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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6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소망의 열도와 기도의 응답은 정비례한다(막11:21~24)

1156호 · 2022-07-03

제가 처음 예수를 믿고 나간 교회는 작지만 참 뜨거운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 성도 대부분이 기도를 할 때면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하는 겁니다. ‘이게 뭐지?’ 궁금해서 물어보니 방언기도라는 것이었습니다. 방언을 받아야 하나님의 자녀가 된 표적이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들으니 꼭 방언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을 찾아가서

“나도 방언이라는 것을 받고 싶습니다. 누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하는데, 저도 듣고 싶습니다. 가능할까요?” 하고 물었습니다. 목사님은 회개하고 부르짖어 기도하면 받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어서 받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퇴근하기가 무섭게 교회로 달려가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나도 방언을 주세요. 그게 하나님의 자녀가 된 표적이라잖아요. 나도 주세요.” 하며 죽기 살기로 기도했습니다. 며칠이나 지났을까, 갑자기 제 입에서 “더더더더” 하는 소리가 나왔습니다. 기도에 동참했던 성도들은 ‘이 사장님이 드디어 방언 받았다.’며 함께 기뻐했었습니다.

한 번 맛을 봤으니, 이제는 ‘하나님 음성을 들어야겠다’ 생각하고는 아예 교회 성가대 장의자에서 자리를 펴고 밤을 새우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방언도 주셨으니 하나님 음성도 들려주세요.” 하며 목청이 터져라 기도했습니다.

어느 날, 장의자에서 잠이 들었는데 갑자기 천둥 치는 소리처럼 큰 소리로 “고린도전서 14장 17절을 봐라!”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깜짝 놀라 잠에서 깼습니다.

“이게 뭐지?” 잠시 동안 정신이 없었습니다. 마치 어린 사무엘이 처음에 하나님의 음성을 몰랐던 것처럼 저도 그랬습니다. 그러다 ‘아! 이거구나.’ 하고는 얼른 성경을 폈더니, 거기엔 “너는 감사를 잘하였으나 그러나 다른 사람은 덕 세움을 받지 못하리라”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제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하는 소망이 너무 큰 나머지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면서 기도했는데, 그것이 다른 성도들에게 폐가 되었나 봅니다. 자상하신 하나님이 ‘음성을 들려줄 테니 좀 살살해라.’ 그러신 것입니다.

어찌 되었든 저는 소망하던 일을 모두 이뤘습니다. 이것을 통해 저는 ‘소망의 열도는 기도의 응답과 정비례한다’는 공식을 하나 배웠습니다. 화력이 세면 물이 금방 끓어오르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을 아시죠? 귀신 들린 어린 딸을 둔 그 여인은 예수의 소문을 듣고는 물어물어 예수님을 찾아와 간구했습니다. 간구(懇求)가 뭡니까? 소원하는 것을 이뤄달라고 비는 겁니다. 그런데 주님의 반응은 전혀 예상 밖이었습니다.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막7:27). 그러나 더 놀라운 것은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이 여인의 반응입니다.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아래 개들도 아이들의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막7:28).

딸을 고치고자 말겠다는 소망과 의지가 그 무엇으로도 꺾을 수 없을 만큼 강했던 것입니다. 이를 보신 예수님이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막7:29)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여인의 말을 통해 소망의 열도를 체크하시고 합격시키신 것입니다. 매일 재판관을 찾아간 한 과부 이야기(눅18:1~8)며, 여행 중에 찾아온 벗을 위하여 떡을 얻고야 말겠다는 어떤 친구 이야기(눅11:5~8)가 다 그런 것 아닙니까?

우리는 11차에 걸쳐 평화통일 기도성회를 했습니다. 왜 이렇게 자주 하냐고요? 왜 계속 하냐고요? 그건 평화통일이 우리의 소원임을, 평화통일에 대한 우리의 소망이 아주 뜨거움을 하나님께 보여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거 한다고 평화통일이 되겠어? 지금 북한을 봐봐. 전쟁이나 안 나면 다행이지.”라고 말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평화통일에 대한 소망도 없을뿐더러 믿음도 없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11:24)고 하셨습니다. 어떤 것은 되고, 어떤 것은 안 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믿으면 그대로 된다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시다가 시장하셔서 무화과나무에 다가갔으나 열매가 하나도 없자 무화과나무를 보시고는 저주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제자들은 그냥 그러시나 보다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에 보니까 어제 저주한 무화과나무가 뿌리까지 다 말라 죽어있지 뭡니까. 그제야 제자들이 깜짝놀라자 예수님은 왜 때가 되지 않은 나무를 저주하셨는지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막11:22~23). 하나님을 믿으면, 네가 기도한 것을 의심치 않고 믿으면, 산을 들어 바다에 던지는 것과 같은 절대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어느 새신자가 주일에 ‘믿음이 있으면 산을 들어서 바다에 던지는 것도 된다.’는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는 그날부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 앞산 때문에 시내에 가려면 돌고 돌아가야 합니다. 제발 저 산을 들어서 바다에 던지게 해주세요.” 새신자가 이런 기도를 한다는 소리가 담임목사님 귀에 들렸습니다. 담임목사님은 걱정이 앞섰습니다. ‘불가능한데, 새신자가 시험 들면 어쩌지….’ 그래서 목사님은 매일 새신자가 시험 들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두어 달쯤 지났을 때였습니다. 새신자가 목사님께 달려와서는 말했습니다. “목사님, 정말 하나님은 거짓말을 안 하세요. 글쎄 저는 제가 산을 들어서 바다에 던질 줄 알았는데 하나님은 제가 힘들이지 않고서도 산을 바다에 던지셨습니다. 시에서 나와서 온갖 장비로 산을 깎아 바다를 메우고 있어요.” 목사님은 새신자 앞에서는 “당연하지. 하나님을 믿으면 다 되는 거야.” 했지만, 밤에 울면서 “하나님, 제가 새신자보다 믿음이 없습니다.”라며 회개했다고 합니다.

기도한 것을 믿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불신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평화통일은 반드시 옵니다. 왜요? 그것은 하나님이 이미 계획하신 것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이렇게 지속적으로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의 소망의 열도를 재고 계십니다. 뜨겁나, 식었나 체크 중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평화통일을 이루는 날까지 이 기도성회를 하려는 것입니다.

로마서 4장에,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

(롬4:19~22)고 말씀합니다. 백세가 된 아브라함이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치 않고 믿었더니, 하나님이 그것을 ‘의(義)로 여기셨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기도한 것을 의심치 않고 믿는 것이 의로운 일입니다. 자녀를 위해, 기업을 위해, 교회를 위해, 국가를 위해 기도한 것을 의심치 않고 믿을 때 하나님이 이를 의로 여기사 우리가 기도한 그대로, 아니 우리가 기도한 것보다 더 좋게 이루시는 것입니다. ‘이건 되고, 이건 안 되고’, 내 맘대로 하나님을 재단하면 안 됩니다. 그건 불의(不義)요, 불신(不信)입니다. 그런 자에게 야고보는 단호히 경고합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약1:6~8).

아들을 갖고 싶은 한나의 소망이 태의 문을 닫았던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스승인 엘리야의 갑절의 영감을 얻겠다는 엘리사의 간절한 소망이 마침내 청출어람(靑出於藍)을 이뤘습니다. 가랑이 사이로 얼굴을 파묻을 만큼 간절한 엘리야의 기도가 3년 6개월 동안 닫혔던 하늘 문을 열고 단비를 내리게 했습니다. 당신도 그렇게 해보세요. 할렐루야!

손발은 묶여도

기도는 묶이지 않는다

살고자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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