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완전한 나를 사랑하자
불완전한 나를 사랑하자
완벽하면 인정받을 것만 같고, 사랑받을 것 같지만 생각해보면 완벽한 사람을 만나본 적이 있는가? 하나님 외에 완벽하고 완전한 존재는 없다.
‘불완전한 나를 사랑하자.’
사실 이 말은 나에게 하는 말이다. 평소 실수하면 스스로 질책을 강하게 하는 성격이다. 물론 나는 완벽하지 않다. 오히려 매번 실수해서 부족함이 많다고 느낀다. 그러다 보니 나를 사랑하기보다 나에 대한 불만족이 크다. 나에게 만족하기 위해 늘 채찍질하고, 더 멋지고 싶어서 고민도 하며 말한다. “넌 왜 그렇게 부족하니?”
생각해보면 사람은 누구나 실수하고, 반성하고, 내일의 멋진 나를 그리며 살아간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되레 약간의 허점이 보이는 사람이 편하지 않은가? 친구 집에 놀러 갔을 때 깔끔하게 정돈되어서 잘 꾸며진 집에 가면 조금이라도 어지르면 안 될 것만 같아 조심스러웠다. 그러나 지저분하지는 않지만 어딘가 모르게 정리가 덜 된 친구 집에 가면 마음이 편안함을 느낄 때가 있다. 사람도 그런 것 같다. 빈틈없이 완벽해 보이는 사람보다는 약간 틈이 보이는 사람이 다가가기 편하다. 사람은 누구나 완벽해지려고 노력은 하지만 실수는 늘 따라오게 마련이다. 그런 나를 혼내기보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보려 한다. 나를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보려 한다.
태초에 하나님은 예정하여 우리를 예쁘게 지으셨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나 또한 나를 진심으로 아끼며 사랑해줘야 한다. 이 귀한 진리를 이제야 깨달아간다. 그래서 오늘부터 하루에 한 번씩 나에게 사랑한다고 말해보려 한다. “사랑해!”
이인영 집사
우리가 모일 때 임하시는 주님
어느 날 큰아이 옆에 있는 커다란 벌레를 향해 약을 뿌리자 나동그라지는 꿈을, 또 바로 뒷날에는 아이가 담임 전도사님께서 지켜보시는 가운데 소속 부서에서 힘차게 간증하는 꿈을 꾸었다.
얼마 후, 하교하고 돌아오는 큰아이의 안색이 좋지 않더니 그대로 눕는다. 가정예배 시간이었지만 큰아이는 누워 있고 작은 아이와 둘이 찬송하고 기도하는 중에, 누워서 끙끙 앓던 아이가 벌떡 일어나며 “엄마, 귀신 좀 쫓아주세요, 머리가 너무 아파요!”라고 외쳤다. 귀신을 쫓고 나서 머리를 만져보니 불덩이었다. 이젠 괜찮다며 누워 쉬는 아이에게 집에 있던 해열제를 먹이자 그대로 열도 내리고 푹 자고 일어났지만, 등교 지침상 코로나 검사를 한 결과, 양성이었다. 아무 증상 없이 빠르게 회복하는 것을 보며, 전날 예배와 기도 가운데 하나님께서 치료하셨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리고 2, 3주쯤 후 꿈에서와 같이 아이가 부서 예배를 통해 짧지만 하나님 자랑하는 것을 보면서 어린아이들에게도 믿음을 심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했다.
코로나 기간을 계기로 일상이 된 가정예배는 어느새 영·혼·육을 회복시켜 주는 가정의 중심축으로 자리 잡았고, 무엇보다 아이들도 함께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경험하는 보물 중의 보물이 되었다. 무얼 잘못 먹었는지 입술까지 창백해서는 배를 부여잡고 침대에 구르던 아이가 함께 예배를 드리고 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 맛있게 밥을 뚝딱 떠먹는가 하면, 차만 타면 멀미로 고생하더니 예배하고 기도하고는 얼마 후 멀미가 사라졌다며 기도의 힘이라고 입술로 시인하는 것을 볼 때, 육신의 부모인 나도 기쁜데 하나님 아버지는 얼마나 기쁘실까. 합심하여 기도하던 제목이 응답 되었을 때, 두 눈이 동그래지며 정말 하나님이 우리 기도를 들으셨다고 기뻐하는 모습에서 왠지 빙그레 웃으시는 예수님의 얼굴이 그려진다. 나아가 예수님의 기도, 목사님의 기도의 모범이 이젠 우리 세대뿐 아니라 어린 세대에도 그대로 이어지는구나 싶어 가슴이 벅차고 나 또한 본이 되어야 한다는 거룩한 부담감도 생긴다. 아울러 ‘예수의 이름으로’ 모이기에 더욱 힘써야 함을 깨닫고, 또 다짐하게 된다
(마18:20).
이국진 사모
joyful_jina@hanmail.net
구도자 (求道者)
구도자(求道者), 도(道)를 구하는 자라는 뜻이다. ‘도를 아십니까?’ 흔히 길거리에서 들어보는 말이다. ‘길을 아느냐, 진리를 아느냐’는 물음이다.
그 길, 영생에 이르는 길, 세상만사 모든 걸 초월한 경지에 이르는 길, 그 길을 찾기 위해 유사 이래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던졌다. 그들의 치열한 고행과 수행은 오늘날 우리가 흉내 내기도 힘들다. 석가, 노자, 공자, 소크라테스, 또 무수한 선인들이 그 길을 찾기 위해 죽음을 마다하지 않았다. 하늘의 뜻, 하늘의 명을 알기 위해 일생을 바쳤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그 길을 가르쳤다. 제자들은 스승이 가봤던 길까지는 가르침에 의해 따라가 보지만, 그 이후 가야 할 길은 혼자 가야 한다. 다시 찾고, 다시 길을 내야 한다. 그러나 어찌 그 길을 찾아갈 수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길을 찾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다. 참 지식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생을 마치고 천국 가는 그 어두컴컴한 우주를 어떻게 건너갈 수 있는가. 인간의 힘과 의지로 갈 수 있는 길이 아니다. 오직 의탁하고 주께서 손 내밀어 주셔야 갈 수 있는 길이다. 천사에 들려서 가는 길이다. 거지 나사로도, 선지자 엘리야도 그렇게 천국을 향했다. 혼자 갈 수 없다. 그래서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내가 가는 곳에 그 길을 너희가 알리라 도마가 가로되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삽나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1~6).
그 주님은 온 우주를 말씀으로 지으신 후 육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 그분은 창조주이시다. 모든 욕심을 버리고 주님께 온전히 의탁할 때 주님께서 안내하실 것이다. 아멘.
이광주 목사
leekjlkj@naver.com
하루 한장
우리 교회에는 매년 성경을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읽는 것으로도 부족해 매일 손으로 쓰는 장로님이 계시지요. 아마도 여러 성도님이 그러실 듯합니다. 반면 저는 모태신앙임에도 불구하고 성경을 통독한 적이 없습니다. 심령에 새기고 있는 성경 구절들은 있지만, 요한계시록조차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본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오늘 아침 읽은 성경 말씀이 요한계시록 22장이었습니다. 오늘로써 요한계시록을 다 읽었네요.
저는 매일 아침 하루 한 장씩 성경을 읽습니다. 하루에 한 페이지가 아니라 성경 말씀 딱 한 장이에요. 어제는 요한계시록 21장을 읽었으니까 오늘은 요한계시록 22장을 읽고 내일은 창세기 1장을 읽는 식입니다. 성경책을 펼쳐 보면 아시겠지만 성경 말씀 한 장은 정말 짧습니다. 곱씹어 읽어도 5분을 채 넘기지 않아요. 이렇게 성경 읽는 습관은 재작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새해가 되면 교회 입구에서 안내하시는 분이 교회신문과 함께 성경읽기표를 나눠주십니다. 그 표에는 365개의 날짜와 요일, 그날 읽을 성경말씀 한 장과 읽었는지 체크하는 빈칸이 있습니다. 2020년 1월 1일 역대상 24장을 읽기 시작해 하루 한 장씩 읽었더니 오늘 요한계시록 22장까지 읽게 되었습니다. 읽기표대로 읽는다면 올해 말에는 여호수아 5장을 읽고 내년 초에는 마침내 성경을 통독하게 됩니다.
성경을 꾸준히 읽어보려는 시도를 여러 번 했었지만 매번 보름도 못 가서 흐지부지되곤 했었습니다. 저에겐 하루 한 페이지도 습관 들이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일 년 안에 성경을 통독하기란 너무 벅찬 목표였지요. 읽어야 할 분량이 꽤 많아서 하루만 밀려도 다음날 읽을 분량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금세 포기하게 되더라고요. 하지만 하루에 말씀 한 장은 부담되지 않았습니다. 웬만해서는 반의반 페이지도 안 되거든요. 편한 마음으로 가볍게 하루 한 장씩 읽었더니 너무나도 쉽게 습관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성경을 읽고 난 후 읽기표의 빈칸에 ‘v’ 자로 표시하는 쾌감도 꽤 큽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곧바로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침대맡에 둔 성경을 읽습니다. 요즘은 이 루틴에 찬송가 부르기가 추가되었습니다. 작은 아침 예배로 변한 거지요. 기도하고 찬송가 한 장을 부르고 성경을 한 장 읽고, 읽은 구절에서 오늘 꼭 실천할 것을 마음에 새기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오늘 마음에 새긴 구절은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는 복이 있다’라고 말씀하신 요한계시록 22장 14절입니다. 죄를 짓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매일 밤 돌이켜보면 죄를 짓지 않은 날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가 지나기 전에 때 묻은 두루마기를 빨 듯 회개하여 희고 정결한 두루마기를 입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려고 합니다. 성경대로 살지 못하는 날이 많아서 매일 반성하고 회개하는 날들의 연속이지만, 그 또한 성경을 읽음으로써 죄가 죄인 줄 깨닫고 회개할 수 있으니 감사합니다.
하루 한 장, 하루 5분, 정말 짧은 시간이지만 이 시간이 저의 하루를 세워주고 있습니다. 혹시 성경 읽기가 아직 습관이 되지 않는 분이 계신다면 저처럼 하루 딱 한 장으로 시작해보면 어떨까요? 내일 아침부터가 아니라 바로 지금부터 말이에요.
신은혜
dopal0203@naver.com
최대의 수비
총회장 목사님이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서 집회를 할 때였습니다.
어느 집회를 가나 있는 일이지만 거기에도 방해세력이 대단했습니다. ‘이단이 왔으니 조심하라’는 광고가 교포신문에 실렸습니다. 이를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목사님을 초대한 김 박사님의 대응책은 남달랐습니다. 그분은 신문 전면광고를 주문하여, “독수리와 참새가 어떻게 다른지 와보라.”라는 대문짝만한 광고를 실었고, 순식간에 모든 파문을 잠재우고 말았습니다. 그랬더니 오히려 사람들이 더욱 몰려들어 집회를 성황리에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전화위복을 맞은 셈입니다. 최대의 수비는 최대의 공격입니다. 추울 때 이불 속에만 들어앉아 있으면 더욱 몸이 움츠러들 뿐입니다. 추울 때일수록 나가 뛰면 땀이 나고 열이 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져 있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처럼 담대하게 앞으로 진군하기를 원하십니다.
어려운 일이 닥쳤습니까? 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부딪쳐 해결하십시오. 그것은 골리앗처럼 무너지는 허상에 불과합니다.
최대의 수비는 적극적인 공격입니다.
참된 스승은 누구일까?
논어에 ‘삼인행 필유아사(三人行必有我師)’라는 말이 있습니다. 세 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는 말인데, 해석을 들어보면 재미있습니다. 세 사람 중 나보다 나은 점이 있는 사람에게는 좋은 점을 배우면 되고, 나보다 못한 점이 있는 사람에게는 그렇게 행동하지 않아야겠다는 점을 배우면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 교회의 스승은 당연히 목사님입니다. 누구보다도 많이 기도하시고, 누구보다도 많이 사랑을 실천하시는 목사님을 보면 그 모습을 닮고 싶어집니다. 심지어 목사님께서도 성경 말씀(디도서2:7)처럼 스스로 본이 되는 삶을 살고자 노력하시는 것을 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습니다.
이번 기도원 집회를 앞두고 순교하신 오치환 장로님을 향한 사랑이 송사에 구구절절 담겨있었으며, 가족들을 위로해주시는 모습이 정말 참된 스승의 모습이었습니다. 길어야 사나흘 있다 가는 기도원에서 성도들의 숙소 때문에 이리저리 부심하시는 우리 목사님을 보고 있으면 절로 마음이 숙여집니다. 참 예수님을 많이도 닮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참된 스승의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십자가의 고난을 앞두고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셨고, 자신을 팔려는 가룟 유다마저 끝까지 사랑하셨던 모습을 보이셨습니다(요13:1~11).
어쩌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스승의 삶을 살아라’ 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빛과 소금이 되라고 하신 것이 그렇습니다. 누구에게나 본이 될 만한, 우러러볼 만한 자가 되길 원하셨습니다. 그건 쉬운 일은 아닌 거 같습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거듭나면 가능해집니다. 우리의 옛 모습에는 본이 될 만한, 선망이 될 만한 어떤 모습도 없지만, 성령을 받으면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라는 성령의 열매가 맺히기 때문입니다(갈5:22~23).
참된 스승은 말로 가르치지 않습니다. 행동으로 보여줍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그러셨던 것처럼, 우리 목사님이 그러시는 것처럼.
우리 교회는 성령이 충만한 교회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세상에 본이 되는 참된 스승의 삶을 살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김대화
realdialog@naver.com
기도원 집회 후
하나님의 은혜로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온전히 기도원 집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확실히 과거에 하루씩 참석하던 때와는 차원이 다른 은혜와 감동을 받았다.
꿀 같은 메시지의 홍수 속에 무엇을 나에게 1순위로 적용해야 할지 고민해보았다. 그래서 집회에 쏟아진 많은 메시지를 종합하고, 또 종합하고 최종 요약해서 가장 적합한 한 문장으로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기도의 양을 늘리고 기도의 질을 높이자.’는 것이었다. 목사님께서 항상 말씀하시듯, 모든 문제의 원인은 기도의 부족 때문이라는 것이 정확히 깨달아졌다. 늘 들어서 익히 아는 말씀이지만 사실 정확히 아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 더 많이 더 깊이 기도하지 못했던 게 아닐까 싶다.
세계 최고의 부호 워런 버핏이 주주 서한에서 한 이야기가 있다. 부자가 될 수 있는 투자원칙을 묻는 많은 사람에게 ‘좋은 주식을 사서 길게 보유하라. 주식 고르는 안목이 없다면 S&P500 추종하는 인덱스펀드에 장기 투자하라.’라고 늘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 말의 의미를 실제로 알아차리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그건 이미 알고 있으니 다른 더 특별한 걸 이야기해달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사실을 안타까워했다.
복 받는 다른 많은 비결이 있을 수 있지만 결국 기도를 더 많이 하고 질 높은 기도를 해야 더 성령 충만해진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면 결국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기본 원칙에 답이 있다고 느낀다. 나 혼자 힘으로 해결해보려고 애쓰는 시간을 좀 줄이고 그 시간에 기도의 시간을 늘리는 것이 더 확실하고 빠르다.
불기둥, 구름 기둥으로 인도받던 우리가 이젠 가나안 땅에 도착했으니 우리 스스로 해내야 한다. 맡은 자리에서 더 집중해서 기도하고 애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넘치도록 준비된 성도가 되도록 함께 노력하자.
장명훈 집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