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담(追憶談)
세월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청춘을 기도원에 바친 기도원 식구들도 이제는 다들 백발이 되었고, 세월만큼 어깨도 내려앉았다. 일이 버거운가 보다. 그런 그들을 바라볼 때면 마음이 아프고 짠하다. 그들의 형편을 내가 왜 모를까. 그래서 곰곰이 생각하다 결정했다. 기도원 집회 때면 무료급식하던 것을 중단하기로. 그러면 일손 달리는 것을 해결할 수 있겠다 싶었다.
나는 내 결정이 타당한 것인지 타진코자 기도원에 적극적으로 후원하고 있는 주변 분들에게 이 소식을 전했다. 그런데 반응이 내 예상과 아주 달랐다. 나는 ‘잘하셨어요. 기도원 식구들도 이제 다 나이가 드셔서 힘들죠.’라고 할 줄 알았는데, 하나같이 “목사님, 우리에게는 기도원에 대한 추억이 많습니다. 그 추억을 빼앗지 마세요. 식판에 맛있는 밥과 반찬을 받아서 먹는 재미, 식사 후 무료 커피 한 잔, 그리고 아침에 주는 토스트…. 이런 것들이 다 우리의 추억입니다. 기도원에서 영적 양식도 취하지만, 거기서 아름다운 식사에 대한 추억이 있어요. 인력이 필요하다면 저희가 어떻게든 보충해놓겠습니다. 제발 우리 추억이 사라지지 않게 해주세요.”라고 하는 것 아닌가!
그들의 말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기도원에서 주는 식사가 부실하다고 투덜댈 수 있다. 밖에서 사 먹으면 더 맛있을 수 있겠지. 그런데 줄 길게 서서 식판에 받아먹는 기도원 밥이 추억이라니….
‘그래, 맞아! 우리 기도원의 무료급식에 대한 사연이 많지. 친정에 쉬러 왔는데 밥값 내는 사람이 어디 있냐며 시작했었어. 지금은 광주에서 대기업이 된 장로가 80kg짜리 아끼바리쌀 200가마를 가져온 것에 내가 축복한 후로 지금까지 쌀 창고에 쌀이 떨어진 적이 없었지. 동해에서 잡은 생선을 싣고 오고, 집회 때마다 돼지를 수십 마리 보내고, 온갖 채소들을 트럭으로 싣고 오고….’
주마등처럼 37년의 세월이 내 앞을 스친다. 나는 즉시로 내 계획을 취소했다.
누구나 세월을 먹고, 세월과 함께 추억도 먹는 법, 부자는 돈이 많은 사람이지만, 잘 산 사람은 추억이 많은 거란다. 당신에게는 어떤 소중한 추억담이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