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믿는 하나님은 불가능이 없으신 분이다(눅18:27)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호6:3).
여러분, 믿음은 하나님을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저는 하나님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믿는 하나님은 이런 분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셨고(창1:1), 사람도 창조하셨습니다(창1:27). 또한 그분은 불가능한 것이 없으신 분인지라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시는 분입니다(눅18:27). 또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이”(롬4:17)이시기도 하십니다. 그분은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음부에 내리기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며,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십니다(삼상2:6~7).
우리 하나님은 지혜의 근본이시며, 만물이 다 그분에게서 비롯되었습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롬11:33~36). 또한 그는 무소부재하신 분입니다.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찌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찌라도 거기 계시니이다”(시139:7~8). 더욱이 그분은 우리의 속내까지 속속히 다 알고 계시는 분입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시139:1~3). 이 분이 제가 믿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소경이 눈을 뜨게 하셨고(막8), 벙어리가 말하게게 하셨으며 (마9), 귀머거리가 듣게 하셨습니다(막7). 또 하나님은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냄새가 나는 나사로를 살리셨고(요11), 90이 되어 경수가 끊어진 여자가 아들을 낳게 하셨고(창21:2), 바다를 갈라 당신의 택한 백성들이 강을 건너게도 하셨습니다(출14:22). 어찌 하나님이 하신 일을 필설로 다 표현하겠습니까?
에스겔 37장에 보면 하나님이 선지자 에스겔에게 이렇게 당신을 나타내십니다. 에스겔을 마른 뼈가 널브러진 골짜기로 이끄신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겔37:3). 이는 인간적인 안목으로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불가능한 사건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에스겔에게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찌어다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로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두리니 너희가 살리라 또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하셨다 하라”(겔37:4~6) 하십니다. 에스겔이 그대로 하니 마른 뼈들이 이 뼈와 저 뼈가 붙기 시작했고 힘줄이 생기고 살이 붙고 가죽이 덮이고, 그 위에 생기마저 돌게 되어 일어나 군대가 되었습니다(겔37:7~10). 그것을 이루신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겔37:13).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신 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의 자녀된 우리에게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9:23)고 하셨고,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시81:10)고도 말씀하셨으며,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11:24)고 하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감히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고 말한 것은 그분이 능치 못하심이 없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제가 해외집회에 나가면, “오늘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으면 나는 가짜 목사입니다.”라고 자신 있게 말합니다. 제가 뭘 믿고 이렇게 큰소리를 칠까요? 제가 간이 커서 그런 게 아닙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기에 그러는 겁니다.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하시는 하나님이 성령으로 내 안에 와 계시는데 왜 역사가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은 어떤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까? 이건 되고, 저건 안 되고 하십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는 안 되는 게 기적입니다. 불가능한 게 기적입니다. 하나님께는 다 됩니다. 다 가능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불가능한 일을 이루려면 먼저 불가능한 일에 도전해야 합니다. 소경 바디매오처럼 말입니다. 선천적으로, 그것도 2대째 내림으로 소경이 어찌 눈을 뜨겠습니까만, 바디매오는 불가능한 일에 도전했습니다. 바디매오는 예수님이 지나가심을 알아채자 목청을 돋우고 예수를 불렀습니다. 주위에서는 안 된다고, 조용히 하라고 했습니다. 누가 봐도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요. 그러나 바디매오는 불가능한 일에 도전했습니다. 그래서 소원인 눈을 떴습니다(막10).
에스더가 자기 백성을 살릴 길은 왕 앞에 나가 하만의 모함을 아뢰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왕비라고 언제든 왕 앞에 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왕이 부르지 않았는데 혹 나갔다가 왕이 금홀을 내밀지 않으면 되레 화를 당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에스더는 죽으면 죽으리라 금식하며 기도한 후에 왕 앞에 나갔습니다. 불가능한 일에 도전했습니다. 그랬더니 왕이 반색을 하며 그녀를 맞아주었고, 기도한 대로 이스라엘 백성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마가복음 2장에는 중풍병자를 둔 네 명의 친구가 불가능한 일에 도전하여 친구를 살리는 일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을 둘러싼 무리가 많아 도저히 들 것에 누워 있는 친구를 데리고 예수님 곁으로 갈 수가 없자 그들은 지붕을 뚫고 들것을 달아 친구를 예수님 앞에 내려놓습니다. 주님은 그것을 믿음이라 칭하셨고, 그 믿음을 보시고 그를 치료해주셨습니다.
왜 불가능한 일에 도전하지 않습니까? 당신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하나님께는 너무 쉬운 일이고, 당연한 일입니다. 당신의 쥐꼬리만한 지식을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절대 당신의 지식 안에 있는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이 하나님과 당신 사이의 견고한 진이 되어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할 뿐입니다(고후10:4~5).
두 번째, 순종해야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누가복음 1장에 보면 처녀 마리아에게 천사가 찾아와 성령으로 아이를 잉태할 것이라고 전합니다. 마리아는 너무 당황하고 놀라 ‘나는 남자를 모른다’고 하자 천사가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눅1:37)고 말합니다. 그러자 마리아는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눅1:38)라며 순종합니다. 그 순종이 예수를 잉태하는 복을 얻게 합니다.
하나님은 문둥병을 능히 고치실 수 있으신 분입니다. 그러나 나아만 장군이 요단강에 일곱 번 들어가 씻으라는 엘리사의 말을 듣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능력은 거기서 스톱되었을 겁니다. 다행히 계집종의 말을 듣고 마음을 돌려 순종하니 고름이 줄줄 흐르던 피부가 말갛게 어린아이 같은 피부로 고침을 받았습니다(왕하5).
예수님의 첫 번째 기적인 물이 포도주가 된 사건도 순종에서 비롯된 것 아닙니까. 물을 아구까지 채우고 연회장에 내어가라는 예수님 말씀에 종들이 순종했기에 연회는 이어갈 수 있었고, 손님들은 더 맛있는 포도주를 맛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요2).
여러분, 이런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입니다. 그런데 무엇이 안 되겠습니까? 그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십니다. 다만 우리가 불가능하다고 단정하고, 우리가 팔자라고 단정하기에 우리 삶에 기적이 없는 겁니다. 한계는 우리가 긋는 것이지, 하나님의 능력에는 한계가 없습니다. 또한 순종해야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삶에 미칩니다.
삶에 기적이 필요합니까? 하나님의 절대적인 도움이 절실합니까?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십시오. 분명히 하나님의 능력을 목도하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는 것이 믿음이다
이론과 논리로는
하나님을 알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