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착된 사고에서 벗어나라
필리핀 세부집회 광경(세부 스포츠센터)
정확히 4년 만의 방문이다. 지난 2019년 3월 세부집회를 마지막으로 코로나로 인해 우리 세계선교의 문은 닫혀있었다. 그러다 올해 다시 세계선교의 여정을 세부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필리핀(Philippines) 세부(Cebu)는 수도 마닐라(Manila)와 완전히 언어가 다르다. 일본에서 목회하던 유상진 목사가 19년 전에 이곳에 들어와 오로지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눈물로 복음의 씨앗을 뿌려왔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말도 통하지 않고, 이국땅에서 이방인으로서의 생활이 두렵지 않으셨냐고 물었더니 그때는 그런 생각조차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말할 상대도 없고 많이 외로웠다고 한다. 가족예배를 드리지 못했단다. 둘러앉아 예배를 드리려고 하면 눈물이 쏟아져 제대로 끝을 맺지 못했다는 것이다.
벌써 이곳도 네 번째 방문인데 그동안 유 목사가 목회하는 빈민촌도 들어가 보았다. 사람과 가축이 한데 어우러져 너무도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살고 있었다. 그런 동네에 복음의 씨를 뿌리며 교회를 두 개 짓고, 현재 세부예수중심교회는 성도 300명의 교회로 성장했다.
공항에서 만난 유 목사는 바짝 말라 있었다. 그 모습이 오늘의 결과를 말해주는 것 같았다. 이튿날 집회장소로 찾아가 기도하였다. 목사님은 벽에 고정으로 설치된 농구 골대 때문에 단상 설치에 애로가 있다는 말을 들으시자마자 이렇게 말씀하셨다. “고정관념을 깨야지. 단상을 꼭 똑바로 설치해야 한다는 법이 어디 있나. 골대를 피해서 대각으로 설치하면 될 것 아닌가. 생각을 바꿔야 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세부어 통역을 하던 자매에게도
‘여자라는 생각에 스스로 한계를 긋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이번 집회에는 한국에서 조의수 장로가 동행하였고, 이번에 피택장로 대표로 임명장을 받은 강요셉 장로는 사전에 입국하여 집회준비에 올인하고 있었다. 강장로는 한국에서 하는 사업의 여러 지부를 필리핀에 두고 있어서 자주 이곳에 온다고 했다. 그런데 이번 집회가 열리는 곳이 무슬림들이 사는 빈민지역이라 치안에 매우 취약하다는 소식을 듣고, 군, 경, 검 합동경호대를 조직하여 목사님 차량이 이동할 때마다 무장경호를 하도록 준비하고 있었다. 또한 한국에서 보낸 선교헌금으로 5kg짜리 쌀 4천 포가 준비되어 집회장소에 옮겨졌고, 염상섭 장로가 보낸 볼펜 4천 개는 우리가 직접 화물로 가져가서 전달하였다.
집회 첫날, 분위기는 정말 어수선하기 그지없었다. 마치 시골 초등학교 학생들이 가득 모인 강당 같았다. 덥기도 하지만 쉬지 않고 부채질에, 시끌시끌. 첫날인지라 음향조정도 제대로 되지 않아 소리도 서로 잘 들리지 않으니 메시지 전달에도 애로가 많았다. 목사님은 찜통 같은 무더위와 통제되지 않는 회중과 거기에 잘 들리지 않는 음향에, 영어, 세부어로 이어지는 통역 등, 삼중, 사중고와 싸우셔야 했다. 부채질하지 말고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라 아무리 외쳐도 소용이 없었다.
그러나 목사님은 그야말로 백전노장의 노하우를 갖고 계신 분이다. 반응이 없는 회중, 맨땅에 헤딩하며 얼음을 깨야 하는 집회가 어디 한두 번인가. 목사님은 회중 속으로 들어가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를 시키고, 병든 자들을 단으로 끌어올려 안수하기 시작하셨다. 그런데 한 여인이 울고 있었다. 1년 동안 앞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목사님의 안수를 받고 그녀의 눈이 열렸다. 장내는 환호성이 터졌고, 남편은 눈물을 흘리며 아내를 껴안더니 목사님께 부부가 함께 안겨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 소경이 눈을 뜬 것이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그 부부가 유상진 목사가 아직 교회를 짓기 전 첫 예배처소를 제공한 가정이었다는 사실이다. 정말 하나님 앞에 절대 공짜는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절감했다. 그 척박한 환경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준비하고 계셨던 것이다
(다음 주에 계속).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냈다
군경 합동경호대와 함께
소경이 눈을 뜨고 눈물로 기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