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글씨 크기 보통16
1177호 목차 › 세상을 보는 창

하나님의 해독(detox)과정

1177호 · 2022-11-27
세상을 보는 창

하나님의 해독(detox)과정

건강한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 반드시 점검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공동체를 무너뜨리거나 위태롭게 하는 잠재된 독소는 없는가?’ 하고 살피는 것이다.

다윗이 왕이 되는 과정을 살펴보면, 사울 왕의 죽음 이후에 하나님은 다윗의

나라를 위협할 수 있는 독소들을 하나둘 제거하셨다. 그것은 다윗의 공동체가 사울의 공동체가 되지 않도록 해독(detox)하는 과정이었다. 하나님은 가장 먼저 다윗의 공동체에서 ‘야욕’을 제거하신다. 왜일까? 야욕은 공동체를 무너뜨리고 피바람을 부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아브넬이 평화의 가면을 쓰고 야욕을 숨기면서 다윗에게 협상했지만, 결국 요압의 손에 죽게 하셨다.

또한 하나님은 다윗의 공동체에서 ‘자만심’을 제거하셨다. 발이 빠른 요압의 동생 아사헬은 아브넬을 추격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고 결국 아브넬의 창에 죽고 만다. 아사헬의 민첩함과 빠른 발이라는 작은 재주가 자만을 불렀고 결국 화를 자초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형통할 때 내 능력과 열정을 과신하다가 하나님의 일을 그르칠 때가 종종 있다. 그래서 나에게 있는 재능, 은사, 시간, 물질을 가지고 자만하다가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처음의 마음을 잘 붙잡고 온유함과 겸손함으로 마음을 다스려야 자만심에 빠지지 않고 주님께 쓰임 받을 수 있다.

다윗은 공동체를 세워가면서 두 왕국의 충신-아브넬과 요압을 통해 멈출 줄 모르는 야욕, 자만심을 보았다. 하나님의 해독과정이 없었다면 다윗의 나라는 아마도 또 다른 사울의 나라가 되었을지 모른다.

그렇다. 우리의 가정, 학교, 직장, 목회 현장에도 하나님의 해독과정이 필요하다. 분노, 원망, 시기, 질투, 거짓말, 수동 공격, 험담 등을 하나님은 수많은 사건을 통해 교회 공동체에서 해독하고 계신다. 그리고 사랑의 공동체가 세워지도록 도우신다.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고통과 고난의 긴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나님의 나라는 정의로운 나라이면서 사랑의 나라이다. 사랑은 복수를 허락하지 않고, 용서하는 마음을 갖게 한다. 용서가 우리들 공동체에 가득할 때 전쟁과 싸움은 멈추게 되고, 평화와 기쁨이 가득한 사랑의 공동체가 될 것이다.

이정금 전도사

아름다운 인생

매사 여유를 가져라

새벽기도가 끝나고 신학교 수업을 하러 노량진 교육관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좀 늦게 출발하기도 했지만, 유독 평소보다 트래픽이 심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도로 공사까지….

‘일찍 가서 수업준비를 해야 하는데 늦으면 어떡하지?’라는 조급한 마음이 들었다. 조금씩 이동하는데 바로 옆 차선에서는 차들이 조금 더 속도를 내는 게 보였다. 차선변경을 해야겠다 생각하고 옆에 보이는 차가 지나가길 기다리고 있었는데 빈틈없이 줄줄이 오는 차량으로 인해 조급한 마음은 더해갔다.

조급한 마음이 고조되고 최대치를 찍었을 때, 옆에 빈틈이 생겼다. 그 순간 차선변경을 시도했는데 갑자기 쾅 소리와 함께 부서지고 깨지는 소리가 나더니 차량 부속품들이 눈앞으로 튕겨 나가는 것이 보였다.

‘분명 차량이 오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변경했는데 왜 이런 일이 생긴 걸까?’ 그때 마음속에 음성이 들렸다. ‘네가 조급해서 그런 거지!’

‘아차! 내가 조급했구나. 조금만 더 여유를 가졌어야 했는데.’

‘조급과 무리는 동색이다’라는 총회장 목사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그리고 “매사 여유를 가져라. 오리 가자고 하면 십리를 가줄 수 있는 마음, 다섯 번 생각할 것 열 번 생각하는 마음으로 살라(마5:41)”고 하셨던 말씀도 생각났다.

생각만 하면 뭣 하랴. 실행을 해야지. 하나님도 성경을 통하여 ‘마음이 조급하면 어리석음을 나타낸다’(잠14:29)고 말씀하셨는데….

비싼 대가를 치르고 나서 매사 여유를 가지려고 결심하고 노력하고 있다. 조급해지려고 할 때마다 마음속으로 “조급하지 마! 매사 여유를 가져!”

조급한 마음, 무리하는 마음은 죄다. 매사 여유를 갖자!

이은성 생도

소망의 언덕

더 좋은 것으로 주시는 하나님

노량진 서울교육부서 교육관, 이곳에 들어갈 때마다 여전히 감동과 감격이 넘침은 우리의 기도와 생각보다 넘치도록 축복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느끼기 때문입니다.

넓고 쾌적한 주차장으로 인해 더 이상 예배 중에 차량을 옮겨야 할까 안절부절하지 않아도 됩니다. 더 이상 하나의 화장실을 가지고 남녀 학생들이 눈치 보며 사용하지 않아도 됩니다. 넓고 운치 있는 테라스에서 학생들은 예배 전후에 자유롭게 교제도 나누며 맘껏 뛰어놀고 때론 식사도 합니다. 더 이상 남의 눈치 보지 않고 맘껏 춤추며 찬양하고 부르짖어 기도할 수 있습니다. 이전에는 예배 때마다 찾아오는 고시원 관리인, 학원 강사, 출동을 받아 나온 경찰들로 인해 예배가 중단되지 않도록 교사 한 명을 배치했던 때를 생각하면 얼마나 자유로운지 모릅니다.

평일 저녁은 목사님들의 기도회로, 낮에는 신학교 강의실과 교무실로 쓰이니 그 쓰임새에 낭비됨이 없어 그야말로 여호와이레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교육부서에 허락된 아름다운 교육관에서 날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며 부흥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교육관을 위해서 기도하라는 목사님의 지시가 있고부터 7년이 넘도록 기도하고 찾았지만 매번 될 듯 될 듯 잘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그때마다 ‘늘 더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기대와 간절함이 컸기에 때때로 아쉬운 마음에 눈물을 삼킨 적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배운 대로 입술로 뿌렸습니다. 때가 되니 주님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마음으로 생각지 못했던 아름다운 교육관을 허락해주셨습니다.

이제 대면예배가 가능하지만 체육관 사정으로 인해 온라인 예배를 드리게 될 때면 성도들이 흐트러질까 애절하게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시는 목사님. 하나님께서는 총회장 목사님의 입술을 통해서 서울 성전을 허락해주실 것을 말씀해주셨습니다. 그 축복의 때가 이뤄질 때까지 잠시 불편함이 있을 수는 있지만 이전 일이 오히려 추억이 될 정도로 아름답고 놀라운 성전을 저희에게 베풀어주실 것을 저는 확실히 믿습니다. 그때까지 함께 기도합시다.

이현승 목사

치우치지 않는 저울

기도하는 자식은 망하지 않는다

저는 자신감 없고 심하게 내성적인 아이였습니다. 어린 시절의 증명사진을 보면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습니다. 카메라 앞에 서는 게 너무 부끄러웠기 때문입니다. 단 한 번도 먼저 손을 들고 발표해본 적이 없었고, 어쩌다 선생님께서 말을 시키면 너무 부끄러워서 눈물을 글썽이고 대답하지 못할 때가 많았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2학기, 처음 반장 선거 후보로 추천되었습니다. 그런데 추천한 친구마저 저를 뽑지 않아서 0표를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속상한 마음조차 느끼지 못한 채, 당연하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만큼 스스로를 특별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때 어머니는 하나님을 만난 지 2년쯤 되었고, 총회장 목사님의 설교 테이프로 하루하루를 사셨는데, 믿음이 성장하면서 자녀를 향한 기도도 달라졌습니다. 어느 날부터 하루도 빼놓지 않고 어머니께서 등굣길에 나서는 저의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시편 1편으로 시작된 기도는 신명기 28장으로 이어지고, “교통사고 나지 말게 하시고, 악한 자 만나지 말게 하시고, 가는 곳마다 천군천사가 보호하게 하시고….” 총회장 목사님께서 성도들을 향해 축복해주시는 기도를 그대로 하신 뒤, “선생님의 사랑의 대상, 친구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게 하옵소서.”라고 꼭 덧붙이며 기도를 마치셨습니다.

4학년 2학기, 반장 선거가 있었습니다. 어떤 친구가 저를 후보로 추천했습니다. 다른 후보들은 당차게 자신을 홍보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쭈뼛쭈뼛 앞에 나가 떨리는 목소리로, “저는 반장 할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훌륭한 친구들이 많으니, 다른 친구들을 뽑아주세요.”라고 말하고 도망치듯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반장 후보 포기 의사를 밝혔으나 선생님은 저를 그대로 후보에 둔 채 투표를 진행했습니다. 개표 결과, 제가 반장에 당선되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심지어 투표용지에 저조차도 제 이름을 쓰지 않았는데 말이지요. 놀랍게도 이런 일이 매년 반복되었습니다.

선생님은 자존감 낮고 숫기 없는 저에게 연약함을 극복할 수 있도록 항상 많은 기회와 특별한 사랑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친구들이 저를 시기하거나 질투하지 않고, 제가 부족한 만큼 늘 좋은 마음으로 응원과 격려를 보내주었습니다. 좋은 모습은 아주 작은 것이라도 좋은 때에 부각되어 주목받고, 부족한 모습은 모두가 관대한 마음으로 감싸주고 이겨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신기한 일이 이어졌습니다. 그렇게 특별한 것이 없는 아이가 좋은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나 넘치는 사랑을 받았으니 어머니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그대로 이루어주신 것이지요. 덕분에 스승의 날이 되면, 어머니는 1일 교사로 초청되어 친구들 앞에서 하나님을 잘 섬긴 위인들을 소개하며 복음을 전하는 기회로 삼았습니다.

이 간증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교회 신문을 통해 기록했던 저의 이야기 뒤에는 어머니의 믿음의 기도가 있었으며, 이렇게 글로 저의 삶 가운데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까지도 어머니의 기도로 시작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여호수아와 그 세대 사람들이 죽자,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행하신 일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저버리고 다른 신을 섬기자 하나님은 진노하셨습니다(삿2:8~15). 한국교회의 위기라면서 이 나라에도 이러한 일이 일어날까 걱정하는 목소리도 일부 있지만,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기도하는 우리 교회가 있기 때문입니다.

총회장 목사님은 “기도로 하나님을 움직이는 자가 가장 위대한 자다!”라고 외치시며 위기 때마다 하나님께 부르짖으셨고, 그 기도에 신실하게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우리는 수없이 경험했습니다. 목사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우리의 부모님들은 기도의 능력을 몸소 체험함과 동시에 말씀과 기도로 자녀들을 양육하였고, 그 믿음을 물려받은 다음 세대 또한 기도하여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멋진 추억담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기도하는 자녀, 가정, 기업, 교회, 나라는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정명관 집사

v-777@naver.com

빛이 되리라

최고의 걸작품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해본 일일 것이다. 조립식 프라모델(PLA-MODEL)을 만들거나 큰 퍼즐을 완성했을 때, 또는 매우 어려운 작품을 자신의 힘으로 마무리했을 때 완성된 작품을 보며 스스로 뿌듯해한 일 말이다. 기쁘고 벅찬 마음에, ‘와 잘 만들었다. 너무 보기 좋다. 진짜 최고다.’ 이런 감탄사를 연발하기도 한다. 그러나 비단 우리뿐만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도 이런 감정을 느끼시는 것 같다.

얼마 전 경험한 일이다. 운동 차 아침에 혼자 공원을 걸었다. 공기도 깨끗하고 단풍도 이쁘게 들어 아침 햇살이 비치는 공원의 모습은 너무 아름다웠다. ‘하나님은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을 만드셨지?’ 하는 생각을 하다 창세기 1장 말씀이 떠올랐다.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이 말씀이다. 천지 만물을 다 만드신 후에 얼마나 잘 만들고 그 모습이 멋졌으면 하나님도 이렇게 좋아하시며 감탄하셨을까. 그냥 ‘좋았더라’도 아니고 ‘심히 좋았더라’고 하실 정도니 말이다. 그리고 ‘아~ 우리가 보고 있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우리 하나님도 스스로 감탄한 멋진 작품들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비가 오고 강이 흐르고 폭포를 만들고 바다를 이루고, 온갖 동식물이 스스로 움직이고 숲과 나무가 산소를 배출하고 새가 지저귀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의 통치하에 스스로 움직이는 거대한 시스템으로 만드신 우리 하나님. 이 모든 것이 걸작품이다.

하지만 아무리 자연이 아름답고 놀라워도 우리와 같은 사람만 할까.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든 우리 인간들. 하나님의 걸작품 중에서도 최고의 걸작품은 바로 우리 인간들이다. 그런 최고의 작품 중의 작품인 우리가 실망, 좌절, 낙담에 깊이 빠져 있으면 되겠는가? 어떤 일에도 주눅 들지 말고 자신감과 자존감을 가지고 당당히 하나님의 자녀로 멋지게 살자. 잠시 넘어졌다면 박차고 다시 일어나자. 그럴 때 우릴 지으신 하나님이 흐뭇하게 우릴 바라보시며 더 기뻐하시지 않겠는가.

장명훈 집사

1177호 다른 글

커버스토리
Text 주일설교
지혜의 말씀
Cartoon
붕우칼럼
선교지에서 보낸 편지
객원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