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함
간절함
한 마리의 여우가 토끼를 쫓고 있다. 그러나 여우는 토끼를 잡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여우는 한 끼 식사를 위해 뛰지만, 토끼는 죽기 살기로 뛰기 때문이다. 즉, 간절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성공과 승리의 기쁨을 맛보기 원하는가? 그렇다면 반드시 원하는 것을 이루고자 하는 간절함이 있어야 한다. 일사각오의 정신 말이다. 그 무엇이든 죽고자 하는 마음으로 행한다면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
성공한 사람과 실패한 사람의 차이는 매우 분명하다. 이루고자 하는 것의 간절함을 행동으로 옮기느냐 아니냐의 차이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감당하시기 위해 땀방울이 핏방울 되기까지 간절히 기도하심으로 온 인류의 구원과 부활의 영광을 보이셨다(눅22:44). 수로보니게 여인도 개 취급을 받는 무시 속에도 딸을 고쳐보겠다는 간절함이 예수의 능력을 끌어내게 된다(막7:25~30). 진퇴양난의 홍해 앞에 선 모세의 간절한 기도가 홍해를 가르게 했다(출14:13~16). 얍복강가에서 천사와 씨름한 야곱 역시 환도뼈가 위골되었음에도 포기하지 않고 간절히 바랐더니 축복을 받게 된다(창32:24~29). 엘리야의 간절한 기도가 하늘 문을 열고(왕상18:37~46), 히스기야의 간절함이 생명을 연장 받으며(왕하20:1~6), 한나의 간절함이 사무엘을 낳은 것이다(삼상1:10~20).
하나님을 믿고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 응답받는다. 그러나 조건이 있다. 간절함이 있어야 한다. 간절한 기도가 응답을 받고, 간절한 바람이 하늘 문을 연다. 간절한 영혼 구원의 열정이 전도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다.
믿음에 간절함을 더하자. 하나님이 역사하신다.
김상욱 목사
기도를 멈추지 마라
몇 주 전, 대학부 예배 설교를 준비하는데 하나님께서 주시는 감동이 있었다. “너희 대학부에 가장 부족한 것은 바로 기도다!” 그러시면서 설교시간에 설교를 길게 하지 말고 기도를 시키라고 말씀하셨다. 마침 코로나 거리두기 때문에 교육관에 함께 모여 기도모임을 못한 지 꽤 되어서, 각자 개인적으로라도 어떻게든 기도시간을 채울 수 있도록 캠페인까지 벌이고 있던 시점이었다. 그래서 그날은 ‘기도의 부족은 모든 것의 부족이다.’라는 목사님 말씀으로 설교를 간단히 마무리하고, 30분 동안 기도회를 가졌다. 그랬더니 대학부원들로부터 그 시간에 기도하면서 깨닫고 은혜 받았다는 피드백을 정말 많이 받았다.
그때 기도시간에 틀었던 곡 중 하나가 요즘 우리 교단에서 주일예배와 수요저녁예배 때마다 울려 퍼지고 있는 ‘이제 역전되리라’이다. 하나님은 실수가 없으시고, ‘이게 정말 하나님의 뜻인가?’ 의구심이 들 때면 우리가 충분히 인지할 수 있는 경로로 당신의 뜻을 거듭 강조하시고 확증하신다. 가사부터가 그때 내가 받은 감동이 결코 사람의 생각이 아니었음을 알려주었다. “기도를 멈추지 마라… 너 기도를 멈추지 마라….”
하나님은 대학부만이 아니라 지금 우리 교단과 교회의 모든 주의 종들과 성도들에게 멈추지 말고 다시금 기도의 불을 태워야 한다는 것을 예배시간마다 저 찬양 가사를 통해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급기야는 얼마 전 수요예배 때 목사님의 입술을 통해 하나님께서 불호령을 내리셨다.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인데 교회와 기도처에 기도의 불이 다 꺼져 있다는 것이다. 사실 요 며칠 전부터 목 상태가 안 좋아서 좀 쉬어줘야 회복되겠다 싶어 새벽기도를 쉰 지 사흘 만에 들은 하나님의 음성이었다. 그래서 그 다음날부터 다시 새벽을 깨우기 시작했고, 평소 하던 기도의 양을 두 배로 늘렸다. 하나님이 이렇게까지 연거푸 말씀하시는데 내가 이 경고를 무시한다면, 이 경고가 나를 무시할 때 얼마나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지겠는가!
기도 중에, 찬양으로, 말씀으로 거듭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하다.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과 같다(시49:20). 기도를 멈추지 마라!
신혁주 전도사
blessedmic@naver.com
천국 가자!
모든 종교, 수행단체의 궁극적 목표는 영생이다. 그 종착역이 천국인 것은 죽음과도 맞바꿀 귀한 가치이다.
이 중요한 가치를 평가절하 하는 풍조가 있다. 불쌍하게 아무 상급도 없이 거지처럼 천국 간다며 매우 하찮게들 여긴다. 그런데 과연 천국 갈 수 있는 자, 얼마나 될까? 그곳에 갈 수만 있다면 뭔들 못할까?
불행히도 천국행 티켓을 받는 자, 극히 적을 것이라 느낀다. 마태복음 24장에도 “그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마24:40~41)고 언급하셨다.
천국행 티켓을 누가 얻을 수 있을까? 겸손한 자, 마음이 가난한 자다. 그걸 거지 나사로와 십자가의 강도는 가지고 있었다. “주여, 당신이 무슨 죄가 있습니까? 나는 죽을죄를 졌습니다만 나를 기억하소서.”라고 회개하며 주께 의지한다. 주님께서 말하신다. “네가 오늘 죽은 후 낙원에서 나를 만나리라.”
아브라함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본 부자가 원한 것이 무엇인가? 그저 한 방울의 물이었다. 모든 걸 누렸던 부자가 물 한 방울을 간청한다. 그러니 천국 가자.
내 첫 설교가 ‘말년 복이 진짜 복이다.’ 였다. 말년, 마지막이 정말 중요하다. 말년이 좋으려면 지금 이 순간 회개하고 주님을 의지해야 한다. 그러면 주님께서 기억하신다. 지금 예수를 믿고 입으로 시인하면 천국 간다. 말년이 좋다. 이 믿음은 성령이 함께 하셔야 끝까지 간다.
내가 천국 갈 수 있을까? 돌아보자. 내게 성령이 함께하시고 사랑이 넘치며 감사와 기쁨이 충만한가. 주위를 화평케 하고 있는가. 모든 것에 오래 참으며 심신을 절제하는가. 긍휼히 여기며 자비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가. 선한 마음으로 주위를 대하며 사람과 하나님께 진실하고 충성스러운 마음을 지녔는가. 돌이켜보면 모든 점에서 부끄러울 따름이다.
그러나 겸손하게 기도한다. 내 힘으로 갈 수 없는 천국이니 주님의 인도를 간구하며 의지한다. 최고의 믿음은 의탁이다. 어린아이가 엄마 품에 온전히 의탁하는 것과 같이 나를 주님께 맡긴다. 무슨 근심, 걱정이 있을까? 이보다 더 큰 복이 있을까?
이광주 목사
이것이 행복이라오
요즘 기도 제목이 생겨 마음이 참 감사했었다. 여기저기 알아보고, 이런저런 방법을 생각해보고, 조마조마하다가 긴장도 되고. 이렇게 기도해보고, 저렇게도 기도하는데 문뜩 ‘이제까지 늘 좋은 길로 인도해주셨으니 이번에도 우리에게 딱 맞는 축복의 길로 인도해주실 거야.’라는 마음이 들었다. 그런 마음으로 기도하고 가정예배도 드리며 지내고 있는데 문뜩문뜩 걱정스러운 마음이 또 생겼다. 우울했다가 괜히 서글펐다가 괴롭기까지 했다. 그럴 때마다 귀신을 쫓으며 ‘하나님은 내가 걱정하길 바라지 않으실 거야, 더 좋은 길로 인도해주실 거야, 내 기도를 받고 싶으셔서 이런 상황도 만들어주신 걸 거야.’ 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렇게 하루하루 지내며 기도하는데 목사님 말씀이 생각났다. ‘천국도 지옥도 내가 생각하기에, 마음먹기에 달려있다!’
하나님께 기도했으면 믿음을 가지고 감사한 마음으로 지내야 한다. 걱정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고, 기쁜 마음으로 기도 응답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기도하는 동안 괴로운 시간을 보낼지, 즐거움으로 기쁨의 시간을 보낼지도 내 결정에 달려있다. 아이들을 보며 남편을 보니, 걱정은 사라지고 ‘지금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감사히 보내는 것이 행복이구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기도하며 찬양을 듣는데 행복이라는 찬양의 가사가 마음에 와 닿았다. “화려하지 않아도 정결하게 사는 삶 / 가진 것이 적어도 감사하며 사는 삶 / 내게 주신 작은 힘 나눠주며 사는 삶 / 이것이 나의 삶에 행복이라오 / 눈물 날일 많지만 기도할 수 있는 것 / 억울한 일 많으나 주를 위해 참는 것 / 비록 짧은 작은 삶 주 뜻대로 사는 것 / 이것이 나의 삶에 행복이라오 / 이것이 행복 행복이라오 / 세상은 알 수 없는 하나님 선물 / 이것이 행복 행복이라오 / 하나님 자녀로 살아가는 것 / 이것이 행복이라오” 
하나님의 위로하심과 만져주심이 느껴졌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살아내는 것, 하나님 말씀 가운데 화목하게 사는 것, 하나님은 그것을 바라신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녀가 괴로워하기를, 걱정하기를 바라는 부모는 없듯이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기뻐하기를, 행복하기를 바라실 것이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내 마음에 있다. 내가 마음먹기에 따라 행복도, 불행도 따라온다. 
정효경 집사
GOOD NEWS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인간은 영적인 존재입니다. 그런데 진화론이라는 증명되지 못한 논리로 인간의 조상을 원숭이로 만들어 버리니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지 못하고 짐승처럼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천지만물 중에 사람만이 영적인 존재입니다. 죄를 지으면 다음 생애에 동물이나 곤충으로 태어나게 된다는 말이 있이 있는데, 아닙니다. 인생은 돌고 도는 것이 아니라 한 번의 기회밖에 주어지지 않는 직선적인 삶입니다.
천지만물의 주인은 창조주이신 하나님입니다. 인생의 참된 행복은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갈 때 누릴 수가 있습니다. 모든 제품의 매뉴얼이 있듯이 인간의 매뉴얼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입니다. 성경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인생 최고의 지혜요, 행복한 삶의 비결입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에는,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심판의 결과에 따라 영생복락의 천국과 영벌의 지옥으로 갈리게 됩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모든 자들을 천국으로 인도하기 위하여 독생자 예수님을 아낌없이 내어주셨고, ‘누구든지’ 십자가에서 죽었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모든 죄를 사하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고, 천국으로 인도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천국 가는 길은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 외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
상화평 목사
sanghwapyung@hanmail.net
예수님의 품
날마다 마루에 앉아 저 멀리 언덕길을 바라보았습니다. 열 밤만 더 자면 저 언덕을 넘어 엄마가 우리를 데리러 올 거라고 동생을 달랬습니다.
저는 어릴 때, 어리광을 부려본 적이 없습니다. 크게 웃어봤던 기억도 별로 없습니다. 어머니의 건강문제로 시골의 할머니 손에서 자랐는데, 어머니를 늘 그리워했던 기억뿐입니다. 시간이 흘러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부모님께서 저희 형제를 데리러 오셨습니다. 동생은 얼른 달려가 어머니 품에 안겼지만, 저는 너무 어색해서 다가가지 못하고, 문밖에서 그저 바라만 보았습니다. 이후 부모님과 함께 지내는 동안 이상행동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불안감 때문에 옷소매를 물어뜯기도 하고, 하루 종일 한마디도 하지 않는 날이 있을 정도로 내성적인 아이가 되어 있었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의 은혜로 옆집 권사님을 통해 어머니와 함께 교회에 나가게 되었는데, 하나님은 어린 저를 만나주셨고, 우울하던 마음도 점점 좋아졌습니다. 그렇게 1년 반 정도 지내다가, 또 어머니의 건강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저희 형제는 어쩔 수 없이 시골의 할머니 손에 다시 맡겨졌습니다. 신앙을 지키기 위해 제사를 거부하는 어머니가 핍박받던 때라, 할아버지는 교회와 어머니에 대해 나쁘게 이야기하며 조상을 잘 섬겨야 한다고 세뇌했습니다. 이미 하나님을 만난 9살의 어린 아이는 하나님께서 우상숭배를 가장 싫어하신다는 것을 알았기에 할아버지의 말씀이 너무 괴로웠습니다. 할 수 있는 거라곤 제사 때마다 할아버지를 피해 숨는 일밖에 없었습니다. 마을에는 교회가 없을뿐더러, 할아버지께서 심하게 단속하시니 교회 가고 싶다는 얘기는 꺼낼 수도 없었습니다. 부모님과도, 교회와도 단절된 상황을 벗어날 길이 없으니 예전처럼 우울한 생각이 찾아오고, 마음이 점점 어두워져 갔습니다.
암울하기만 하던 마음이 정점으로 치닫는 일이 터졌습니다. 학교 운동회에서 ‘사람 찾아 달리기’를 진행했는데, 종이에 적힌 사람을 찾아와서 함께 달리는 경기였습니다. 출발 신호가 울리자 달려가 종이를 펼쳐보았습니다. 그 종이에는 하필 ‘엄마’라는 단어가 적혀있었습니다. ‘나는 엄마가 없는데…. 나는 혼자야.’ 충격에 휩싸여 갑자기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놓아버린 채 그 자리에 한참을 서 있었습니다.
얼마 후, 하나님께서 어머니의 병을 고쳐주셔서 다시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때의 암울하던 기억이 마음 한구석에서 비집고 나올 때면 다시 우울해지곤 했습니다.
어느 날, 기도 중에 하나님께서 운동회가 있던 날, 그 자리에 서 있던 나를 보여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때와 다르게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따스한 빛 가운데 예수님께서 나를 품에 안고 어루만지며, 끊임없이 부드럽게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사랑한다, 아가야.” 부모님과도, 교회와도 끊어져 혼자라고만 생각했던, 외롭고 힘겨웠던 순간에도 예수님은 나와 함께 계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암울했던 흐린 날의 기억을 한순간에 따스한 햇살 가득한 날의 추억으로 바꿔주셨습니다.
고통 받는 이를 보면 위로해주고 싶지만, 위로의 말이 오히려 상처가 되지는 않을까 위로하기가 쉽지 않고, 아픔을 당했을 때 위로받기도 쉽지 않습니다. 누구나 자신의 아픔이 가장 크게 보이기 마련이고, 그 일을 겪지 않고는 그 아픔을 알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하나님은 가장 적절한 위로가 무엇인지 알고 위로해주시며, 고통의 때에도 함께 하시고, 아픔의 근원을 치유해주십니다. 환난 중에도 하나님만 의뢰하는 예수중심교회 성도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있기를, 그리고 하나님께 받는 그 위로로 환난 중에 있는 다른 이들을 위로하는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는 축복이 있기를 기도합니다(고후1:3~4).
정명관
이름 불러주자
고교시절 공부에 두각이 없고 말수가 적었던 나는 선생님들께 이름 없는 일상의 희미한 존재였다. 팝송에 심취하여 당시 자정까지 이어지던 라디오 프로그램에 신청곡과 사연을 보내며 별밤지기와 소통을 나누곤 했다.
어느 날 영어 선생님께서 처음으로 이름을 불러주시면서 잘 듣고 있다며 미소를 지으셨다. 깊은 밤 선생님과 오랫동안 공유하고 있었다는 생각에 무한한 행복과 기쁨을 느꼈다. 이후 영어 선생님께 잘 보이기 위해 밤을 지새우며 공부에 매진했다. 당연히 성적은 고공행진 했으며, 담임선생님은 그런 나를 공개적으로 급우들 앞에서 칭찬해주셨다. 몇몇 선생님들은 교과 성적 상위권인 내 이름을 기억해주셨고 발표도 시키곤 했다. 방학 때도 하루도 빠짐없이 등교하여 학업에 전념한 결과 드디어 장학금까지 거머쥐는 획기적인 성과를 기록했다.
중고등부 예배를 가기 싫어하던 딸이 어느 날, “엄마! 이시대 목사님이 제 이름을 불러주셨어요. 어떻게 아셨을까요?” 신이 난 딸은 스스럼없이 목사님께 다가가 상담도 하고 한층 밝은 모습으로 변모하며 예배도 적극적으로 참석하게 되었다. 우리 교회에서 이시대 목사님이 제일 좋다며….
늘 ‘누구 엄마’로 부르던 남편이 자신의 이름을 불러줬을 때 없던 힘이 나고 지루했던 삶이 생기가 돈다고들 한다. 자신을 되찾은 것 같다나.
이처럼 이름을 기억하고 불러준다는 것이 때로는 한 사람의 인생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환시킬 수 있다. 참 별거 아닌 것 같은데….
하나님은 많은 무리 중에서도 아브라함의 이름을 기억하셨고, 이삭과 야곱의 이름도 기억하고 불러주셨다. 어쩌면 그들의 신앙은 하나님이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부터 시작된 것인지 모른다.
그 하나님은 당신의 이름도 기억하시고 부르고 계신다. 이것이 당신의 절망에서 일어나 희망의 끈을 잡아야 하는 이유다.
추성숙 집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