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트로 달러의 부침
페트로 달러(Petro dollar)는 주요 원유수출국인 OPEC 구성국, 그리고 기타의 중동, 노르웨이 및 러시아를 포함한 산유국들이 자국에서 생산되는 원유를 미국달러로 거래하도록 구축한 시스템을 의미한다고 인베스토피아는 정의하고 있습니다.
1973년 4차 중동전쟁 이후 중동의 주요 산유국들은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국가들을 제재하기 위하여 수차례에 걸쳐 유가를 100% 이상 인상시켰고 감산을 시작하여 오일쇼크가 발생하자 당시의 미국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는 OPEC의 맏형 역할을 하는 사우디의 왕실과 협의하여 미국달러를 원유거래에 대한 단독 결재통화로 확정하였고, 또한 산유국들은 취득된 달러수입으로 미국산의 각종 제조상품, 군수물자 및 무기, 그리고 미국의 국채 및 금융채권까지 매입하도록 하여 브레튼우드 시스템의 붕괴 이후 상실할 수 있었던 기축통화의 지위를 유지시켰고 심각하게 누적되었던 국제수지의 적자와 연방 및 지방정부의 각종 적자 및 과부족까지 일괄 해소하였습니다.
당시 금융제도가 미비했던 대부분의 개발도상국과 마찬가지로 이들 국가에는 상업은행까지 제대로 구축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달러 표시 판매수익은 자연스럽게 영국, 독일, 미국 및 해외에 진출한 미국은행의 지점에 예치되었고,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특화되었던 세계적인 엔지니어링 회사들은 이들 국가의 각종 인프라 사업을 주관하면서 세계경제의 발전에도 큰 공헌을 하였습니다.
이 기간은 이념으로 양분되어 첨예하게 대립하던 냉전시대였는데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서방국가들은 중동의 봉건적 전체주의를 묵인하고 오히려 그들의 정치, 경제 부분에 깊게 관여하고 있었기 때문에 공산주의 종주국인 소련의 개입은 원천적으로 어려웠고, 중국은 열악한 농업국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공업화 속도가 빠르고 세계적으로 높은 원가효율을 갖고 있던 대한민국은 페트로 달러의 수혜를 크게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우크라이나 침공사태로 인하여 러시아가 수출 제재를 받게 되자 중국은 러시아로부터 원유의 수입량과 위안화 결재 비중까지 확대하였고 사우디 또한 대(對)중국 원유수출대금에 대한 위안화 결제를 수락하는 방안에 대해 검토 중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은 보도했는데, 이것은 페트로 달러의 종식은 물론 국제금융의 주도권 또한 분산되어 미국 및 서방의 결속력을 더욱 약화시키면서 새로운 블록을 창출하리라 예상합니다.
선택받은 개인이나 단체, 국가가 하나님으로부터 절대적인 축복을 받은 후 하나님을 멀리 했을 때 그들의 결말이 어떠할 지는 성경이 명확히 기술하고 있습니다. 절대로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오로지 살아계신 예수님만 의지하라고 수십 년에 걸쳐 동일한 말씀을 전하고 계시는 총회장 목사님처럼, 각 개인이 더욱 자신의 신앙을 지켜야만 하는 때라고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