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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2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우리에게 성령을 주신 목적을 알라(고전1:17~31)

1202호 · 2023-05-21

기독교에서 가장 큰 축복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신

(神)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종교는 세상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것이야말로 복음입니다.

하나님 마음에 늘 걸리는 것이 있었습니다. 죄 가운데 살아가는 우리들을 보는 것이었습니다. 마귀에게 종노릇하고, 그 사슬에 얽매여 사는 우리가 눈에 밟혀 건져내고 싶으셨습니다. 그래서 계획하셨고, 때가 되매 입양절차를 밟으셨습니다. 절차는 당신의 외아들인 예수를 이 땅에 보내사 죽이는 대가를 치르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들의 피를 주고 우리를 사셨습니다. 그래서 어둠의 자녀였던 우리가 감히 하나님의 양자, 자녀가 될 수 있었습니다. 할렐루야!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요1:12~13).

과거 믿음의 선친들조차도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이 하나님을 향하여 “아바 아버지”(막14:36)라고 부른 것처럼, 우리도 동일하게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이는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이를 확실하게 증거하시려고 성령으로 인을 치셨습니다.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갈4:6). 우리를 당신의 호적에 올리고 도장을 ‘꽝’ 찍으신 것입니다. 이제 누구도 하나님의 족보에서 우리를 뺄 수 없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롬8:15).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라는 말씀이 뭡니까? 아빠, 아버지라고 당당하게 부르라는 겁니다. 제 아들이 저를 부를 때 쭈뼛대며 ‘아~ 버지’라고 부르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당당하게, 당연하게 ‘아버지’라고 부르듯, 우리도 하나님께 당당히 ‘아버지’라고 부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자녀가 되면 상속권이 생기는 것을 아십니까? 양자도 자식이니까요.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롬8:17). 후사(後嗣)가 뭡니까? 대(代)를 잇는 자식을 말합니다. 그러면 대를 이을 자식에게 상속도 하지 않겠습니까? 이 말씀을 다른 성경에는 좀 더 쉽게 써놨습니다. “자녀이면 상속자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으려고 그와 함께 고난을 받으면, 우리는 하나님이 정하신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더불어 공동 상속자입니다.”

갈라디아서 4장에도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네가 이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니라”(갈4:7).

여러분, 빌 게이츠의 상속자만 되어도 어마어마할 겁니다. 이건희 회장의 상속자만 되어도 대단합디다. 하물며 하나님의 상속자는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겠습니까? 그게 바로 저와 당신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입니까? 우주 삼라만상을 만드시고, 그것의 주인되시는 분입니다. 만왕의 왕이시며, 유일무이하신 분이며, 불가능이 없으신 분입니다. 우리가 그분의 자녀요, 그분이 상속자라니…. 까무러치지 않는 게 다행입니다.

그런데 왜 그런 아버지를 두고도 가난하고, 아프고, 괴롭고, 실패하며 사느냐 이겁니다. 그건 당신이 정말 하나님을 아버지라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지 못해서입니다.

우리 교회 성도인 의사의 딸이 외국에서 유학 중입니다. 언젠가 그 딸이 전화를 걸어 안부인사도 없이, “아빠, 등록금 보내주세요. 바빠서 끊을게요.”라고 했답니다. 그분이 제게 뭐라고 한 줄 압니까? “꼭 맡겨놓은 거 찾아가듯 해도 어쩌겠어요? 줘야죠. 아버지인데요.”라고 했습니다. 맞습니다. 그게 아버지입니다.

우리 아버지이신 하나님도 “달라고 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 말이 어디 있냐고요?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7:7~11).

하나님이 아버지가 맞다면 돈 달라, 직장 달라, 병 고쳐 달라고 당당하게 말하십시오. 뒹굴면서 떼도 써보세요. 본래 아버지에게는 그렇게 하는 겁니다.

그게 안 된다고요? 소심한 성격 탓일까요? 아니요, 성령을 받지 못해서 그럽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롬8:14),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롬8:16). 성령의 인도하심이 있어야 ‘아버지’ 소리가 나옵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에서 관계 정립이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 자녀에게는 권능이 따릅니다. 권세와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행1:8). 성령을 받으면 하나님 자녀가 되고, 그에 따르는 권세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능력이냐? 바로 이것입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찌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막16:17~18). 그래서 나를 못 살게 하는 귀신을 쫓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앞에서 무릎을 꿇은 마귀와 악의 영과 귀신은 성령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 앞에서도 동일하게 도망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쉽게 끊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죄를 지었다고 그 관계가 끊어질까요? 말을 안 들으면 ‘호적에서 파버린다’고 위협은 해도 진정 관계를 청산하는 부모는 없습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재산을 탕진한 둘째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가 끊어집디까? 아들 스스로 ‘내가 죄를 지었으니 이제 아버지의 아들이 아니라 종이 되겠다’고 생각했을 뿐, 아버지는 그 아들이 돌아오자 여전히 아들로 대접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하나님 아버지 앞에 당당하게 나와 “고쳐주세요.”, “돈 주세요.”,

“해결해주세요.”라고 구하십시오.

그런데 양자의 특성이 있습니다. 잘 나가면 아버지 같다가도, 힘들고 어려우면 ‘진짜 우리 아버지 맞나?’ 하고 의심하는 겁니다. 잘 되면 ‘하나님 아버지’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내 아버지가 맞나?’ 그런다는 겁니다. 그건 믿음이 떨어진 탓이요, 이는 성령이 소멸되었기 때문입니다.

저도 예전에 양자로 들인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자기와 의견이 맞지 않자 “제가 언제 아버지 해달라고 했습니까?” 그러면서 떠났습니다. 저를 온전히 아버지라 생각하지 않은 연고요, 믿지 못한 연고입니다.

자고로 대를 이를 자식은 곱게 키우지 않는 법입니다. 잘못한 것은 야단치고, 훈련도 시켜야지요. 때리면 친아버지가 아니라서 그런다고 오해를 하는데 그게 아니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히12:6~7). 아버지니까, 내 자식이니까 잘되라고 때리는 겁니다.

성경은 ‘성령을 소멸치 말라’(살전5:19)고 하십니다. 성령을 소멸하면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 근본이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흔들리면 양자의 자리도 놓치게 되고, 자녀의 권세도, 상속도 무산됩니다.

성령을 받은 자는 하나님의 자녀요, 그의 상속자입니다. 그러니 문제가 있걸랑, 힘들거들랑 “아버지~”라고 부르세요. 아버지가 다 해결해주십니다. 할렐루야!

자신을 과소평가하지 말라

당신은 하나님의 자녀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올바로 정립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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