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을 능가할 지식은 없다
경험을 능가할 지식은 없다
중고등부 교사 봉사를 시작하고 영상팀 담당 교사로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학생들에게 영상을 촬영하거나 편집하는 방법들을 옆에서 하나하나 세세하게 알려줬었다. 그런데 그들은 내가 옆에서 지켜보고 있을 때는 무난하게 잘하는 듯 했으나 막상 혼자 해보라고 하면 당황했고, 배운 것조차도 실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어떻게 가르쳐줘야 효율적인 방법이 될까?’ 생각하다가 이것저것을 혼자서 해보도록 시간을 주었다. 처음에는 이것이 더디 익히는 것 같아 보였지만, 점차 스스로 인터넷 검색을 하고, 정보를 찾아서 모르는 것을 해결하는 능력을 갖게 됨을 알게 되었다. 스스로 방법을 찾아가는 습득방법이 유용했던 것이다. 다시 말해 ‘경험이 이론을 앞선다’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
목사님은 늘 ‘경험을 능가할 지식이 없다’고 말씀하신다. 어느 분야든 대학에서 이론을 배웠어도 현장에 나가면 이론이 무색해질 때가 있음을 우리는 안다. 경험이 가장 큰 지식이다.
기도의 응답을 받아본 사람은 무슨 일이든 기도로 해결하지 않은가. 그들은 세상적인 지식이나 방법이나 방백들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기도로 승부한다. 왜? 이미 경험했기 때문이다.
경험하는 과정은 힘들고 어려울 수 있다. 내가 가르쳤던 아이들이 스스로 경험하면서 터득할 때 더디고 힘들었던 것처럼! 그러나 그것을 터득할 때 그 경험은 평생 내 지식이 되고, 내 자산이 된다. 그래서 총회장 목사님은 ‘내 경험을 어떤 문화적인 지식 앞에 팔아먹지 말라’고 늘 말씀하신다.
경험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 경험이 최고의 지식이다.
이은성
es2563@naver.com
따뜻한 기다림
‘해와 바람’이라는 이솝우화에서 해와 바람은 지나가는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는 내기를 하게 됩니다. 바람은 온 힘을 다해 입김을 불지만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지 못합니다. 반대로 해는 웃으며 따뜻하게 나그네를 비추었고, 더워진 날씨에 나그네는 외투를 벗어버리고 맙니다.
저는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 허물을 벗어가는 과정도 이와 같다고 느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따뜻한 사랑으로 우리의 허물을 벗기시고 새사람으로 만드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20세에 예수중심교회 서울대학부에서 막 신앙생활을 시작했을 때의 일입니다. 그때의 저는 감정이 불안정하고 기복이 심한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보다 사람이 더 좋아 교회를 다니는 믿음이 부족한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그런 저를 담당했던 대학부 선배가 있었는데, 그 선배는 저의 이런 행동을 단 한 번도 나무란 적이 없었습니다. 그저 저와 저의 동기들이 교회 안에서 적응하고 신앙이 자랄 때까지 안전한 방패가 되어주었습니다. 제가 지금 예수님을 만나고 영혼들을 섬길 수 있게 된 데에는 그 기다림이 컸습니다. 그 따뜻함 덕분에 저는 한 겹 두 겹 세상의 겉옷을 벗어가며 예수님의 세마포를 입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91년도 설교에서 총회장 목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교회는 목욕탕입니다. 때가 많은 사람은 목욕탕에 오래 담그고 있으면 때가 벗겨지듯이, 교회에 와서 푹 담그면 알아서 세상 때가 벗겨집니다.” 목사님의 말씀처럼 세상의 때가 벗겨지려면 시간이 필요합니다. 예수님 안에 푹 담겨 저절로 허물이 벗겨질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억지로 때를 벗기면 상처만 나듯 기다림과 사랑 없이 상대를 변화시키려고 하면 상처가 나기 마련입니다.
은연중에 내 눈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신앙생활에 ‘이러면 안 돼, 저러면 안 돼’ 하며 나의 잣대로 판단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는 과연 바람 같은 크리스천인지, 해와 같은 크리스천인지 고민해봐야 합니다. 예수님을 만나 과거의 옷을 벗어 던지고 새사람이 되셨나요? 그렇다면 선과 악을 판단하는 자가 아닌 내 이웃을 감싸주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따스한 기다림과 사랑으로 변화를 일으키는 햇살 같은 크리스천이 됩시다!
장수정
예수님짜리 믿음의 실력을 보여주세요
20세기 초, 이탈리아에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독특한 버릇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고민이 되는 상황마다 동전 던지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에겐 두 가지 선택의 길이 있었습니다. ‘파리의 적십자사로 전근을 가느냐, 어느 디자이너 가게에서 일하느냐.’
그는 앞면이 나오면 디자이너 샵으로, 뒷면이 나오면 적십자사로 전근을 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결과는 앞면이 나와 디자이너 샵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패션계에 발을 들이게 된 그는 곧 재능을 인정받아 당대 최고의 디자이너 디오르(Dior) 밑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나 디올이 죽고 후계자로 지명된 그는 또 다시 동전을 던집니다. ‘회사에 남아 디올의 뒤를 이을 것인가 아니면 독립하여 내 이름으로 가게를 낼 것인가?’ 결국 독립을 택한 그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브랜드를 만들었고, 우리는 지금 그 브랜드를 ‘피에르 가르뎅’이라 부릅니다.
한 기자가 그에게 말했습니다. “운이 정말 좋으시네요. 동전을 던져서 좋은 선택을 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러자 그는 말했습니다. “동전 던지기가 좋은 선택을 하도록 한 게 아닙니다. 어떤 선택이든 일단 결정한 후엔 믿음을 갖고 밀고 나간 것뿐이니까요.”
살아가며 마주하는 많은 선택 앞에서 우리는 고민합니다. 그리고 기도합니다. 무엇이 하나님의 뜻이고 더 옳은 선택인지를 알기 위해서 고민합니다. 때론 나보다 앞선 사람들의 조언을 주의 깊게 들어보기도 하지만 진정 중요한 것은 동전 던지듯 ‘선택’ 그 자체가 아니라 선택 후 우리 ‘믿음의 실력’에 근거하여 밀고 나가며 최선을 다하는 결단입니다. 어느 권사님은 어려운 선택의 순간 성경책을 잡고 성경을 펼쳐 그 페이지에 나오는 말씀을 읽고 결정한다고 합니다. 성경책으로 점을 치는 것이지요. 이는 믿음의 실력이 아닙니다.
구원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자에게 주시는 일회적인 선물입니다. 믿음은 구원 후 성화에 이르는 연속적인 연단과 훈련 속에서 계속적으로 성장해나가는 실력이며 경륜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로서 차별은 없지만 믿음의 실력에 따라 구별은 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막4:4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눅12:28).
믿음이 없는 제자들이 있고, 믿음이 적은 자들이 있다고 하신 말씀을 보면 믿음에는 구분과 구별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믿음은 실력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중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학에 들어갑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공부하여 좋은 성적을 거두기 어렵습니다. “공부하는 것이 제일 쉬웠어요!”라는 수능 수석합격자의 말을 들을 때 부럽기는 하지만 솔직히 재수 없고 앞에 있으면 따귀를 한 대 치고 싶은 심정입니다. 공부하고 실력을 키우는 것은 뼈를 깎는 고통을 수반합니다. 그런데 공부하는 게 제일 쉬웠다고 하면 이건 정말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그럼에도 명문대학 합격을 위해서는 피땀 나는 노력과 수많은 예비시험을 거쳐 대학이 요구하는 성적과 실력이 요구됩니다. 자녀 중에 공부하는 것이 힘들고 대학에 가는 것이 너무 어려워서 학업을 그만두고 부모님의 지원과 등록금 등 뒷바라지 걱정을 덜어드리겠다고 학교를 자퇴하고 지하철에서 껌이나 물건을 팔아 그 돈을 모아 부모님께 가져온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이고, 대견한 내 자식, 훌륭하다. 계속 지하철 타고 껌이나 물건 팔아 돈 벌어 오너라!” 이렇게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회초리를 들고 엄하게 꾸짖으시면서 “너 죽고 나 죽자. 내가 너를 잘못 가르쳤구나.” 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이 보실 때 우리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고 그냥 두고 보기에도 아까운 자녀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녀 삼기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고난의 십자가에 내어주시면서 까지 죄악의 수렁에서 구원하셨습니다. 명품을 구입할 때 수억 원을 지불하면 수억 원짜리 명품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짜리입니다. 그런 우리가 하나님 걱정을 덜어드린다며 지하철에서 껌이나 물건을 팔고 그 재물로 헌금하겠다고 하면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실까요? 기뻐하실까요? 하나님께서 크게 진노하시며 우리를 풀무불에 내어던져 연단하시며 훈련시키십니다. 예수 믿고 신앙생활 하는 중에도 고난과 힘든 난관들이 찾아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강한 훈련과 연단을 통해 어디에 내어놓아도 빛나는 명품 믿음을 지닌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고자 하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하나님이 아버지로서 자녀 된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계십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욥23:10), “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단하거니와 여호와는 마음을 연단하시느니라”(잠17:3),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5:4),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함이라”(벧전1:7).
우리 예수중심교단이 실력 있는 이유는 총회장 목사님을 필두로 모든 목회자들이 주를 위해 수많은 핍박과 비난과 따돌림을 받았습니다. 또한 교단에서 제명, 출교조치 등 갖은 고초와 난관 속에서 기도하고 이겨냈기 때문입니다. 오늘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 쫓으며 약한 병자들이 신유의 은사로 치유되고, 해외 80여 개 나라에 복음을 전하는 교단이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감당하는 최고 명품교단이 되었습니다. 모두 하나님의 역사이고 연단 후 받은 축복입니다.
오늘 힘들고, 괴롭고, 눈물과 고난의 골짜기를 지나며 버겁고, 번아웃되어 포기하고 그저 주저앉고 싶으신가요? 막바지에 이르렀습니다. 우리는 지금 짝퉁이 아닌 예수님짜리 명품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정금 같은 믿음의 실력자가 되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새벽 여명 직전이 제일 어둡고 춥습니다. 하나님은 거짓말을 못하십니다. 상상치 못한 최상의 좋은 일이 머지않아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의로운 해가 떠서 우리 앞길에 빛을 비추기 시작하십니다. 일어나 빛을 발하십시오. 눈물 흘리며 간구한 기도의 제목들이 모두 성취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 보시기에 기쁜 예수님짜리 믿음의 실력을 세상 앞에 보란 듯이 보여주세요!
“기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고전2:9).
하나님은 우리 방식이 아닌 하나님 방식으로 반드시 우리를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십니다. 말씀으로 연단되고 기도에 전혀 힘쓰는 이 시대 최고의 실력을 가진 예수중심교단의 명품 성도로서 하나님과의 동행에 대한 간증과 표적(스티그마)의 축복이 있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신우신경외과 재활의학과
(메디스템 줄기세포센터)
대표원장 안계훈
확실한 약속
확실한 약속
응답받는 3대 비결을 아는가? 방법을 알면 모든 문제는 해결되는 법!
첫째는 절박함이다. 절박(切迫)은 끊을 절(切), 닥칠 박(迫)으로, 목숨을 끊고 싶을 정도로 일이 다급함을 말한다. 곧 죽게 됨을 안 히스기야와 이스라엘 민족이 전멸될 위기 앞에서 에스더의 기도는 절박했다.
둘째, 갈망하는 마음이다. 갈망(渴望)은 목마를 갈(渴), 바랄 망(望)으로, 성경의 표현대로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는 심정을 말한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배회하는 다윗의 기도는 그야말로 갈망하는 기도였다.
셋째, 애통하는 심정이다. 애통(哀痛)이란 슬플 애(哀), 아플 통(痛)으로, 몸과 마음이 아플 정도로 슬퍼하는 것이다. 무자한 한나의 기도가 그것이다.
절박한 기도, 갈망하는 기도, 애통하는 기도를 하나님이 외면하실까? 반드시 응답하사 지금의 상황을 반전시키시고, 역전시키신다. 왜? 하나님의 명예를 위하여! 기도를 멈추지 마라!
붕우 이초석 목사
어린아이와 같이
얼마 전 아내와 두 아이를 데리고 강원도 정선으로 인생 첫 캠핑을 떠났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강원도에 들어설 무렵 비바람이 불어댔다. 그때 초등학생인 첫째 아이가 기대하던 캠핑이 걱정이 되어 말했다. “엄마 아빠, 우리 날씨 좋아지게 기도해요!”
사실 출발 전 날씨 예보를 보았지만 비 올 때는 텐트 안에만 들어가 있자는 생각으로 아내와 난 일종의 체념을 한 상태였는데, 아이의 말을 듣고 아차 싶어 함께 큰 소리로 방언 기도를 했다. 그러자 아이도 함께 방언 기도를 간절히 했다. 한참 기도를 하고 있으니 갑자기 비가 우박으로 바뀌어 차를 마구 두드렸다. 이런 일은 또 처음이라 아이와 함께 기도를 잠깐 멈추고 세차게 떨어지는 우박을 보며 신기해했다.
그러다 다시 기도를 이어 하였는데 점점 세차게 쏟아지던 비가 멈추고 구름이 낀 흐린 날씨가 되었고, 목적지에 도착하니 이번엔 화창한 날씨가 되어 산 정상 즈음에서는 절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기도할 생각도 못했는데 아이로 인해 기도하고 응답을 받았다. 아이에게 정말 기특하다며 칭찬해주니, 기도하고 있을 때 자기 마음속에 하나님이 ‘비는 멈추고 날씨는 좋아질 거다’라는 음성을 들려주셨다며 뿌듯한 표정이다.
‘아차, 나도 초등학생 시절 방언 기도를 하면 하나님께서 마음속에 성령님의 음성을 들려주셨던 때가 있었지!’ 그러다 어느 샌가 그러한 경험이 사라지고, 마음속에는 성령님의 음성보다는 내 목소리로 가득 차게 되었다. 
아이에게 기도 응답의 기쁨을 주시고, 성령님의 음성을 들려주시고, 나와 아내에게도 깨달음을 주신 하나님. 이제 다시 돌아갈게요, 어린아이와 같은 심령으로!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단코 거기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니라”(눅18:17).
박찬영 집사
post.naver.com/imsofriend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