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할게!
내가 할게!
어느 마을에 ‘모두’, ‘누군가’, ‘아무나’, 그리고 ‘아무도’라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그 마을에 중요한 일이 생겼다. ‘모두’는 ‘누군가’가 틀림없이 그 일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무도’ 그 일을 하지 않아 마을 전체가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를 보고 ‘누군가’가 매우 화를 내었다. 왜냐하면 그 일은 ‘모두’가 해야 할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모두’는 ‘누군가’가 그걸 하겠거니 생각했다고 고백했다. 결국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을 ‘아무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모두’가 ‘누군가’를 책망하고 있었다.
총회장 목사님은 매주 예배시간 전에 주의 종들과 직원들에게 메시지를 보내신다.
“누군가 할 것이다 착각 말고 네가 점검하라, 설마가 사람 잡는다.”
맞다. ‘누군가 하겠지.’ 하면 그 ‘누군가’는 또 다른 ‘누군가’가 되고, 결국은 ‘아무도’로 연결되어 일이 안 되고, 그르치게 한다.
사람을 응급조치할 때 주의사항이 있다. 가장 먼저 사고를 당한 사람을 발견한 사람이 심폐소생술을 시행하게 되는데, 이때 주변 사람에게 ‘빨리 119에 전화해주세요.’ 하면 안 된단다. 딱 지목해서 ‘거기 핑크 색깔 옷 입으신 분이요, 지금 119에 전화 좀 해주세요.’라고 말하란다. 왜냐? ‘누군가가 하겠지.’, ‘다른 사람이 했을 거야.’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도 안 했다고 투덜대지 말고, 누군가 안 했다고 탓하지 말고, 네가 직접 해라. 네가 직접 검점하라. 설마는 꼭 사람을 잡으니까.
이초석 목사 저서 ‘사랑이 무르익어야
결혼에 골인한다’ 중에서
ccbgrace@naver.com
주가 일하시네
요즘 우리 교회는 전도의 열기가 뜨겁다. 이제 코로나가 종식되었고, 총회장목사님께서도 4부 은사집회를 온 힘 다해 인도해주시기 때문이다. 
얼마 전 청·장년부 예배의 총동원이 선포되었다. 목표 인원이 있었고, 성전을 채워야 했다. 어떤 영혼들에게 연락을 해볼까 생각하며 명단을 적어 내려가는데 걱정도 되고 압박도 느껴졌다. 누가 주는 압박도 아닌데 스스로가 힘겨운 느낌이 들었다. 안 되겠다 싶어 기도하며 하나님께 매달리는데 하나님께서 마음에 강한 메시지를 주셨다. 내가 일한다고. 마음에 평안이 임했고 내 임무(?)는 ‘가까운 이들에게 연락해서 교회에 나오라고 전하는 것’이라는 마음이 들었다. 평소 연락을 하지 않았던 터라 부담은 되었지만 커피를 한 잔 원샷하고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모두들 내 연락을 좋아해주었고 통화를 하고 싶어 하는 친구들도 많았다. 전화를 하면 부담스러워할 것 같아서 메시지를 보낸 것인데 통화하길 원했고 어떻게 지내는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했다. 마음을 내어주고 어려움도 이야기해서 같이 기도 제목을 나누고 중보기도도 하게 되었다. 전화를 끊고 감사의 마음이 넘쳐났다. 그래서 더욱 용기를 얻고 현재 우리 교회에 다니지만 소속이 되어있지 않은 친구들과 교회에 다니지 않는 친구들에게 연락을 하기 시작했다. 
연락을 하는데 예전 생각이 났다. 20대 나의 뜨겁던 시절, 정말 열심히 전도했었다. 같이 학교에 다녔던 친한 친구들을 우리 교회에 데리고 왔었고, 졸업 후 함께 일했던 동료들도 대부분 우리 교회에 와서 함께 예배를 드렸다. 모두 교회에 다니지 않았었는데 지금은 각자 사는 곳에서 교회를 다니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그때는 전도의 열정과 뜨거움이 있었는데…. 그 시절을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고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전도를 열심히 해야겠다 생각했다. 
그렇게 기도하며 지내는데 팀원들에게도 연락이 왔다. 목표 인원이 몇 명이냐고 작정기도 하겠다는 팀원도 있었고, 함께 합동작전을 하여 남편을 이끌어내보자는 팀원도 있었고, 총동원 예배 때 남편이 일을 해서 아직 아기를 데리고 혼자 올 수 없는데 택시를 타고 오겠다고 하는 팀원도 있었다. 마음이 느껴지고 너무 고마워서 눈물이 났다. 날은 다가오고 마음에 부담은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기도를 했고 하나님께서는 계속 일하고 계셨다.
총동원 예배가 있기 며칠 전쯤 유초등부 전도사님께 전화가 왔다. 심방을 다녀오셨는데 청·장년부 예배에 가기로 한 영혼이 있으니 잘 챙겨주라는 내용의 통화였다. 그래서 나와도 통화를 했고 오기로 하였다고 함께 기뻐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하던 도중 전도사님께서 그 주에 심방 다녀오신 가정들이 있는데 심방 가실 때마다 다들 내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다. 너무나 신기하고 온몸에 전율이 느껴졌다. 내가 연락했던 가정들에 심방을 다녀오시다니. 전도사님께서 역시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셨다고 말씀하시는데 감사의 기도가 절로 나왔다.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미리 가셔서 일하고 계셨다. 예배에 오라는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전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예배에 오지 않았을 수 있다. 전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도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기도하고 하나님께 맡긴 후 나는 전하기만 하면 된다. 교회에 한 번 가보자고 말하기만 하면 된다. 2023년 이제 주의 일에 더욱 열심을 다해야겠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전도에 더욱 힘써보아야겠다!
정효경 집사
happy_holly@naver.com
사람을 살리는 말
교회 근처 좁은 골목에서 젊은 여자가 홀로 발을 구르며 울고 있었습니다. 인기척을 느꼈는지 제가 지나가자 몸을 벽 쪽으로 돌리며 눈물을 닦았습니다. 교회에서 봉사하는 모습을 자주 봤던 터라 얼굴은 본 적 있는 교회 자매였습니다. 무슨 억울한 일이 있길래 저렇게 발을 동동 구르며 울고 있을까 안쓰러웠습니다. 낯선 사람이 위로한다고 다가갔다가 괜히 더 상처가 되지는 않을지 걱정되어 마음속으로만 기도하며 지나쳤습니다.
며칠 뒤 그 자매에 대한 소문을 우연히 듣게 되었습니다. 그 소문은 예수 믿기 전 그의 과거에 대한 험담이었습니다. 그 자매는 자신의 과거를 뒤돌아보며 나를 구원하신 예수님의 은혜를 나누는 과정에서 약점이 될 수도 있는 과거를 이야기했거나 예수님과 같은 마음으로 있는 모습 그대로 자신을 받아줄 것이라 생각한 누군가에게 과거를 털어놓았을지 모릅니다. 그 자매의 과거를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지만, 그것을 누군가 험담하며 퍼뜨렸던 모양입니다. 그때 자매가 발을 동동 구르며 울던 모습과 교회에서 충성하며 봉사하던 모습이 동시에 떠오르면서 그 험담이 몹시 불편하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사실인지도 모르고 과장되었을지도 모를 그 소문에 동조하지 않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는 자매의 현재 모습을 칭찬하며, 마음속으로 하나님께서 신원해주시길 기도했습니다.
얼마 후, 목사님께서 많은 사람 앞에서 그 자매를 칭찬하는 일이 있었는데, 그 자매와 친분이 없는 사이인데도 목사님의 칭찬이 얼마나 반가운지 고개를 끄덕이며 강하게 동의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목사님의 칭찬의 말을 통해 축 처져 있던 그 자매를 일으켜 세워주신 것입니다.
제가 겪었던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저와 지인 A가 대화를 나누던 중이었습니다. A가 이전에 B에게 입었던 은혜를 회상하며 늘 고마운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는 말을 했습니다. 저는 그 말을 기억해 두었다가 B와 마주쳤을 때, A가 했던 진실한 말을 그대로 전하며 B를 칭찬했습니다. 그때 B는 A에 대해 작은 오해가 있어 서운한 마음이 있었는데, 제가 전달한 그 말에 바로 오해를 풀고, A와 B는 이전보다 관계가 더욱 좋아졌습니다. 이후 A는 B와 관계가 회복되어 그 말을 전한 저에게 고마워했고, B는 A의 말에 동조하며 자신을 칭찬한 저를 특별하게 대했습니다.
크리스천은 다른 사람을 향해 늘 축복의 말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을 축복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고, 하나님의 사람을 저주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저주하십니다(창12:3).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평안하기를 빌라고 가르치시고, 그 집이 평안의 축복을 받기에 합당하면 너희가 빈 평안이 그 집에 임할 것이고, 만일 합당하지 않으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로 돌아올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10:12~13). 심지어 하나님은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롬12:14).
험담하는 사람은 자신도 죽이고, 동조하여 퍼뜨리는 사람도 죽이고, 험담의 대상이 된 사람까지 죽이지만, 다른 사람을 향해 축복의 말, 선한 말, 좋은 말, 칭찬의 말을 하는 사람은 자신도 살리고, 동조하여 전하는 사람도 살리고, 대상이 된 사람도 살립니다.
아무리 부족하고 흠 많아 보이는 사람일지라도 예수님께서 생명을 내어주시기까지 사랑하신 귀한 영혼임을 잊지 말고, 축복의 말, 선한 말, 좋은 말, 살리는 말로 우리 말을 늘 듣고 계신 하나님과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엡4:29).
정명관
v-777@naver.com
세상에 주어진 원칙
하나님이 세상에 주신 원칙 중 하나가 수고하고 애써서 노력하면 언젠간 열매를 거두는 것이라 생각한다. 봄에 씨앗을 뿌리고 밭을 갈고 물을 주면 가을에 열매를 거두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열심히 공부하면 언젠간 성적도 오르고, 운동하면 건강해지고, 꾸준히 기도 많이 할수록 성령 충만해지는 것이겠다.
이 원칙만 있다면 헷갈리지 않고 열심히 애쓰고 노력하며 살 텐데, 문제는 큰 노력 없이 뭔가를 거두게 될 때 생긴다. 하나님이 주신 축복일 수도 있고, 악한 것들이 준 미끼일 수도 있다. 어찌 됐든 노력 없이 뭔가를 얻기 시작할 때, 우리 마음은 흔들리고 그것들을 다시 기다린다. ‘이 정도면 되겠지? 예전에도 이렇게 해서 잘 됐으니 말이야.’ 등등 스스로 노력의 한계를 그으며 다시 기적을 기다린다.
기적을 기다리는 것이 잘못됐다는 말이 아니다. 그건 그거고 나는 내가 할 일을 계속해야 한다는 것이다. 뚫으면 반드시 뚫린다는 처절한 마음으로 끝까지 애써야 한다. 총회장 목사님을 지금의 자리에 서게 한 것이 기도와 노력 두 가지라고 말씀하신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믿지 않는 사람들도 미치도록 공부하고 열정을 가지고 전투에 임하는데, 믿는 사람들이 적당히 준비하고 싸워서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 하루에 5시간 공부하는 기도하는 사람이, 기도 안 하고 10시간 공부하는 사람을 성적으로는 이기지 못하게 만드신 게 세상에 정한 하나님의 노력의 법칙이 아닐까 싶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사람이 할 일은 사람이 하는 것. 최선을 다해 우리가 할 일을 하며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자. 그러할 때, 생각지 못한 기적과 같은 플러스 축복을 기도하는 우리에게 더불어 주실 것이다.
장명훈 집사
jjoshua@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