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집착형인가, 주목형인가?
나는 집착형인가, 주목형인가?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말씀에 주목하는 삶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주목한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기 위해 결단하고 헌신하는 것이다.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주목’하지 못하고, 하나님처럼 되려는 욕심과 선악과의 탐스러움에 ‘집착’하다가 죄를 짓고 말았다. 선악과를 보면 볼수록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망자가 된 모세는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치기로 40년을 살았는데, 어느 날 잃어버린 양을 찾으러 갔다가 불타는 떨기나무를 보고 그 모습에 주목하게 되었다. 그리고 모세를 부르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결국 부르심에 순종하여 출애굽하기 위한 하나님의 종으로,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로 멋지게 쓰임 받는 인생이 된다.
우리는 내가 원하는 것에 집착하지 말고 하나님이 나에게 보여주실 때 주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주목하는 자세를 갖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묵상은 우리의 산만한 시선을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도록 돕는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주목하기가 쉽지 않다. 분주함과 바쁜 삶이 우리를 지배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삶의 속도를 조금 늦추고 매일 묵상의 시간을 내어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에 주목하기 위해 집중해야 한다. ‘익숙한 것들이 낯설어질 때까지 응시하는 법을 배우라’는 말이 있다. 익숙함은 매너리즘을 만들고, 기대감과 설렘이 사라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익숙함으로 인해 잃어버린 것들을 되찾기 위해서 우리는 주목하는 훈련에 집중해야 한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공중에 나는 새를 보라”, “들에 백합화를 보라”고 말씀하셨다. 주목하여 깊이 보라는 말씀이다. 늘 보고 지나치던 것에 다시 집중하고 주목하면 한 송이의 들풀에서도 하나님의 위대한 손길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불확실한 시대, 분주한 삶을 살고 있지만 하나님을 알아가는 기쁨을 찾기 위해서 말씀에 주목해보자. 하나님의 임재가 가득한 삶을 위해 우리는 시선을 돌려 말씀에 집중하자. 분명 그 말씀이 나를 살리고 공동체를 새롭게 만드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이정금 전도사
jungkm@nate.com
명실상부(名實相符)
선거철 공약이 난무했던 요즘이다. 새로운 희망으로 긍정적으로 호응하기도 하지만, 신뢰도에 의문이 생길 때는 도리어 피로감이 쌓이기도 한다. 자기 공약에 걸맞는 이름값을 해야 신뢰도가 쌓일 텐데 말이다.
사실 이름값을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자기 이름이 보증수표가 되려면, 약속한 일을 성취해 내는 항구여일한 성실성과 진정성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남발하여 표나 얻고 정치 이력이나 쌓으려 하지 말고, 국가와 민족을 위해 명실상부하게 자기 이름의 명예를 지켜주는 정치인들이 되어주길 바란다. 약속을 잘 지키는 길은, 섣불리 약속을 남발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진실을 보여주는 지혜라는 총회장 목사님 말씀처럼 말이다.
이름과 실상이 서로 꼭 맞을 때를 가리켜 우리는 ‘명실상부(名實相符)하다’라고 말한다. .
이름과 그 실상이 일치되는 모범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시기에, 그분만이 진정으로 명실상부한 분이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이라고 약속하셨기에, 삼위 하나님이 일체로 부조화 없이 그 역할을 여전히 신실하게 감당하신다. 그러나 인간은 모순이 많은 존재다. 아담 이후로 타락한 인간에게선 지성과 감성과 의지의 불일치가 일어난다. 머리와 마음이 따로 놀고, 마음과 의지가 따로 놀고, 머리와 의지가 제각각 따로 노는 부조화 말이다. 스스로를 속이며, 겉으로는 아닌 척하는 부조화가 자연스럽다. 타락의 증상이다. 그러나 성령님께서는 그런 부조화를 말씀으로 치유하시는 분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도록 조율하신다. 우리로 하여금 명실상부한 ‘그리스도인’이 되게 만드신다. 그리스도인인데, 하나님이신 그리스도보다 인간을 더 의지한다면 그리스도를 더 믿도록 연단하신다. 그리스도인인데, 그리스도의 부활신앙이 없다면 거의 죽었다 살아날 부활신앙도 체험시키신다.
헬라제국을 건설한 알렉산더 대왕이, 하루는 자기와 동명이인인데 매우 불성실한 부하에게, 이름을 고치던지, 삶을 뜯어고치던지 둘 중 하나를 바꾸라고 꾸중했다는 일화가 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이름과 권세로 우리는 살고 있는가?
송직화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