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본심은 축복이시다(애3:33)
제가 목회를 시작하고 어머니와의 갈등이 심해져 집을 나왔습니다. 우리 어머니 표현대로 예순가 야수에게 미쳐 장손의 의무인 제사도 안 지내고, 또 예수를 위한다며 재산을 무 자르듯 잘라 쓰는 아들을 더는 못 보신다고 난리가 났습니다. 해서 차 트렁크에 옷 몇 벌만 싣고 집을 나온 겁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다 보니 어머니가 보고 싶고, 가족들이 보고 싶어 집에 들르면 우리 어머니는 대성통곡을 하며 제 옷을 갈기갈기 찢곤 하셨습니다. 그때는 그런 어머니가 야속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깨달았습니다. 그것이 우리 어머니 사랑임을. 옷을 찢으신 것이 어머니의 본심이 아니라 그 속 깊은 곳에는 이 아들을 여전히 너무 사랑하고 계심을 알았습니다. 믿음이 없으셨던 어머니가 보기에는 아들이 잘못 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니 어머니가 그리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그 마음이 얼마나 아프셨겠습니까? 어머니의 본심을 알게 된 후로, 물론 여전히 저에게 가혹한 어머니셨지만 이해할 수 있었고, 더욱 어머니를 위해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본심을 아십니까? 하나님의 본심을 한 번쯤 헤아려보셨습니까? 하나님의 본심은 이것입니다.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렘29:11).
하나님은 우리가 평안하기를, 우리가 소망으로 기뻐하고 행복하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본심을 성경 여기저기에 드러내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이 말씀은 하나님 본심의 으뜸입니다. 아들을 내어줄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시니 무슨 말을 더하겠습니까? 또한 아들을 내어주신 이가 무엇을 아끼고 안 주시겠습니까?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롬8:32). 그래서 생선을 달라고 하는 자에게 가장 좋은 성령까지 주신 것이고(눅11:13), 이스마엘로 족하다는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주신 것이고, 기근을 피해 7년 동안 이스라엘을 떠났던 수넴 여인이 돌아와 자신의 땅을 되찾고자 할 때 하나님은 왕을 통해 땅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 떠날 때부터 이제까지 그 밭의 소출까지도 다 돌려받게 하셨던 것입니다(왕하8:6). 이게 하나님의 본심입니다.
여러분, 혹시 ‘내가 너무 욕심 사납게 하나님께 요구하고 있나?’ 하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까? 그런 생각일랑 아예 하지 마세요. 다 주고 싶은 것이 하나님의 본심이라니까요. 더 주는 게 아니라 가장 좋은 것으로 다 주는 거 말입니다. 여러분이 어마어마한 걸 요구한다고 해도 하나님께는 먼지 한 톨 정도밖에 되지 않으니 걱정 말고 마음껏 구하세요. 어린 자녀들이 어디 부모 사정 봐가면서 조릅디까? 어린아이처럼 그냥 달라고 하세요.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빌4:19).
하나님의 사랑은 그 깊이와 넓이가 정말로 한이 없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태어나기 전, 창세 전에 이미 우리를 택하사 당신의 자녀를 삼으셨고(엡1:4~7), 또 우리를 위해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후에 우리를 이 땅에 보냈습니다(창1:27). 그 하나님은 신명기 28장에 넘치는 복을 우리에게 약속하셨고, 무엇이든 구하면 주신다고 하시며(요14:14), 장차 우리가 거할 처소까지 멋지게 짓고 계십니다. 이런 사랑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왜 힘드냐고요? 왜 가난하냐고요? 이 말씀을 잘 새겨야 합니다.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애3:33). 하나님은 우리가 고생하고 근심하는 것을 정말 원치 않으시나 인생이 고생하고 근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요? 그것 역시 하나님의 본심을 알면 이해하고, 해결책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하고 싶어 하십니다. 우리가 당신 안에, 당신 품 안에 있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가운데 성막 중에 거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도 이 땅에 오셔서 12명의 제자를 삼으신 첫 번째 이유가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려고’
(막3:14)입니다.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신 예수님이 전도의 일보다 먼저 당신과 함께 있을 제자를 택하신 것입니다. 성령을 주신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하나님 안에 있으면 어찌 됩니까? 하나님은 요한복음 15장에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15:5)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게 붙어 있으면 절로 열매를 맺는다’는 겁니다. 우리가 뭘 하고, 노력해서가 아니라 그냥 딱 붙어 있으면 저절로 풍성한 열매를 맺는다는 겁니다. 세상의 것뿐 아니라 영생의 것까지 넘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떨어져 나가면 아무것도 아니고, 사람들에게 밟힐 뿐입니다. 탕자인 둘째 아들이 아버지에게서 떨어져 나가니 쥐엄열매나 먹는 신세가 된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첫째 아들은 본인이 몰라서 그렇지, 계속 아버지 안에 있었기에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눅15:31), 곧 아버지의 것이 다 자기 것이었습니다. 신명기 28장의 복, 시편 91편의 복이요? 하나님 품 안에 거하면 거저 받습니다.
그런데 좀 섰다 하면, 좀 컸다 하면 그 품에서 빠져나가려고 합니다. 병아리가 조금 자라면 어미 암탉의 품에서 빠져나가려고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답답하다나요?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마23:37). 사울이 그랬고, 다윗도 그랬고, 그렇게 믿었던 솔로몬도, 술람미 여인이 그랬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어쩔 수 없이 회초리를 드시는 겁니다. 나가면 아무것도 아니게 됨을 아시니까 못 나가게 하려고, 나가면 사람들에게 밟히고 개고생하는 줄 아니까 못 가게 하려고 고민 고민하시다가 회초리를 드시는 것입니다. 잘못될 길로 가는 자녀를 그냥 보고 있을 부모가 어디 있습니까? 비록 우리 어머니는 예수를 몰랐기에 예수에 미친 제가 잘못 가고 있다고 생각하셔서 그토록 매정하고 가혹하게 대하셨던 것입니다. 징계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징계도 사랑의 표현입니다.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히12:5~8).
이때 얼른 하나님께 납작 엎드려야 합니다. 얼른 하나님 품으로 쏙 들어와야 합니다. 여호수아가 자기 힘으로 된 줄 알다가 아이성에서 대패했습니다. 그때 여호수아가 한 일은 작전회의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하지 못한 것을 회개했습니다. 다윗도 밧세바와의 사이에서 난 아들이 죽어갈 때 명의를 찾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굴복했습니다. 욥도 그랬고요. 그랬더니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다시 승리를 안기셨고, 다윗을 늦도록 부귀케 하셨으며, 욥에게 갑절의 축복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징계가 있걸랑 ‘징계하시는 하나님!’ 이렇게 하나님 본심을 오해하지 말고, 어서 돌아오세요. 그 품에 바짝 안기세요. 집 나간 둘째 아들을 기다리던 아버지처럼 지금도 우리 하나님은 문 열어놓고 당신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아버지 품에 가면 모든 것이 넉넉합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제 삼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호6:1~2).
하나님의 본심은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평안과 소망 가운데 거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호6:3). 할렐루야!
하나님을
오해하지 말라
당신은 어떤 하나님을
믿고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