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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호 목차 › 붕우칼럼

방심은 금물!

1125호 · 2021-11-28

“김종일 장로에게 배워라.”

나는 예배 때 각 부 사회를 보는 장로들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김종일 장로는 우리 교회에 1호로 온 남자 성도이다. 그러니까 김 장로는 우리 교회의 살아있는 증인이요, 나와 동고동락을 함께한 자요, 지금까지도 교회의 기둥으로 일하고 있는 보배 같은 존재이다.

나는 지근거리에서 그를 지켜보면서 감탄하고, ‘역시~~’ 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일이 있는데, 그는 그날 봉독할 성경 말씀을 연습하고, 또 연습한다는 것이다.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주일과 수요예배 때 사회를 봐왔으니 한두 번 읽어봐도 실수할 확률은 거의 없다. 그러나 그는 그날 봉독할 말씀을 단에 오르기까지 읽고, 또 읽고, 체크해가며 다시 읽는다. 그래서 그는 언제나 누구나 다 알아들을 수 있는 발음과 호흡과 억양으로 최고의 사회를 진행한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수 있다. 익숙하다고 방심하다가 그런 것이다. 방심(放心)이란 놓을 방(放), 마음 심(心)으로 마음을 놓아버린다는 뜻이다. 마치 실에 묶은 풍선을 놓으면 향방 없이 날아가 버리듯 마음이 맘대로 날아가 버리니 그 안에 실렸던 신중함도, 열심도 함께 날아가 결국 실수하게 되는 것이다. “아~ 그거 다 아는 거였는데 실수했어.”, “아~ 그거 다 할 줄 아는데 왜 틀렸지?” 방심해서다. 여호수아가 작은 아이성에는 참패를 당한 것도 다 방심한 탓 아닐까.

성경에는 방심이 금물임을 말씀하고 있다.

“그런즉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10:12). ‘할 줄 알아.’, ‘그거 알아.’, ‘이 정도면 됐어.’ 하는 순간 넘어진다는 경고의 말씀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노라”(빌3:12~14)고 했다.

‘이만하면 교회도 제법 크고, 세계복음화도 어느 정도 했고….’ 이렇게 나도 방심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실수와 실패로 이어짐을 나는 알기에 오늘도 나는 오늘이 마지막 날인 양 최선을 다하며 산다.

방심은 금물이다! 사고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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