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해주시는 주님
동행해주시는 주님
이른 아침 우연히 하늘을 올려보니 새벽하늘의 빛깔이 황홀했다. 혼자 보기 아까운 고운 색채들은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다. 나뭇잎이 투명하게 밝은 것이 맑게 싱그럽다.
어느새 5월이 찾아왔다. 초록빛이 진하게 물들어진 계절이다. 화사한 5월, 햇살도 좀 더 진한 날, 간식을 챙겨서 가까운 자연으로 나가 몸도 마음도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싶은 생각이 기분 좋게 밀려온다. 좋은 일들이 가득할 것만 같은 5월은 그래서 참 사랑스럽다. 하늘을 보아도 예쁘다. 출퇴근 길에 늘 보는 같은 길, 늘 드나드는 같은 건물, 그러나 그 속에서 지나가는 사람들마저 특별하게 느껴지는 5월이다.
사실 2023년을 시작하면서 큰 고민들이 머리를 짓누르고 있었다. 그런데 봄의 시간을 마주하며 아무 걱정 없이 지내는 어린아이처럼 그저 기분이 좋다.
다시 생각해보니 모든 것들이 내 눈에 아름답고, 감사했던 것은 계절 속 자연을 보며 위로를 받으라는 하나님의 섬세한 배려 덕분이다.
일상에서 스쳐 지나가는 것들을 일별하는 찰나에도 기쁨을 주시며, 밝은 생각들로 가득하게 하시는 하나님, 바로 나의 아버지의 뜻이었다. 자연도 때를 맞춰 기르고 돌보시는 하나님이 당신의 자녀를 홀로 두시겠느냐는 위로가 내게 있었다.
사랑이 가득하신 주님, 늘 함께하시고, 위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혼자 내버려 두시지 않으니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고후1:4).
이인영 집사
기도하고 회개할 수 있는 축복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벧후3:14).
이 말씀을 직접 체감한 일이 있다. 누군가와 이견이 좁혀지지 않고 언쟁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누가 옳고 그르든 간에,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시는 일을 했다는 생각에 잠들기 전 회개기도를 했다.
“하나님, 다퉈서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용서해주세요.”
그날 밤 꿈에 총회장 목사님이 찾아오셔서 나를 바라보시며, “뭐가 좋은 거라고 아직도 그걸 하고 있어?”라고 말씀하시는데, 나를 보니 손톱에 작은 점 두 개가 찍혀 있었다. 천만다행인 것은 목사님이 그 말씀을 하시자마자 즉시 그 점을 쓱쓱 문질러 지워버린 것이다.
꿈에서 깬 후 깨달았다. 하나님 아버지는 나의 앉고 일어섬과 중심의 생각까지 전부 보시고 감찰하신다는 것을. 그리고 당신의 자녀들이 점도 흠도 없이 거룩해지기를 원하시며, 또한 진실로 죄를 회개하면 즉시 깨끗게 해주신다는 사실을. 만일 회개치 않고 그냥 잠들었다면, 그리고 그날 밤에 나를 불러가셨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목사님께서 왜 날마다 일기를 써라, 왜 하루를 돌아보고 회개기도를 하고 잠들라 하시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살면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을 때, 우리 믿는 자녀들이 행동할 법과 기준은 나의 지식, 내 기분과 감정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되어야 한다. 비록 마음이 끓어오를지라도 용서하고, 그가 잘못했을지라도 먼저 손 내밀고 화해하며,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용납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 죄를 통해 나를 무너뜨리고 멸망시키려는 마귀의 궤계는 무너지고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기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예수님도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날마다 기도하시고 심한 통곡과 눈물로 끝내 사명을 이루셨을진대 하물며 죄성을 가진 우리는 어떻겠는가.
기도하고 회개하는 것은 이 땅에 살아있는 동안에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자 하나님 뜻대로 살 수 있게 하는 견고한 발사대이며, 나아가 죄악과 싸워 승리하여 거룩한 신부로 단장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날마다 기도하고 회개하여 음부의 권세가 두려워하는 자가 되자!
이국진 사모
응답받는 법
나는 회사의 대표이사였을 때 경영상의 어려움 때문에 엄청난 시련과 고통을 받았다. 매일 새벽 눈물로 기도했으나 꿈속에서조차 편치 못했다. 약 육 개월 정도 눈물의 기도로 받은 응답은 ‘너부터 용서하라’였다. 당장 닥쳐있는 견디기 힘든 모든 어려움들을 해결해주시기를 그렇게도 간구했는데 왜 그 같은 응답만을 주셨는지 알 수가 없었다. 섭섭하고 허탈했다.
왜 용서해야 하는지를 깨닫게 되기까지에는 꽤 긴 시간이 필요했다. ‘너부터 용서하라’는 응답 즉시 용서를 시작했으면 내 기도가 빨리 이루어졌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후회하지는 않는다. 고통이 더했을 뿐이지만 그 고통 속에서 지금의 나를 있게 하셨으니.
내가 먼저 용서해야 용서받는다. 내게 죄지은 자를 용서하여 나의 죄를 사함 받은 후에,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여야 한다(마6:12).
한나는 아들을 낳게 해주시기를 눈물로 간구하였지만 응답받지 못했다. 그토록 원하는 아들이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아들을 낳으면 하나님의 전에 바치겠다 서원하여 즉시 응답받았다(삼상1:10~11). 이스라엘을 이끌 선지자를 보내시려는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니 위대한 선지자 사무엘을 낳게 하시고 세 아들과 두 딸을 더하셨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말한다. 그 의를 구하고 따르면 하나님께서 내 필요를 모두 아시고 더하여 주실 터이니, 항상 기도할 때에는 하나님께서 진정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먼저 물어야 한다.
왜 기도하고도 응답받지 못할까? 내 죄 때문에 응답받지 못한다. 사함 받아야 응답하시니 너부터 용서하고 하나님의 원하심대로 간구하고 인내하라. 죄 사함 받고 주께로 가자.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아픔을 치유해주시고 회복하여 주신다.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사59:1~2).
이광주 목사
중보기도
성령을 받고 기도하는 재미가 제법 붙을 무렵, 한 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그것은 ‘이웃을 위한 내 기도가 정말로 하나님께 닿고 있는 것인가?’였다. 어떠한 마음, 어떠한 기도가 하나님을 움직이게 할 수 있는 것인지 알고 싶었다. 그래서 기도할 때마다 주님께 물었다. 어찌하여야 주님의 기도를 닮을 수 있는 것인지 알고 싶다고.
그런 내게 답을 주시듯 한 꿈을 꾸게 하셨다. 꿈속에서 나는 곧고 길게 뻗은 자갈길을 걷고 있었다. 등 뒤에는 빈 수레를 끌고 있었고, 터덜거리며 홀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며 주님께 물었다. “주님, 왜 이런 모습을 보여주세요?” 그러자 주님께서는 “네 질문에 대한 내 답이란다.” 하셨다.
인자하신 목소리로 주님께서는 내가 끌고 있던 빈 수레를 가리키시며, 앞으로 이 수레에는 나를 많이 사랑하고 신뢰하는 자들이 타게 될 거라고 하셨다. 이 수레에 누가 탈 것인가는 수레를 끌고 있는 내가 아니라 타기를 원하는 그들의 선택이라고 하셨다. 설령 자갈길을 지나느라 흙먼지를 마셔야 하고 덜그럭거리는 수레로 인해 불편할 수도 있겠지만, 나를 사랑하고 믿는다면 모든 것을 감내할 거라 하셨다. 그런 깊은 신뢰를 얻게 된다면, 그 이웃을 위해 드리는 나의 모든 기도는 이미 하나님께 닿아 있을 거라고 하셨다. 하니 먼저 이웃의 마음을 얻는 사람이 되라고 당부하셨다. 수레에 사랑하는 이를 태우고 그를 위해 자갈길을 걷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마음, 그것이 바로 중보기도의 마음이라 하셨고, 어쩌면 수레에 태운 사람이 많아질수록 수레를 끄는 일은 너무나 힘겹고 고통스러운 일이 될지도 모른다고도 하셨다. 하지만 그럴수록 자신을 믿어주는 그 마음을 귀히 여기며 모든 어려움을 견뎌내야 한다고 하셨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할 때 기도를 받는 사람도 유익하지만 먼저 기도를 하는 사람이 더 큰 유익을 얻는다. 타인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기도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예수님을 닮은 모습이 있을까. 꿈에서 깨어 마음 깊은 곳까지 닿는 주님의 온기를 느끼며 정말 이런 사람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이러한 세세한 가르침을 주시는 주님을 찬양한다.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3:6).
박영임 생도
jjambballqueen@naver.com
GOOD NEWS
장례예배나 혼인예배를 드릴 때 복음을 전합니다. 그런데 동일한 내용을 전하는데도 예배의 분위기가 확연히 다릅니다. 혼인예배 때는 들뜬 마음으로 설교를 건성으로 듣습니다.
그러나 장례예배 때는 숙연한 모습으로 귀를 열고 말씀에 귀를 기울입니다. 그래서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유익합니다. 모든 사람이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알렉산더 왕의 아버지 필리포스 2세는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한 신하에게 이렇게 외치도록 명령을 내렸다고 합니다. “왕이시여 당신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기억하십시오.” 왕의 명령이 아니었다면 목이 달아날 불경죄이지만 왕은 아침마다 그 말을 듣고 의미 있는 인생을 살아가려고 결의를 다졌던 것 같습니다. 또한 그의 아들 알렉산더 왕은 죽은 뒤에 자신의 두 손을 관 밖으로 내게 하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가는 인생, 허송세월하지 말고 보람 있게 살라는 교훈을 남겨주고 떠나갔습니다.
우리 인생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느냐 하는 문제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문제는 예수님을 믿고 영생복락의 천국으로 가느냐, 아니면 믿지 않아서 영벌의 불지옥으로 떨어지느냐 하는 문제가 가장 중차대한 문제입니다. 죽은 뒤에는 기회가 없습니다. 살아생전에 예수님을 영접하고 사후를 준비하는 자가 참된 지혜자입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
상화평 목사
sanghwapyung@hanmail.net
RESTART REBECCA!
‘RESTART REBECCA(다시 시작 레베카)! 지구 탈출의 힘으로!’
이 문구는 저의 카카오톡 프로필에 적혀있습니다. 레베카는 딸아이의 이름이기도 하지만, 운영 중인 해외 유학 관련업체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코로나19 이후로 문을 닫고 폐업했던 이 업체가 기적적으로 다시 살아나기 시작한 것은 인터넷상에 열어뒀던 저의 블로그 때문입니다. 휴업을 선언하고 종료했지만, 오래전 작성했던 자료들은 여전히 살아있었고, 다시 업무를 할 수 있게 했습니다.
다시 이 일을 시작하는 표면상의 이유는 그러하지만, 이면에 가려진 여러 가지 에피소드는 온전히 주님의 인도하심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당뇨합병증으로 인한 망막의 이상과 녹내장으로 앞을 잘 구분하지 못합니다.
지난 3월, 3년 만에 다시 인천공항에 들어서는 순간 포기를 선언했습니다. 아무리 능력 있는 사람이라도 보여야 일을 하지요. 티켓의 좌석도, 출구 게이트도 인식할 수 없는 장님이 무슨 해외 출장을 가고, 국제학교를 찾아가서 상담을 진행하고….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런데 비척거리는 광경을 지켜본 남편의 한마디는, “월드 비즈니스 커리어를 갖고 살기가 쉬운 줄 알아?” 였습니다. 포기하지 말라는 남편의 한마디가 오기를 발동시켰고, 살아계신 주님의 자녀임을 다시 깨닫고 주님의 도우심을 확신하며, 이방의 땅을 향하여 죽을 만큼의 인내와 노력으로, 지구 탈출을 시도하는 마음으로 다시 시작합니다.
세상살이가 가끔 끝이라고 여겨질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손 내밀어주시는 주님을 만날 수 있음도, 다시 의지의 날개에 시동을 걸 수 있음도 우승자의 마인드로 살아갈 수 있는 배움의 터로 인도하신 주님의 사랑 덕분임을 알고 있습니다. 지금은 멀리서 사모하는 마음으로 그곳을 향하고 있지만, 때가 되면 꼭 교회의 앞마당이 보이는 곳에서 강인한 신앙인의 삶을 살게 해주신 우리 목사님을 모시고 맛있는 한 끼 밥상이라도 대접하고 싶습니다. 이 땅을 떠나는 순간에도 광명은 사라지지 않을 것임을 확신하며, 눈물의 감사를 드립니다. 모든 영광을 주님께 돌립니다.
오자유 집사
lovelyactor@naver.com
가정을 영적 공동체로
우리 부부는 결혼생활 17년 차이고, 매주 가정예배를 드린 지 10년 정도가 되었다. 첫째는 지금 중학교 3학년이 되었고, 3명이 드리던 가정예배는 2명의 자녀가 더해져 5명이 드리고 있다. 지난 몇 년의 가정예배 기도 노트를 넘겨 보니 우리 가정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뚝뚝 떨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아이들이 아팠으나 치료를 받았고, 주차가 힘든 동네에서 소망하던 집으로 이사를 했다. 우리를 힘들게 하던 사람들을 기도로 굴복시켰고, 경제적인 문제도 때에 맞게 해결되었다. 당시엔 심각한 문제라 잠도 못 이루고 염려하며 기도했던 일들이었다. 지금도 매주 가정예배엔 상황은 다르지만 비슷한 기도 제목들이 생기고 응답받기를 되풀이하고 있다. 이쯤 되면 하나님이 해결해주실 걸 확신하고 걱정하지 말아야 하지만 부끄럽게도 염려하는 모습은 여전하다.
매주 아이들과 서로의 염려와 걱정을 나누고 함께 기도하는 모습을 통해 우리 가정의 주인이 부모가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것을 시인하고 있다. 자녀를 어리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영적 동지로 생각하고 함께 예배드릴 때 그 가정은 무엇보다도 강한 ‘영적 공동체’가 된다.
가정의 달 5월, 가정예배를 시작해볼 것을 추천한다. 자주 드리면 좋겠지만 처음 시작할 때는 가족들이 부담되지 않도록 한 주에 한 번도 좋고, 더하여 특별한 가족 행사가 있을 때마다 드려도 좋다. 특히 사진이나 메모를 통해 기록을 남기면 후에 가정예배를 통해 받은 응답과 축복을 알게 되어 가정예배의 맛을 알게 된다. 시작이 어렵지 한번 정하고 시작하기만 하면 된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신6:5~7).
송명국 집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