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가 사람 잡는다, 내가 힘이 있어야 한다(고전 4:20)
여러분! 전쟁에 2등은 없습니다. 이것이 전쟁에 반드시 이겨야 하는 이유입니다.
여러분은 우크라이나 사태를 보면서 무엇을 느꼈습니까? 저는 내가 힘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우크라이나는 친미(親美) 노선을 택한 나라인지라 전쟁이 나면 미국이 적극적으로 개입할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전쟁이 나니 어떻습니까? 미국은 러시아를 향해 소극적으로 경제적인 제재만 가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는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 기분일 겁니다. 이게 현실입니다. 미국뿐 아니라 누구나, 어느 나라나 우선 나부터 살고, 내 이익부터 따지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우크라이나 사태를 반면교사(反面敎師),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 합니다. 경제성장보다 우선 되어야 할 것이 안보입니다.
안보 없는 경제성장은 사상누각입니다. 모래로 지은 집 같다는 겁니다. 아무리 거창하게 지어도 바닷물이 한 번 들어오면 와르르 무너지고 마는 겁니다. 그러므로 자주국방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입니다. 우방이요? 영원한 우방은 없습니다. 그들의 말만 믿고 있다가는 뒤통수 맞을 수 있습니다. 성경에도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찌니”(시146:3)라고 말씀하지 않습니까.
북한이 왜 저렇게 막무가내인 줄 압니까? 핵이 있으니까 그런 겁니다. 핵이 있으니 미국을 상대로 큰소리치는 겁니다. 저들이 핵을 포기할까요? 그것이 유일한 힘인데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그에 상응한 힘을 길러야 합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실 거야.’라고 기도만 하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물론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고, 하나님은 능히 전쟁에서 이기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손 놓고 있으라는 말씀은 아닙니다. 잠언에는 “싸울 날을 위하여 마병을 예비하거니와 이김은 여호와께 있느니라”(잠21:31)고 말씀합니다.
내가 있어야 남에게 줄 수 있습니다. 내가 알아야 남을 가르칠 수 있습니다. 내 잔이 넘쳐야 남의 잔도 채울 수 있습니다. 기생의 소생인 입다가 처음에는 본처 자식들에게 무시를 당했습니다만 잡배들을 모아 힘이 강해지니 길르앗 장로들이 찾아와 도움을 요청해오지 않았습니까? 요셉으로 인해 애굽땅이 풍족해지자 주위의 모든 국가들이 머리를 숙이고 먹을 것을 구하러 왔고, 사마리아인이 강도를 만난 자를 주막에 데려가서 돌보고 더 많은 부비를 약속한 것도 그가 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이타주의는 이기주의에서 싹틉니다. 곡간에서 인심 나는 법이니까요. 내가 있으니 남도 생각한다는 말입니다. 내가 먹을 것도 없는데 어떻게 인심을 씁니까? 당장 내 식구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데 어떻게 남의 집 쌀독을 걱정할 수 있단 말입니까? 내가 단벌신사인데 어떻게 남을 입힐 수 있겠습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제 너희의 유여한 것으로 저희 부족한 것을 보충함은 후에 저희 유여한 것으로 너희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평균하게 하려 함이라”(고후8:14).
사과 씨를 심으면 이것은 자라기 위해 주변의 영양분을 뿌리를 통해 다 끌어당깁니다. 나부터 살겠다는 것입니다. 이기주의지요. 그러나 이것이 싹이 나고 자라 나무가 되고 거기에 사과열매를 많이 맺으면 어찌 됩니까? 많은 사람에게 나눠줄 수 있게 됩니다. 끝까지 내 배만 채우고 독식하는 이기주의가 문제이지, 이타주의로 가는 과정이라면 이기주의란 책망 받을 게 아닙니다. 예수님도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16:31)고 하셨습니다. ‘너와 네 집’부터라는 겁니다. 내가 먼저 믿어야 남도 구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돈 있는 자와 힘 있는 자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요? 당연히 힘센 자가 이깁니다. 힘센 놈에게 돈을 빼앗길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내가 힘이 있어야 합니다. 안보가 없으면 결코 경제성장도, 우리의 미래도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설마~ 전쟁이 일어나겠어?’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설마가 사람 잡습디다. 나라도, 기업도, 가정도, 교회도 설마에 잡힐 수 있습니다. 대마불사(大馬不死)를 외치던 국내 굴지의 재벌기업이 순간 주저앉았고, ‘설마 나라가 부도가 나겠어?’ 했지만 1997년에 우리나라가 부도났었고, 출근길에 성수대교가 무너지는 것을 봤습니다. 또 뉴욕의 상징인 쌍둥이 빌딩이 무너지리라 누가 감히 상상이나 했을까요?
2차 세계대전 말인 1945년 8월, 미국은 일본에 대해 ‘항복하라’고 사전경고를 합니다. 그때 일본의 반응은 ‘설마 세계 여론이 있는데 어떻게 원자폭탄을 투하하겠느냐’며 맞대응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후 미국은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했습니다. 이 일로 일본 국민 약 11만 명이 사망했으며, 반경 3km가 넘는 지역 안이 잿더미가 되었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끌어내려 할 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양이나 염소 중에서 흠 없고 일년 된 수컷을 취하여 그 피를 집 문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라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의 거하는 표적이 되어 재앙이 넘어가리라(출12:3~11)”고 하셨습니다. 모세는 이 일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일러 그대로 행하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그중에 ‘설마 그렇게 안한다고 무슨 일 나겠어?’ 하며 명령을 따르지 않은 사람은 애굽 사람과 함께 동일하게 모든 처음 난 것, 곧 장자는 물론이고 생축의 처음 난 것까지 다 잃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설마는 분명히 사람을 잡습니다.
유비무환(有備無患)만이 살 길입니다. 미리미리 준비해야 우환을 없앨 수 있습니다. 이이의 십만양병설이 받아들여졌다면 임진왜란에서 그렇게 쉽게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318명의 전투원을 집에서 기르고 연습시켰습니다. 그래서 조카 롯이 사로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그들과 함께 쫓아가 전투를 벌이고 승리하여 모든 것을 다 되찾아옵니다(창14:14~20). 다윗도 정예화 된 군사를 길렀습니다. 그럼요, 우리나라도 철저하게 준비해야 합니다. 미국이나 일본이, 유엔이 우리를 돕는 것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10분이면 서울은 초토화 된답니다. 맞은 다음에 유엔에 제소하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소 잃고 외양간 고치면 뭐 합니까? 철저한 준비만이 우리가 살 길입니다. 영적인 것도 대충 준비하면 어리석은 다섯 처녀꼴 나는 겁니다. 뭐든지 철저히, 넘치게 준비해야 합니다. 가나 혼인잔치에 포도주를 넉넉히 준비하지 않으니 모자라서 난리가 난 것 아닙니까.
여러분, 외적보다 내적이 무서운 겁니다. 지금 우리가 네 당, 내 당 찾을 때입니까? 이 나라가 정치인의 나라입니까? 서로 연합하여 똘똘 뭉쳐서 나라를 지키고, 나라를 살려야할 이때에 서로 물고 뜯고 있으니 한심하기 그지없습니다. 정치를 위한 정치를 하면 안 됩니다.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해야지요. 성경의 경고의 음성을 그들이 좀 듣고 깨달았으면 합니다.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질 것이요 스스로 분쟁하는 동네나 집마다 서지 못하리라”(미12:25).
우크라이나 사태를 보고 깨달아야 합니다.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지 말고 우크라이나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들이 모여 무릎 꿇고 공원에서 기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도 기도에 동참해야 합니다. 거기에 우리 교회와 성도들도 있고, 동역자들도 300명이나 있습니다. 그들이 절박한 심정으로 기도를 요청해왔습니다. 기도로 그들을 도웁시다. 아울러 우리나라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힘들어 죽겠는데 전쟁이나 났으면 좋겠다.’는 사람들, 정신 나간 자들입니다. 전쟁은 모든 희망의 끝입니다. 보트피플에 대해 매스컴을 통해 보셨지요? 전쟁을 피해 조국을 떠났지만, 받아주는 나라가 없습니다. 그들은 그 좁은 배에서 굶주리며, 거기서 죽어가고… 비참함의 극치입니다. 국가가 없는 민족은 국가가 있는 개보다 못한 법입니다.
하늘나라가 말에 있지 아니하고 능력에 있듯 국가는 국력이 능력입니다. 모두 정신을 차려 이 나라의 안녕과 발전을 꾀합시다. 할렐루야!
안보 없는 자유와 평화는
사상누각(沙上樓閣)이다
준비하지 않는 자에게
기대할 것은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