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만은 타협의 대상이 아니다
목사님은 명절 때가 되면 ‘신앙에는 타협이 없다’는 설교로 우리의 영적 정신무장을 주문하신다. 그러나 어찌 이것이 명절 때에 국한된 문제이겠는가. 이는 우리 인생의 바다에 수시로 넘실대는 파도와도 같은 일이기 때문이다.
“인간관계, 사업관계, 정치, 외교 등을 망라하는 수많은 문제에는 반드시 주고받는 타협의 기술이 필요합니다. 성공적인 타협을 통해 서로 윈윈하는 길을 찾는 것이 인생의 지혜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절대, 결코 타협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신앙만은 결코 타협의 대상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지 말라는 것은 목숨을 걸고라도 지켜야 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우리 믿음의 선친들이 타협 없는 신앙의 길을 가느라 무수한 죽임, 환난과 핍박을 당해야 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의 이야기는 모든 신앙인의 귀감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왔으나 느부갓네살왕의 총애를 받으며 높은 지위에 올라간 사드락과 메삭, 아벳느고. 이를 시기한 무리들이 그들을 죽이고자 왕에게 참소합니다. 왕이 세운 금신상에 절하지 않는다고 왕에게 고발한 거지요. 느부갓네살왕은 그들을 아꼈기에 기회를 주고자 했지만, 사드락과 메삭, 아벳느고는 단호했습니다.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리 아니하실찌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단3:16~18). 그 결과가 어떠했습니까? 칠 배나 뜨겁게 극렬히 타는 풀무불에 던져졌으나 하나님의 보호 아래 그들은 머리털 하나 그슬리지 아니했습니다. 이에 그들을 참소하던 자들이 오히려 풀무불에 던져지고 사드락과 메삭, 아벳느고는 더욱 높임을 받았습니다(단3:26~30).
다리오왕 치하에 세 총리 중 하나로 출세한 다니엘도 동일한 위기에 처했습니다. 다른 총리와 방백들이 다니엘을 죽이고자 왕으로 하여금 ‘30일 동안 왕 이외의 다른 신에게 기도하면 사자굴에 던져 죽인다’는 조서에 사인을 하게 했습니다. 다니엘은 그 사실을 알고도 매일 세 번씩 예루살렘을 향하여 무릎 꿇고 기도합니다. 방백들의 참소에 왕은 어쩔 수 없이 다니엘을 사자굴에 던졌으나 다니엘 역시 하나님의 보호 아래 머리털 하나 상하지 않았습니다. 역시 참소하던 자들이 사자 밥이 되었고, 다니엘은 다리오왕 치세뿐 아니라 고레스왕 치세에까지 형통했습니다(단6:3~28).
어디 이들뿐입니까? 초대교회 시절, 예수를 믿는다는 사실 하나로 수많은 크리스천들이 순교의 길을 가야 했습니다. 우리 교회 역사에도 구한말 김대건 신부의 순교가 있었고, 제사를 거부하다 엄청난 핍박과 순교를 당한 크리스천들이 많습니다. 또한 일제 치하에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주기철 목사를 비롯한 많은 크리스천들이 순교를 당했습니다.
저는 집안의 장손이었지만 예수를 믿고 제사를 거부하다 집에서 내쫓겼습니다. 그래도 타협하지 않았더니 우리 집안에 동생들, 아들, 조카까지 주의 종이 되었고, 저를 내쫓았던 어머니까지 구원하는 역사가 있었습니다.
직장에서 돼지 대가리 앞에 절하라는 상사의 눈치를 보고 있습니까? 명절 제사에 전전긍긍하고 있습니까? 아닙니다. 신앙만은 타협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교인 중에도 이를 거부하고 더욱 승승장구하며, 주일에 일하라는 것을 단호히 거부하고 나와 사업가로 성공한 자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일입니다. 네가 하나님보다 더 강한 자면 하라는 겁니다(고전10:22).
다니엘처럼, 사드락과 메삭, 아벳느고처럼, 우리 믿음의 선친들처럼, 저처럼 타협 없는 신앙으로 하나님께 인정받고 사랑받는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