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침반
목사님의 삶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매번 느끼는 점은 ‘정말 개인의 삶은 없으시겠구나’ 하는 것입니다. 당신 본인 스스로도 “공인(公人)은 공적으로 살다가 공적으로 가는 것이다.”라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시지만, 정말 삶 자체가 오로지 하나님 일에 집중되어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개인의 시간이라면 기도하는 시간(?) 정도가 될듯합니다. 잠도 서너 시간 이상은 청하지 않는 분이고, 나머지 시간, 누군가를 대면하는 시간은 대부분 상담이거나 사적 만남이라 하더라도 어쨌든 목사님께 지혜의 말씀을 듣기 원하는 사람들과의 시간이기에 상대방을 살리는데 온 신경을 집중하십니다. 영혼을 사랑하고, 그 영혼이 소생하는 모습에서 참 기쁨을 얻지 못한다면 수행할 수 없는 시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가끔 ‘나의 먹는 양식은 너희들과 달라’ 라고 말씀하시죠.
영어통역관 임무수행 목사님이 아프리카 가나에서 그런 말씀을 한 적이 있습니다. 총회장 목사님이 그 과중한 업무에도 건강하신 비결은 아주 소소한 것에서 큰 기쁨을 끌어내시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길가에 핀 꽃, 우연히 앤틱 가게에서 발견한 그림, 오랜 건축물 등, 대부분 일상처럼 스쳐 보내는 작은 것들에서 목사님은 남들과 달리 감탄사를 연발하시며 삶의 에너지를 끌어내십니다. 피곤이 다 풀린다고 하시죠. 목사님이 그 힘든 순간에도 일일이 몰려온 성도들을 다 안수기도해주시고, 지극히 작은 상담조차도 일일이 문자로 답변하시거나 전화를 거시는 이유가 물론 예수의 종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바로 여기시기 때문이겠지만, 그런 작은 노력을 통해서 성도들이 병에서 고침 받고 변화하며 새로워지는 모습을 발견할 때 엄청난 기쁨을 경험하시기 때문입니다. 나로 인해 행복해 하는 모습에서 더 큰 기쁨을 찾기 때문입니다. 삶의 초점이 오직 예수님께 향해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목사님을 볼 때 나침반을 떠올립니다. 나침반의 방향침은 어떤 경우에도 오직 북극(N)을 가리키기 위해 잠시도 쉬지 않고 몸을 흔듭니다. 파르르 떨며 계속해서 북극을 가리키기 위해 몸부림치는 나침반에서 ‘내가 길이요, 진리요’라고 말씀하시며 십자가를 지고 죽음과 부활의 길을 가신 예수님을 따라가기 위해 온 삶의 초점을 예수님께 향하는 목사님의 모습이 투영됩니다. 목회 38년 동안 ‘어떻게 하면 예수를 자랑할까? 어떻게 하면 예수를 증거할까? 어떻게 하면 예수를 기쁘게 할까? 어떻게 하면 예수가 맡긴 양떼를 잘 양육할 수 있을까?’ 하며, ‘오직 예수만이 나의 정복자’라고 고백하시는 목사님 말입니다.
타인의 기쁨을 나의 더 큰 기쁨으로 치환해내는 능력은 언제 어디서나 자신의 몫을 다하는 것으로 족한 삶의 철학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나침반이 북극점을 가리키는 자신의 몫에 충실한 것처럼 말입니다. 나를 비우고 예수로 채워지는 삶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