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크라이나를 잊을 수 없다(사49:14~26)
저는 우크라이나를 잊을 수 없습니다. 저는 선교 일행과 함께 2000년부터 약 15년 동안 우크라이나 드네프로, 하리코프, 키예프, 니콜라예프, 심페로폴, 오데사, 자파로시, 멜리토폴, 루츠크, 코벨, 폴타바, 수미, 키로보그라드 등 13개 도시를 17회 방문하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지금도 구(舊)소련 지역에 복음을 전하며 무수한 고통을 당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처음 드네프로에 가서는 먹을 것이 없어서 고통당했고, 숙소에서 가스에 질식되어 죽을 뻔했으며, 폭탄물 위협을 당하고, 경찰들이 숙소로 들이닥치고, KGB에 끌려가고, 종교재판을 받고 추방을 당하고, 정말 피땀과 눈물을 쏟아가며 복음을 전한 지역입니다. 고생할 때 난 자식이 더욱 안쓰럽고 애정이 간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런지 러시아 침공을 받은 우크라이나에 더욱 마음이 쓰입니다.
그곳이 지금 집중포화를 당하고 있습니다. 저와 함께 예수중심하나되기운동에 동참한 300여 명의 동지들이 총을 들고 싸우고 있고, 생사조차 알 길이 없습니다. 지난주일 우리가 함께 봤던 멜리토폴도 이미 러시아군에 점령당했고, 초토화되었습니다. 영상에서 봤던 천진난만한 어린아이들이 지금은 청년이 되어 총을 들고 전쟁에 임했을 것이고, 상당수가 어쩌면 전사를 했을 수 있습니다. 그런 걸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못해 저립니다. 슬라바 목사의 담담한 찬송을 들을 때마다 저 심정이 어떨까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질 듯합니다. 내 나라가 지금 폐허가 되어가고 있고, 내 국민이 풍전등화에 놓였고, 나와 내 가족도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 중에서도 담담하게 찬양하는 슬라바 목사의 믿음이 대견할 뿐입니다.
우크라이나를 살려야 합니다. 우크라이나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들은 우리의 동지요, 한 형제입니다. 형제가 위급한 상황에 처했는데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한국전쟁을 겪은 나라입니다. 젊은이들은 잘 모르겠지만, 우리는 그 어느 나라보다 전쟁의 아픔과 난민의 고통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우크라이나에 대해 외면한다면 한국전쟁에서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키려 목숨 바친 수많은 참전국의 희생을 외면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달려가서 총을 들고 싸울 수는 없습니다. 대신 기도해야 합니다. 어서 빨리 종전이 되게 해달라고, 더 이상 무고한 희생자가 나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것은 사람의 힘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기도만이 하나님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이고, 기도만이 만사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싸움이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 같아 승산이 없어 보일 수 있지만, 하나님이 하시면 이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하시는 분이고, 하나님은 우리가 불가사의하다고 생각하는 일들을 능히 하시는 분이니까요.
열왕기하 6장을 봅시다. 아람 왕은 엘리사를 제거하기 위해서 많은 군사를 급파했습니다. 왜냐면 아람 군대가 이스라엘을 침범하기 위해 공격을 감행하면 이스라엘에서 어떻게 알았는지 아람의 작전까지 다 파악해서 되레 역공을 해오기 때문에 아람은 전쟁마다 패배했습니다. 내부에 첩자가 있나 했더니 그게 아니라 앉아서 그들을 다 지켜보는 이스라엘의 엘리사라는 사람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람 왕은 엘리사를 제거하는 것이 급선무였습니다.
엘리사가 도단이라는 성에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아람 군대가 밤중에 몰래 도단 성을 겹겹이 포위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엘리사의 종 게하시가 일어나 보니 아람 군대와 병거들이 도단 성을 겹겹이 포위하고 있었습니다. 너무 놀란 게하시가 엘리사에게 달려 들어가 상황을 전하며 이제 우리는 꼼짝없이 죽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게하시를 진정시키며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다’고 말하고 게하시의 눈을 밝혀달라고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사의 기도를 들으시고 게하시의 눈을 열어 보여주시니 엘리사 말대로 불말과 불 병거가 산에 가득하였습니다. 아람 군대가 엘리사를 잡으러 오매 하나님이 그들의 눈을 가리고 다른 곳으로 인도했고 엘리사와 게하시는 무사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면 됩니다. 하나님이 하시면 이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면 기드온 용사 300명으로 13만 5천명의 미디안 군대를 물리칠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 10장 11절에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족속들과 전쟁할 때 하나님께서 하늘로부터 우박을 내려쳐서 원수들을 죽인 수가 이스라엘의 칼에 죽은 수보다 더 많았다고 증거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어린 다윗이 기골이 장대한 골리앗을 죽였습니다. 사사기 4장과 5장에 보면 가나안 왕 야빈과 이스라엘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을 때 이스라엘에겐 적을 방어하거나 공격할 무기가 변변치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은 철 병거를 지닌 하솔 군을 격멸시켰는데, 그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인 이적과 권능을 베풀어 이스라엘을 도우셨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무기로 이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셨던 것입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를 대항하여 이길 수 없지만 하나님이 하시면 가능합니다. 하나님이 하시면 속히 종전이 됩니다. 그래서 기도가 절실한 것입니다. 그래서 후원이 필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저는 요즘 참 생각이 많습니다. 요즘 티셔츠 바람으로 총을 들고 전쟁에 임하는 우크라이나 대통령 젤렌스키가 아주 듬직합니다. 나라가 위급해지면 먼저 해외로 도망치는 지도자들도 많은데, 그런 면에서 젤렌스키는 아주 믿음직한 대통령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를 볼 때마다 “어느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갈 때에 먼저 앉아 일만으로서 저 이만을 가지고 오는 자를 대적할 수 있을까 헤아리지 아니하겠느냐 만일 못할터이면 저가 아직 멀리 있을 동안에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청할찌니라”(눅14:31~32)는 말씀이 문득문득 떠오릅니다. 그가 좀 더 지혜로웠더라면,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좀 더 잘 알았더라면 전쟁을 미리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러시아는 계속 경고를 보냈습니다. 그때 적극적으로 협상을 했더라면 전쟁이라는 최악의 사태는 막지 않았을까요. 전쟁이 난 후에 협상하지 말고, 전쟁 전에, 내 국민이 죽고, 내 국가가 파국을 맞기 전에 협상을 벌였더라면 좋았을 거라는 미련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경고를 무시하면 경고도 나를 무시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경고는 사전 통보입니다. 그것을 무시하면 멸망을 자초하게 됩니다. 9.11 테러사건은 사전에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는 뒷이야기가 있습니다. 당시 미국의 중앙정보부는 알 카에다의 테러 공작이 진행되고 있다는 구체적인 보고를 부시 대통령에게 여러 번 올렸으나 매번 무시당했다고 했습니다. 그런 정보는 믿을 수가 없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결국 엄청난 인명피해와 손실을 내지 않았습니까.
인생의 파국을 막으려면 경고를 무시하지 말아야 합니다. 요나를 통해 하나님의 경고를 받아들인 니느웨 사람들이 멸망에서 벗어났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 이것은 하나님의 경고입니다. 이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경고만 하신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해결방법도 알려주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여러분, 마태복음 24장과 25장의 비유를 잘 깨닫고, 그 재앙이 내게 임하지 않도록 더욱 주의 일에 힘쓰고, 더욱 주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 재앙은 이러한 전쟁에 비할 수조차 없는 환란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부탁드립니다. 우크라이나를 위해 지속적으로 기도해주십시오. 후원도 아끼지 말아주십시오. 우리의 기도가 그들을 살릴 수 있습니다. 우리의 후원이 우크라이나 재건의 기초가 됩니다. 아울러 이 나라에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십시오. 전쟁의 참상을 우리가 보고 있지 않습니까? 전쟁은 모든 희망의 끝입니다.
오직 기도만이 우크라이나를 살리는 길이요, 우리도 살 길입니다. 할렐루야!
전쟁은
하나님께 달려 있다
경고를 무시하는 것은
멸망을 자초하는 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