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라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의 삶은 왜 똑같은 하나님을 섬기는데 그렇게 천태만상일까? 각기 다른 하나님을 섬기는 것일까? 하나님은 한 분이시고 늘 동일하시다. 다만 하나님과의 관계가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친밀한 관계 속에 있고, 어떤 사람은 서먹한 관계 속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님이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너희가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있다’고 말씀하셨다(사29:13). 주님도 그 말씀을 인용하셔서 반복 교훈하셨다(마15:7~8).
사무엘상 4장에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이스라엘이 전쟁에 불리해지자 법궤를 메고 전선으로 간다. 하나님의 법궤가 전쟁터에 나가면 그들이 승리할 줄 알았다. 생각과 달리 그들은 완전히 패했고 법궤도 블레셋에게 빼앗겼다. 여호수아 3장에도 여호수아와 함께했던 제사장들이 법궤를 메고 요단강으로 들어가는 장면이 나온다. 그 제사장들의 발목이 물에 잠기자 요단강이 멈추고 갈라지는 기적의 사건이 일어났다.
똑같은 하나님의 법궤를 메고 갔는데 왜 한쪽은 망하고 한쪽은 기적이 일어났을까? 사도행전 19장에도 바울과 그를 흉내 내어 바울이 전하는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 쫓는 제사장 스게와의 아들들 이야기가 나온다. 똑같은 예수 이름을 사용했다. 바울의 예수는 앞치마나 손수건만 만져도 병이 났는데 스게와의 아들들의 예수 이름은 귀신들이 그들을 덮쳐서 옷을 찢고 벗겨 벗은 채 도망치는 일이 벌어진다. 예수가 두 분이신가? 예수님은 한 분이시다. 그분은 언제나 동일하시다.
무슨 사연일까? 내면을 들여다보면 법궤를 메고 간 사람들과 예수의 이름을 사용한 사람들의 삶이 완전히 다른 삶을 사는 것을 볼 수 있다. 홉니와 비느하스의 삶은 제사장의 삶이 아니고 제사장을 빙자한 파렴치한 삶을 살았고, 제사장 스게와의 아들들은 다니며 마술이나 하는 유대인들과 같은 삶을 살고 있었다. 반면에 여호수아의 제사장들은 충성스럽고 성결했고, 바울의 삶은 완전히 하나님께 바쳐진 삶이었다.
하나님을 믿으며 예수의 이름을 사용하면 언제나, 누구에게나 기적이 일어나고 응답이 오는 걸까? 그러면 왜 그렇게 많은 성도들의 삶이 다른 걸까? 조용히 나의 내면을 바라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진실되게 내가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유지하고 사는지, 왜 지금의 나의 삶이 이렇게 끌려가고 있는지.
탕자가 해야 할 최고의 일은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것이다. 죄를 지은 다윗이 먼저 할 일은 하나님께 회개하여 용서받고 관계를 회복하는 일이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6:7~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