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구멍
작은 구멍
몇 달 전 이불에 생긴 작은 구멍을 발견했습니다. 자다가 머리핀에 찢긴 것인지, 아니면 어디에 걸려 찢어진 것인지 알 순 없었지만 아주 작은 구멍이라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습니다. 그 후 시간이 좀 지나고 침대를 정리하다가 작았던 구멍이 조금 커진 것을 발견했습니다. 잘 때 이불이 이리저리 움직이다 보니 커진 것입니다. 그리고 또 얼마 전 잠을 자려고 하는데 그 구멍이 제가 한눈에 확 보일 정도로 커져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조금 더 커진 구멍이 이제는 조금만 건드려도 더 쉽게 찢어지는 상태가 된 것입니다. 저는 일단 밤이 늦었으니 다음날 꿰매기로 하고 그 이불을 덮고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날 자다가 그 구멍에 발이 들어갔고, 그 발을 뒤척이며 빼내려다가 이불이 쫙하고 찢어졌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확인해보니 아래위로 이불커버가 크게 찢겨 있었습니다. 바느질로는 수습할 수 없을 정도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결국은 다 찢긴 커버를 벗겨 쓰레기통에 버렸습니다.
이것을 보며 ‘어쩌면 우리 마음이나 생각도 이 이불과 같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은혜가 넘치던 마음에 아주 작은 부정이나 원망의 구멍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너무 작아서 삶에 어떠한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한번 벌어진 구멍은 점점 커지기 마련입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도 처음에는 다윗을 군대장으로 임명할 만큼 다윗을 인정하고 신뢰했습니다. 하지만 “사울의 죽은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더라”
(삼상18:7)는 말을 듣고 다윗을 향해 시기하는 마음이 생겼고, 그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 창을 던져 다윗을 죽이려고까지 합니다. 이렇듯 봉합하지 않으면 작은 부정적인 생각, 원망하고 미워하는 마음, 그리고 죄까지도 그 크기를 키워갑니다.
부정적인 생각이 스멀스멀 들어오면 바로 예수 이름으로 쫓아야 합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 방치하면 안 됩니다. 나도 모르게 그 마음들은 커져서 나중에는 나의 삶에까지 영향을 주고 맙니다.
부정적인 마음이 들어오면 예수 이름으로 쫓아내십시오. 기도와 말씀으로 봉합해 절대 다시는 그 생각이 자리 잡지 않게 하십시오.
장수정
겸손한 기도 vs 교만한 기도
바다에 폭풍이 일어 배 한 척이 난파했는데 배에 타고 있던 남자 둘만이 살아서 작은 무인도까지 어렵사리 헤엄쳐 갔습니다. 두 남자는 어찌해야 할지 몰라 쩔쩔매다가 이윽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는 데 합의했습니다. 남자A는 평신도였고, 남자B는 목회자 신분이었습니다. 두 남자는 작은 섬을 둘로 갈라 평신도인 남자A는 이쪽 끝에, 목회자인 남자B는 다른 한쪽에 자리 잡고 구조될 때까지 각자 기도하며 살아가기로 했습니다.
이들은 먼저 먹을 것을 청하기로 결정하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평신도 남자A는 이튿날 자기 구역에서 열매 맺은 나무를 발견하고 그것으로 배를 채웠습니다. 반면 반대편 목회자 남자B의 구역에서는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석 달이 흘러도 구조 소식은 감감하고 요원해졌습니다. 평신도 남자A는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아내를 얻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이튿날 다른 배 한 척이 난파되었고, 유일한 생존자인 여인 하나가 그의 구역으로 헤엄쳐왔습니다. 두 달이 지나 그 여인은 평신도 남자A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쪽 목회자 남자B에게는 여전히 생기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평신도 남자A는 곧이어 자식과 집과 의복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기도했던 것을 기적과 같이 하나하나 모두 얻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섬 저쪽의 목회자 남자B는 여전히 빈손으로 남아있었습니다.
3년의 세월이 지난 후, 평신도 남자A는 자신과 가족이 섬을 벗어날 수 있도록 배 한 척을 보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두 달 후 아침에 보니 배 한 척이 가까운 해변에 밀려와 있었습니다. 기도의 응답에 너무 기뻤지만 평신도 남자A는 교만해진 나머지 저쪽의 목회자 남자B를 그대로 섬에 남겨두고 떠나기로 작정했습니다. 평신도 남자A가 보기에 섬의 반대편 목회자 남자B의 기도에는 전혀 응답이 없는 것으로 보아 목사라고는 하지만 기도의 능력이 없고 결코 축복을 받을 그릇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평신도 남자A가 배에 올라 섬 저쪽의 목회자 남자B를 뒤로하고 떠나려 하는 그 순간, 하늘에서 큰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너는 어찌하여 같이 난파당하고 고생한 네 동료를 남겨두고 떠나려 하느냐?”
평신도 남자A가 대답했습니다.
“제가 받은 축복들은 내가 기도해서 받은 것들이니 저 혼자 누려야 할 몫입니다. 저 목회자 남자B는 목사이면서도 기도 응답을 한 번도 받지 못했습니다. 미루어 판단하자면 하나님께 중한 죄를 지었는지 알 수 없지만 어떤 축복도 누릴 자격이 없는 버려진 남자 아닐까요?”
하늘에서 음성이 평신도 남자A를 엄하고 중하게 책망하며 큰 목소리로 꾸짖었습니다.
“헛소리 말아라! 내가 너에게 응답한 기도는 바로 저 사람의 기도니라. 그의 기도가 없었던들 너는 아무런 것도 얻어 누리지 못했을 것이니라.”
평신도 남자A는 지지 않고 응수했습니다.
“저쪽의 남자B가 무슨 기도를 했기에 내가 받은 이 모든 축복이 그의 덕이란 말입니까? 부디 말씀하여 주시지요.”
하늘에서 다시 안타까운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저 사람은 너의 모든 기도가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기도했느니라.”
평신도 남자A의 모습에서 우리의 자화상이 보이시는지요? 우리의 현주소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수많은 기도의 응답이 있었습니다. 크고 작은 셀 수 없는 기도의 응답과 하나님의 은혜 앞에서 이제 뒤돌아봐야 합니다. 과연 우리가 영적으로 늘 성령충만하고 하나님 앞에 흠이 없습니까? 남보다 믿음이 월등하고 누구보다 많은 헌금과 봉사를 드렸습니까? 늘 주일성수와 예배에 충실했기 때문에 당연히 내게 주어지는 기도의 응답이었을까요? 물론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태도는 교만한 바리새인의 모습입니다.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약5:1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8:26).
많은 성도들과 목회자들이 나를 위해 합심기도와 중보기도를 하였습니다. 심지어 절박하고 희망이 보이지 않는 번아웃의 자리, 기도 한 구절조차 나오지 않는 절망의 상황에서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나를 위해 친히 간구하였기에 오늘의 내가 있습니다.
역사하는 힘의 원천은 내게 있지 않습니다. 의인의 간구와 성령께서 우리를 위해 친히 간구하셨기에 기도의 응답이라는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우리가 교만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내가 기도했지만 성도들과 목회자들이 금식하며 눈물로 기도했기에 의인의 간구로서 역사하는 힘이 많아졌고, 예수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친히 간구하셨기에 기도 응답을 받은 것입니다. 기도는 내 믿음에 의한 주술행위가 아니며 내 선행의 대가로 오는 거래행위는 더더욱 아닙니다.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벧전5:5).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서는 그날까지 이 땅에서는 늘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간구의 기도를 해야 합니다. 교만을 내려놓고 나를 위해 같이 기도했던 주변의 성도들과 목회자들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성령께서 대신 간구하여 주셨음을 감사하십시오. 그리고 다시 나를 위한 기도를 하십시오.
살아오면서 많은 기도의 응답을 받으셨나요? 겸손히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고 모든 영광을 주님께 돌려야 합니다.
예수중심교단 모든 성도들의 간구와 기도가 모두 열납되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신우신경외과 재활의학과
(메디스템 줄기세포센터)
대표원장 안계훈
GOOD NEWS
튀르키예와 시리아에서 발생한 진도 7.8의 지진은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의 32배나 되는 강력한 위력이었다고 합니다.
인간의 발전한 문명도 재해 앞에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려움을 당한 이웃들은 주님의 사랑으로 당연히 도와야 하겠지만 무엇보다도 이 사태를 통하여 만물의 마지막이 다가오고 있음을 깨닫고 주님의 재림과 사후를 준비해야 합니다. 이 땅에 유토피아를 건설하려 하지 말고 천국에 소망을 두고 그날을 준비하는 자가 지혜로운 자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모든 예언들은 거의 다 성취되었고, 이제 예수님의 재림에 관련된 예언들만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날과 그 시는 하나님 아버지만 알고 계시지만 나타나는 징조들을 보고 그날이 가까이 왔음을 인식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말세에는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큰 지진과 기근과 온역이 있겠고, 또 무서운 일과 하늘로서 큰 징조가 있으리라”(눅21:10~11)고 성경이 기록하고 있는데, 그 현상과 징조들이 벌써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더디 오시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 예언은 반드시 이루어지며, 우리 생전에 주님의 재림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말세의 어떠한 환난과 심판 가운데서도 보호를 받고 영생복락의 천국에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상화평 목사
안주를 도전으로
최근 뉴욕으로 해외 출장을 다녀왔다. 누구는 부럽다고도 하는데, 사실 나는 해외 출장을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최근 미국에서 이슈가 된 아시아인 혐오 범죄와 생전 처음 가보는 장소, 처음 접하는 사람, 새로운 경험에 대한 두려움도 컸다. 그래서 이번에도 내키지 않는다는 내색을 회사에 조금씩 했다. 
그러던 와중 주일예배 때 ‘기여하는 사람이 되자’라는 설교를 들었다. 주도적, 자발적, 기여하고, 오래 참고, 스트레스를 이겨내는 자가 하버드 대학 인재상이라는 것과 자신이 두려워하지 않는 일이라면 그것은 위대한 일이 아니라는 스티브 잡스의 명언, 사람 만나기를 꺼리고 어떻게 ‘Management’를 할 수 있겠냐는 말씀, 삽질을 하더라도 저수지를 파는 자세가 성공으로 이끈다는 말씀은 모두 내게 안주를 추구하지 말고, 도전하고 시도하라는 말씀으로 들렸다. 오래전 어느 분이 내게 했었던 말도 다시 떠올랐다. 하나님이 보검으로 만들어 놓았는데, 정작 ‘하나님, 저는 깔끔하게 케이크만 썰게요.’ 한다고. 그리고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아내도 마음 편히 잘 다녀오라며 내게 힘을 주었다.
이에 결심하여 새로운 경험을 하지 못하게 나를 붙잡던 모든 이유와 생각들을 접어두고, 출장을 가서 여러 유익한 경험을 하고 돌아왔다. 그리고 깨달았다. 나의 모든 이유들은 그저 나의 안주를 위한 핑계였고, 염려들은 또 다른 이유를 찾는 것이었고, 두려움은 그저 허상이었다는 것을. 안주를 도전으로 전환하니 새로운 경험들로 머릿속이 환기되었고, 막상 해보니 별거 아니라는 용기도 다시금 생겨났다.
이제는 새로운 도전이라는 말이 조금씩 설레기 시작한다.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날 오히려 강건하니 나의 힘이 그때나 이제나 일반이라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사온즉”(수14:11).
박찬영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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