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순종
나는 신학교 개강에 앞서 신학생들에게 영적 훈련을 시키고자 기도원으로 집결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신학장 이시대 목사는 교수진들도 이에 동참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고, 더는 이를 전국 교역자 금식기도로 확대하면 좋겠다는 의사를 표했다. 나는 그 의견을 수렴하여 전국 교역자에게 기도원으로 집결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런데 내가 깊이 기도를 해보니 그게 아니었다. 원래 취지대로 신학생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옳다는 감동을 주셨다. 나는 이 사실을 학장에게 전했다. 그랬더니 학장은 두말하지 않고 ‘네, 알겠습니다.‘ 한다.
이시대 목사의 의견은 분명히 좋은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교역자들도 금식기도 해야 합니다. 이왕 발표했는데 그냥 하시죠.’라고 토 달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그는 나를 믿기 때문이다. 내가 당연히 더 좋은 방향으로 인도할 것을 그는 믿는다.
아브라함이 백세에 얻은 아들을 제물로 드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아멘’ 한 것은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이삭을 통해 열국의 아비가 된다는 말씀을 확고히 믿기에 순종할 수 있었다.
주님께 순종하는 것은 믿음이 없으면 할 수 없다. 하나님이 올림픽공원으로 교회를 옮기라고 말씀하셨을 때, 때마침 어느 성도가 현찰 300억을 들고 와 성전을 짓자고 했다. 충분히 흔들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했다. 하나님이 더 좋은 것으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줄 온전히 믿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히브리서 11장을 ‘믿음의 장’이라 부른다. 거기에는 믿음의 선친들의 행적이 기록되어 있다. 노아가 비 한 방울 본 적은 없지만,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오랜 세월 동안 방주를 지었다는 이야기 등등….
‘믿음의 행적’이란 곧 하나님의 말씀에 따른 순종의 행적을 말한다. 참된 믿음은 하나님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것이다.
‘순종=믿음’이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삼상15:22).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약2: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