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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7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의롭게 사는 자는 꿈으로 계시해주신다(욥33:14~18)

1307호 · 2025-05-25

창세기 20장에는 하나님께서 그랄 왕 아비멜렉에게 꿈으로 계시하신 내용이 나옵니다. 아브라함이 남방으로 이사하여 그랄이란 곳에 머물게 되는데, 그랄의 왕인 아비멜렉이 사라가 절세미인이라는 풍문을 들은 모양입니다. 그래서 이리저리 사전조사를 해보니 함께 있는 아브라함의 누이라는 겁니다. 걸릴 게 없다 싶은 아비멜렉이 사라를 취하려고 궁으로 데리고 옵니다.

그날 밤 사라와 동침하기 전 깜박 조는데, 그때 하나님이 아비멜렉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네가 취한 이 여인을 인하여 네가 죽으리니 그가 남의 아내임이니라”(창20:3). 깜짝 놀란 아비멜렉은 하나님께 여쭙니다. ‘주여, 나는 남의 아내를 취하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분명히 누이라고 했습니다. 주께서는 의로운 백성도 멸하시나이까’(창20:4). 그러자 하나님이 “네가 온전한 마음으로 이렇게 한 줄을 나도 알았으므로 너를 막아 내게 범죄하지 않게 하였나니 여인에게 가까이 못하게 함이 이 까닭이니라”(창20:6)고 말씀하십니다. 꿈을 깬 아비멜렉은 사라를 아브라함에게 돌려보냈고, 아브라함의 축복으로 그의 아내와 여종의 모든 태의 문이 열리는 복을 받게 됩니다.

여기서 잠깐 살펴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네가 온전한 마음으로 이렇게 한 줄을 나도 알았으므로 너를 막아 내게 범죄하지 않게 하였나니”라는 말씀입니다. 이는 온전한 자라는 말씀이고, 하나님은 의로운 자가 혹 올무에 잡힐까봐, 수렁에 빠질까봐 꿈으로 경고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욥기서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무관히 여겨도 하나님은 한번 말씀하시고 다시 말씀하시되 사람이 침상에서 졸며 깊이 잠들 때에나 꿈에나 밤의 이상 중에 사람의 귀를 여시고 인치듯 교훈하시나니 이는 사람으로 그 꾀를 버리게 하려 하심이며 사람에게 교만을 막으려 하심이라 그는 사람의 혼으로 구덩이에 빠지지 않게 하시며 그 생명으로 칼에 멸망치 않게 하시느니라”(욥33:14~18).

마태복음에도 의로운 사람에게 꿈으로 계시하신 내용이 있습니다. 바로 마리아의 정혼자 요셉에게 입니다.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마1:19). 이것이 꿈으로 계시하신 이유입니다.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하자 그의 약혼자였던 요셉은 조용히 관계를 끊고자 했습니다. 보통의 남자라면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했다고 동네방네 소문을 내서 율법대로 돌로 쳐 죽였을 겁니다만,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조용히 관계를 정리하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요셉의 꿈에 주의 사자가 나타나 “마리아 데려오기를 두려워 말라 이는 성령으로 잉태한 것이며 그는 구원자임이라.”고 말했습니다(마1:20~21). 이에 요셉은 ‘분부대로 행하여’(마1:24) 마리아를 데려와 해산할 때까지 동침치 않았습니다.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대저 패역한 자는 여호와의 미워하심을 입거니와 정직한 자에게는 그의 교통하심이 있으며”(잠3:32).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정직한 의인과는 교통하시나 패역하고 불의한 자와는 교통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 뜻대로 행치 않는 사울에게 그러셨습니다. 사울이 블레셋 사람들이 쳐들어와 불안하여 여호와께 물어도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선지자로도 그에게 대답하지 않으셨습니다(삼상28:6). 그러자 사울은 신접한 여인을 찾아 귀신을 불러올리는 어이없는 일을 저지르고 맙니다(삼상28:15).

하나님은 가끔 경고의 목적으로 불의한 자에게도 계시하시는데, 불의한 자들이 그 계시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다니엘서 4장을 보면 느부갓네살 왕이 꿈을 통해 계시를 받습니다. ‘땅의 중앙에 고가 높은 나무 한 그루가 있어 그 아래 들짐승과 새들이 깃들었는데, 한 순찰자가 하늘에서 내려와 그 나무를 베고 가지를 치고 열매를 헤쳐서 들짐승과 새들이 떠나게 하고 간신히 그루터기만 남겨두라’고 하는 꿈이었습니다. 이 꿈을 하나님의 사람 다니엘이 해몽해줍니다. 그러나 느부갓네살은 이 계시를 무시했고, 그는 일곱 해 동안이나 동물처럼 비참하게 살게 됩니다.

빌라도의 아내에게 ‘예수님의 일에 관여치 말라’는 꿈을 주셨건만, 빌라도는 이를 무시했습니다. 그 결과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라고 사도신경에 기록되어 세세토록 저주를 받고 있습니다(마27:19~26).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면, 하나님도 그를 무시하십니다. 성경에는 분명히 “주여 사람이 깬 후에는 꿈을 무시함 같이 주께서 깨신 후에 저희 형상을 멸시하시리이다”(시73:20)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처음과 끝을 아시는 분이기에 계시하시는 겁니다. 요셉이 애굽의 총리대신이 될 것을 아신 하나님이 그에게 미리 요셉의 단을 형제들의 단이 둘러서서 절하는 꿈, 해와 달과 열한 별이 절하는 꿈을 미리 보여주신 것입니다(창37:6~10).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에든 조급해하지 말고 계시대로 해야 합니다. 동방박사가 그랬습니다. 베들레헴에서 유대 왕이 났다고 하여 동방박사들이 그 별을 따라 예루살렘에 이르자 이 소문을 들은 헤롯왕이 동방박사를 궁으로 초대하여 만찬을 베풀고는,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마2:8)고 했습니다. 동방박사들은 왕의 말에 의심치 않고 그리하려고 하였으나 예수를 알현하고 나서 돌아갈 때,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는 계시가 있자 그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갔습니다(마2:12).

마리아의 남편 요셉도 그랬습니다. 꿈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기를,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

(마2:13)고 하니, 밤에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떠나가 헤롯이 죽기까지 거기 있었고, 헤롯이 죽자 주의 사자가 “일어나 아기와 그 모친을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라 아기의 목숨을 찾던 자들이 죽었느니라”(마2:20) 하니 요셉이 아기와 그 모친을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옵니다. 그러나 헤롯의 아들인 아켈라오가 왕이 됨을 인하여 두려워하자 꿈에 지시하심을 받아 갈릴리 지방으로 떠나가 나사렛이란 동네에 안착하게 됩니다. 이처럼 계시대로 하면 덫에 걸리지 않습니다.

우리 교단이 지금까지 문제없이 온 것은 하나님의 계시에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고속버스터미널 옆의 건물을 인수하려고 할 때 꿈으로 막으셨고, 개인 주택을 구입하려고 할 때도 우물에 물이 마른 것을 보게 하사 막으셨고, 올림픽공원에서 지금의 88체육관으로 옮기게 하신 것도 꿈으로 보이셨고, 제 건강에 이상이 있음도, 베트남 집회가 무산될 것도, 서울 교회를 비롯해 지교회의 목사를 세우는 일도, 연산홍이 까맣게 타들어가는 꿈으로 사놓은 교회 성전 부지 설계를 막으셨고…. 그래서 저는 서울성전도 하나님의 계시에 따라 진행할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계시가 있을 때 사무엘처럼,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삼상3:10)라는 자세여야 합니다.

또한 꿈은 사사로이 풀면 안 됩니다. 이번에 지교회 목사가 꿈꾼 것을 제게 물어보길래 ‘참 잘했다’고 했습니다. 요셉이 바로의 꿈을 해몽할 때 “이는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바로에게 평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창41:16)라고 했고, 관원장들의 꿈을 해몽할 때도,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창40:8)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의 사람이 해몽해야 오류가 없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여러분, 하나님의 계시를 무시하지 마십시오. 아비멜렉에게 꿈을 무시하면 죽는다고 경고하신 말씀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어떤 사람과 결혼하려고 하는데, 꿈에 하지 말라고 하십니까? 어떤 사람과 동업하려고 하는데 하나님이 안 좋다고 하십니까? 과감히 그 사람과 연을 끊으세요. 그리고 의로운 자가 되어 늘 하나님과 교통하십시오. 하나님이 시시때때로 꿈으로, 혹은 이상으로 당신에게 계시하사 옳은 길로, 평안한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행2:17). 할렐루야!

하나님은 흥망성쇠를

꿈으로 계시하신다

네가 의롭게 살면

꿈으로 인도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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