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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 News

1214호 · 2023-08-13
Good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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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는 부잣집에 태어나서 젊은 나이에 백작의 작위를 받을 정도로 부족할 것이 없는 환경이었으나 그에게는 참된 기쁨이 없었기에 세상 쾌락을 즐기며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술에 취해서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의 집에서 일하는 농노들이 찬송하는 광경을 보게 되었는데,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기쁨이 넘쳐나는 그들의 얼굴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짐승처럼 일만 하는 농노들이 어떻게 저런 기쁨을 누릴 수가 있을까?’ 의문을 가지고 살아가던 중 그도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참된 기쁨을 누리며 불후의 명작을 남기고 주님 품에 안기게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기쁨을 찾아 헤매지만 세상의 소망이나 기쁨은 손에 잡는 순간 끝이 나게 됩니다. 그토록 가지고 싶고, 취하고 싶었던 것들인데 막상 취하게 되면 기쁨보다는 허탈감과 그것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불안감이 엄습합니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것들은 가짜 소망이고, 가짜 기쁨인 것입니다.

‘한계효용 감소의 법칙’이란 이론이 있습니다. 배가 고플 때 빵을 하나 먹으면 그렇게 맛이 있었는데 많이 먹으면 먹을수록 맛이 감소되고, 나중에는 빵이 보기도 싫어져 내팽개치게 될 것입니다. 세상의 가치들이 다 그와 같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주시는 참된 기쁨과 평안은 질리지 않고 사라지지 않는 영원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참된 기쁨을 누리며 살아가다가 죽은 뒤에 영생복락의 천국에 가시길 바랍니다.

상화평 목사

a26881009@gmail.com

청춘 그 아름다운 이름

장성한 자녀의 기쁨

여덟 살 때 저는 엄마 손을 잡고 올림픽공원에 가서 주일예배를 드렸습니다. 열두 살이 되던 해, 교회 성전이 88체육관으로 이전했지요. 이곳에서 예배드리는 동안 어느덧 열두 살이었던 저는 마흔이 되었고, 마흔이었던 엄마는 예순여덟이 되었습니다.

어릴 적 또래보다 작고 말랐던 저를 엄마는 늘 안쓰러워했는데요. 그래서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도록 많이 업어주셨어요. 기도처에서 집까지 걸어서 이십여 분 넘는 거리를 엄마 등에 업혀 편하게 다녔더랬죠. 중고등학생이 되면서는 제법 키도 크고 살집도 생겼지만 엄마 눈에는 아니었나 봅니다. 장을 보던 엄마의 양손이 무거워 보여 봉지 하나라도 들어드리려고 하면 엄마는 항상 괜찮다 만류하며 무거운 꾸러미를 혼자 들고 가셨어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이 되고 아르바이트하며 약간의 생활비를 보태던 이십 대의 어느 날, 스스로 장성했다고 느낀 적이 있습니다. 엄마와 장을 보다가 무거운 찬거리들을 제가 들겠다고 했는데 엄마가 순순히 건네주더라고요. 드디어 엄마의 짐을 나눠 들 수 있게 되었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지금은요, 엄마의 손가방부터 쇼핑한 물건들까지 전부 제가 듭니다. 엄마가 “무거울 텐데 나눠 들자.”고 하면 “나는 젊잖아~, 힘도 세고.”라고 답해요. 그러면 엄마는 동의한다는 듯 웃으십니다. 이것이 제게는 기쁨입니다.

생활력이 부족한 아빠 덕분에 엄마는 집안을 책임지고 이끄셨는데요. 외벌이와 다름없이 일하던 시기에도 어려운 형편을 자녀들에게 털어놓지 않고 홀로 헤쳐 나가셨어요. 없는 형편에도 움츠러들지 않고 자존감 높은 아이로 자랄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나중에 제가 취직하고도 한참 지나서야 자녀 셋을 키우며 생활하느라 생긴 빚이 있다는 걸 듣게 되었고, 돈을 버는 제게는 작게 느껴지던 금액이라 쉽게 청산할 수 있었습니다. 요사이 친척 중에 아픈 분이 계시면 조금이나마 금전적으로 도와줄 수 있겠냐고 상의하시는 엄마를 보면, 이제는 엄마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딸이 되었다는 것이 기쁘기만 합니다.

어린 자녀는 부모에게 하나부터 열까지 받으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장성한 자녀는 자신을 씻기고 입히고 먹이며 키워준 부모에게 무언가를 드릴 수 있는 능력이 있지요. 부모에게 보살핌만 받던 연약한 시기를 지나 부모에게 든든한 힘이 되고 의지가 됩니다.

저의 첫 건축헌금은 초등학생 때 모았던 십이삼만 원입니다. 적금 만기로 받은 전 재산을 건축헌금으로 드리고 이초석 목사님께 안수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로부터 28년이 지난 오늘은 적금 하나가 만기가 되는 날입니다. 어릴 때 드렸던 건축헌금보다 100배 많은 금액이지요. 그것을 서울 성전 이전을 위해 드릴 수 있어 기쁘고 감사합니다. 그보다 많은 축복을 받아왔고 또 받을 것이라 믿습니다. 하나님이 필요하신 때에 쓰임 받을 수 있는 자녀, 하나님이 믿고 맡길 수 있는 자녀가 되고 싶습니다. 성도님, 다가오는 9월에는 새로운 성전에서 함께 예배드립시다!

신은혜

신앙에세이

착한 행실

출근길에 유튜브로 2부예배 설교를 들었다. ‘일상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이란 제목의 말씀이었다. 예배를 드리거나 하나님의 큰일을 이루는 것 외에도, 하나님의 자녀로서 소소하지만 확실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방법은 바로 우리의 착한 행실이라는 말씀이었다. 한동안 간과해왔던 부분이었다.

어디서든 크리스천이라는 것은 잘 밝혔다. 그러나 일상 중에 크리스천으로, 매 순간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는 것은 종종 잊었던 것 같다. 매너 없는 운전자를 보면 입에서 거친 말이 나갔음에도 나 자신은 양보에 익숙지 못했고, 회사 생활에서 처음의 감사보다는 점점 불만의 말이 더 나왔고, 누구와 이해관계를 따질 땐 내가 손해 보지 말아야 한다는 세상의 말을 옳다 여겼다.

그러다 한 뉴스 기사를 보았다. 어떤 사람이 운전하다 외제차를 긁어 차주에게 연락을 했는데 예배 중이라며 바퀴나 범퍼가 떨어진 것이 아니라면 문제 아니니 그냥 가시라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배가 끝나면 확인 후 연락 달라고 했더니 나중에 보고 약간 긁힌 것뿐이라고 괜찮다며, 다음에 혹시 이런 일을 겪으시면 다른 사람도 봐주시라 했다는 훈훈한 기사였다. 얼마 전 어느 아이가 킥보드를 타다 차를 살짝 긁었는데 차주가 아이 부모에게 4천만 원을 요구해 이슈가 된 기사도 함께 비교되었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허물이 없고 하나님의 천사 같다는 말을 들었던 다윗, 당신이 원하는 것을 우리 중에 금할 자 없다는 말을 들었던 아브라함, 친위대장과 간수장, 그리고 바로에게까지도 매번 모든 것을 위임받았던 요셉. 그들에게는 착한 행실이 있었고, 그것은 그들의 하나님께 영광이 되었다.

나는 어떠한 행실의 크리스천일까?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6).

박찬영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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