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력(創意力)
무섭게 발전하고 있는 과학기술, 과연 그것이 우리를 어디까지 데려다 놓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 때가 있다. 그것은 결과적으로 인간에게 득이 될까, 아니면 돌이킬 수 없는 해가 될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우리는 지금 너무나 똑똑하고 정밀한 기계와 경쟁 중이다. AI나 로봇, 컴퓨터화된 기계들…. 그것들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각 분야에서 대활약을 하고 있다. 열 사람, 아니 백 사람이 할 일을 로봇 하나가, 기계 한 대가 거뜬히, 그것도 실수 없이 해낸다. 그것들은 인권 보장이란 이유로 투쟁도 하지 않으니 기업 입장에서는 기계화나 로봇화를 회피할 이유가 없다. 무인 점포, 무인 주유소, 인터넷뱅킹, 인터넷 쇼핑…. 가까운 예다. 이것이 결국 나중에는 전문적인 분야까지 접수할 것이고, 결국 인간은 인간이 만든 것들로 인해 실업을 피할 수 없게 되고, 잉여인간으로 남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찌해야 하는가? 길은 없는 것인가? 헤밍웨이는 자신의 마지막 역작이었던 ‘노인과 바다’에서 이렇게 말했다. “But Man is not made for defeat(인간은 패배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다)!” 맞다. 하나님은 분명 우리에게 세상을 지배하고 정복하고 다스리라고 하셨다. 하나님이 만든 사람이 자신이 만든 기계에 눌려 살기를 원치 않으실 거다. 그렇다면 방법도 주시지 않았을까.
하나님은 모든 만물을 창조하셨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실 때 당신의 형상대로 만드셨다. 이미 우리 속에 창의력을 탑재하셨다는 말이다. 새로운 것을 생각해내는 능력을 주신 것이다. 그래서 창조는 하나님 영역이지만, 창의는 우리 것이다. 그런데 그 길은 무궁무진하다. 다만 고정관념, 고착된 사고를 깨야 가능하다.
나는 늘 우물 안 개구리 사고를 벗어나야 한다고 성도들과 특히 젊은이들에게 강조, 또 강조한다. 패러다임의 전환, 생각의 물구나무서기 등이 절실함을 늘 주장한다. 그러면 길이 보인다. 우물이 넘쳐야 개구리가 우물 밖 세상을 볼 수 있듯이, 사고의 틀이 깨질 때 남이 가지 않은 길이 보인다.
길이 없는 것이 아니다. 찾지 않은 것뿐이다. 그것이 우리가 살 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