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분하라
내 큰아들이 중국에서 공부할 때의 일이다.
늘 어려운 사람을 도와야한다고 어려서부터 나에게 배웠던 아들은 학교 앞에 있는 노숙인에게 가끔 돈을 주웠던 모양이다. 한 끼라도 제대로 먹게 하고픈 마음에서다. 학생인 아들이 돈이 많을 리가 없을 터, 어느 날 그 노숙인 앞을 그냥 지나가는데, 그가 ‘어이~~ 학생’ 하고 부르더란다. 아들이 다가가니, 노숙인은 ‘왜 돈을 안 주고 그냥 가냐?’고 다그쳤단다. 아들은 그 상황이 너무 기가 막혔다고 나에게 털어놨다.
나는 아들의 말을 듣고 이렇게 말했다. “얘야, 성경에 ‘네 손이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마땅히 받을 자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말라’
(잠3:27)고 하셨다. ‘마땅히 받을 자’가 누구겠니? 과부와 고아 같은 자란다(사1:7). 기력이 있고 사지가 멀쩡한데도 무위도식하는 자를 도와주는 것은 그의 잘못된 인식을 부추기는 꼴만 되는 거야.”
나는 해외 선교사에게 선교자금을 보내줄 때 기준이 있다. 정말 열심히 일을 하는데 여건이 따르지 않아 어려움을 겪는 자에겐 아낌없이 지원한다. 가만히 앉아서 본부에서 오는 돈만 바라는 자는 일체 없다. 개인적인 소견으로 국가에서 젊은이들에게 지원금을 주는 것에 반대한다. 미래를 개척하기 위해 노력하고 뛰는 자나 부득이한 경우라면 마땅히 받아야 한다. 그러나 국가 지원금이나 바라고 청춘을 허비하는 자들에게는 오히려 독이 될 뿐이다.
하나님은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똑같이 해를 비춰주시고 비를 내리신다(마5:45). 보편적인 은혜다. 그러나 하나님도 구원 얻을 자와 특별한 은혜를 받을 자를 구분하신다. ‘마땅히 받을 자’에게 하나님은 사랑과 은혜와 축복을 주신다. 마땅히 받을 자가 누구인가? 주의 일에 힘쓰는 자요, 주의 법대로 행하는 자요, 주의 뜻을 행하는 자다. ‘누구나’에게 주신다면 누가 좁은 길을 가겠는가, 누가 주의 복음을 들고 산을 넘고 강을 넘겠는가. 누가 손해를 감수하면서 주의 사랑을 전하겠는가.
추수감사절이다. ‘나는 마땅히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축복을 받을 자인가?’ 생각해보자. 만일 거둔 것이 없다면, 손에 쥔 것이 없다면 마땅히 받을 자가 못된 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