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살아계신다, 다시 일어나라(신1:11)
2022년, 새해입니다. 올해의 목표는 세우셨습니까? 올해 당신이 이루고픈 꿈은 무엇입니까?
과녁이 없는 화살은 해만 될 뿐이요, 나침반을 잃은 배는 망망대해에서 표류하기 십상이고, 방향이 없는 부평초는 개구리밥이 될 뿐입니다. 목표가 없는 자가 그렇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여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고전9:26~27)고 했습니다. 향방 없는 자의 삶, 목표가 없는 자의 삶은 허공을 치는 것 같으니 제발 목표를 설정하라고 당부한 것입니다.
여러분, 삶의 목표를 설정해야 이룰 수 있습니다. 아들을 얻고자 하는 목표를 가진 한나, 금의환향을 목표로 가진 야곱, 무너진 예루살렘 성곽을 보수하겠다고 결심한 느헤미야, 푯대를 향하여 달린 사도 바울, 인류를 구원하겠다는 일념에 온몸을 던지신 예수님, 모두 분명한 목표를 세운 분들입니다. ‘대단한 사람들이나 그러지.’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자기의 원한을 풀고자 했던 이름도 없는 과부, 베데스다 연못가에 있는 38년 된 중환자, 2대째 소경인 바디매오…. 많이 배우지 못하고, 많이 갖지도 못하고, 건강치도 못했던 그들도 이루겠다는 목표를 세웠기에 마침내 이뤄낸 것 아닙니까.
인생은 내가 그리는 그림입니다. 내가 화폭에 그리는 그림이 인생일진대, 무엇을 그릴지도 생각하지 않는다면 명작은 고사하고 졸작도 못 그리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택하셨을 때 가장 먼저 하신 일이 ‘네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내어 가나안으로 가라’는 목표를 던져주신 것이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도 목표를 제시해주셨습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28:19~20). 저도 목회를 시작하면서 ‘세계를 교구화 하리라.’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이렇게 목표를 설정하세요. 그래야 스타트할 수 있고, 그래야 삶의 의욕이 생기게 됩니다.
둘째, 목표를 세웠다면 명심해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목표에 도달하는 길은 절대 순탄한 길이 아니라는 것을 심비에 새겨야 합니다. 모세가 순적하게 자기 백성을 출애굽시켜 가나안에 다다랐습니까? 야곱이, 느헤미야가, 우리 예수님이 순탄하게 목표를 이뤘습니까? No. 그야말로 산전수전, 우여곡절을 다 겪고 나서야 목표를 이뤘습니다. 성공자와 실패자의 차이는 누가 과정이 더 힘들었느냐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누가 다시 일어났느냐, 아니면 주저앉았느냐로 나타나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새해가 되면 목표를 세우지만, 도중에 대개 포기하는 것은 과정을 이겨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세계교구’라는 목표를 그냥 이룬 게 아닙니다. 온갖 핍박, 추방, 방해, 사고, 테러…. 그야말로 이루 형용할 수 없는 것들이 앞길을 가로막고, 저에게 펀치를 가했지만 저는 비록 그 펀치를 맞고 넘어졌을망정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났기에 오늘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가다보면 한 방 맞고 다운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아프지요. 피가 날 수도 있고, 다리에 힘이 풀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 번 다운된 것이 K.O.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일어나면 되니까요.
70년대 세계 챔피언이었던 홍수환 선수가 아직도 우리의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그가 바로 4전 5기의 신화를 낳은 장본인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살인적인 펀치를 자랑하던 카라스키야를 상대로 싸우면서 2회에 자그마치 4번이나 다운을 당했습니다. 보통의 경우라면 코치 석에서 수건을 던졌거나 스스로 일어나기를 포기했겠지만, 홍수환 선수는 넘어져도 일어나고 다시 4번이나 일어나더니 마침내 3회에 좌우 스트레이트와 훅을 난타하며 일방적으로 몰아쳐 카라스키야를 K.O.시키고 챔피언이 되었습니다.
실패자는 펀치를 맞고 넘어진 자가 아닙니다. 펀치를 맞고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포기한 자가 실패자입니다. 그러나 일어나서 마침내 목표에 도달하면, 목적을 이루면 그는 역전승한 자요, 실패자가 아니라 성공자라 불리게 되는 겁니다. 야곱도 외삼촌에게 강펀치를 몇 대씩 맞았고, 느헤미야도 거센 방해세력 때문에 의욕이 꺾일 뻔 했습니다. 우리 예수님도 십자가를 지는 일에 육신을 입은 터라 심한 고통 속에 번민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다시 일어나 목표를 향하여 질주했기에 승리자요, 성공자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뚝이 인생이 되십시오. 오뚝이는 눕혀놔도 비틀비틀 거리다가 일어납니다. 몇 번을 때려보세요. 심하게 흔들거리지만 다시 일어나 곧 중심을 잡습니다. 오뚝이가 왜 다시 일어나는 줄 압니까? 그것은 무게중심이 받침점 바로 위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오뚝이처럼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려면, 즉 오뚝이 인생으로 살려면 우리 삶의 무게중심이 바로 하나님 위에 서 있으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 위에 거하고, 하나님의 뜻 위에 바로 서면 혹 넘어졌다 해도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인하여 엎드러지느니라”(잠24:16).
베드로가 예수를 부인하고 시름에 잠겨있을 때 스스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그에게 찾아가서 ‘내 양을 먹이라’고 목표를 제시해주셨습니다. 베드로가 목표를 향하여 달릴 때 세찬 바람에 넘어지고, 제사장과 바리새인, 서기관들이 합세하여 펀치를 날려 넘어졌습니다만 다시 일어나 마침내 주님의 뜻을 이뤘습니다. 어떻게요? 그의 중심이 이미 하나님 위에 자리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당신에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히10:39). ‘일어나라’는 말씀입니다. 다시 일어나십시오. 당신의 인생은 이제 3라운드, 혹은 7라운드에 서 있습니다. 그런데 다운되었다고 포기하실 겁니까? 아직 반전될 수 있는 시간과 기회는 많은데요? 당신이 포기하면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런 당신에게 하나님도 흰 수건을 던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일어나고자 하면 하나님이 돕는 천사와 사람을 붙여주실 것입니다. 마가복음 7장에 나오는 수로보니게 여인처럼 직격탄을 맞아도 다시 일어나 뜻을 이루십시오.
‘좋은 대학을 가겠다’, ‘나는 세계적인 영화배우가 되겠다.’, ‘나는 건강을 찾고야 말겠다.’ ‘나는 내 교회를 지금의 배로 부흥시키겠다,’ 등등 목표를 세우세요. 그리고 달리세요. 넘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방해하는 자들을 쳐다보지 말고 귀는 막고 목표만 보고 달리세요. 손흥민 선수가 골대를 향하여 축구공만 바라보고 뛰지 않습니까? 태클이 무섭게 들어올 줄 알지만, 골을 넣고야 말겠다는 목표의식이 그를 담대하게 하지 않습니까? 자동차가 속도를 낼수록 저항은 커지는 겁니다. 그렇다고 걸어갈 겁니까? 다운 한 번 되었다고 여기서 포기하실 겁니까?
사도 바울은 ‘푯대’, 곧 목표를 향하여 달려갔습니다. 그의 목표는 그날 재판장이 주실 의의 면류관이었습니다(딤후4:8). 그런데 그가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외부의 방해세력, 저항세력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두려워하고 경계한 대상은 바로 자신이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통탄합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롬7:24). 그렇습니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목표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게으른 나, 놀고 싶은 나, 자고 싶은 나, 대충하려는 나와 늘 싸워야 합니다. 그런 나를 이기지 못하면 절대 목표점에 이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늘 거울을 보며 거울 속의 사람을 질타하고, 채찍질하는 겁니다.
인생은 긴 마라톤경기에 비교되지요. 우리는 도상(途上)위의 주자고요. 단거리야 스피드만 있으면 승리할 수 있으나 마라톤은 자신과의 싸움, 즉 인내가 있어야 풀코스를 완주할 수 있습니다. 인내는 씁니다. 그러나 그 열매는 답니다. “인내가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롬5:4).
이제 시작된 새해, 단단히 마음을 먹고 목표를 향해 전심전력하여 달려봅시다. 우리가 못하는 것은 못해서가 아니라 안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하면 됩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막9:23). 할렐루야!
목표가 있는 자는
넘지 못할 벽이 없다
최고의 적은
바로 나 자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