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의 향기
아들이 유학에서 돌아왔을 때 나는 아들에게 유학시절 머물던 집에 작은 선물이라도 보내라고 가르쳤다. 떠나온 곳에 그리움을 선사하라는 뜻이다. 왜? 강물이 바다에서 다시 만나듯 사람도 언젠가는 다시 만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리석은 자는 떠나온 곳에 똥을 싸고 오지만, 지혜로운 자는 그리움이란 향기를 남긴다.
그리움이란 어쩌면 사랑보다 진한 것일 수 있다. 기차를 타고 가다 굴뚝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나는 것을 보면, 보이진 않지만 그 집안에 행복이 보이고, 옛 그리움이 솟는다. 계곡이 흐르는 곳에서 여인네들이 빨래를 하고, 개구쟁이들이 물장구치는 그림을 보자면 보이지 않는 산속의 작은 집이 내 안에 그려지고, 말이 꽃밭을 밟고 지나가는데 나비가 그 위를 나는 그림을 통해서도 진한 향기를 맡는다. 이처럼 그리움이란 향기는 아련하나 향수보다 진하다.
무슨 사연으로 나를 떠난 사람들이 다시 나를 찾는 것은 이런 그리움의 향기 때문이리라. 그들은 한결같이 ‘그리웠노라, 보고 싶었노라’ 한다. 내가 ‘떠나는 자에게도 카펫을 깔아줘라’ 하는 말은 그리움이란 향기를 선사하고 싶어서다. 헤어짐은 재회를 전제하는 것 아니겠는가.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로 인해 모함을 받아 옥에 갇힐 때 그 집에 똥이나 싸서 뿌리고 왔다면 어찌 되었을까. 총리대신이 되었을 때 분명 보디발을 다시 만났을 터, 그 재회가 매우 껄끄러웠을 것이다. 그러나 요셉은 묵묵부답으로 그리움이라는 향기를 남겼기에 재회의 기쁨을 누렸으리라.
‘까짓 다시 안 볼 건데.’ 하지 말라. 세상사는 알 수 없는 법, 옛말에도 ‘침 뱉은 우물, 사흘도 안 돼서 도로 먹는다’고 했다. 타교단 어느 목사가 내게 와서 자신이 몸담았던 교회와 목사를 헐뜯었다. 그는 나에게 자신을 받아줄 것을 부탁했다. 나는 그가 유능한 것은 알았지만 거절했다. 그는 언젠가 나에게도 침 뱉을 여지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뒷모습이 아름다운 자가 가장 아름답다. 그리움이란 향기를 남기고 떠나라. 가슴 벅찬 재회를 위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