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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9호 목차 › 세상을 보는 창

이리가 나타났어요

1259호 · 2024-06-23
책을 펴다

이리가 나타났어요

중국의 주나라 12대 왕이었던 유왕에게 포사라는 아름다운 후궁이 있었다. 그런데 그녀는 도대체 웃는 일이 없었다. 유왕은 아름다운 포사가 웃는 걸 보고 싶어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해보았으나 소용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드디어 포사가 웃었다. 왜? 그 자초지종은 이러했다. 당시 통신수단은 봉화였다. 위급한 일이 있을 때 봉화를 올리면 제후들이 군사를 이끌고 왕궁으로 달려오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하루는 군졸의 실수로 봉화가 잘못 올려졌다. 군사를 이끌고 황급히 왕궁에 도착한 제후들이 어쩔 줄 몰라 하는 것을 보고 포사가 살포시 웃었다. 그녀의 웃는 모습에 유왕은 너무 기뻤다. 그런 포사의 웃는 모습이 다시 보고 싶은 유왕은 일부러 봉화를 올리게 했고…. 그 후에도 이 일은 반복되었다.

기원전 771년, 정말 주나라에 적국이 쳐들어왔다. 유왕은 긴급히 봉화를 올리게 했지만, 어떤 제후도 오지 않았다. 이번에도 포사를 웃게 하려는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결국 이 싸움으로 유왕은 죽고, 그 아들 평왕이 수도를 옮기며 겨우 나라의 명맥만 이어가다 제후들 간의 춘추전국시대를 맞게 된다.

혼자 있어 심심했던 양치기 소년. ‘이리가 나타났다’ 하니 마을 사람 모두 양치기 소년을 도와주러 산으로 올라왔다. 양치기 소년은 그것이 재미있었다. 그래서 이 일을 반복했다. 그러다 정말 이리가 나타났고, 양치기 소년은 마을을 향해 도움을 요청하였으나 그때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

거짓말은 스스로 파는 함정이다. 그 함정에 빠지는 자는 결국 그 함정을 판 자임을 알자.

이초석 목사 저서 ‘사랑이 무르익어야

결혼에 골인한다’ 중에서

영생에 이르는 길

오래 참음

살면서 가장 힘든 일 중의 하나가 오래 참는 것입니다. 만사가 하나님의 경륜과 뜻에 따라 흘러가고 있기에 하나님의 뜻을 모를 때 연약한 우리는 답답하고 힘들기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때가 되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일이 성사되고 결과가 더 좋은 것으로 나타나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우리 영혼의 성결과 거룩이고, 우리 관심은 세상의 성공과 재물일 때가 많습니다. 우리의 관심이 사그라지도록 자아가 죽으려면 내 뜻에 어긋나고, 그래서 실망하고 내려놓아야 하는 일을 수백 번 반복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고, 그 상황 속에서 오래 견디고 기다리는 인내를 배우게 됩니다. 믿음 있는 자의 특권이 기다림이란 것을 알게 되지요.

아브라함은 25년 기다림 끝에 이삭을 얻었고, 요셉은 13년 고난 끝에 꿈을 이뤘고, 모세의 40년 광야는 절대 헛되지 않았고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어갈 지도자로 만들었습니다. 예수님도 때가 되니 십자가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성령의 열매는 오래 참음이고, 사랑의 정의도 오래 참음입니다. 오래 참는 모습을 통해 믿음이 증명됩니다. 모든 것이 만사를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임신을 해도 만삭이 될 때까지 견뎌야 아기가 태어나는 것처럼요.

내 힘과 언변으로 상대를 바꿀 수 없습니다. 내가 내 맘도 맘대로 못할 때가 많은데 누굴 바꾸겠습니까? 그러나 주님 마음에 집중하는 일과 말씀을 두렵고 떨림으로 순종하려는 자세로 살면서 오래 참고 기다린다면 항상 더 좋은 것으로 채우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오래 참음을 요구하시는 것은 내 뜻대로 상대나 환경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고전13:4),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5:22~23).

김영종 목사

한국 교회사

한국 최초의 기독교 선교사

1884년 9월 20일, 호레이스 알렌은 미국 북장로회 소속 선교사로 제물포를 통해 조선의 최초 기독교 선교사로 입국한 역사적인 날입니다(한국에 기독교가 들어온 지 140년을 맞이합니다). 그는 한국 최초의 의료 선교사로 파견되었으나 아직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은 조선에서의 선교 활동을 위해 미국 공사관의 외교 기관의 관의로 채용되었고, 여러 외국 기관의 부속 의사로 임명되었습니다.

첫 선교지인 중국에서 알렌은 아내의 건강 악화와 여러 어려움을 겪으며 이렇다 할 선교 활동을 벌이지 못했습니다. 이와 달리 조선은 그에게 기회의 땅이었습니다. 당시 한성(현재 서울)에는 서양인들을 진료할 만한 양의가 없었기 때문에, 외국인 공사와 그의 가족들은 알렌의 입국을 크게 반겼고, 그는 외국인 거류민들을 진료하는 의사로 활약했습니다.

그리고 1884년 겨울에 발발한 사건은 그의 인생 행보를 크게 바꿔놓았습니다. 바로 알렌이 조선에 들어온 지 약 3개월 후에 일어난 갑신정변입니다. 갑신정변 때 크게 다쳐 목숨이 위태롭던 민영익을 14명이나 되는 한의사들도 살릴 방법이 없었습니다. 이때 알렌은 밤새 치료하면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주님! 이 사람을 살려주세요! 한국 선교를 위해 살려주세요!’

알렌은 3개월 동안 민영익의 옆을 떠나지 않고 정성을 다해 치료한 결과 그의 목숨을 구했습니다. 알렌은 민영익을 치료해준 일로 고종의 신임을 얻게 되었고, 왕실의 어의(임금의 주치의)가 되었습니다. 이 사건이 한국 선교의 기틀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민영익은 생명의 은인 알렌에게 감사해서 10만 냥을 주었습니다. 알렌은 이 돈을 종잣돈으로 조선에 서양식 병원을 건립할 계획을 세웠고, 알렌은 고종에게 병원 건설안을 제출하며 한국 근대 의료사에 큰 전환점을 마련했습니다. 이 건설안이 받아들여지면서 1885년 4월 10일,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병원인 광혜원이 이 땅에 세워졌습니다. 의료 선교사로서 알렌의 도전이 실현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알렌의 의료 선교는 선교사들의 입국을 허용할 수 있는 직접적인 영향을 주어 언더우드, 아펜젤러 선교사들이 입국하고 전도할 수 있도록 기반을 닦아놓았습니다.

알렌 선교사의 의료 활동은 단순히 병을 치료하는 것을 넘어 조선인들에게 서양 의학의 우수성을 알리고 이를 통해 서양 문화와 기독교를 전파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또한 조선 왕실과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왕실의 신임을 얻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했습니다.

갑신정변 후 처형된 홍영식의 옛집(현재 헌법재판소 자리)에 1885년 4월 23일 고종이 준 이름 ‘많은 사람을 구제하는 집’이라는 제중원(세브란스병원의 전신)이 세워졌고, 알렌은 초대 원장으로 한국인의 몸을 치료했습니다. 개원 후 1년 동안 만 명이 넘는 환자들을 진료했으며, 로 그 기록을 남겼습니다.

1886년 3월에는 제중원 학당을 세워 한국에서 최초로 서양 의학교육을 시작했습니다. 교수는 알렌, 헤론, 언더우드이고 학생 수는 16명이었습니다. 알렌의 외교 활동은 그가 의료 활동을 통해 얻은 신뢰를 바탕으로 조선과 미국 간의 관계를 강화하는데 기여했고, 미국 공사로서 활동하며 조선의 근대화와 개혁을 지원하는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했습니다.

1887년부터 그는 외교관으로 활동하는데, 1905년까지 주미한국공사관 참찬관(서기관), 변리공사 및 총영사, 특명전권공사 등을 역임하며 열강이 조선을 침략하려는 의도를 간파하고 미국과 우호관계를 두텁게 하는 데 이바지했고, 미국 교회가 한국 선교를 할 수 있는 가교역할을 했습니다.

알렌은 의료 선교사로서 제중원을 중심으로 초창기 선교사들의 선교 사역에 길을 열고 많은 선교사들이 들어오는 데 도움을 준 최초의 장로교 선교사였습니다. 알렌의 교육 활동은 제중원 학당(1886.3)을 설립하고 서양 의학을 배우고자 하는 학생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개설하였고, 한국 최초의 의학 교육기관으로 발전하였습니다. 알렌 선교사의 업적은 의료, 교육, 외교 등 다방면에 걸쳐 1905년 한국을 떠날 때까지 한국의 근대화에 기여하고 한국 사회의 발전에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부분입니다.

놀랍게도 알렌의 별장은 인천 숭의동에 우리 교회가 사용하던 자리에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선교사 알렌의 기도와 총회장 목사님의 기도로 예수중심교회가 우리나라와 전 세계에 복음을 전하는 기틀을 마련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김종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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