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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같은 고난

1199호 · 2023-04-30
오늘의 메시지

진주 같은 고난

서양에서는 시집가는 딸에게 어머니가 진주(Frozen Tears: 얼어붙은 눈물)를 주는 풍습이 있답니다. 살다가 속상할 때 조개가 살 속에 모래알이 박힌 고통을 이겨내고 아름다운 진주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참고 견뎌내면 좋은 날이 올 것이라는 뜻입니다.

조개의 몸속에 들어온 모래알은 조갯살 속에 박혀 고통을 줍니다. 그때 조개는 ‘nacre(진주층)’이라는 즙을 짜내어 모래알 주변을 덮어 싸고, 또 덮어 쌉니다. 그것이 몇 년 흐르면 아름답고 값진 진주가 되는 것입니다.

시편에 다윗은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시119:71)고 했습니다.

왜 유익일까요? 다윗은 말합니다.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67절). 그는 거듭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71절)라고 고백합니다. 고난을 통하고 나니 여호와의 법도를 깨닫게 되고,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욥이 고난을 당한 뒤에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욥42:5)라고 고백한 것처럼.

살다 보면 우리 삶에 모래알처럼 아프고 힘든 일들이 찾아옵니다. 그럴 때

‘왜 이런 고통이 내게 찾아왔을까?’, ‘왜 나만 이런 고통을 받는가?’ 하지 말고 ‘내가 지금 값진 진주를 품고 있구나!’라고 생각합시다. 그러면 분명 지금 흘리는 고통의 눈물이 내일 아름다운 진주로 바뀔 것입니다.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5:3~4).

예수중심편집실

깊은 곳에서의 울림

숨겨진 재능을 찾아 계발합시다

“진실아, 과자 사줄게. 우리 슈퍼 가자~!”

엄마의 말에 신나게 따라나섰던 7살 어린이가 도착한 곳은 슈퍼마켓 옆 ‘000 피아노 학원’. 할머니가 사주신 피아노를 뚱땅거리며 눌러대던 딸에게 재능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고 등록시키신 어머니는, 몇 달 뒤 제가 그곳에서 천덕꾸러기가 될 줄은 상상도 못하셨다고 합니다.

원장님께서 긴 한숨을 쉬며 어머니와 대화를 나누던 장면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내용인즉슨, 타 학생들과 저를 비교했을 때 악보 읽는 속도가 너무 느리고 이론에 대한 이해력도 턱없이 부족하니 더 이상 가르치기 힘들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저에게 어머니는 과외 선생님을 붙여주셨지만, 수업 때마다 하기 싫다고 울고불고 난리를 피우는 통에 선생님 스스로 그만두시는 상황까지 벌어졌지요. 또다시 수소문 끝에 타 교회에서 반주하시는 선생님을 집으로 모셨고, 마침내 반주의 기초를 배우면서 평생 주님께 반주로 영광 돌리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됩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반주를 시작하면서 ‘믿음만 있다면 꿈은 이루어진다. 기도하여 하늘을 침노하라’는 총회장 목사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겼습니다. 중학교 3학년이 되던 해, 대예배 반주를 사모하여 기도하였더니 갑자기 반주자들이 타지로 가는 바람에 반주를 맡게 되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시드니에 유학하러 갔을 때도 반주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였더니 어학원에서 만난 친구를 통해 한인교회의 찬양팀에서 반주로 섬기는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회중과 바로 마주 보며 반주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사람을 의식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눈을 감고 반주하였더니 그때부터 악보가 저절로 외워지고 찬양에 온전히 집중하며 반주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이렇듯 부족하지만 평생 반주로 써달라는 애통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현재 남편과 함께 찬양으로 영광 돌릴 수 있게 하셨습니다. 할렐루야!

학원에서 포기하였던 제가 지금까지 반주한다는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 현실에 낙망하지 말고 포기하지 맙시다! 기도는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기도는 때가 되면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김진실 사모

소망의 언덕

삶의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

최근 들어 교단의 귀한 목사님, 장로님들께서 주님 품으로 돌아가시어 천국 환송예배를 여러 번 드렸다. 이전에는 그저 어린 마음에 이별의 슬픔이 컸다면 이제는 한 질문이 나의 생각을 사로잡는다.

“어떻게 하면 저렇게 아름답게 생을 마감할 수 있을까?”, “나의 마지막도 저분들과 같을 수 있을까?”, “나도 저분들처럼 끝까지 믿음의 경주를 완주할 수 있을까?”

그분들은 바쁜 일정 속에서도 무엇보다 예수 안에 거하는 것을 우선하셨던 분들이었다.

이 세대는 1년 365일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사회 속에서 살고 있다. 과도한 스케줄과 과중한 업무로 잠시 궁둥이 붙일 틈도 없이 발에 불이 나도록 뛰어다닌다. 하지만 삶의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방향이다. 전 세계 15~88세의 크리스천을 조사한 결과 10명 중 4명이 ‘자주’ 혹은 ‘항상’ 바쁘다고 했다. 그리고 10명 중 6명이 ‘자주’ 혹은 ‘항상’ 바빠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어렵다고 했다.

너무 바쁘면 하나님, 삶의 의미, 삶 자체를 놓치기 쉽다. 너무 바쁘면 귀가 닫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다. 자신의 소명을 발견하려면 하나님과 같은 주파수를 유지해야 하는데 일과 학업에 파묻혀 살면 삶의 방향을 잃어버리게 된다. 심지어 하나님의 일을 할 때도 너무 바쁘면 심신이 지쳐 진정한 소명을 놓칠 수 있다.

총회장 목사님은 말씀하셨다.

“천만금을 준다 해도 기도 시간과 맞바꾸지 말라.”

목회의 바쁨 때문에 무엇보다 중요한 주님과의 교제를 잃어버리지 말라는 말씀이다. 아무리 바쁘게 세상이 돌아가도 ‘예수 안에서’를 붙잡아야 한다, 바쁨 때문에 ‘예수 안에서’를 잃어버리면 안 된다는 말씀이다.

그분들은 각기 모두 다른 장소에서 다른 섬김을 하고 계셨지만 공통점이 있다면, ‘예수 안에서’ 충성되게 사명을 감당함으로 후회 없는 삶을 사신 분들이었다. 삶의 마지막까지도 교회의 남겨진 자들에게 귀한 교훈을 주고 가신 분들이었다. 세상에서 말하는 성공 공식과는 너무나도 다른 기준, ‘예수 안에서….’

이현승 목사

글꾼의 주님

일편단심 민들레

노란 꽃이 핀 민들레를 뿌리째 캐서 베란다에서 말리면서 뒤집고 뒤집었다. 일주일이 지난 어느 날 잎은 시들 대로 시들었는데 꽃대는 하늘로 치솟고 있었다. 분명 노란 꽃이었는데 하얀 꽃씨를 날려 보내려고 하얀 꽃망울을 아름답게 피우고 있었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다. 잎은 시들고 죽어 가는데 꽃씨를 날려 보내려고 최후의 모습을 아름답게 드러내는 민들레, 누가 말했던가? 일편단심 민들레라고? 민들레는 죽어가면서도 자기의 몫을 다하고 있었다.

민들레의 마지막 작품이 꽃씨를 맺는 것이 본성이라면 사람의 본성은 무엇일까? 선조들이 세상을 살다가 육신은 한 줌의 흙이 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짐을 보았다. 지금은 내가 살아있어 나의 존재를 사람들이 볼 수 있지만 언젠가 나도 한 줌의 흙을 남기고 세상에서 사라진다. 세월이 흐르고 먼 훗날이 되면 나의 존재를 기억해줄 사람조차 없을 때가 분명 올 것이다. 내가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민들레가 말라 죽어가면서 남아있는 진액을 꽃대에 보내어 꽃씨를 맺어 바람에 날려 보내는 것이라면 나의 육신도 내 영혼을 위하여 희생을 다하면 민들레처럼 하늘나라에서 부활의 열매로 나타날 것이다. 이것이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의 계획이었고 창조주의 영광이 되는 것이다.

누가 죽어가면서 자기의 몫을 다하고 죽었는가?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다. 그는 우리를 위하여 죽으러 오셨다. 그가 죽지 아니하면 인류의 죄를 대속하지 못하고 그가 죽어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지 않으면 아무도 신령한 새 몸으로 부활할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는 죽기까지 하여 인류를 구원하신 구원자이시다. 그는 십자가 위에서 물 한 방울, 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우리를 위하여 다 쏟아주시고 죽으셨다. 자신의 생명으로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시고 부활의 영광과 그에게 붙은 열매를 위하여 죽으셨다. 민들레가 죽어가면서 민들레의 본성을 보게 하심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으로 부활의 영광을 우리에게 보여주심이다. 우리도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야 함(고전15:44)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부활하사 영생을 보여주심이다.

이승효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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