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하지 말자
꿈을 꾸었다. 내가 장로들과 골프를 하는데, 18홀을 다 돌고 나니 장로들이 ‘18홀 더 할까요?’ 한다. 무린데 하면서도 장로들 재촉에 따라나섰다. 아니나 다를까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장로들은 “목사님, 얼른 오세요.”라며 재촉을 하건만 몸이 따라주지 않으니 점차 쳐질 수밖에. 꿈을 깬 나는 생각이 깊었고, ‘무리하지 말자’는 결론에 이르렀다.
나는 늘 우리 성도들에게 ‘무리는 자살이다’라고 가르쳤다. 그러나 정작 그 말을 내게는 적용하지 않았다. 나는 늘 어미의 심정으로 ‘젖꼭지가 헤져도 내 젖을 빨아라.’라고 했고, 아비된 마음으로 ‘자식을 많이 둔 아비는 아플 틈도 없다’며 나는 늘 예외로 단정하고 지냈다. 그러나 나라고 세월을 거스를 수 있을까. 잠시 다리를 다쳐 병원에 입원했을 때 담당 의사는 내게 ‘고령자이니 주의하라’고 당부했고, 하나님은 이번에 꿈으로 내게 경고하셨다. 경고를 무시하면 경고도 나를 무시하는 법. 여느 때 같으면 산상집회에서 아침저녁 설교를 했을 터이나, 이번에는 저녁에만 예배를 인도했다.
인생은 단거리 달리기가 아니다. 마라톤과 같이 장거리를 뛰는 것이 인생이다. 100m나 200m 선수들은 초반부터 최고의 스피드로 달린다. 잠깐이니까 가능하다. 그러나 마라톤 선수들을 봐라. 그들은 절대 서두르지 않는다. 체력을 안배하면서 달린다. 오버페이스를 하면 몸에 이상이 오고, 결국 끝까지 달릴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그렇다.
차는 자동차 회사에서 만들지만, 관리는 내가 해야 한다. 내가 기름치고, 닦고, 조여주면 차 수명이 길어지지만, 방치해두거나 과다하게 사용하면 아무리 좋은 차라도 조기 폐차를 면할 수 없다. 생명을 주신 이는 하나님이나 관리는 내가 해야 한다. 쉴 때 쉬고, 잘 때 자고, 좋은 것을 먹여주고, 무리하지 않게 관리해야 주신 수명대로 살 수 있다.
목회 초, 나는 딱 3년만 살다 가려고 했다. 당연히 엄청나게 무리했다. 그것이 열심이요, 충성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뒤늦게 깨달았다. 주신 수명을 다 쓰지 못하고 빨리 가는 것은 생명을 주신 분께 큰 죄를 짓는다는 것을.
가야 할 길이 바빠도, 해야 할 일이 많아도 무리하지 말자. 무리하면 조기 폐차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