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글씨 크기 보통16
1259호 목차 › 객원컬럼

거룩한 믿음의 정절

1259호 · 2024-06-23

‘지성이면 감천’이란 말은 기독교적 용어가 아니다.

우리가 열심을 내고 희생을 다해 정성을 바치면 하나님이 감동하시리라 생각하는 것은 기독교적 믿음이 아니다. 우리의 믿음은 정성을 바치는 것이 아니라 순종하는 것이다. 즉, 우리는 지성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순종을 드리는 것이다. 순종과 믿음은 동일한 단어인 것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영원히 살 수 있도록 축복받은 존재로 태어났다. 입으로 들어가는 육의 양식과 아울러 하나님의 계시로 주어지는 영의 양식을 동시에 먹고 사는 존재인 것이다. 예를 들어 자동차를 보면 휘발유와 엔진오일을 넣을 곳이 각각 따로 있다. 휘발유 넣을 곳에는 휘발유를 넣어주고, 엔진오일을 넣을 곳에는 엔진오일을 넣어주어야만 자동차는 움직이게 된다. 둘 중에 하나라도 없으면 자동차는 움직일 수 없는 것처럼, 사람의 육신은 떡을, 영은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만 한다. 이는 인간을 창조하기 이전부터 하나님께서 가지셨던 계획이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말씀으로 사는 법을 가르쳐주셨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하신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영이 그 말씀을 먹는 것이다. 우리 영은 하나님 말씀으로 살 수 있도록 하나님이 특별히 만드신 것이다.

인간은 선악과 없는 종교를 원한다. ‘내가 원할 때 내 요구는 만족시켜주어야 한다. 그러나 내게 요구는 하지 말라’는 것이다. 보름달 아래 정안수 떠놓고 빌거나 손으로 우상을 만들어 놓고 섬기는 것은, 우상은 하라, 마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선악과 없이 아쉬울 때 가서 복을 구하면 된다. 타락한 인간은 선악과 없는 종교를 사모한다. 그래서 수많은 종교가 생겨난 것이다. 선악과 없는 종교가 세상에만 있는 게 아니다. 그리스도인들 가운데도 선악과 없는 신앙생활을 흠모하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다. 하나님께 복은 받으려 하지만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부담스러워한다.

타락이란 인간이 하나님같이 되려 하는 행위를 말한다. 곧 자기 의지를 자기 임의대로 쓰고자 하는 것을 의미한다.

왜 인간은 슬픔을 당하고 고난을 당하는가? 성경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부여해주신 엄청난 축복을 인간 스스로 거부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예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타락으로 부패된 인간의 본질을 회복하며, 생명이 없는 자들에게 생명을 불어넣어주고 풍성케 하려 함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 문을 활짝 열어 예수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그로 하여금 나를 지배하게 하시기를 바란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요6:63).

신기류 목사

abba7777@naver.com

1259호 다른 글

커버스토리
Text 주일설교
지혜의 말씀
귀를 기울이세요
Cartoon
붕우칼럼
세상을 보는 창
교단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