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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8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거센 파도도 선장의 마음을 읽는다(막4:34~41)

1158호 · 2022-07-17

여러분, 개장수 앞에서 개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아십니까? 아무리 맹견이라도 개장수 앞에서는 바들바들 떱니다. 왜 그러냐면, 개가 개장수의 마음을 읽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잡아가서 죽일 사람이란 걸 느끼기에 사나운 개도 개장수 앞에서는 맥을 못 추는 겁니다. 반대로 개 앞에서 겁내면요? 개가 압니다. 그래서 짖어대고 심지어 물기도 합니다.

악한 마귀가 딱 이렇습니다. 개가 ‘으르렁’하고 겁을 주는 것처럼, 마귀는 잔뜩 겁을 줍니다. 그때 떨면 마귀가 ‘이거 별거 아니구나.’ 하고는 꽉 물어버립니다. 그러나 개 앞의 개장수처럼 딱 버티면 마귀가 ‘안 되는구나.’ 하고 떠나갑니다.

2003년 키르기스스탄 집회에 갔을 때의 일이 생각납니다. 한 당국자의 고발로 인해 저는 KGB에 출두한 적이 있습니다. 울던 아이도 울음을 멈춘다는 바로 그곳에 감금되었습니다. 슬라바 목사와 저는 스산한 기운이 감도는 콘크리트 건물 안에서 한참을 대기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담대했습니다. 아니 제가 귀신을 쫓는 자인데, 귀신이 ‘으르렁’거린다고 겁내겠습니까? 되레 귀신이 제 앞에서 떨어야지요. 슬라바 목사와 저는 KGB요원을 만났을 때 담대하게 “할렐루야!”하고 악수를 청했고, 슬라바 목사는 러시아어로, “이 목사님은 세계 72개국에 복음을 전하시는 분이다. 이 목사님께 손대면 세계가 당신 나라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라고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마귀가 우리의 마음을 읽었을까요, 안 읽었을까요? 당연히 읽지요. “아~, 이 사람들은 겁줘도 안 통하는구나.” 하고 떠나자 우리는 모든 혐의를 벗고 그곳에서 나올 수 있었습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해외집회에 가면 거의 야외집회인 경우가 많은데, 바람이 세차게 불거나 소낙비가 쏟아지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마귀란 놈이 으르렁거리는 거지요. 그때 제가 요동합디까? 현지 목사들을 비롯한 집회 스태프들은 우산을 쓰기도 하고, 비를 피해서 단 아래로 들어가기도 하면서 난리를 쳐도 저는 꿈쩍도 하지 않고 집회를 계속합니다. 마이크가 나가면 육성으로 하고, 라이트가 나가면 컴컴한 그대로, 사람들이 없어도 몇몇 사람을 놓고도 그대로 집회를 진행했습니다. 악한 마귀란 놈이 제 맘을 떠보고 흔들어 보지만 그놈의 장난에 흔들릴 제가 아니지요. 그랬더니 비가 오다가 멈추고, 성령의 역사가 더욱 강하게 일어났습니다. 여러분도 영상을 통해 다 보셨습니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잠4:23).

여러분,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 어떤 마음으로 일을 대하느냐가 중요한 겁니다. 다윗의 경우를 볼까요? 골리앗이 나타나자 다들 두려워 떨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달랐습니다. 다윗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삼상17:45)하고 당당히 말했습니다. 이런 마음을 마귀도 알았습니다. ‘이놈은 예사 놈이 아니구나.’ 해서 장난을 못 쳤기에 물맷돌이 정확히 골리앗을 맞춘 겁니다.

지난주 기도원에 있는데, 서울 성도가 전화를 했습니다. 남편이 쓰러져서 대소변을 다 받아내는 지경이라는 겁니다. 이렇게 사느니 그만 천국에 가고 싶다는 내용의 전화였습니다. 나이를 물어보니 이제 겨우 60대 초반이라는 겁니다. 저는 그들에게 이제 60대가 천국에 갈 생각을 하냐고 호통을 친 후에 전화를 받은 아내에게, “남편에게 정확한 의사를 밝히라고 해라. 이대로 천국에 갈 거냐? 아니면 더 살고 싶냐?”라고 했더니, 남편 말이

“이대로 살 거면 천국에 가고 싶다.”는 겁니다. 저는 “그러니까 이대로 사는 게 아니라 낫는다면 더 살겠다는 거지?”라고 물었습니다. 남편은 그렇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고 기도해주며 목욕하라고 했습니다. 다음날 다시 연락이 왔습니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 혼자 화장실도 가고 그랬다는 겁니다. 할렐루야! 왜 제가 그 남편에게 정확한 의사를 타진했느냐 하면, 그의 마음을 알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절대 사람의 마음을 초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가고 싶다면 데리고 가시거든요.

제가 늘 말씀드리지요? 우리 마음속에는 두 마리의 짐승이 살고 있다고요. 긍정이란 놈과 부정이라는 놈 두 마리가 우리 안에 살고 있습니다. 어느 것이 우세하냐? 그것은 우리가 어느 쪽에 먹이를 더 주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안 된다, 할 수 없다, 팔자야.’라며 부정이란 놈에게 먹이를 자주 주면 그놈이 세져서 긍정을 누르고 부정이 우리 삶을 지배하게 됩니다. 그러나 ‘나는 할 수 있다. 모든 것이 가능하다. 잘 될 거야.’ 하는 자는 긍정이란 짐승에게 먹이를 주는 셈이어서 그것이 더 세져 내 삶을 긍정적으로 끌고 갑니다.

하나님만 우리의 중심을 보는 게 아닙니다. 마귀란 놈도 우리의 중심을 봅니다. 곧 영적 전쟁의 최전방은 우리 마음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모든 싸움이 마음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마음에 이기면 다 이기는 것이고, 마음에서 지면 이미 다 지는 겁니다.

마귀는 늘 우리에게 두려움, 걱정, 불안, 초조…. 이런 것들을 줍니다. 그런 환경을 자꾸 만듭니다. 그걸 이겨내지 않으면 마귀의 궤계에 지고 마는 겁니다. 그러나 우리가 누굽니까? 우리의 신분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을 받은 자들이 아닙니까? 두려울 이유가 없지요. 불안해하거나 걱정할 이유가 없지요. 그건 마치 총을 들고 멧돼지를 두려워하는 것과 같지 않습니까? 에프킬러를 들고 모기에 물릴까 걱정하는 것과 같지 않습니까?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랬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과 함께 배에 탄 제자들이 난리가 났습니다. 갑자기 광풍이 불어대서 배가 출렁이고 배에 물이 차올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무시던 예수님을 깨웠습니다. “선생님, 주무실 때가 아닙니다. 우리가 다 죽게 되었습니다.”라며 수선을 떱니다. 그러자 일어나신 주님이 바다와 파도를 꾸짖어 잠잠케 하신 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막4:40).

여러분, 환경이나 여건에 마음이 흔들리는 것은 믿음이 없는 겁니다. 마귀에게 빌미만 주는 꼴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면 하나님의 자녀답게 담대해야지요. 명령만 하면 예수님처럼 파도와 바람도 잠잠케 되는데, 하늘의 것과 땅의 것, 땅 아래 것들이 다 복종하는데 허둥대며 난리를 쳐야 하겠습니까? 그러면 마귀란 놈이, “이놈은 조금만 더 흔들면 넘어져.”라고 판단하고 더 흔드는 겁니다. 그러나 “내가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귀신아 가라.”하고 명하면 “아이구야~” 하고 도망갑니다. 그래서 야고보 선지자는 말합니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약4:7).

그러면 마음을 어떻게 지킬 것이냐?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해서 성령 충만하면 마귀로부터 마음을 지키게 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4:6~7). 기도하면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십니다.

바다에는 항상 파도가 있듯, 우리 삶에도 늘 파도가 밀려옵니다. 파도를 바라보고 두려워하면 절대 바다에 나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파도가 오더라도 ‘나는 가리라’ 하면 파도도 선장의 마음을 알고 잠잠케 됩니다.

구더기 무서워서 장을 안 담그면 평생 장을 얻어먹어야 합니다. 구더기가 생기면 구더기를 제거하면 됩니다. 파도가 무서워서 평생 배를 항구에 매어 놓을 수는 없습니다. 악한 마귀가 두려워서 아무것도 못 한다니 말이 됩니까? 예수 이름으로 담대하게 나가면 마귀는 떠납니다. 그래서 믿는 자에게 기도는 전부입니다.

7월 말에 청소년연합수련회가 있고, 8월에 하계산상집회가 있습니다. 모두가 참석하여 부르짖어 기도함으로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걱정하게 하는 악한 귀신을 내어 쫓아 문제를 해결합시다. 할렐루야!

두려움은

내 삶과 신앙에 암이다

생각이

결과를 몰고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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