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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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 축복의 지름길

1146호 · 2022-04-24
To Be Succeeded

순종, 축복의 지름길

지난겨울, 주일에 있던 일이다. 그날은 체육관 사정으로 아들과 딸이 다니는 주일학교 예배도 온라인으로 송출되기로 예정된 날이었다. 그런데 전날 저녁, 담임 전도사님으로부터 아이들이 교육관으로 와서 예배를 드렸으면 좋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현장으로 올 수 있는 친구들이 예배드리는 영상을 송출하기로 한 것이었다. 이미 밖에는 눈이 펄펄 내리고 있어 잠시 망설여졌지만, ‘꼭 오라’는 말이 주님의 음성으로 들려서 다음날 아침 수북하게 쌓인 눈길을 지나 교육관으로 향했다.

아이들을 주일학교에 보내놓고는 익숙지 않은 곳이니 뒤쪽에 앉아서 예배를 드려야겠다고 마음먹고 대예배실로 들어가는데, 안내해주시는 담당 전도사님께서 “앞쪽에 앉으세요.” 하신다. 내 마음과는 달랐지만 앞쪽에 자리를 잡고 예배를 드리는데, 그날 하나님께서는 전혀 예상치 못한 은혜를 주셨다. 헌금송을 따라 부르는데 하늘로부터 폭포수 같은 은혜가 내 뱃속을 가득 채웠다. 나태함과 안일함에 져서 순종하지 않았더라면, 또 주변시선을 의식해서 순종하지 못했더라면 결코 받을 수 없었을 은혜였다.

순종한 모든 이들은 구원의 역사를 경험했다. 노아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100여 년간 방주를 만들어 대홍수 때 그 가족까지 모두 구원을 받았고, 아람의 군대장관 나아만도 어린 소녀와 주의 종 엘리사의 말에 순종하여 고질병이었던 문둥병을 고침 받았다. 다윗도 나단 선지자를 통한 하나님의 책망에 즉시 통회했기에 밧세바를 간음하고 우리야를 죽인 죄를 용서받았다. 그러나 체면과 자존심을 버리지 못하고, 하나님보다 사람을 두려워했던 사울 왕과 가룟 유다의 말로는 비참했다.

마귀는 불순종의 대명사로 아담과 하와를 속여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죄의 담으로 막히게 했지만,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죽기까지 순종하사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심으로 그 막힌 담을 허시고 구원과 생명의 문을 활짝 여셨다. 아들까지 내어주신 하나님이 간절히 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 바로 우리가 그분 말씀에 순종하여 우리의 영과 혼과 육이 윤택한 복을 받는 것이다. 나로 순종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이 게으름과 안일함이든, 자존심이든, 두려움이든, 그 무엇이든 싸워서 이기고 주님 뜻대로 순종하여 복 받는 삶들이 되기를 원한다.

이국진 사모

생명의 말씀

그의 의(義)를 구하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주님의 의(義)의 영문 성경 표현을 보고 무릎을 친 적이 있다. 의(義)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What God wants, What he wants)이라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든지 의가 된다.

내 소견과 판단에 의해 지나온 날들을 돌이켜보면 전도자의 말이 극히 공감된다. 언젠가 목사님께서 “너는 그래도 세상에서 누릴 것 누려봤잖냐?” 하셔서

“아이고, 아닙니다. 그저 조금 흉내나 내본 것입니다.” 하였다. 그 잘난 흉내로 교만했던 시절을 돌이켜보니 헛되고 헛되며 무익한 세월뿐이다.

언제 기도 응답을 받는가.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면 된다. 한나는 하나님이 태를 닫으셔서 임신치 못하여 첩 브닌나로부터 심한 수모를 받았다. 얼마나 오랫동안 눈물로 기도했는지 모른다. 마침내 한나의 기도가 상달됐다. “한나가 마음이 괴로와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서원하여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나를 생각하시고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사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삼상1:10~11). 그토록 원했던 아들이지만 여호와께 드린다는 서원이 하나님이 원하셨던 것

(義)이었다. 이스라엘을 구원할 선지자를 보내시고자 한나의 태를 닫으셔서 고통 받게 하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게 하셨다.

‘그의 의만 구하면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신다’고 약속하셨다. 하지만 그의 의를 구하는 일이 참으로 어렵고도 지난하다. 목사님께서 물으셨다. “네가 원하는 게 뭐냐?” 대답하지 못했다. 하나님의 의를 알 수 없었다. 지금의 고통을 통해 값진 미래로 인도하시는 것인지, 꼭 겪어야 할 산통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오직 주의 뜻대로 살기 원할 뿐. 참고 인내하며 인도하심을 기다린다. 참으로 감사하는 것은 주님께서 약속하시고 인도해주실 참된 삶을 확신하게 해주신 점이다. 그래서 장래에 주실 큰 영광을 위해 참고 기도한다.

모든 수고가 바람을 움키는 것과 같으니 오직 주님의 뜻만을 구하며 살리라. 아멘!

이광주 목사

낮은 울타리

나의 주 무리는 어디인가?

얼마 전 인터넷에서 한 영상을 보았습니다. 한 마리 강아지가 달릴 때 네발로 뛰는 것이 아닌 토끼처럼 껑충껑충 뛰는 영상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토끼 무리와 함께 자라다 보니 토끼에 영향을 받아 토끼처럼 뛰게 된 것입니다. 또, 그다음 영상에는 양이 나왔습니다. 강아지 무리에서 함께 자란 양은 강아지처럼 네발로 힘차게 뛰어다니는 모습이었습니다. 개와 양의 본성을 가지고 있지만 속해있는 무리가 다르다보니 그들에게 영향을 받아 그들처럼 변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듯 어쩔 수 없이 동물과 사람 모두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나의 ‘주 무리’에 영향을 받고 그 무리를 닮아가게 됩니다.

제가 대학교에 막 입학했을 때 학교생활이 너무 즐거워서 학교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었습니다. 학교 친구들과 놀기도 하고, 동아리에 들어가 주중 저녁 시간을 학교에 쏟았습니다. 그렇게 한 학기가 지나고 세상 무리에 속해 더 많은 시간을 보내다보니 어느새 세상 사람들처럼 말하고 세상 사람들처럼 생각하고 있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그전까지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었는데, 저의 주 무리가 바뀌니 이제 예수님이 아닌 그들을 닮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그 후 꼭 주중 기도모임과 예배를 사수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친구들이 그런 저를 미련하게 볼 때도 있었지만, 예수님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결단한 것입니다.

주로 어디서 누구와 시간을 보내십니까? 나의 주(主) 무리는 어디입니까? 개의 본성을 가지고 태어났어도 토끼 무리에 둘러싸여 있으면 결국 개의 본성을 잃고 토끼처럼 껑충껑충 뛰어다니게 됩니다.

크리스천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의 믿음과 신앙이 아무리 굳건하여도 내가 세상에서 시간을 더 많이 보내고 주님과 함께하는 시간을 줄인다면 나도 모르게 내 속에 있는 크리스천의 본성을 잃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항상 주의해야 합니다. 약한 우리를 위해 하나님은 주중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많은 모임과 예배를 허락하셨습니다. 세상에 있다가도 그 예배로 저희는 크리스천의 본성을 다시 회복하고 주님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매일 기도와 예배로 주님과 함께 하여 하나님과 더 많은 시간을 보냅시다. 나의 주 무리를 예수로 삼아 예수님을 더욱 닮아가는 예수중심교인이 됩시다!

장수정

GOOD NEWS

길의 선택에 따라서 목적지가 확연하게 달라집니다. 그래서 어떤 길을 선택하느냐가 굉장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아는 길도 물어 가라’와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라’는 속담처럼 매사 점검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특히 영생에 관련된 사항은 ‘내가 바른 길로 잘 가고 있나?’ 날마다 점검해야 합니다. 종교적 열심이 있다고 천국 가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한길 예수님 외에 다른 길은 없습니다. 예수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예수님을 믿지 않고는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없습니다.

얼마 전 등산을 갔다가 내려오는 길에 잠깐 생각을 빼앗겨 등산로를 벗어나 버렸습니다. 길을 찾는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다보니 해는 저물어가고 가는 곳마다 절벽만 나타났습니다. 가던 길을 멈추고 스마트폰의 GPS지도를 켜니 내가 있는 위치와 등산로 표기가 뜨기에 목표를 정하고 가다 보니 등산로를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살아가다가 길을 잃어버리게 되면 인생의 지도인 성경을 보고 다시 궤도수정을 해서 길을 찾아야 합니다.

세상에는 우리를 유혹하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돈, 명예, 쾌락 등, 달콤한 유혹에 빠져서 예수님과 멀어지면 그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합니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길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복 받는 길이고 영생복락의 천국 가는 길입니다.

상화평 목사

오해하지 마라

성도들이, 제자들이 나를 오해할 때가 종종 있다. 그럴 때면 생각이 깊다. ‘자식은 자식이구나, 제자는 제자구나.’ 생각한다. 누가 부모 마음을 알고, 누가 스승의 마음을 다 알까. 잘 되라는 부모의 당부를 잔소리로, 참견으로 오해하는 자식들. 잘 되라고 하는 스승의 징계를 저주로 받는 제자들….

나는 38년을 한결같이 ‘예수님이라면 어찌 하셨을까’ 생각하며 목회했다. 어찌하면 한 영혼이라도 살릴까, 어찌하면 저들을 성장시킬까, 어찌하면 저들을 잘 되는 길로 인도할까 부심하고 고뇌하며 기도했다. 진실은 진실된 자에게만 통하는 법, 그런데 저들은 이미 오해라는 틀에 갇혀 있으니 나의 진실과 진심이 통할 리 있겠나.

오해(誤解), 잘못 풀었다는 것이다. 오해는 상대에 대한 믿음이 떨어질 때 생긴다. 오해는 독버섯과 같다. 독버섯은 먹을 수 있는 버섯보다 아름답다. 그러나 사람을 죽인다. 오해는 더 타당해보이고, 그럴싸하다. 그러나 오해는 서로 원수 되게 하고, 결국 죽게 한다.

성경이 이를 증명한다. 골리앗을 무찌른 다윗에 대해 사울이 오해한다. ‘저런 인기라면 곧 내 자리까지 차지할 수 있겠는데?’ 했다. 다윗은 변한 게 없는데, 다윗을 향한 사울의 믿음이 떨어진 것이 원인이다. 이에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고 혈안이 되었지만, 결국 오해라는 독버섯을 먹은 사울이 죽었다.

아합이 선지자 미가야를 오해한 사건도 있다. 아람과 이스라엘이 길르앗 라못을 놓고 전쟁하려할 때 시드기야를 비롯한 400명의 예언자들이 이스라엘 왕 아합에게 전쟁을 하면 반드시 이길 것이라고 예언한다. 그러나 미가야는 반대했다. 아합은 미가야가 한 번도 좋은 말을 해준 적이 없다고 오해해서 미가야를 감옥에 가두고 전쟁에 나간다. 그러나 오해라는 독버섯은 아합을 죽였다.

가룟 유다는 예수로 인해 돈도 벌고, 명예도 얻을 줄 알았다. 오해였다. 그것이 아닌 것을 안 그는 예수님을 은 삼십 냥에 팔았고, 결국 오해의 독버섯으로 인해 그는 죽고 말았다. 가룟 유다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아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다.

믿음이 부활해야 한다. 믿음이 부활하면 모든 오해는 사라진다.

붕우

신앙에세이

오, 믿음이여

차를 타고 가다가 덜거덕 이상한 소리가 난다면, 안전한 곳에 차를 세워두고 확인을 하거나 가까운 정비소에 들러 점검을 해야 한다. 그런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면, 믿음의 사람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차에 이상이 없도록 명하고, 천사들이 차를 보호하도록 명할 것이다. 그리한 후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한 다음 그 차는 점검을 받아야 할까, 아니면 믿음이 연약한 생각은 접어두고 차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강한 믿음을 가져야 할까? 더군다나 동승자가 있을 경우 동승자에게 이 강한 믿음을 선포하며 의심하지 말라고 다그쳐야 할까? 점검을 받는다면 그것은 믿음이 없는 행동일까? 크리스천이라면 한 번씩은 빠질 수 있는 믿음의 함정인 것 같다. 어떠한 확인이나 조치도 없이 그저 믿음으로 명했으니 이제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하는 것은 문제를 외면하는 것은 아닐까? 더 나아가 동승자에게도 동일한 생각을 강요한다면 그것은 세뇌를 시키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확인을 하고, 점검을 하는 행위는 믿음이 없는 행동이 아니다. 오히려 문제를 직시하여 원인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파악하고, 우리의 힘으로 해결하는 것이 어려울 경우 더욱 구체적인 기도를 할 수 있게 하는 행동이다.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 자에게 옷과 음식은 주지 않으면서, ‘따뜻할지어다’, ‘배부를지어다’라고 선포하고 응답받은 줄로 믿으라고만 한다면, 과연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옷과 음식을 주면, 믿음으로 선포하지 않아도 해결될 일이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해야 한다. 해야 할 것은 하지 않으면서 믿음만을 앞세우면 그것은 무책임에 가깝다.

나의 믿음, 지금 어디에 서있을까?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약2:14).

박찬영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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