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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담

1167호 · 2022-09-18
오늘의 메시지

낮은 담

부모님의 제주도 한 달 살기가 시작되었다. 덕분에 부모님도 뵈러 갈 겸 우리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예쁜 곳, 맛있는 곳을 찾아다니며 구경을 하던 중 낮은 담을 보게 되었다. 소박하고 단순하게 쌓아진 낮은 담을 보는 순간 편안함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사실 살면서 낮은 담을 처음 본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무엇인가 달랐다. 여행이 주는 선물은 늘 같은 것도 새롭게 느껴진다.

낯선 이방인에 대한 경계가 없는 낮은 담을 넘어서 바라보니 집안이 훤히 보이고, 마당에서는 사람들의 자연스런 움직임이 보였다. 마치 나에게 들어오라 손짓하는 그런 느낌이랄까? 차곡차곡 돌들로 쌓아진 차분하고, 단아한 분위기의 낮은 담은 내 마음까지 위로해주었다.

왜 그리도 내 마음이 그렇게 놓였던 것일까? 맑고 깨끗한 공기 속 질서 없이 피어난 꽃들 때문이었을까? 평범하고도 담백한 담벼락을 내 마음속에 담아 두고 싶었다. 누군가는 내게 말했다. 나이가 들어서라고. 이 나른하고 편안한 느낌을 부족한 나의 언어로 표현하기가 어려웠다. 멋스럽지 않아서, 그래서 더 매력적인 낮은 담은 낯선 이에게 평안함을 가득히 안겨주었다.

문득 나는 내 사람들에게 낮은 담이 되어주었던 적이 있었는지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부끄럽지만 그렇지 못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삶에 부딪히며 지내느라 높은 담이 되어버렸다. 이제부터라도 나의 사람들에게 편안함을 주는 그런 낮은 담이 되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뜻하고 마음이 놓이는 열려 있는 담 말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듬뿍 담은 그런 사람 말이다. “우리가 서로 사랑할지니 이는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소식이라”(요일3:11).

이인영 집사
소망의 언덕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오늘은 한 학생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언제나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자랑하고자 합니다.

코로나가 끝나고 다시 시작하는 수련회. 1차 워크샵에서 이시대 목사님께서는 오랜만에 재개되는 수련회를 철저히 준비, 점검하여 역대 최고의 수련회가 될 수 있도록 하자는 미션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교사들과 함께 작정기도 하던 중 ‘예썸페(예수님과 함께 하는 썸머페스티발)’라는 7주 연속 총동원을 통해 영혼들을 불러 모을 수 있도록 도전하기로 했습니다. 또 예배 후에 2부 순서로 학생들이 좋아할 만한 프로그램을 준비해서 진행했는데 감사하게도 첫 주부터 하나님께서 많은 영혼을 보내주셨고, 아이들의 반응도 좋았습니다.

그런데 그때마다 한 친구가 끼어들어서 훼방을 하는 자가 있었는데, 바로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 윤창현 학생.

“야! 너희들 수련회 가려고? 거길 왜 가? 우리, 교회에 축구 하러 왔잖아.”

꽤 영향력이 있는 친구였기에 그의 훼방으로 많은 친구들이 수련회에 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수련회 당일 기도원에 도착할 때쯤 그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선생님 혹시 후발대로 가는 차량 있나요?”, “당연히 있다마다.” 누구도 그 학생이 기도원까지 진짜로 올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저녁에 그 친구에게, “어떻게 오게 된 것이니?” 하고 물으니, 그 친구가 이야기합니다. 오전에 기도원으로 버스가 출발할 때 같은 조 친구가 자신에게 “보고 싶다, 친구야.”라는 메시지와 기프트콘을 보냈는데, 그 문자를 보자마자 당장 수련회를 꼭 가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더욱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는 다음날 일어났습니다. 그 친구가 하나님의 은혜로 성령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무릎을 꿇고 두 손을 꼭 쥐고 오열하며 기도하는 모습을 본 순간 ‘아, 성령님이 하셨구나!’ 했습니다.

오늘 나눈 학생의 이야기가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려 열심을 내시는 성도님들께 작은 위로가 되길 소망합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이 이루시니 낙망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찌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6:9).

이현승 목사

동행하는 삶

경험을 능가할 지식은 없다

어린 시절 엄마를 따라 예수중심교회에 다니게 되었다. 그때부터 목사님께 반복적으로 들었던 말씀 중 하나가 바로 ‘경험을 능가할 지식은 없다.’이다.

아이를 키우다 보니 많은 해프닝이 생긴다. 11살이 된 첫째 아이와는 요즘 자주 티격태격하는데, 그중 하나가 자신의 말이 맞다고 우기는 일로 인해서이다. 엄마인 내가 보기에 그건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데, 아이는 자꾸 자기의 말이 맞다고 우긴다. 그런 일로 ‘내 말이 맞네, 네 말이 맞네’ 하고 몇 번의 트러블이 있은 후로 아이에게 직접 해보게 한다. 그러면 십중팔구는 엄마의 말이 맞다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물론 상황이 길어지고, 기다려야 하고, 인내해야 하고, 답답하기도 하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아이는 직접 경험해보게 되고, 성공과 실패를 하며 지식을 얻게 된다. “엄마는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요?”, “어떻게 그렇게 잘해요?”로 상황이 아름답게(?) 마무리된다. 이러면서 우리 부모님의 마음도 알게 되는 것 같다. ‘내가 이래서 답답하셨겠구나.’, ‘이럴 때 못마땅하셨겠구나.’ 하는 마음들 말이다.

목사님께서도 ‘경험을 능가할 지식은 없다.’는 말씀을 자주 하신다. 어렸을 때부터 듣고 자라왔던 터라 그렇다고 생각은 했지만, 막상 내가 경험해보고 깨달아보니 정말 경험을 능가할 지식은 없구나 하고 와닿았다. 물고기를 잡아주지 말고 잡는 방법을 가르치라고 말씀하신 것도 같은 이치리라. 잡는 과정을 통해서 잡기도 하고, 놓치기도 하고, 어떻게 하면 잡히는지 경험을 해야 나중에 혼자서도 잘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육아의 최종 목표는 독립이듯 부모는 아이에게 많은 경험을 시켜줌으로써 아이를 독립된 인격체로 성장시키게 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부모 또한 성장하게 된다.

인생을 살다 보니 이해 안 되는 사람도 많고, 답답한 상황도 많았다. ‘왜 저럴까, 나라면 저렇게 하지 않을 텐데, 저거 잘못됐는데….’ 나도 모르게 사람들을 판단하게 된다. 이런 생각이 들 때면 예전 경험을 떠올리며 마음을 제어하곤 한다. ‘까닭이 있겠지, 내가 모르는 상황이 있겠지, 다 이유가 있겠지….’라고. 그리고 정효경, 너나 잘하라고.

요즘 문화와 시대적인 배경을 앞세우며 우리가 경험한 하나님을, 하나님 말씀과 뜻을 왜곡시키는 일들이 많이 생긴다. 제사와 고사를 문화라고 인정하여 신앙과 타협하기도 하며, 아이들에게 아동복지법이라는 이름으로 종교를 강요하면 안 된다고 하는 억지스러운 부분들이 그렇다. 학대와 훈육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 말씀으로 아이를 올바르게 성장시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부모로서의 책임이자 사명이다. 목사님 말씀처럼 자기의 경험한 바를 어떤 문화적인 지식 앞에 팔아먹는 자야말로 어리석은 자가 아닐까?

정효경 집사

happy_holly@naver.com

짧은 이야기

전념

총회장 목사님께서는 설교 때마다 “가장 행복한 사람은 목숨을 걸 만한 일을 찾아내고, 그 일에 전념하는 사람입니다.”라고 자주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사실 목숨을 걸 만한 값진 일을 찾아내는 것도 어렵지만, 그 일을 하는 데도 대단한 용기와 각오가 동반되는 것이니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종교개혁을 한 루터가 그랬습니다.

어느 날, 그는 친구와 폭우가 쏟아지는 길을 걷다가 낙뢰가 떨어져 그 자리에서 친구는 죽고 자신만 살아남았습니다. 그 일을 계기로 그는 자신이 가야 할 길이 무엇인지 깨닫고는 학업을 중단하고 아버지의 만류를 뿌리친 채 수도원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교회의 타락을 보면서 자신이 목숨을 던져 해야 할 일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종교개혁이었습니다.

당신에게 목숨을 걸만한 일은 무엇입니까? 돈 버는 일입니까? 아니면 명예를 얻는 일입니까? 그것들을 위해 노력은 해야 하겠지만 그것은 목숨을 걸 만큼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에게 정말 귀한 일은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일입니다. 주님은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이 한 목숨 바쳐 그분이 주신 사명을 감당해야 하지 않을까요?

글꾼의 신앙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

예루살렘교회로 신앙의 터전을 옮긴 지 얼마 후 1990년 4월 22일 조장 대표로 나가서 이초석 목사님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았다.

처음으로 목사님을 가장 가까이에서 뵐 수 있었다. 목사님 주위에는 항상 많은 사람이 안수를 받았고 신앙상담을 했었다. 내가 목사님께 상담하지 못했던 것은 차량 봉사를 했으므로 의정부 성도들을 기다리게 할 수 없었다. 또 교회를 옮겨온 일 외에 특별히 상담할 일도 없었다. 그렇게 목사님께 나의 존재를 드러내지 못한 채 먼발치에서 신앙생활에 열심을 내었다.

조장 임명장을 받는 날, 나는 친지들에게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이유는 4월 21일 토요일, 육신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시므로 장례식에 참석한 친지들이 아비가 죽었는데 교회 간다고 이구동성으로 비난을 했고, 맏아들로 상주인 내가 대문 밖을 나가지 말아야 하는 것이 유교의 전통(傳統)장례법이라며 비난을 했다. 한마디로 아비가 죽었으니 교회 가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에게는“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눅9:60)는 예수님의 말씀이 있었기에 세상없어도 주일은 성수하는 믿음이었다. 한 번도 주일을 범하거나 수요예배, 철야예배, 구역예배를 빠지지 않는 신앙이었다.

하나님의 은혜로 다음날 기독교식 장례를 마쳤다. 친지들에게 감사의 인사와 함께 여비도 자신들의 조의금보다 더 많이 줄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고 축복이었다. 교회 간다는 비난은 받았지만 예수 믿으라고 분명히 전했고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을 확실히 보여줄 수 있었으니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였다.

또한 우리 부부는 둘 다 조장이었다. 구역예배를 돌아가며 드리는데 내 차례, 내 아내 차례와 내 구역 식구들 중에 자기 차례에 갑자기 예배를 못 드리면 우리 집에서 예배를 드렸다. 내 아내 구역 식구가 못 드리는 구역예배도 우리 집에서 드리니 우리 집에는 1주일에 두 번, 또는 매주 구역예배를 하나님께 드릴 때도 있었다. 우리 집에서 예배를 자주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고 하나님의 축복이었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은 하나님을 사모하고 가까이하는 자에게 주신다.

이승효 목사

신앙에세이

사랑해서 그래

우리 교회는 목사님의 안수기도와 귀신 축사 사역을 통해 병 고침을 받거나 어려운 환경에서 기적과 같은 기도 응답을 받아 교회를 다니게 된 분들이 상당수이다. 나 역시도 어렸을 적 어머니께서 목사님의 안수기도로 병이 나아 교회를 다니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우리 교회엔 열의로 가득 찬 분들이 참 많다. 사실 내 눈에는 조금 센 분들, 좀 유난인 분들로도 보였다. 기적을 체험한 분들이니 그럴 법도 하지만, 그러다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과연 성령 충만일까, 아니면 자기만족일까. 얼마 전 그 의문은 비로소 해소되었다.

최근 교회에 큰 사고들이 있었다. 한 장로님께서 교회 일에 충성과 헌신으로 기도원 식당 공사를 하시다 높은 곳에서 떨어져 소천하셨고, 한 청년은 성전에서 스크린 작업을 하다 떨어져 크게 다쳤다. 예배 중 중보기도를 요청하는 그 소식을 듣고 다 함께 통성으로 기도할 때 나는 답답한 마음에 하나님께 푸념 섞인 기도가 나왔다.

“하나님, 이건 좀 아니지 않나요? 왜 우리 교회는 항상 이렇게 유난이죠? 왜 늘 이렇게 일을 밀어붙일까요? 그러다 저렇게 사고가 나는 게 맞는 걸까요? 도대체 왜 그러죠?”

그 순간 갑자기 마음속에 강한 성령님의 음성이 들렸다.

“얘네들은 나를 사랑해서 그래.”

전율이 오며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유난이라 생각했던 그분들의 열심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표현이었다. 그저 사랑이었다.

“제자들이 보고 분개하여 이르되 무슨 의도로 이것을 허비하느냐 이것을 비싼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거늘 예수께서 아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 여자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마26:8~10).

박찬영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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