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신년사
2023, 새해를 맞아 예수중심교단 목회자들의 신년사를 듣는다
사단이 감당 못할 사람
음부의 권세는 사단의 왕국과 그의 권세를 말한다. 사단의 권세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사단은 피조물이므로 아무리 대단하다 해도 피조물의 권세일 뿐이다. 피조물은 모든 것이 무한하지 않고 유한하다. 그래서 사단의 권세 또한 유한한 것이다. 즉 창조주께서 허락하신 만큼만 가능한 권세를 받는다. 예를 들어 욥기서에 나오듯 하나님께서 사단에게 욥을 시험할 수 있는 권한을 주시되 욥의 생명을 건드릴 수 있는 권세는 허락지 않으셨다. 그래서 온갖 악한 일로 욥을 괴롭혔고 급기야 그의 육체까지 쳐서 온몸에 악창이 나게 했지만 끝내 생명은 건드리지 못했다. 사단이 욥의 생명을 건드릴 수 있는 힘이 없어서가 아니고 사단이 욥의 생명을 건드릴 수 있는 권세를 하나님께 허락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악한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사람이 되려면 피조의 세계에서는 오로지 한 길밖에 없다. 하나님의 권세를 받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의 권세로 마귀를 대적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호령해야 한다. 사단의 권세는 허락받은 권세요, 제한적 권세요, 피조물의 권세일 뿐이다. 하나님의 권세는 허락하시는 권세요, 무한한 권세요, 창조자의 권세이다.
그래서 히브리서 11장에 위대한 믿음의 선친들을 자랑하고 계시고, 그들이 이렇게 자랑스러운 하나님의 일꾼들이 된 것은 하나님의 권세 아래 있었기 때문이다.
성경은 히브리서 11장 38절에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도다’라고 자랑하고 계신다.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과 동행하고, 하나님의 권세 아래 있는 에녹,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세, 다윗, 베드로, 요한, 바울…. 어찌 음부의 권세가 감당할 수 있을까?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다니엘, 스데반 같은 주님의 권세로 무장한 사람들을 죽음도, 불도, 사자도, 그 누구도 감당하지 못했다. 하나님 때문에, 예수님 때문에 순교한 사람들은 그들을 죽여 사단이 이긴 것이 아니고, 그들을 영원히 사단의 권세가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로 만들어준 것일 뿐이다.
하나님의 권세 아래 있다가 떠난 사람, 가인, 고라, 발람, 사울왕, 가룟 유다…, 이러한 인물들이 사단의 권세를 이기지 못한 것은 당연한 결과다. 일생을 기도로 일관했던 사무엘, 다니엘…, 목사님, 음부의 권세가 어찌해보지 못한다. 큰 고뇌와 고통 속에서도 감사와 찬송을 했던 욥이나 바울 같은 사람들은 사단의 권세도 어찌하지 못한다. 목숨을 내놓고 달려간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 에스더, 스데반, 사도들을 사단이 어찌 못한다. 마태복음 16장 16~18절, 하나님의 영(성령)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시인하는 자들이 바로 하나님의 권세 아래 있는 자들이다. ‘이들을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음부의 권세, 사단의 권세와 당당히 맞서 싸우라. 대적하라. 그리하면 그들이 피하리라. 그러기 위해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늘 그의 권세 안에 머물러야 한다(약4:7~8). 예수 안에 있는 자는 이미 이긴 자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이미 이기셨기 때문이다(요16:33).
무엇이든지 두려워하면 지게 되어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성경에 수없이, 끊임없이 계시록 마지막까지(계21:8) ‘두려워 말라, 두려워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고 계속 격려하신다.
사랑하는 예수중심 성도들이여, 지면 영원히 망합니다. 음부의 권세와 싸워서 이깁시다. 나 자신과 싸워서 이깁시다. 주의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할렐루야!
서울예수중심교회 이시대 목사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 우리나라 국가대표팀이 보인 저력은 충분히 세계를 놀라게 했다. 대표팀 벤투 감독은 많은 시행착오를 하면서도 자신의 축구 색깔인 빌드업 축구를 완성해나갔다. 많은 사람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비판하고, 언론은 물론 같은 축구인들조차 비난했지만, 자신의 철학대로 꾸준히 준비하고 노력한 결과가 결국은 월드컵 16강의 목표를 달성했고, 국내외 많은 사람들에게 박수와 인정을 받았다.
언제나 성공은 남의 비판이나 비난을 뛰어넘고 목표를 향하여 꾸준히 노력하고 달려간 사람들의 몫이다.
나는 지난 추계산상집회 중 총회장 목사님께서 여호수아 14장 12절의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라는 말씀을 증거하실 때 정말 가슴이 뜨거워지며 하나님께 부끄럽고 송구한 마음이 가득했다. 이 말씀은 수없이 본 말씀이었지만 그날은 내게 또 다른 은혜와 여러 가지 생각이 드는 말씀으로 다가왔다.
목사님께서는 이 말씀을 증거하시면서
“주님, 다시 나에게 전 세계를 맡겨 주옵소서.”라고 기도하시는 모습을 보며 감동을 받고, 나 또한 “주님, 목사님의 저 믿음과 건강과 지혜를 저에게도 주소서. 또 목사님께서 교단의 주의 종들과 성도들에게 기도하시고 축복하신 모든 것이 속히 이루어지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했다.
마가복음 9장 21~24절에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라는 그 아비의 간절한 외침처럼 나도 기도한다.
“주여! 이 산지를 내게 주옵소서, 이 믿음이 연약함을 도와주옵소서.”, “2023년도에는 인천교회에 배가의 부흥! 그 이상의 부흥을 주옵소서.” 간절함으로 기도한다.
올해 교단 슬로건이 ‘음부의 권세가 감당할 수 없는 자가 되자!’이다.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다”
(막9:29)고 하셨다. 한번 해보자! 할 수 있디! 올 한해 각자의 ‘산지를 내게 주옵소서’라고 기도하며 노력해보자. 반드시 이룰 것이다.
얼마 전에 사업하는 젊은 집사와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는 사업을 하면서 몇 번 무너지고 어려움을 겪었다. 그는 사람들이 왜 자살을 하는지 조금은 이해가 된다고 했다. 자신도 하나님을 몰랐으면 어리석은 결정을 할 수도 있었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고 있기에 교회 나오며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견디고 참고 인내하며 다시 도전하고 했더니 길이 열리고, 또 좋은 분들을 만나서 잘되고 있다며, “저의 목표는 1조를 벌어서 하나님의 일을 멋지게 하는 것입니다.”라고 한다. 어찌 보면 말도 안 되는 꿈이다. 그러나 이 얼마나 멋있는 하나님의 사람인가. 반드시 그 꿈을 이룰 것이다. 이 친구는 지금도 인천교회에서 참으로 많은 일을 하고 있는 하나님의 사람이다. 이 집사뿐 아니라 여러 명의 젊은 집사들이 상상할 수 없는 목표를 향하여 노력하고 있다. “이 산지를 내게 주옵소서!”
2023년 새해는 약속의 해입니다. “이 산지를 내게 주옵소서!” 각자의 목표를 향하여 다시 일어나 달려가기 바랍니다. 우리들의 산지가 바로 앞에 있습니다.
인천예수중심교회 장영국 목사
행복은 감사함에서 온다
요즘 경제적으로 어렵다고들 한다. 하지만 과거와 비교해보면 지금의 우리 삶은 의식주 모두 풍족함을 누리고 있다. 2, 30대 젊은이들은 이해 못하겠지만, 예전에는 부잣집만 가졌던 승용차를 지금은 형편이 안 되어도 대다수 사람이 소유하고 있어 교통난을 겪을 정도이며, 휴대폰은 어린 자녀들도 하나씩 가지고 있고, 컴퓨터, LED TV,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김치냉장고, 안마의자 등등 값비싼 물품들이 기본적인 생활필수품이 되어버렸다. 거기에 제철이 아니면 먹을 수 없었던 신선한 과일을 이제는 사시사철 먹을 수도 있다.
이처럼 대다수 사람이 넉넉하고 편리한 생활 속에 살고는 있지만 궁색했던 예전과 비교했을 때 과연 더 행복할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대인의 삶은 메마르고 영적으로 침체되어있음을 본다. 그리고 이런 삶에는 모두의 마음과 생각 속에 ‘감사’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이 행복해지려면 감사에 눈을 떠야 한다. 많이 가졌다고 행복한 것이 아니라 감사함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아무리 좋은 것을 많이 소유했다고 행복한 것이 아니라 감사한 마음이 얼마만큼 있는지에 따라 행복에 비례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글을 쓰고 있는 중에도 우리 총회장 목사님을 생각해본다. 총회장 목사님 같이 생활 속에 감사가 넘치시는 분은 매우 드물 것이다. 매사 크든 작든 하물며 여느 식당에 가셔서 순댓국 한 그릇을 드셔도 서빙해주는 분에게 꼭 감사하다는 표현을 하시는 모습. 그뿐인가? 88체육관을 사용할 수 없어 무거운 마음으로 보고를 드릴 때도 하나님께 감사하며 ‘더 좋은 것으로 주시는 하나님이 아니시냐’며 걱정하지 말라고 오히려 나를 격려해주시는 등 어떠한 상황에서도 감사하시는 모습은 나에게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라는 메시지를 주신다.
이렇듯 나는 지금까지 총회장 목사님을 만나 그분의 말씀과 행동을 보고 깨달은 것이 있다. 역시 하나님은 감사하는 자를 사랑하신다는 것이다. 감사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은 더 감사할 일이 생기도록 하시며 거기에 따른 복을 겸하여 주신다. 그러므로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감사할 일이 점점 줄어들게 되고 하나님께서 주시려는 복도 스스로 차버리게 된다는 사실이다.
감사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찾고 실천하는 것이다. 물론 교단 내에서도 많은 분들이 감사함을 실천하며 그 이상의 복을 받는 것을 많이 보아왔다.
그리스도인은 행복하기에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하기에 행복한 것이다. 건강하지 않아도, 실패해도, 삶이 어렵더라도 늘 감사하기를 소망한다. 그렇게 감사하는 자에게 건강과 성공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게 될 것이다.
“범사에 감사하라”, 그 의미는 곧 어떤 형편에 처하든지, 무슨 일이 일어나도 모든 일에 감사하라는 뜻이다. 한마디로 인생의 양지에서도, 음지에서도 감사하라는 것이다. 큰 감사를 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크게 임하고, 많은 감사를 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많은 은혜가 임할 줄 믿는다.
성도 여러분!
궂은 날씨 속에 비가 올 때도 태양은 없어진 것이 아니라 여전히 태양은 존재하지만 구름 속에 가려 보이지 않는 것뿐입니다. 우리 인생에 환난과 고난이 있어도 하나님의 사랑은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어려움 속에 있어도 여전히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2023년은 어떠한 상황 속에도 감사할 일을 찾고 실행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무한한 행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또한 허상뿐인 코로나를 떨쳐버리고, 쓰고 있는 마스크를 모두 벗고 예전과 같이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며 행복한 일상의 삶으로 돌아가기를 기도합니다.
예수중심교단 사무국장 이석실 목사
역경이 뜨거운 헌신을 만나면 위대함을 꽃 피운다
지난주까지 온 세계가 월드컵의 축구 열기로 뜨거웠다. 이번 월드컵엔 특별히 수많은 이변과 감동적인 이야기가 가득했기에 더욱 그랬다. 16강엔 약체로 평가받던 아시아 국가들이 역대 가장 많이 진출했고, 우승도 지난 36년간 우승컵을 들지 못했던 아르헨티나에 돌아갔다. 특별히 대한민국은 12년 만에 16강 진출을 이룬 것도 감동이었지만 선수들 한명 한명이 최악의 컨디션과 부상임에도 뜨거운 투지와 팀워크로 난관들을 극복하며 이루어낸 쾌거라 그 감동이 더욱 컸다. 스포츠가 주는 감동은 바로 이렇게 한계에 도전하는 불굴의 모습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라마다 감동적인 이야기가 있었겠지만, 나는 이번에 대한민국의 주장 손흥민과 아르헨티나의 주장 메시의 이야기가 가슴에 깊이 남았다. 손흥민은 대한민국과 아시아 수준을 뛰어넘은 명실상부 세계 최고의 공격수이다. 올해로 31세가 된 그는 세계 최정상급 선수들이 가장 많이 뛰고 있는 세계 최고의 프로축구리그 EPL(영국 프리미어리그)에서 지난 시즌 득점왕을 차지하였고, 전 세계 최고의 골을 넣은 단 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푸스카스상까지 받는 영예를 안았다. 메시는 축구에 문외한인 사람조차 다 아는, 축구 역사상 최고(Goat:greatest of all time)의 선수로 인정받는 선수다.
하도 인상 깊어 두 선수에 대한 영상을 찾아보던 중 두 사람의 인생스토리를 실은 영상들을 보았는데 역시나 그 안에서 지금의 두 위대한 선수를 만든 두 가지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다. 하나는 역경이요, 다른 하나는 (조)부모님의 눈물겨운 헌신이다. 운동을 한다는 것은 경제적인 뒷받침이 있어도 쉽지 않은데, 이 둘은 모두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꿈조차 꾸기 어려운 환경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손흥민에겐 아들의 꿈을 위해 새벽 4시에 일어나 막노동 일과 트레이너 등 하루 투잡 이상의 일을 감당한 아버지 손웅정 씨가 계셨고, 메시에겐 유소년 감독님에게 메시를 한 번만 선수로 써달라며 간절히 매달리며 설득했던 메시의 할머니와 더 이상 키가 자라지 않는 호르몬 질병에 걸린 메시에게 성장호르몬 요법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해줄 팀을 백방으로 찾아다닌 아버지가 계셨다. 특별히 메시는 자신의 축구 재능과 가능성을 처음으로 믿고 문을 열어준 할머니에 대한 감사와 그리움 때문에 지금까지도 매번 골을 넣을 때마다 하늘을 향하여 두 손을 가리키며 할머니를 위한 세레머니를 하고 있다. 어디 이것뿐이랴. 손흥민의 독일 분데스리가 함부르크 선수 시절, 추운 겨울에 먹을 것도, 쉴 곳도 없어 6시간 내내 빈속으로 밖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손흥민을 데려다주고 데려오기를 4~5년 계속했던 아버지 손웅정 씨, 그 밖에도 부모님들의 헌신과 사랑의 이야기를 나열하자면 끝이 없고 그 헌신의 크기에 가슴 한켠이 아려올 정도다. 계속 이야기를 보다 보니 나중에는 손흥민 선수를 보면 손흥민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의 아버지 손웅정 씨가 보이기 시작했고, 메시를 보면 그의 할머니와 아버지가 더 눈에 보이는 듯했다. 마치 우리 뒤에 총회장 목사님의 목이 터져라 외치시는 귀한 가르침과 기도가 있고, 총회장 목사님 뒤엔 주님이 함께 계시는 것과 같이 말이다. 누군가의 삶이 아름답게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기꺼이 거름이 되어주는 삶의 존재가 필수 불가결한 것임을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하게 된다.
가만히 이들의 이야기를 보자니 우리 부산교회의 일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2020년 5월 31일, 갑작스런 전기화재로 우리 교회는 복구할 물질도, 예배드릴 공간도 부족한 그야말로 소망이 사라진 망망대해 위의 돛단배 같은 상황이었다. 갑작스런 위기 가운데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기도뿐, 그때 전국각지에서 이 모양 저 모양으로 도움의 손길을 보내주었는데, 어떤 청년은 자신의 결혼자금을 가져왔고, 어떤 이는 수중의 모든 돈을 끌어모아 보낸 이도 있었고, 어떤 이는 이불을, 어떤 이는 음식으로 구제와 헌신의 손을 펴 보냈다. 한분 한분 잊을 수가 없어 지금도 그 목록을 읽으며 축복기도를 한다. 또한 부산교회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한걸음에 내달려와 축복기도를 해주시며 오히려 이 계기를 통해 부산교회를 새롭게 하실 소망의 말씀을 믿음으로 선포해주신 총회장 목사님, 언제나 우리 뒤에서 가장 헌신적인 믿음의 조력자로 태산과 같이 서 계셔 주신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다. 이 수많은 분들의 헌신과 수많은 분들의 기도가 없었다면 우리 교회는 지금처럼 그 이전보다 더 아름답고 복된 교회로 거듭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역경이 없는 삶이 어디 있겠나. 그러나 그 역경이 사랑과 헌신을 만나면 기적이 되고 감동이 된다. 주님은 역경 앞에서 뒤로 물러나 침륜에 빠지기보다 믿음으로 나아가 하나님의 도우심을 직접 체험하고 우리 자신도 더 강하고 성숙해진 모습으로, 이전과 다른 거듭난 존재로 성장해가길 원하신다. 큰 문제 앞에 개인으로 서면 한낱 지렁이 같다던 야곱의 모습일지라도 주님의 약속을 신뢰하고 끝까지 나아가면 주님은 열국의 아버지로 세우시고, 약한 자들 속에서 강한 자들에게선 전혀 볼 수 없는 아름다움과 감동을 뽑아내신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언제나 사랑과 헌신이다.
가난한 아버지의 사랑이 위대한 선수를 만들고, 연약한 할머니의 헌신이 전설적인 선수를 만들기도 한다. 역경을 반가워하는 이는 없지만, 역경이 사랑과 헌신을 만날 때 그곳에 사람을 온전케 하는 능력이 창조된다. 지나친 풍요함으로 나태함의 노예가 되는 것보단 때론 적절한 역경과 결핍이 더욱 위대한 인생을 만드는 것을 보면 고난을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지혜의 깊이를 가히 측량할 수 없는 듯하다. 주님은 노련하게 우리가 감당할만한 시험으로 우리를 가장 온전한 주님의 자녀로 성장시키고 계신 것이다.
나라 안팎으로 경제적 어려움과 전쟁에 대한 비관적인 소식들뿐이다. 나라는 어수선하고 좋은 소식은 찾아보기 힘들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때가 바로 우리의 사랑과 헌신이 빛을 발할 복된 기회가 아닐까. 아니 오히려 우리가 나태해지지 않도록 우리 안에 잠든 사랑과 헌신을 깨워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선물이 아닐까. 세상 사람은 환경과 조건을 보지만 우리는 오직 소망의 주님을 본다. 문제는 풀리기 위해 있는 것이고, 문은 열리기 위해 있는 것이고, 역경은 하나님의 영광과 극복의 감동을 위해 주어진 것이다.
새해는 그동안 나를 묶어놨던 문제와 내가 그어놓은 한계를 뚫고 주님과 함께 날아올라 보자. 내 안에 잠든 주님을 깨우고 다시 뜨거운 사랑과 헌신으로 나의 감동스토리를 완성해보자. 지금 결단하고 일어나면, 무딘 철 연장 날 같던 인생이 뜨거운 풀무 불같은 역경과 헌신적인 단련을 통해 마광(磨光)한 무기가 될 것이요, 역경을 이겨낸 두 위대한 선수와 같이 우리 삶에도 위대함이 꽃 피워지리라. 손흥민과 메시에겐 헌신적인 부모님이 계셨다면 우리에겐 아들조차 아낌없이 내어주신 놀라운 사랑의 하나님이 계시다. 이미 어디선가 제2의 손흥민과 메시의 이야기가 써 내려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만 빠질 수 없다. 주님은 위대함을 위한 조건을 우리 모두에게 동일하게 주셨다. 십자가를 피하시지 않고 자원하여 지신 주님을 닮은 사랑과 헌신으로 주와 함께 날아올라 보자. 가슴을 울리는 감동적인 역사의 주인공, 이제는 우리 차례다.
부산예수중심교회 이구원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