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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0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하나님은 우리 믿음을 보신다(요15:7~8)

1200호 · 2023-05-07

마가복음 2장에는 중풍 앓는 친구를 고치려고 네 명의 친구가 남의 지붕을 뚫어 예수님 앞에 친구를 내려놓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때 예수님의 반응은 이랬습니다.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막2:5).

마태복음 9장에는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는 여인이 예수님 뒤로 다가와 살짝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진 사건이 기록되어있습니다. 그 여인은 예수님의 옷자락만 만져도 병이 나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의 반응도 볼까요?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마9:22).

마가복음 10장에는 날 때부터 거지요, 소경인 바디매오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그는 예수님이 여리고에 오신다는 소식에 오매불망하다가 예수님이 지나가시자 소리를 질러 예수님을 부릅니다. 그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막10:52).

잘 보십시오. 예수님은 환경이나 문제를 보신 것이 아니라 믿음만 보셨습니다. 마치 물건을 파는 사람이 돈만 보고 물건을 팔 듯 말입니다.

마가복음 9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기도하러 가신 사이에 제자들이 어릴 때부터 간질병을 앓고 있는 아이를 고치지 못해 서로 변론만 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오시자 아이의 아버지는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막9:22)라며 간절히 아들의 병을 고쳐주길 바랍니다.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이 말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믿음이 결핍되어있는 적절치 못한 표현입니다. 이에 주님은 뭐라도 답하십니까?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9:23). 아들의 치료가 예수님의 능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믿음’에 달려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믿음을 가진 자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말씀입니다(빌4:13). 그러자 아이의 아버지는 바로 회개합니다.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막9:24).

우리도 회개해야 합니다. ‘하실 수 있거든’, 이것이 우리 믿음의 현주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스스로가 한계를 긋기 때문에, 하나님을 제한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한계 안에서 제한을 받으실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초월하지 않는 분이기에 그렇습니다.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요14:13~14).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15:7).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11:24).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마16:19).

하나님은 ‘무엇이든지’ 이루시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주신다고 약속, 또 약속하셨습니다. ‘무엇이든지’의 뜻이 뭡니까? 모든 것이 다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건 되고, 저건 안 된다’가 아니라 뭐든 가능하다는 말씀입니다. 왜냐? 하나님은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하시는 전지전능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눅18:27).

그런데 왜 우리 삶에 ‘무엇이든지’ 이뤄지지 않을까요? 하나님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신 걸까요? 아닙니다. ‘믿음’이 없어서입니다. 성경은 다시 말씀하십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약1:6~7).

여기에 나오는 ‘무엇이든지’는 ‘어떤 것도’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어떤 것도 얻을 생각 말라’는 뜻입니다. 믿음이 있으면 ‘무엇이든지’ 가능하지만, 반대로 믿음이 없으면 ‘무엇이든지’ 불가능하다는 뜻입니다.

마리아와 마르다의 기업인 오라비 나사로가 죽었습니다. 예수님이 그곳에 당도했을 때는 나사로가 죽은 지 이미 나흘이나 된 상태였습니다. 예수님이 나사로가 잠든 무덤의 돌을 옮기라 하시니 마르다가 “주여 죽은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요11:39)라고 답합니다. “주님, 이건 불가능합니다.”라고 답한 겁니다. 그러자 주님이 뭐라고 하셨습니까?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요11:40). 살고 죽고, 되고 안 되고는 상황이나 환경, 문제의 대소(大小)가 아니라 ‘믿음’에 있다고 지적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 사전에 ‘불가능’이란 단어는 아예 존재하지 않습니다. 일을 불가능으로 만드는 건, 하나님을 무능력자로 만드는 건 우리의 ‘불신앙’이요, 우리 믿음이 없음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7장에 “너희에게 겨자씨 한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눅17:6)고 하셨습니다. ‘무한대(∞)×0=0’ 이지만, ‘무한대(∞)×1=무한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무한하신 능력은 우리 믿음이 곱해질 때 무한히 발휘된다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니고는 할 수 없는 것, 하나님이 아니고는 이룰 수 없는 것을 바라고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으려면 전적으로 믿어야죠. 맡기시려면 전적으로 다 맡겨야죠. 저도 저에게 무엇을 부탁할 때 100% 맡기지 않으면 절대 그 일에 관여를 안 하는데요.

히브리서 11장에 기록된 인물 앞에는 다 ‘믿음으로’라는 단서가 붙어 있습니다.

“믿음으로 에녹은…,”, “믿음으로 노아는….”

그중 가장 길게 언급된 아브라함을 살펴볼까요? 로마서 4장에는 아브라함이 무자(無子)한 자에서 민족의 아비가 된 기적이 믿음에 있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

(롬4:18~22).

아브라함과 같은 문제가 있습니까? 홍해 앞에서 선 모세의 심정입니까? 마르다와 마리아 같은 문제에 직면했습니까? 그 문제는 결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고,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분이기에 그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롬4:17).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만 있으면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얻게 하시고, ‘무엇이든지’ 찾을 때 찾게 하시고, ‘무엇이든지’ 두드리는 대로 열어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분이고,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들어보지 못하고, 생각지도 못한 놀라운 것을 예비하는 분입니다. 그분을 온전히, 100% 믿을 때 우리 삶에 기적은 옵니다. 죽은 것이 살아나고, 얽힌 문제들은 풀리고, 엄동설한 같았던 삶에 따뜻한 봄이 찾아옵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믿으세요. 환경이나 문제를 바라보지 말고 능히 이루실 주님만 바라보십시오. 베드로가 예수만 바라볼 때는 바다를 걸었지만, 풍랑을 바라보니 바로 파도에 휩쓸려 물에 빠지고 말았음을 기억하세요.

지금도 주님의 탄식 소리가 들립니다.

“믿음이 없는 세대여~”(막9:19).

그리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눅18:7~8). 할렐루야!

물속에서 물을 찾는

물고기가 되지 말라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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