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자(使命者)인가, 사명자(私名者)인가?
사명자(使命者)인가, 사명자(私名者)인가?
“험한 산도 나는 괜찮소/ 바다 끝이라도 나는 괜찮소/ 죽어가는 저들을 위해 나를 버리길 바라오….”
찬양 ‘사명’의 가사 일부다. 사실 이 노래 가사에서 ‘사명’이라는 단어는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사명이란 과연 무엇인지,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임하는 것이 사명자의 태도인지 가사에서 확실하게 이야기해주고 있다. 총회장 목사님도 사명(使命)의 한자 뜻을 풀어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명이란 나를 부리시는 이의 뜻을 이루기 위해 자기 목숨을 아끼지 않는 것이다.”
사명이 그 이름에 걸맞게 이루어지려면 먼저 내 삶의 주인이 하나님이라는 자각이 있어야 한다.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자신의 주(主)로 여기지 않았다면 100세 되어 낳은 이삭을 순순히 번제로 바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모세가 여호와를 경외하지 않고서야 어찌 이스라엘의 수백만 명을 이끌고 애굽 군대와 바로 왕을 대적하면서까지 출애굽을 할 생각을 할까. 내 삶의 주인 되신 하나님이 가라니까 험한 산도 괜찮고 바다 끝도 괜찮은 것이다.
누군가 사명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예수님께서 당신에게 돌보라고 명령한 사람들, 그 사람들에게서 사명은 찾아진다. 내가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일이 사명이 아니라 섬겨야 할 사람들이 사명이다.” 사명자는 곧 부르심 내지는 보내심을 받은 자를 말한다. 나를 부르시고 보내시는 분은 물론 하나님이시다. 그렇다면 누구를 섬기라고 어디로 보내심을 받았느냐, 바로 그것이 나의 사명이라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그것이 이방인들이었고, 총회장 목사님은 전 세계에 영적인 지식이 없어 병들고 가난하고 상처 입고 유리방황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었다.
어떤 기독교 다큐멘터리 영상에서 시골에서 어렵게 목회를 이어가시는 목사님들께 왜 이곳에서 사역하시냐는 기자의 물음에 그분들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여기에 사람이 있으니까요.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한 영혼이 아직 이곳에 있습니다.”
나를 부르신 분을 위해, 그리고 그분의 뜻을 따라 섬겨야 할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버릴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사명자(使命者)다. 스스로에게 질문해보라. 나는 과연 사명자인가, 아니면 자기만족과 명예를 위해 적당히 봉사하는 사명자(私名 者)인가.
신혁주 전도사
위로하시는 하나님
2022년을 잘 마무리하고, 2023년을 주님께 먼저 시간을 드리고 시작하고 싶었다. 새벽을 맞이하며 기도하는 시간은 생각보다 더 특별했다.
그렇게 새벽 시간을 바쁘게 보내던 중에 낯선 이에게 문자가 왔다. 성의 가득 담긴 편지를 써서 보내온 문자였다. 받아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닌 열정을 다해 삶을 살아가는 젊은 청년이었다.
그 청년은 아마도 중요한 시험 결과에 힘들어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래서 그 청년에게 인생을 살다 보니 노력을 했음에도 내 생각과 다르게 결과가 나올 때도 있다며 본인의 삶을 고백하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본인도 최근에 힘들어서 성경 속 욥을 보며 편안함을 얻게 되었다며 다시 한번 힘을 내어보자는 위로의 말이었다. 그 글에는 또한 나이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고 아는 척했을 수도 있으니 이해해달라는 미안함도 전하셨다. 교회의 어르신이 평소 알고 지내는 청년에게 보내는 마음의 편지였다. 혹여나 상처를 더 건드릴까 싶어 조심스럽고도 따뜻함이 느껴졌다.
번호를 잘못 누르셔서 나에게 온 이 문자는 추운 겨울 새벽에 깨어있는 나에게 위로가 되고, 마음까지 뜨거워지게 했다. 마치 하나님이 천사를 통하여 보내주신 듯 느껴졌다. 몰래 읽어본 듯한 죄송한 마음이 들어서 그분에게 상황을 알려드리며, 그리고 감사하다고 전해드렸다. 그분 또한 놀라워하시며 고마워하셨다.
체력적으로 새벽기도에 적응하느라 쉽지 않았다. 그런데 이토록 따뜻하고, 부드러운 손길에 힘이 나고, 새삼 정신이 다시 차려졌다.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모르는 이를 통하여서도 위로하시는 하나님은 참으로 섬세하시다.
이인영 집사
주님을 향한 작은 노력
요즘 인기 있는 예능들을 보면 공통점이 있는데, 바로 ‘관계’에 관련된 것이라는 건데요. 연인, 부부, 가족 관계에 대해 상담을 하고 함께 해결하는 프로그램이 참 많이 생겼습니다. 그런 상담 프로그램에는 문제가 있는 관계를 개선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주로 나옵니다. 사랑은 하는데, 상대방과 잘 맞지 않는 것이 주 문제이죠. 그러면 거기 나오는 전문 상담사들은 꼭 이런 말을 합니다. ‘사랑하는 것만으로는 안됩니다. 서로 ‘노력’해야 합니다.’
이렇듯 우리가 형성하고 있는 모든 관계를 잘 이어가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선 사소한 행동 변화도 필요합니다.
예전에 한 친구가 예배 때 은혜를 잘 받지 못한다고 저에게 상담했습니다. 설교를 듣다가도 자꾸 잡생각에 빠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친구에게 예배 중 설교 말씀을 메모해보라고 권면했습니다. 친구는 제 말을 듣고는 노트와 펜을 가지고 와서 적으며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 후 하는 말이, 처음에는 공책을 가져오는 게 너무 귀찮았는데 막상 말씀을 적으니 훨씬 집중이 잘되고 더 잘 깨달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비슷하게 저는 최근 회사일이 너무 바빠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는 시간이 준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저는 원래 출근시간에 밀린 예능을 보면서 가는 것을 좋아하는데 최근에는 찬양을 의식적으로 찾아 들었습니다. 바쁜 시간 가운데 하나님과의 시그널을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한 것입니다.
삶에서 하나님과 시그널이 잘 맞지 않는데, 예배드리는 나의 모습이 예전 같지 않은데 그 모습을 방관하며 하나님만 나에게 다가와주길 기다리면 안 됩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에서 노력이 필요합니다. 혹시 이것들이 어렵다고 느껴진다면 사소한 행동 변화를 해봅시다. 헌금을 미리 준비한다거나, 찬양을 일부러 더 많이 듣는다거나, 점심시간에 감사 일기를 쓴다거나, 예배 시간에 메모를 하는 그런 것들 말입니다.
매일 쏟아지는 은혜를, 하나님의 사랑의 시그널을 그냥 지나치지 맙시다. 변해가는 나의 모습을 그냥 못 본 척 지나치지 맙시다. 그것들은 붙잡고 주님을 더 사랑할 수 있게, 하나님과 더 시그널이 잘 맞을 수 있게 주님을 향한 작은 노력을 실천해봅시다.
장수정
새해엔 달에 깃발을 꽂아봅시다
무언가를 도전할 때마다 마음이 부대낍니다. 자신 없고 두려워서 시작이 쉽지 않아요. 그런 저와는 정반대인 친구가 있는데요, 그녀는 새로운 시도를 하는데 거리낌이 없습니다.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바로 실행하지요. 전공도 네 가지를 공부했어요. 경영학을 공부했고, 졸업 후에 세무학을 공부했고, 또 영어교육학을 공부했고, 또 졸업 후에 대학원을 다녔죠. 그 사이사이 방송국 PD 시험을 쳤고, 세무사 시험을 준비했고,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쳤고, 여러 사기업과 공기업에서 일했고요. 지금은 고등학교 영어 선생님입니다. 안 해본 운동도 없는데요. 탁구, 요가, 폴댄스, 주짓수, 헬스, 수영, 사이클링, 발레, 축구를 했고, 새해에는 야구를 배우겠다고 합니다. 저는 그 친구가 ‘도전’이라는 단어와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항상 생각해왔어요.
오래전 어느 날, 서로의 근황을 얘기하다 그녀가 폴댄스를 배우고 있다기에 놀라 물은 적이 있습니다. 어쩜 그렇게 도전을 쉽게 쉽게 할 수 있냐고요. 그랬더니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폴댄스? 그건 도전이 아닌데? 그냥 취미인데?”라고요. 오히려 친구 눈에는 제가 도전적인 사람으로 보인다더라고요. 그 말에 무척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할 줄 아는 게 딱 하나뿐이었거든요. 본업인 광고 만드는 일, 그거 하나요. 그런데 친구에게는 한 가지 일을 꾸준히 하는 게 오랫동안 도전으로 느껴졌대요.
저는 고등학생 때부터 광고 만드는 일을 꿈꾸며 교내 광고동아리를 만들었고, 아트디렉터가 되려고 시각디자인을 전공했고, 광고 공모전에 열 번 내리 떨어져도 열한 번째 응모했습니다. 광고회사에서 인턴으로 일했고, 공채 최종 면접에서 떨어진 다음 달에도 인턴십을 지원했고, 광고를 더 오래 할 생각으로 카피라이터가 되었습니다. 줄곧 한 우물만 팠지요. 하지만 이것을 도전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라 잇몸이 상할 정도로 괴로운 날도, 스트레스로 위가 조여오는 날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좋아서 꼭 하고 싶은 일이었기에 도전이라기보다는 그냥 일상이었어요. 매일 밥 먹는 것과 같은 아주 당연한 일상이요.
각자의 불가능은 이토록 달라서 누군가에겐 취미인 일이 나에겐 불가능한 일이 되고, 반대로 나에겐 일상인 일이 누군가에겐 불가능한 일이 되곤 합니다. 친구에게는 한 가지 일을 꾸준히 하는 게 도전이었고, 그 도전은 제가 폴댄스를 추는 것만큼이나 어렵고 불가능한 일이었던 거죠. 도전이 쉬운 사람은 없다는 걸 그때 깨달았어요.
장롱 면허를 꺼내 운전하기, 5킬로그램 감량하기, 퇴사 욕구를 누르고 1년 동안 회사를 다니기, 한 달에 한 권씩 책 읽기, 무엇이든 각자의 불가능한 도전은 위대합니다. 자신만의 익숙한 세계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일이니까요. 닐 암스트롱이 지구 밖을 벗어나 달에 깃발을 꽂은 것과 결코 다르지 않습니다. 견고한 여리고성을 무너뜨리는 대단한 일이죠.
여러분의 불가능은 무엇인가요. 하고는 싶지만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은 일은 무엇인가요. 계속 미루기만 하고 좀처럼 실행되지 않은 일은 무엇인가요. 꼭 이루고 싶은 버킷리스트는 무엇인가요. 그것을 새해에는 꼭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한정된 의지력과 정신력, 에너지, 돈을 여기저기 소분하지 않고, 그 한 가지만을 위해 써보는 건 어떨까요. 우리는 지금, 달에 깃발을 꽂는 위대한 일을 시작하는 거니까요.
신은혜
dopal0203@naver.com
꾸준하게 달려봅시다!
일전에 아들과 사우나를 갔다가 경험한 일이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니 이제 사우나에 가면 넘어질까, 혹 다칠까 염려하지 않아도 되어서 좋다. 탕 속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생각을 정리할 수 있어서 좋다. 한참을 혼자 놀다 온 아들과 함께 몸을 누이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때였다.
어르신 한 분이 욕탕에 들어오셨는데 이게 웬일인가? 어르신의 근육질 몸매가 어지간한 영화배우들보다 멋있다. 더욱 놀라운 건 이미 머리카락은 하얗게 세서 누가 봐도 얼굴은 노인인데 안광이 푸르고 건강미가 넘치는 미소까지 띠고 있었다. 단연 돋보이는 존재는 그 어르신이었다.
그분에게 배울 것이 있음을 직감한 저는 아들을 데리고 조심히 자리를 옮겨 그분 옆에 앉아 인사를 드렸다.
“안녕하세요, 어르신. 사우나 오셨어요?”
“네. 안녕하세요. 무슨 일이세요?”
“너무 멋지셔서요! 어떻게 관리하시길래 이렇게 몸이 건강하세요? 실례지만 연세도 좀 있어 보이시는데요.”
“허허허…. 이제 칠십 좀 넘었습니다. 특별한 건 없습니다.”
“그럴 리가요. 특별하지 않으시곤 이렇게 30대 청년만큼이나 멋지실 수가 없을 것 같아요”
“헬스장 들러서 운동하고 사우나 하는 것 외에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언제부터 그렇게 하셨어요?”
“젊을 때부터 그렇게 했지요. 인생을 살아보니 꾸준히 했던 것들은 결과를 내더라고요.”
“네! 어르신 정말 감사합니다. 아들과 같이 왔는데 아들에게 좋은 교훈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꾸준히 했던 것들이 결과를 내더라고요.’라는 말이 계속 마음에 남았다.
새해가 되면 모든 사람들이 기대와 소망 가운데 한해의 목표와 계획을 세우곤 한다. 그러한 목표설정과 계획 역시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들을 꾸준하게 행하는 것이다.
총회장 목사님은 지난 38년 동안 꾸준하게 기도의 목회를 해오셨다. 목회를 처음 시작하셨을 때나 교회가 깨졌을 때나 성령의 역사 가운데 폭발적인 부흥이 일어날 때나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서 고독하실 때나 많은 사람들에게 존망의 대상이 되었을 때나, 지금까지 한결같이 기도를 해오셨다. 심지어 ‘하루에 최소 4시간 기도하고, 집회를 앞두고는 하루 7시간 기도한다.’라고 까지 말씀하시면서 당신의 초지일관된 기도생활을 말씀하신다. 그 꾸준한 기도가 오늘날 목사님을 세계적인 영적 거장으로 만들었으며, 지금도 40대의 기력으로 청년보다 더 청년 같은 모습으로 빚어주었다.
이시대 목사님은 JCA(아카데미)를 통해 무려 10여 년 만에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 전체를 완강하셨다.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강남고속터미널 시절 조장·구역장 교육 때부터 계산하자면 성경 전체를 세 차례에 걸쳐 20년이 넘는 세월을 성경을 연구하시고 가르쳐오셨다. 그렇게 꾸준하게 성경을 연구하고 가르치시니 늘 새롭게 솟구쳐 오르는 마르지 않는 샘처럼 영혼의 갈증을 해갈시켜 주는 명설교를 하시는 것은 당연할 수밖에 없다.
꾸준하게 하지 않으면 결실이 없다는 것은 비단 목회와 관련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그것은 개인의 소망과 목표, 한발 더 나아가 한 국가의 정책사항까지 적용된다. 당장 지난 월드컵만 보더라도 여론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꾸준하게 ‘빌드업’ 축구를 추구했더니 결국 원정 16강이라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을 온 국민이 감격 가운데 목도하지 않았는가!
꾸준한 기도, 꾸준한 연구, 꾸준한 독서, 꾸준한 복습, 꾸준한 QT, 꾸준한 저축, 꾸준하게 하는 모든 것이 결국 결과를 낸다.
새해 어떤 계획을 세우셨나요?
여러 가지 계획을 세우는 것보다 가치 있는 몇 가지, 아니 한 가지만이라도 붙잡고 꾸준하게 해서 열매를 맺어 보는 것은 어떨까요! 당장 내년이 아닐지라도 꾸준하게 하는 것은 때가 되면 분명 우리 삶에 실망시키지 않는 결과를 가지고 큰 선물로 우리에게 찾아오리라 믿습니다.
이현승 목사
답이 여기 있었네!
우리는 인생을 살며 여러 가지 문제에 맞닥뜨린다. 때론 사업이 어렵고, 때론 몸이 불편하고, 때론 사람과의 관계가 소원해지는 등, 영육 간에 많은 문제를 겪곤 한다. 그리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문제의 원인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답을 찾으려 애쓴다. br>
그런데 나름의 답을 찾아 그것을 해결해 나가려고 하지만 하나가 해결돼도 또 다른 문제가 지속적으로 다시 생기기도 한다. 그런 경우라면 아마도 그것은 그 해결책이 근본적인 답이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선행되어야 할 중요한 것은 영적으로 바로 서는 것이다.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원하노라”는 요한3서의 말씀과 같이 먼저 중요한 것이 영적인 바로 섬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만큼 어려운 것 또한 이것인지라 이걸 방치하고 차선책을 찾다 보니 점점 문제의 해결이 요원해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br>
얼마 전 삶의 많은 문제가 해결된 한 사람을 보았는데, 그는 예배의 회복을 통해 문제가 해결된 경우였다. 온전한 예배를 통해 영적으로 바로 서니 육적이고 혼적인 문제들이 바로 잡힌 것이었다. br>
혹시 사업이 어려운가? 걱정, 고민이 많은가? 육체적인 아픔이 있는가? 가족 간에 문제가 있는가? 감사가 어려운가? 물질로 고통받고 있는가?br>
세상적인 해결책을 찾기 전에 영적으로 바로 서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먼저 바로잡자.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들이 없는지 늘 점검하자. 하나님의 뜻이나 말씀을 거역하고 있지는 않은지 나를 돌아보자. 이런 문제들이 영적인 일과 인과 관계가 없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너무 큰 인과 관계가 있으나 우리 눈이 가리워 잘 알아차리지 못할 뿐. br>
모든 문제의 가장 빠른 해결책은 바로 성령 충만함에 있다. br>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엡5:18).
장명훈 집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