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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자신의 브랜드 가치를 높여라

1124호 · 2021-11-21

“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으라 무릇 너의 얻은 것을 가져 명철을 얻을찌니라”

(잠4:7).

지혜는 생활로 직결되는 지식이며, 현명한 처세술을 말합니다. 어떻게 처신하느냐, 어떻게 대처하느냐, 곧 처세술에 따라 성공과 실패가 나뉘며, 브랜드의 가치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삼성이나 LG가 상표이듯 ‘나’ 자체가 브랜드, 곧 상표입니다. 세계시장에 내놨을 때 품질이 좋으면, 이미지가 좋으면 브랜드 가치는 상승하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기업들이 자사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 질적 향상을 꾀하고 있고, 행여 하자가 생기면 AS는 물론 대대적인 리콜까지 감행하면서 이미지 관리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봅니다. 우리도 우리 자신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 그들 못지않은 노력을 해야 합니다.

올 7월에 저는 중고등부와 대학부, 청년부를 돌면서 이 세상에서 성공하는 처세술에 대해 강론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잘 팔리기를 원하냐? 그렇다면 네 처신을 잘하라.’고 말했고, 몇 가지 지혜를 가르쳤습니다. 주요 골자를 보면 첫째, ‘Information is very important!’(정보가 매우 중요하다), 둘째 ‘Promise is very important!’(약속이 매우 중요하다), 셋째, ‘Kindness is very important!’(친절함이 매우 중요하다), 넷째, ‘First impressions are very important!’(첫인상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뭐 대충 듣고 잊어버린 사람도 있겠지만, 이것을 생활로 직결시켜 성공한 젊은이들도 많습니다. 얼마 전, 어느 젊은이가 저에게 “목사님, 그다음은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저는 그다음 이야기를 여러분과 함께 나눠갈까 합니다. 다섯째, ‘Manners are very important!’(예의가 매우 중요하다)’입니다. 품위와 품격이라는 그릇에 예절이라는 음식을 담으면 어디를 가든 최고의 가치를 갖게 됨은 두말할 나위가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 예절 중 첫 번째는 어디에서든 상석에 앉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네가 누구에게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았을 때에 상좌에 앉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보다 더 높은 사람이 청함을 받은 경우에 너와 저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이 사람에게 자리를 내어 주라 하리니 그 때에 네가 부끄러워 말석으로 가게 되리라”(눅14:8~9).

만일 파티에 초대되었는데 털썩 상좌에 앉았다고 합시다. 그를 본 사람들이 ‘쟤, 왜 저래?’ 하고 먼저 쑥덕거릴 겁니다. 그래도 아무 일이 없다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상사나 외부인사가 도착했을 때 주최 측에서 자리를 비켜달라고 하면 얼마나 낯이 뜨겁고 민망하겠습니까?

말석에 앉는 것이 지혜입니다. 저랑 호형호제하는 분으로 세계적인 석학이며, 큰 기업의 오너로 있는 분 이야기입니다. 한 번은 그가 미국 모 정당 파티에 초대를 받은 일이 있었는데, 제가 조언해준 대로 그는 제일 말석에 앉았답니다. 그런데 그 파티의 주최자며 정당의 총재가 나타나더니 이분을 발견하고는 직접 내려와 ‘왜 여기 앉아계시냐?’며 손을 잡고 자기 바로 옆자리로 데려가 앉혔답니다. 거기에 미리 자리 잡았던 자들은 다 밀려난 셈이지요. 다들 ‘저분이 누구기에 그러나?’ 하는 표정들이었다고 합니다. 맞습니다. 그래서 잠언에도 “왕 앞에서 스스로 높은 체하지 말며 대인의 자리에 서지 말라 이는 사람이 너더러 이리로 올라오라 하는 것이 네 눈에 보이는 귀인 앞에서 저리로 내려가라 하는 것보다 나음이니라”(잠25:6~7)고 말씀하셨고, 주님은 더욱 심도 있게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눅14:11)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둘째, 어느 모임에 초대되어 갈 일이 있거든 미리 밥을 좀 먹고 가라는 것입니다. 적어도 배고프고 허기진 상태로는 가지 말라는 겁니다. 사람이 배가 고프면 걸신들린 것처럼 추하게 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뭐 허물없는 가족이나 친구는 이해하지만, 그것이 상사 앞이거나 당신과 이해관계에 있는 자 앞이라면 문제는 달라집니다. 그런 자 앞에서 먹는 것에 집착한다면 인격이나 이미지는 완전히 땅에 떨어지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잠언에는 이런 경고문이 적혀 있습니다. “네가 관원과 함께 앉아 음식을 먹게 되거든 삼가 네 앞에서 있는 자가 누구인지 생각하며 네가 만일 탐식자여든 네 목에 칼을 둘 것이니라.”(잠23:1~2). 즉 먹는 것 앞에서 자신을 통제하라는 말씀입니다. 이어진 말씀이 있는데, 이를 더욱 유념해야 합니다.

“그 진찬을 탐하지 말라 그것은 간사하게 베푼 식물이니라.”(잠23:3). 이 말씀은 식사에 초대하는 것은 호의나 우정에서가 아니라 사람을 시험해보려는 목적일 수도 있으니 누구 앞에서든 걸신들린 듯 허겁지겁 먹는 일은 없도록 하라는 겁니다. 그러고 보면 하나님의 말씀은 참으로 자상하고 섬세합니다. 이렇게 세세한 부분까지 우리에게 가르치시니 말입니다.

셋째, 옷차림도 이미지에 한 몫 하니 신경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파티에 갈 때나 예의를 갖춰야 할 때는 예복을 입어야 합니다. 이 이야기를 하려니까 예전에 제가 당한 일이 생각나네요. 아주 오래 전의 일입니다. 제가 미국에 처음 갔을 때, 저를 초청한 어느 박사의 안내로 상류층이 출입하는 한 클럽에 가게 되었는데, 거기는 반드시 정장을 입어야 출입이 가능한 곳이었습니다. 그 박사는 저에게 정장을 입어야 한다며 옷까지 준비해줬지만, 저는 그런 음식점이 어디 있겠냐며 고집을 부리고 그냥 편한 차림으로 갔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제가 한 고집했거든요.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그곳 입구에서 저는 입장을 제지당했습니다. 예복을 입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결국 저는 그들이 준비해 온 양복을 입고서야 그곳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22장에 임금이 예복을 입지 않는 자를 내쫓은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임금이 손을 보러 들어올쌔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가로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저가 유구무언이어늘…”(마22:11~12). 물론 이것은 하나님이 입혀주시는 의의 옷, 구원의 옷을 말하는 것이며, 천국에 들어가는 조건인 회개와 믿음이라는 옷을 말씀하시는 것이지만, 실생활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옷이란 장소와 시간, 그리고 상대에 따라 갖춰 입어야 합니다. 등산을 하는데 하이힐에 치마를 입고 가서는 안 되듯, 격 있는 자리나 사람을 만날 때는 그에 맞는 옷을 입어야 합니다. 그것이 상대에 대한 예의고, 예절이며, 자기의 주가를 스스로 높이는 일입니다.

넷째, 약속 장소에 상대보다 일찍 도착해야 합니다. 먼저 도착해서 여유를 가지면 상대를 내 페이스로 끌어들일 수 있고, 또 그것이 상대방에 대한 예의가 되는 겁니다.

성공한 사람들은 뭐가 달라도 다릅디다. 가끔 저는 쉬는 날 믿지 않는 재계의 CEO들과 골프를 합니다. 그들을 전도하기 위해 일부러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정말 지혜롭습디다. 항상 약속 시각보다 일찍 도착해서 제가 올 때까지 기다립니다. 그리고 제 차가 도착하면 차 문도 열어줍니다. 저에 대한 예의를 다하는 겁니다. 그런데 꼭 늦게 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은 헐레벌떡 달려와서

‘아이고, 죄송합니다. 차가 막혀서….’라고 핑계를 대는데, 그는 벌써 감점이요, 탈락되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늘 강조하지만, 부지런해서 손해 볼 것은 없습니다.

여러분, 70년 세월 넘게 살아보니까 ‘행로법칙’이라는 게 있다는 것을 알게 됩디다. 인생이란 길을 가면서 얻은 법칙 말입니다. 오늘 말씀드린 몇 가지 지혜도 다 행로법칙에 해당되는 것들입니다.

경영은 관리요, 관리는 곧 점검입니다. 자신을 점검해야 잘 경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잠언 기자가 “자기의 마음을 제어하지 아니하는 자는 성읍이 무너지고 성벽이 없는 것 같으니라”(잠25:28)고 훈계한 것입니다. 나 하나, 자기 마음대로 제어하지 못하는 사람이 무슨 큰일을 하겠습니까. 수신제가(修身齊家) 후에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인데요.

배움의 끝은 실천입니다. 오늘 이 지혜의 말씀을 흘려보내지 마시고 행동으로 옮겨서, 세상에서 머리가 되고 존경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것이 제 소원이며, 우리 주 예수님의 바람입니다. 할렐루야!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품위와 품격에

예절을 담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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