이 부족한 적 없었고, 항상 필요한 돈보다 차고 넘치게 벌었습니다. 돈을 더 모으고 싶다고 마음먹으면 우수 사원으로 선정돼 특별 상여금을 받거나 생각지 못했던 일 청탁이 들어와 추가 수입이 생겼죠. 부족함 없는 저의 삶 자체가 십일조의 축복이라 고백합니다.

헌금할 때마다 빠짐없이 기도합니다. 평생 십일조 드릴 수 있도록, 넉넉히 감사헌금 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한 곳에 쓰임 받는 손길이 될 수 있도록, 부모님께 풍족히 효도할 수 있도록, 나 자신과 하나님을 위해 쓰는 돈에 인색하거나 계산하지 않도록 적당한 축복 말고 차고 넘치는 축복을 달라고 기도합니다. 우리 모두, 십일조를 드리는 자녀들에게 하늘 문을 열고 쏟아부으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낱낱이 받아 누리며 살아봅시다.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말3:10).

신은혜

나도 건강할 수 있다

성경 속 우슬초(Hyssop)의 의미와 상징

* 정결의 상징, 우슬초

우슬초는 히브리어로 Ezov(에조프)라고 불리며, 영어로는 Marjoram(마조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무릎이 아플 때 한의학에서 사용하는 우슬(쇠무릅, Achyranthes bidentata)과는 다른 식물입니다.

출애굽기 12장 22절에 등장하는 우슬초는 어린양의 피를 찍어 문설주의 양쪽과 위쪽에 바르기 위해 사용되었습니다. 당시 이 의식은 하나님이 애굽에 내린 재앙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보호하는 중요한 상징적 행위였습니다. 피와 함께 문설주에 뿌려진 우슬초는 그 가정이 정결하다는 표시이자, 구원의 보증이었던 것입니다.

* 십자가의 마지막 순간에도 등장한 우슬초

우슬초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요한복음 19장 29절에는 ‘해면에 포도주를 흠뻑 적신 후 우슬초 줄기에 매달아 예수의 입에 갖다 대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슬초에 적셔진 포도주는 예수님의 갈증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그 이상의 상징성을 담고 있습니다. 정결과 정화의 상징인 우슬초가 예수님의 마지막 순간에 사용된 것은, 그분의 죽음이 인류의 죄를 정결하게 한다는 의미를 깊이 새기게 합니다.

* 강인한 생명력과 겸손의 상징

열왕기상 4장 33절에는 솔로몬의 지혜가 ‘레바논의 백향목으로부터 담에 나는 우슬초까지 미쳤다’고 기록합니다. 여기서 백향목은 교만을, 우슬초는 겸손을 상징합니다. 백향목이 거대하고 당당한 모습이라면, 우슬초는 담장 틈이나 바위 사이에서도 끈질기게 자라는 작고 연약한 풀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미미하고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우슬초의 생명력은 강인합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 향과 약효가 유지되며, 정결한 의식과 치료제로 쓰이던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는 겉모습에 집착하지 않고 겸손하게 살아가는 삶의 가치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 현대의학과 우슬초의 활용

우슬초는 단순히 상징적 의미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항균, 항염, 소화 촉진 등의 약효가 현대 과학에서도 입증되고 있으며, 특히 차나 에센셜 오일로도 널리 활용됩니다. 세균을 억제하고 면역력을 증진시키며, 심신을 안정시키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최근 연구에서는 호르몬 조절, 항산화 작용, 항암 효과에 대한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우슬초가 정결함과 치유를 상징했다면, 현대에서는 건강한 삶을 위한 자연치유제로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 영혼을 정화하는 상징, 우슬초

우슬초는 단순한 식물이 아닌, 정화와 회복의 상징으로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의 마지막 순간, 목마름을 적셔준 그 우슬초는 단순한 갈증 해소가 아닌, 상처받은 영혼을 정화하는 은혜를 상징합니다.

우슬초의 향처럼 우리 삶에도 그 정결함이 스며들기를 바랍니다. 상처받고 목마른 영혼에게 신선한 향기와 회복을 전해주는 우슬초처럼, 우리 삶 또한 다른 이들에게 치유와 회복의 상징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Dr. 설재현 집사

참된 깨달음

연금과 같은 기도

나에게는 대학부와 청년부를 거쳐 장년부에 이르기까지 20여 년 동안 신앙생활을 함께해온 믿음의 동역자들이 있다. 그들은 교회에서 신앙의 노선이 같은 배우자를 만나 결혼생활을 시작했고, 20년이 지난 지금, 교회 곳곳에서 봉사하며 기도원집회, 기도 모임, 예배의 자리를 지키며 영육이 복되고 안정된 삶을 살고 있다. 한 교회를 한결같이 섬겨온 이들의 공통점은 항상 기도의 자리를 굳건히 지킨다는 것이다.

20여 년 전 대학부 시절부터 지금까지 목사님은 항상 기도를 강조하셨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대학부 사무실에 모여 매일같이 습관처럼 기도했고, 이러한 습관은 청년부와 장년부에 이르기까지 이어졌다. 물론 인생의 여정에서 레일을 이탈한 기차처럼 목표에서 벗어나 방황할 때도 있었지만,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던 힘은 바로 쌓아온 기도의 습관 덕분이었다.

목사님께서는 ‘기도는 연금과 같다’고 말씀하셨다. 젊은 시절부터 매달 연금을 적립하면 노년에 그 연금으로 생활할 수 있듯, 젊을 때부터 꾸준히 쌓은 기도는 인생의 어려운 순간마다 나를 든든히 지탱해주는 힘이 되었다. 기도의 독을 꾸준히 채워두면, 예상치 못한 시련이나 고난 앞에서도 쉽게 흔들리지 않고, 평안과 소망을 잃지 않을 수 있다. 오랜 시간 쌓아온 기도의 힘이 있었기에 삶의 고비마다 다시 일어설 수 있었고,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길로 한 걸음씩 나아갈 수 있었다. 앞으로도 나는 믿음의 동역자들과 함께 기도의 연금을 쌓아가며 어떤 어려움도 이겨내는 삶을 살아가고자 한다.

오늘 쌓는 기도가 인생의 모든 계절을 평안과 감사로 채워줄 것임을 확신한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4:6).

송명국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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