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정말 좋네!
이거 정말 좋네!
나는 우리 교단 목회자들을 모아놓고 이렇게 말했다.
“고객은 품질이 좋아질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성도들은 목사가 질이 좋아질 때까지 기다리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질적 향상을 위해 힘써야 하며 인격적으로 다듬어져야 합니다.”
대안불식 필사양찬(對案不食 必思良饌)이라는 말이 있다. 밥상을 대하고도 밥을 먹지 않는 것은 좋은 반찬을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소비자의 심리가 이렇다. 성에 차지 않는 상품을 구입하는 시대는 갔다. 그래서 ‘이거면 됐다’가 아니라 ‘이것이라야 된다’는 심정으로 상품개발과 품질관리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품질관리(Quality control)가 무엇인가? 그 개념을 그대로 풀면 과학적 원리를 응용하여 제품 품질의 유지 및 향상을 기하기 위한 관리다. 넓은 뜻으로는 가장 시장성이 높은 제품을 가장 경제적으로 생산하기 위한 일련의 체계적 조치를 가리킨다.
나는 요새 우리 교회 품질관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우리 교회 상품이 무엇인가?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고 능력을 행하는 것이다. 그 상품에 품질이 떨어지지 않으려면 열심히 기도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우리 성도들에게 하루 1시간 이상 기도하라고 한다. 품질관리 차원에서다.
주님도 품질관리 법을 이렇게 말한다.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벧후1:5~7).
이초석 목사 저서 ‘뿌리가 썩은 나무에
물을 주지 말라’ 중에서
만물을 축복하라!
약 3년 전쯤에 우리 교회 권사님께서 파주 임진강 주변의 논과 밭을 2천 평 가까이 사셨다. 매입 후, 땅을 축복해달라고 하셔서 그 땅에 가서 두 손 들고 축복기도를 해드렸다. 권사님의 남편은 농사를 지어본 경험이 없는 분이셨는데 그렇게 축복기도를 해드리고 처음으로 모내기를 하고 화초를 키우듯 정성스럽게 벼농사를 지으셨다. 드디어 첫해에 벼를 수확해 총회장 목사님과 이시대 목사님과 우리 교회에 가장 먼저 쌀을 보내셨다. 그런데 연세 있으신 전도사님들과 권사님들께서 이 쌀을 드시더니 이렇게 윤기가 흐르고 찰지고 맛있는 밥은 처음이라며 모두 칭찬 일색이셨다. 결국에는 소문에 소문이 퍼져 지인들까지 예약을 하고 쌀이 완판되었다.
그다음 해에도 나는 그 땅에 가서 두 손 들고 축복하며 기도해드렸고, 그해에 수확한 쌀 역시 쌀을 도정하는 곳에서, 권사님 땅에서 수확한 쌀은 가격을 더 높게 책정해야 한다며 확실히 품질이 다르다는 평을 받으셨다고 한다. 예수 이름의 축복이 그 땅에 그대로 임한 것이다.
총회장 목사님께서 당신의 시력이 2.0이 되라고 명령하고 축복하셨는데 정말 눈이 밝아지셨다는 간증을 하셨다. 나 또한 시력이 0.7, 0.9 정도였는데 영안이 열리고 눈이 밝아지라고 매일 축복하며 기도했더니 안경점 시력 검사에서 양쪽 모두 2.0이 나왔다. 할렐루야!
매일 총회장 목사님의 설교 영상으로 기도회를 마무리하고 나면, 나는 성도님들 한 분 한 분 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기도를 해드린다. 연세 있으신 성도님들은 건강의 축복을, 또 가족 구원의 축복을, 헌신된 일꾼이 되기를, 거부(巨富)가 되기를, 문제가 해결되기를 매일 축복하며 명령하고 기도한다. 우리 문산교회의 성전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성도님들의 영혼과 삶을 축복하고, 원근 각처에서 일꾼들이 몰려들기를, 이 교회에서 훌륭한 주의 종이 배출되기를, 선교사가 나오고, 물질로 헌신하는 일꾼들이 나타나기를, 총회장 목사님과 이 교단과 교회를 위해 매일 밤 철야하는 기도의 용사들이 생겨나기를 매일 기도한다.
만물은 들을 귀가 있고, 축복하면 그대로 이루어진다. 이 글을 읽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의 영혼과 가정과 사업장에 예수 이름으로 축복이 있을지어다!
장순천 목사
전문 산악인들이 즐겨 오르는 유명한 산이 있습니다. 그 산의 정상에 오르게 되면 그곳에는 다른 어는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아름다운 절경과 희귀한 식물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산을 오르는 길은 경사가 가파르고 군데군데 추락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아주 난이도가 높은 산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힘든 코스는 중간 정도 오르고 나면 거대한 바위 절벽들 사이로 겨우 사람 한 명조차 지나가기 힘들 정도로 좁은 길이 있는데, 그 입구에는 이런 글이 쓰여 있다고 합니다. “이 길은 좁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이 통과했습니다. 그러므로 당신도 갈 수 있습니다.”
이 표지판에 쓰여 있는 것처럼 좁고 위험한 길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통과했다는 사실이 산을 오르는 사람들에게 큰 용기를 안겨 주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예비한 구원의 길도 항상 열려 있습니다. 이 길은 좁고 찾는 사람이 적지만 들어가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다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지레 겁을 먹고 딴 길로 가려다가는 길을 잃어버리고 사고를 당하게 됩니다. 정상에 오르는 길이 오직 한 길밖에 없는 것처럼 구원의 길도 마찬가지입니다. 천하 인간에게 예수 외에는 구원받을 만한 이름을 주신 적이 없고, 예수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예수로 말미암지 않고는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라가면 ‘누구든지’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상화평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