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에는 능력이 따른다
우리는 예수 믿는 순간 저주와 고통에서 해방된 충격과 체험이 생생하다. 게다가 무엇이든지 구하면 응답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과 예수 이름을 기업으로 받았기에, 앞으로도 오직 만사형통만 있을 것을 기대해 온 것도 사실이다. 즉 우리 손에는 지금 하나님의 전능함이 통째로 쥐어져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신앙은, 그 전능함을 가지고 세상에서 잘 되는 데에 쓰지 말고,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곧 우리 영혼을 위하여 하늘나라에 가서 잘되는 데에 쓰라는 것이다(마6:33).
우리는 범사에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시는 영역을 잘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인간이 할 수 있는 부분까지 도우시지는 않는다. 예수께서 어떤 소경을 고치셨다. 사람의 힘으로는 소경의 눈을 뜨게 할 수 없다. 그러기에 주님이 직접 역사하셨다. 그러나 예수께서 ‘눈에 바른 진흙을 씻는 수고는 네가 해야 하지 않겠느냐?’ 하심으로, ‘너는 실로암 못에 가서 씻고 오라’고 하셨다.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은 주님이 직접 해주신다. 그러나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직접 해야 한다. 그러기에 기도할 때 내가 할 수 있는 범사에 대하여는 감사를 해야 한다. 감사하다가 할 수 없는 부분에서는
“도와주세요.” 하며 나아가는 것이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하여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할 수 없는 일에 대하여는 간구하고, 간구하다가 막히면 또 간구하고, 막히면 또 간구하며 전진하는 것이다.
엘리야의 일곱 번 간구는 하늘을 움직였다.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도록 간구하니 비가 오지 않았고, 다시 비가 오도록 간구하니 비가 왔다. 이처럼 기도는 가능한 것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초자연한 힘을 강력히 요구하는 것이다. 예수님도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세 번이나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 기도하셨다. 하나님만의 고유한 권능의 응답을 구하는 것이다. 기도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게을러서 하지 않고 하나님께 얻어보려는 것이 아니다. 바로 인간의 상식을 뛰어넘어 거룩한 것을 구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응답은 소비하거나 낭비하지 않도록 경제적으로 역사하신다. 쓰라고 주신 물건을 쓰지 않을 때는 반드시 그것이 중단된다. 성경의 경제원칙, 곧 하나님의 경제원칙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그것이 가장 적절히 쓰이게 될 때까지 계속되는 것이다.
우리에게 구할 권리가 있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무조건 주시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은 이미 하늘 창고에 준비되어 있으니 네가 필요할 때마다 구하여 쓰라고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하나님의 섭리가 나로 인해 제한받지 않도록 힘써야 한다.
오직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데 목적이 있다. 주님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자를 주님의 동역자로 삼으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