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그 사람이 돼라
당신이 그 사람이 돼라
최근 파리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한 선수가 시합 후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종목을 주관하는 협회의 부당한 처우에 대한 불만을 공개적으로 밝혀 파장을 일으킨 바 있다. 자세한 속사정이야 당사자들만 알겠지만, 인류의 화합과 공존으로 아름답게 치러져야 할 올림픽에서 같은 나라 선수와 협회 간의 갈등과 분쟁이 그 정신을 퇴색시킨 것 같아 자못 안타깝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 선수가 나중에 체육계 또는 해당 종목의 지도급 인사가 되어, 지금 본인이 생각하는 부조리나 잘못된 관행을 바꿀 수 있는 영향력을 가지게 된다면? 선수 개인 자격으로 언론에 성토하는 것 이상의 변화가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청소년 수련회뿐 아니라 수련회 때마다 총회장 목사님께서는 각 분야에 위대한 인물들이 우리 교단에서 배출되기를 바라며 기도한다고 말씀하신다. 왜 그러실까?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 받고 하나님 자녀의 권세를 회복한 자들이, 점점 부패하고 타락해가는 세상 각 분야의 실무자 내지는 책임자로 들어가 자신이 속한 곳을 하나님 말씀과 뜻대로 변화시키는 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뉴스를 보라. 정계나 재계나 학계, 언론이나 연예 및 스포츠 분야에 이르기까지 좋은 소식을 접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딤후3:13)라는 말씀이 현실이 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세상과는 다른 기준과 방법으로 살며 하나님 뜻대로 정도(正道)를 가는 사람들이 각 분야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면 세상이 과연 어떻게 바뀔까?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선친들을 ‘위대하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의 삶이 그저 잘 먹고 잘 사는 것으로 귀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세상을 변화시켰다! 아브라함은 민족의 조상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며 섬기는 백성의 시작을 열었고, 요셉은 대국의 총리대신이 되어 기근으로 죽을 위기였던 세상을 구했고, 모세는 노예로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끌어내 약속의 땅으로 그들을 인도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온 인류를 죄악으로부터 구원하셨다.
이제 당신의 꿈(비전)은 무엇인가? 세상 어느 분야가 잘못되고 있고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당신이 바로 그 사람, 변화의 주체가 돼라.
신혁주 전도사
이를 식초에 담근다고?
당나라에 낙천(落薦) 백거이라는 자가 있었다. 그는 시인으로도 명성이 높았고, 정치적 능력도 겸비하여 관운이 따르는 자였다. 그가 경종 2년에 소주(蘇州) 자사로 임명을 받았는데, 그곳은 그의 고향이기도 해서 그가 부임하는 날 소주의 백성들이 대대적인 환영을 벌였다. 백거이는 그것을 보고 백성들이 자기에 거는 기대가 큼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부임하자마자 정무에 몰두했다. 마음 같아서는 오랜만에 옛 친구랑 술이라도 한잔하고 싶었지만, 그는 모든 것을 뒤로하고 일에만 몰두했다. 주위에서 너무 무리하는 게 아니냐고 하자 백거이는 이렇게 말했다.
“이 고장이 내 고향이기도 하지만, 사실 나는 이 고장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네. 서투른 것을 보충하는 데는 부지런함이 으뜸이고 제일이라네.”
공자의 제자 중 재여는 가장 뛰어난 달변가였다. 그러나 재여는 말과는 완전히 다르게 게을렀다. 그런 재여를 보고 공자는 “썩은 나무에는 조각하지 못하며, 썩은 흙으로 쌓은 담은 흙손으로도 마무리할 도리가 없다.” 하며 탄식했다.
성경은 말씀하신다. “게으른 자는 그 부리는 사람에게 마치 이에 초 같고 눈에 연기 같으니라”(잠10:26). 이를 식초에 담그면 어찌 될까? 눈에 연기를 피우면 눈을 제대로 뜰 수 있을까?
부지런은 부자의 조상이요, 게으름은 가난한 자의 조상이다. 아랫목 구들장이나 짊어지고 있는 자들이여! 이제 그만 일어나라. 위대한 일을 고안하는 자는 천재이지만, 이를 성취하는 자는 부지런한 자임을 알자!
이초석 목사 저서 ‘뿌리가 썩은 나무에
물을 주지 말라’ 중에서
불행해지는 방법, 비교의식
늘 남과 비교하며 자신은 불행하다고 말하는 주부가 있었다. 아이가 학년 초 시험에서 전 과목 100점을 받았다. 어머니의 닦달에 아이는 앞집 친구보다 열심히 공부하였다. 시험을 치르고 오는 아이에게 어머니는 물었다. “오늘 몇 점 맞았어?”, “100점이요.”, “앞집 영식이는?”, “90점이요.” 아이는 잘했다고 엄마가 칭찬해줄 줄 알았다. 그러나 어머니는 다시 질문했다. “오늘 시험에 몇 명이나 100점 맞았어?” 단순한 100점으로는 만족이 안 되는 것이다. 유일한 100점이어야 한다. “몰라요. 내가 어떻게 알아요.”, “그것도 몰라. 시험이 쉬웠겠지?” 옆에서 아내의 말을 듣고 있던 남편이 말했다. “아니, 100점이면 됐지, 뭘 더 바라?”, “그러니까 당신도 그 모양이어요. 앞집 남자 보세요. 부장이지, 돈도 잘 벌어오지. 인간성도 좋지. 아이들 교육에 신경 써주지. 당신은 그러니까 안 돼요.” 남편도 참지 못했다. “그런 당신은 학교 다닐 때 1등 했어?”
불행해지는 확실한 방법은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순간 행복은 멀어진다. 자신보다 우월한 사람과 비교하면 열등감에 사로잡혀 비굴해지고, 자신보다 낮은 사람과 비교하면 우월감에 사로잡혀 교만해진다. 비교의 눈, 비교 프레임의 함정에 빠지면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미국 코넬대학교 심리학과 연구팀이 올림픽에서 메달을 받는 사람의 행복지수를 조사해 보았다. 올림픽 동메달리스트의 행복 점수는 10점 만점에 7.1이었고, 은메달리스트의 행복 점수는 고작 4.8이었다고 한다. 은메달을 받은 사람은 금메달과 비교하기 때문에 은메달의 크기는 선수 입장에서는 실망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반면 동메달리스트는 까딱 잘못했으면 4위에 그칠 뻔했기 때문에 동메달의 주관적 가치는 은메달의 행복 점수를 뛰어넘는다는 것이다. 행복의 가장 큰 적은 비교이고, 어디를 기준으로 하느냐에 따라 행복도는 달라진다는 것이다. 행복해지길 원한다면 먼저 비교의 늪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누구도 비교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하지만 행복해지고 싶다면 남과의 비교를 멈추고 내가 가진 것에 눈을 돌려야 한다. 남들에게 증명할 필요가 없는 내가 되는데 집중해야 한다.
임택함 목사
목사님, 우리가 열매에요!
내가 회사에 다닐 때의 일이니 벌써 10여 년 전이다. 유치원 교사를 오래 하다가 유치원 부원장님의 추천으로 유아교육연구소에서 원하던 사무직으로 일하게 되었다. 평소 나를 좋게 보셨던 부원장님은 그곳 소장님도 아주 믿음이 좋으신 분이라며 분명 정 선생님을 마음에 들어 하실 거라고 하셨다.
이직 후 직장 보육시설 위탁 운영과 다양한 유아교육 연구를 하며 3개월이 지났을 때 연구소 차원에서 필리핀으로 선교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유아교육과 교수님 세 분과 소장님, 연구소 멘토 목사님, 아기 학교 사역 전도사님, 이렇게 여성 여섯 분을 모시고 그곳에서 신학생들에게 유아교육 세미나를 해주었고, 하나님의 역사하심 가운데 성공적으로 세미나를 마치고 귀국하였다. 며칠이 지난 뒤 갑자기 소장님께서 나에게 출석하는 교회가 어디냐고 물어보셨는데, 예수중심교회에 다닌다고 대답하니 그 이후부터 소장님의 핍박(?) 아닌 핍박이 시작되었다.
나는 소장님에게 당당하게 말했다. 우리 교회는 이단이 아니라고! 우리 목사님은 하나님을 누구보다 사랑하시고 오직 성경 말씀대로 우리를 양육하신다고. 사도행전의 역사를 일으키고 계시고, 하나님 앞에 오직 깨끗하고 진실되게 살려고 노력하시는 분이라고! 내 말을 들은 소장님은 같이 선교여행을 갔던 분들에게 내가 이단 교회를 다닌다고 이야기하며 고민 상담을 하셨다. 그분들은 하나같이 말하기를 만약 정 선생이 정말 이단 교회를 다닌다면 우리가 같이 기도하고 예배했던 시간에 함께 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같이 있으면서 그런 느낌을 전혀 받지 못하였으니 다시 이야기해보라고 했다. 그러나 소장님은 교회를 옮기지 않으면 더 이상 같이 일할 수 없을 수도 있다며 엄포를 놓았다. 나는 우리 목사님을 통해 예수님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너무 크기 때문에 나를 좀 더 지켜봐달라고 말씀드렸다. 그렇게 시간이 지났다. 나중에 소장님은 오히려 내가 대학원 공부를 할 수 있도록 학비도 대주시며 적극적으로 지지해주시는 분이 되셨고, 연구소에 오는 모든 분에게 우리 정 선생은 연구소의 보물이라고 소개해주시며 나를 많이 아껴주셨다.
얼마 전 전도집회 광고로 인해 우리 교회가 이단이라고 방송에 나온 적이 있었다. 그 방송국에 다니고 있는 친구에게, “너도 알다시피 우리 교회는 이단이 아니다. 왜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그런 내용의 뉴스를 내보내는지 이해를 못하겠다. 우리 목사님 설교를 한 번만 제대로 들어도 그러지는 못할 텐데 정말 안타깝다, 너무 속상하다.” 등의 말들을 하며 하소연을 한 적이 있었다. 물론 그 친구는 그 일과는 관련 없는 업무를 했지만 거기서 일하니 그렇게라도 말해주고 싶었다.
그 집회에서 목사님은 평소 ‘거센 파도가 유능한 해군을 만든다’고 말씀하셨듯 끝까지 당당하셨고 멋지셨다. 오직 예수님만 증거하셨다. 예배 말미에 모든 병든 자를 안수하신 후 지쳐 털썩 주저앉으시는 모습을 보니 눈물이 왈칵 났다. ‘자기 몸을 내어주신 예수님처럼 온몸이 부서져도 오직 예수님만 증거하시는 분인데, 어떠한 고난과 역경이 와도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 드러나기를 원하시는 분인데 도대체 왜!’ 이렇게 속상한 마음 가운데 문뜩 목사님께 ‘우리가 열매’라고 말씀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우리 교인들은 정말 하나같이 훌륭한 사람들만 모여있었다. 하나님께 인정받고 세상에서도 인정받는 능력 있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아, 우리가 열매구나! 우리가 목사님의 열매구나!”
목사님은 평생 목숨을 걸고 예수님의 지상 최대의 명령을 최선을 다해 수행하고 계신다. ‘죽으면 죽으리라, 병사는 죽어도 전쟁은 이기고 핍박과 순교가 온대도 싸워라!’는 마음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우리를 양육하고 계신다. 그 결과물, 열매! “목사님, 우리가 목사님의 열매입니다!”
정효경 집사
happy_holly@naver.com
탈무드에 나오는 예화입니다.
큰 죄를 지어서 감옥에 갇힌 신하가 있었습니다. 그 신하는 왕이 자신에게 사형판결을 했다는 말을 듣고 살려달라고 탄원했는데, 1년만 사형을 연기시켜 주신다면 왕이 가장 아끼는 말이 하늘을 날게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왕은 이 말이 거짓말이라도 1년 뒤에 사형시키면 된다는 생각에 신하의 청을 들어주었습니다.
간신히 사형을 면한 신하는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빈둥대기만 했는데 이 모습을 본 마부가 ‘왜 시간을 낭비하냐’고 묻자 하는 말이, “세상에 하늘을 나는 말이 어디 있단 말이오?”라는 거 아닙니까? 그러자 마부는 ‘그렇다면 1년 뒤에는 어떻게 할 작정이냐’고 물었습니다.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야지. 그 사이 왕이 죽거나 마음이 바뀔지도 모르는 일이고, 어쩌면 말이 저절로 하늘을 날게 될 수도 있잖소. 어쨌든 1년은 벌었잖소.” 그는 시간을 벌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국은 죽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 없이는 사람들은 죽어서 영벌의 지옥에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인간들의 죄를 위하여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어 십자가에 피 흘려 죽게 하심으로 구원의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빈부귀천 남녀노소 차별 없이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영생복락의 천국으로 인도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기쁘고 복된 소식입니까?
상화평 목사
너무 바빠서 기도합니다
, 2004년 출간된 책의 제목입니다.
우리는 보통 ‘너무 바빠서 기도할 시간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책은 상식을 뒤엎고 바쁠수록 기도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마틴 루터가 한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나는 할 일이 너무 많아 아침에 기도로 3시간을 보내야만 한다.” 그 결과 그는 종교개혁이라는 엄청난 일을 해내고, 3천 권 이상의 책을 썼으며, 37곡의 찬양을 작곡했습니다.
“기도의 부족은 모든 것의 부족이다.” 총회장 목사님 역시 늘 기도의 중요성을 강조하십니다. 전 세계의 수많은 일들을 감당하시며 쉴 새 없이 바쁜 와중에도 매일 4시간 이상 기도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 ‘바빠서 기도할 시간이 없다.’는 말은 구차한 변명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삶이 바쁘고 분주하신가요? 바로 기도할 때입니다. 바쁘고 분주하다는 것은 일이 많다는 뜻입니다. 이때 기도하지 않으면 내 힘을 의지하게 됩니다. 그러나 기도하면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더 많은 일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 역시 사역을 위해 새벽 미명에 일어나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비로소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막1:38)고 말씀하십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총회장 목사님은 이번 청년 수련회에서 목표와 목적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마귀의 일을 멸하기 위함’
(요일3:8)인 것처럼, 자신의 목적과 사명, 목표를 찾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은 분주함 속에서 자신의 방향도 모른 채 달립니다.
올바른 방향으로 전진하기 위해서는 기도가 필수입니다. 저는 평소 기도하는 습관은 있지만 여유가 있을 때만 더 기도했습니다. 바쁠 때는 기도할 시간이 부족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바쁘고 분주할수록 기도의 시간을 늘려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너무 바빠서 기도합니다.’는 말이 저와 모두의 고백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전소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