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
남편을 잃은 성도를 만났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친정아버지를 만난 듯 내 품에 안겨 하염없이 울었다. 나라를 잃은들 그리 슬피 울까. 나는 그런 그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떤 말이 그에게 위로가 될까. 그 위로가 귀에 담기기나 할까. 그저 다 울 때까지 도닥거려줬을 뿐이다.
그렇게 한참을 울더니 마음이 조금 진정 되었나보다. 그제야 감정을 추스르고 앉아 조금씩 입을 연다. 몇십 년간 살아온 이야기다. 나는 그저 간간이 ‘그랬군요.’ 추임새를 넣어주며 다 들어주었다.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돌아간 성도를 보니 하나님 말씀이 생각났다.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롬12:15).
맞다. 가장 큰 위로는 말로 하는 것이 아니다. 울거든 그저 안아주고, 푸념을 쏟거든 그냥 들어주는 것이 위로다. 그렇게 함으로 슬픔을 함께 나누고 있다고 생각하게 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위로다.
세 번이나 스승을 부인한 베드로, 누구도 그를 위로할 수 없었다. 그런 그 앞에 부활하신 주님이 찾아오셨다. 주님은 숯불에 물고기를 굽고 떡을 차려놓고는 ‘먹으라’ 하셨다. ‘괜찮다’는 말도, ‘다 잊어라’, ‘그럴 수 있다’는 말도 하지 않으시고, 그냥 ‘먹어라!’ 하셨다. 최고의 위로였다. 그래서 베드로는 일어나 사도의 길을 갈 수 있었다.
위로는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이 아니다. 그냥 그 아픔을 공감해주는 것이다. 주님이 진정한 위로자가 되심은 ‘공감’ 때문이다. 그분은 우리와 공감하기 위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내려와 직접 체휼하셨다. ‘체휼하다’는 함께 아파하고 고통받는다는 뜻이다. 하나님이신 주님이 나와 슬픔을, 아픔을 공유하시니 그보다 더 큰 위로가 어디 있을까.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고후1:4).
상처는 싸매줘야 낫는다. 부드러운 거즈나 밴드로 잘 감싸서 덧나지 않게 해야 한다. 우리도 주님처럼 아픈 자, 상처받은 자의 참 위로자가 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