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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바꾸라

1205호 · 2023-06-10
오늘의 메시지

생각을 바꾸라

우산을 파는 아들과 소금을 파는 두 아들을 둔 어머니는 늘 걱정이 태산이다. 비 오는 날에는 소금장사 아들이 걱정이고, 맑은 날에는 우산장사 아들이 걱정이다. 그런 어머니를 보고 한 사람이 말했다. “아주머니는 참 복도 많네요. 날이 좋으면 소금장사 아들이 잘돼서 좋고, 비가 오면 우산장사 아들이 잘돼서 좋으니 부럽습니다.” 이 말을 들은 어머니는 깨달아 걱정이 없어지고 감사하는 복된 삶을 살게 된다.

행복과 불행은 결국 생각의 차이이다. 행복은 자신이 만드는 것이다. 성경은 우리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다르다고 기록한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라고 말씀하신다(롬8:5~7).

또한 ‘믿음은 보이는 것이 아니고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며 인식의 변화를 촉구한다(히11:1).

이제 하나님의 생각을 갖고, 인식의 변화에 힘을 다하자. Change(변화)의 ‘g’를 ‘c’로 바꾸면 Chance(기회)가 된다. 변화 속에 기회는 오는 것이다. 목사님은 ‘변화가 두려우면 현실에 만족하며 살아라’, ‘고착된 사고의 틀을 깨라’고 강력하게 교훈하신다.

간질에 걸린 아이의 아비가,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는 예수의 말씀에 생각을 바꾸어, “내가 믿나이다 도와주소서” 간청했더니 아이가 귀신이 나가고 깨끗이 나았음을 기억하자.

지금 내 현실은 내 생각의 결과다. 생각을 바꾸라. 현실 너머의 실상을 믿음으로 바라보라. 나의 인식의 변화가 없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김상욱 목사

ksw9669@hanmail.net

빌리그래함 전도대회 제50주년 기념대회

6월 3일, 오후 3시 서울 월드컵경기장에서 ‘빌리그래함 전도대회 제50주년 기념대회’가 개최되었다.

정확히 50년 전인 1973년, 허허벌판이었던 여의도 광장에는 하루 백만 명의 인파가 몰려들었다. 기록에 의하면 닷새 동안 320만 이상의 인원이 이 집회에 참석했다고 한다.

필자는 당시 중학생으로 그 전도대회에 참석했었다. 기억으로는 인파의 물결이 끝이 없었고, 여의도로 가는 차편도 별로 없었던 터라 한강대교를 걸어 광장에 갔던 기억이 남아 있다.

이 집회는 세계적인 부흥사 빌리그래함 목사를 초청하여 진행되었는데, 이는 대한민국 복음화에 기틀이 되었다. 하루에 수백 명, 수천 명이 결신했고, 뜨거운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었다. 이것은 도화선이 되어 삼천리 곳곳마다 십자가 물결이 일고, 교회에서는 새벽기도며 철야예배가 시작되어 한국교회는 그야 말로 폭발적으로 부흥했고, 더불어 대한민국은 놀라운 성장과 은혜를 경험했다.

그때를 생각하자니 오대양 육대주를 누비며 복음을 전하시는 우리 목사님이 오버랩된다. 50년 전의 우리나라처럼 시설이 낙후되어 도중에 마이크가 나가고, 비바람으로 단상의 휘장이 날아가고, 많은 인파들이 쏠려 위험한 상황이 닥치고, 더 심하게는 위협과 모함이 와도 꿋꿋하게 복음의 불모지에 살아계신 하나님을 전하시는 우리 목사님.

그게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빌리 그래함 목사가 우리에게, 아니 대한민국 교회에 미친 영향력을 생각해보라. 우리 목사님이 뿌린 복음의 씨앗이 처음에는 보이지 않았으나 점차 큰 나무가 되고 열매를 맺어 남미와 아프리카가 그 나무 아래 있음을 우리는 지금 본다. 아마도 그들도 훗날 우리가 빌리 그래함을 기억하고 기념하듯 우리 목사님을 기억하리라.

서울 월드컵 경기장이 가득했다. 6만 5천 가량이 밀집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일만 명의 연합성가대였다. 그들이 찬양한 ‘할렐루야’는 상암 월드컵 경기장 하늘을 뚫었고, 분명 하나님 보좌까지 울렸으리라. 참석자 모두가 기립했고, 박수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이 날 강사는 프랭클린 그래함 목사였는데, 이분은 바로 빌리 그래함 목사의 장남이다. 프랭클린 그래함 목사는 ‘영혼의 가치’에 대해 설교했다.

“지금 여러분에게 가장 귀한 것은 무엇인가? 두둑한 통장, 멋진 차, 근사한 아파트, 든든한 직장 등을 꼽을 수 있지만 이러한 것들을 다 갖는다해도 영혼을 잃어버리면 아무 소용없다. 오직 예수 안에서만이 우리의 영혼이 안전하다. 예수님은 우리 영혼을 찾아주려고 이 땅에 오셨다. 당신의 영혼은 안전한가?”

사과나무 씨 안에 사과가 있다는 목사님의 말씀을 연상케 하는 말씀이었다. 프랭클린 그래함 목사는 간단하게 설교를 마친 후에 50년 전 아버지 빌리 그래함이 했던 그대로 예수를 영접할 자들을 일으켜 세우고, 예수를 입으로 시인케 했다.

우리 목사님은 늘 ‘불이 꺼지기 전에 기름을 부으라’라고 말씀하신다. 팬데믹으로 교회가 침체되었다. 복음의 불, 성령의 불이 예전 같지 않다. 무엇이든 때를 놓치면 안 되는 법, 이때 기름을 부어야 한다. 그래서 성령의 불이 예전처럼, 아니 이전보다 더 활활 타오르도록 해야 한다. 이 불로 세상을 밝혀야 하고, 마침내는 복음의 암흑기를 사는 북한으로 나가야 한다. 그래서 이 기념대회를 열게 하신 하나님께 더욱 감사한다.

참석자 모두는 침체된 한국 교회가 다시 일어나 빛을 발하기를, 회복을 넘어 제2의 부흥이 있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더불어 언젠가 우리 교회도 이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서 국가와 민족을 위한 기도 집회를 갖기를 희망하고, 기도한다.

신묘수 전도사

Good News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은 영이시라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천지만물 가운데 편만해 계십니다. 그런데 이런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자가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을 만난 체험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을까요? 성경은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자가 하나님을 만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문제는 나 자신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고 간절히 찾지 않았기 때문에 가까이 계시는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던 것입니다.

자유로 한강변 고수부지에 고라니가 산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반신반의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고라니가 한가로이 뛰어노는 모습을 발견하고 나서부터는 지나다닐 때마다 유심히 살펴보면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제가 경험한 이야기를 듣고

“거기에 무슨 고라니가 있느냐?”고 면박을 주는 사람도 있었지만, 신기하게 여기고 찾아보았더니만 자신도 발견할 수 있었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지혜란 경험자의 말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보다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으나 그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으니 하나님의 사랑을 느껴보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요,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우리들을 위하여 독생자까지 아낌없이 내어 주사 당신의 사랑을 확정해 보이셨습니다. 주님께서 내미는 손을 뿌리치지 말고, 우리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계시는 주님을 모셔 들이기만 하면 됩니다.

상화평 목사

sanghwapyung@hanmail.net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나에게 정직하고 남에게 진실하자

사람은 보통 하루에 몇 번의 거짓말을 할까요? 여러 연구를 종합해보면 하루 평균 3번 정도의 거짓말을 한다고 합니다. 미국의 한 심리학자의 연구는 하루 평균 200번의 거짓말을 한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차이는 거짓말을 어떻게 정의하는지에 달려있습니다. 나쁜 의도로 누군가를 속이는 것만 거짓말인 것은 아닙니다. 해야 할 말을 하지 않고 숨기거나 타인의 시선이나 관계를 의식해 의례적으로 하는 말도 거짓말이 될 수 있습니다. 가만히 살펴보면 일상에도 거짓을 말하게 되는 상황이 있습니다. 사소한 거짓말의 흔한 유형 중 하나는 핑계를 대는 것입니다. 늦을 때 차가 막혔다거나, 만나기 싫을 때 바쁜 일이 있다고 하는 것이지요.

성경에 예수님은 ‘진실로’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십니다. ‘진실로’라는 부사는 없어도 소통에 문제가 없는 말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여러 번 반복하여 사용하십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예수님의 말씀이 진실하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인간이 타인을 대할 때 진실하지 않다는 반증은 아닐까요?

사람은 누구나 가면을 쓰고 살아갑니다. 흔히 ‘페르소나’라고 하지요. 자신의 진짜 모습과 달리 사회적인 상황에서 기대되는 역할에 부응하기 위해 이미지를 만듭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남에게 보여지는 것이 중요하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클수록 본래 모습과 괴리가 큽니다.

저도 이전에 일관되지 않은 모습이 있었습니다. ‘좋은 사람’이라는 이미지에 맞추려다 보니 이해되지 않고 싫은 상황에도 내색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마음과는 반대로 좋은 척 행동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타인을 위한 배려라 생각했습니다. 잘 하고 있는 줄 알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점점 힘들어졌습니다. 이유를 알 수 없어 기도하던 중 깨달았습니다. 먼저 나 자신에게 정직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괜찮지 않으면서 괜찮다고 스스로를 속인 것이지요. 이후로는 나의 마음부터 정직하게 직면하고 다루는 연습을 했습니다.

총회장 목사님은 늘 말씀하십니다. “나에게 정직하고 남에게 진실하자!”

나에게 정직하면 남을 진실하게 대할 수 있습니다. 나의 말이 마음과 일치되었는지 살필 때 진실로 사랑하고 진실로 축복할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전소희

신앙에세이

마음을 알아주다

사람들은 누구나 누군가 자신의 말을 들어주고, 또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기 바란다. 상대방이 자신의 말을 들어주고,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었을 때, 화났던 마음이 누그러지고, 조급했던 마음이 차분해지고, 만족감과 동시에 조용한 기쁨이 생겨난다. 이에 더하여 그 사람과의 관계는 깊어지고 돈독해진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도 늘 우리 기도에, 작은 신음까지도 귀 기울여 주시고, 마음을 만져주시며, 참 평안을 주시는 것 같다.

얼마 전 봤던 어느 유명한 박사님의 강연에서 소개된 부부 사이 갈등을 피하는 소통의 비결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었다. 상대방이 하는 말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바로 맞받아치기보다 끝까지 들어주고 핵심을 수긍해주는 것이다. 가령 저녁식사에서 “국이 짜네.”, “짜긴 뭐가 짜.”, “당신 입맛이 이상한 거야.”, “그럼 앞으로 당신이 만들어 먹어.” 식으로 대화가 흘러가게 하지 말고, “짜다는 얘기지?”라고 상대방이 하는 말의 핵심을 알았다는 수긍의 답을 해주면 된다. 그리고 추가로 “그렇지, 짜게 먹는 건 좋지 않지.”와 같이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말을 곁들이면 갈등이 아닌 편안한 대화가 된다.

반면, 세상의 모든 화는 무시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무시를 당한다고 느꼈을 때 상대방과의 관계는 깨진다. 심지어 복수심에 불타올라 상대방에게 해를 가하기도 한다. 그래서 아무리 사회적 위치가 다르더라도 누구를 무시하는 언행은 삼가는 것이 좋다. 어쩌면 우리 구원도 마찬가지다.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복음을 무시하는 자는 영생이 아닌 영벌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마음을 알아주는 것, 그것은 사랑의 시작이고, 무시는 비극의 시작이다.

“그의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시2:12).

박찬영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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