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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0호 목차 › 세상을 보는 창

당신의 목적은?

1120호 · 2021-10-24
책을 펴다

당신의 목적은?

송나라 범문공이 젊은 시절 한 스승을 찾아가 물었다. “제가 재상이 될 수 있습니까?” 그러자 그 스승은 ‘너는 재상감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범문공이 다시 물었다. “그럼 의원은 될 수 있겠습니까?”

그 당시 의원은 천한 직업인지라 스승이 물었다. “아니, 재상을 바라는 자가 어찌 의원이 되기를 바라느냐?” 그러자 범문공은 “제가 재상이 되려는 것은 권력이 탐나서가 아니라 도탄 속에서 헤매는 백성을 구하고 싶어서입니다. 그러나 제가 재상감이 아니다 하시니 의원이라도 되어 병고에 시달리는 백성을 돕고 싶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이 말을 들은 스승은 “네 정신만은 재상이 되고도 남겠다.”라고 격려했고, 범문공은 열심히 정진해 결국 명재상이 되었다.

솔로몬이 지혜를 구한 목적은 이것이다. “지혜로운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그 선한 목적에 하나님은 응답하시고 보너스까지 챙겨주셨다.

당신에게 묻겠다. 당신은 왜 돈 벌기를 원하는가? 왜 명예를, 권세를 얻고자 하는가? 그것이 자신의 유익만을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독을 취한 것이다. 목적이 선해야 선한 결과가 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잘 살아야 하고, 성공해야 한다. 그것은 일신의 안일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이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데 도구가 되기 위해서다.

사도 바울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고, 삶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롬14:8).

이초석 목사 저서 ‘사랑이 무르익어야

결혼에 골인한다’중에서

신앙논객

시간이 필요하다

피겨여왕 김연아 선수, 프리미어 리거 박지성 선수, 세계적인 발레리나 강수진 씨의 공통점은 각자 자기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른 사람들이면서 그와는 대조적으로 상처와 굳은살로 뒤덮인 못난 발을 신발 속에 감추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의 발은 그들이 그 자리에 서기까지 지나온 고난과 훈련과 노력의 시간들을 대변해준다.

성경의 위대한 인물들도 그렇다. 아브람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되기까지는 25년에 가까운 기다림이 필요했고, ‘속이는 자’ 야곱이 ‘하나님의 백성’의 대명사 이스라엘이 되기까지는 천사와 씨름하고 하나님 앞에 온전히 굴복하는 험악한 세월이 필요했다. 요셉이 가족과 민족을 구원하는 꿈을 이루기까지는 노예생활과 감옥살이 끝에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는 경험이 필요했고, 모세가 수백만 명의 백성들을 출애굽시키는 천하의 온유한 리더가 되기까지는 미디안 광야에서 수십 년간 혈기를 빼내는 인내의 시간이 필요했다.

‘천하에 범사에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다’고 전도자는 이야기한다. 나는 내가 맡고 있는 청년대학생들에게 코로나 사태나 세상 풍조를 핑계로 이 젊음의 때에 주어진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말라고 당부해왔다. 지금은 부지런히 연구하고 노력하여 자기 것을 찾아야 하고,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세상의 변화와 흐름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하며, 그 가운데서도 믿음이 요동하거나 무너지지 않도록 굳게 서서 뿌리를 깊이 내려야 할 때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말 해야 할 일이 많다.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일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은 거저 되는 일 하나 없이 다 심은 대로 뿌린 대로 거두게 마련이다. 인연은 하늘이 맺어줘도 관계는 내가 구축해야 하고, 학교는 부모님이 보내주셔도 공부는 스스로 해야 하듯, 우리 안에 믿음의 씨앗을 하나님께서 심어주셨어도 그 씨앗을 잘 가꾸고 키워서 열매를 내는 것은 우리 각자의 몫이다.

목사님께서 목회 초창기 믿음으로 선포하신 ‘세계는 나의 교구다’라는 비전은 오랜 고난과 연단의 시간을 지나서 마침내 현실로 이루어졌다. 당신의 꿈과 비전과 목표를 이루는 것 또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냥 흘러가는 시간이 아니라, 구하고 찾고 두드리며 열매를 준비하는 시간 말이다.

신혁주 전도사

소망의 언덕

책에서 발견하는 지혜

우리는 세상의 수많은 지혜자들의 생각을 책을 통해 들여다볼 수 있다.

책을 통해 우리보다 먼저 살아간 사람들의 경험을 통해 얻은 지혜와 노하우를 값없이 얻을 수 있다. 목사님은 책이란 친구를 통해 과거의 사람도, 성경의 인물도, 한 시대를 주름잡던 사람도 친구 삼을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주의 종이 지식만을 탐닉하여 책에만 빠지는 것은 잘못이지만, 늘 책을 가까이하여 그 속에서 믿음의 선친들의 신앙과 한발 앞선 깨달음을 습득해야만 한다.

책은 너무나 많다. 하루에 어마어마한 양의 신간이 쏟아져 나오고 있어 어느 책은 누구에게도 주목받지 못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그래서 이 많은 책 중에 선택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슨 책을 읽어야 할까. 가장 가까운 곳에 우리 교회신문이 있다. 신문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전 세계 예수중심교회 성도들이 쓴 글을 문서선교팀에서 편집하고, 총회장 목사님이 직접 감수를 해주신다. 교회신문을 통해 교단 내 다른 목사님들의 신앙과 생각을 들여다볼 수 있어 신앙의 도전을 받고 다시 장작불을 지피는데 도움이 된다. 붕우컬럼을 통해 목사님의 지혜를 배운다. 또 설교요약은 차분한 문체 안에 복음의 열정이 고스란히 녹아져 있다. 같은 설교를 듣지만 일목요연한 설교요약을 보면 다시 새로워져 말씀을 되새김할 수 있는 좋은 도구가 된다.

외국인들은 한강이나 남산을 보며 서울의 도심 문화와 자연의 조화 앞에 놀라워하고 부러워한다. 그러나 알고 있는가? 우리는 정작 그것을 옆에 두고도 모르고 찾지 않는다는 사실을.

너무 가까이 있으면 귀한 줄 모를 수 있다. 우리 신문이 꼭 그렇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교회신문을 귀하게 여기고 꼭 읽자. 신문에 우리 교단의 깊은 신앙의 진수들이 담겨있다. 지금은 코로나로 인하여 인쇄가 되지 않는 아쉬움이 있으나 교회 홈페이지(www.jcc.tv)에 들어가면 쉽게 만날 수 있고, 곧 교회 문이 열리면 인쇄될 것이다.

목사님은 전 교역자들과 청년들에게 신문을 꼭 읽으라고 명하셨다. 그래서 청년부에서는 신문을 앱으로 공유하고 있다고 한다. 매주 발행되는 교회신문만 읽어도 우리의 신앙이 성숙해갈 수 있다.

이현승 목사

부르심의 소망

독한 시기를 버리고

초등학교 때, 새 학기가 되어 반장선거를 하면 저는 쟁쟁한 남자애들을 제치고 늘 반장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자존감은 낮고 자존심은 셌습니다. 친구들에게 충분한 사랑과 신뢰를 받았음에도 더 예뻐 보이는 친구를 시기하며 미워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저를 사랑해주던 친구들의 신뢰를 잃고 있었는데 저만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 결과 2학기 때는 회장이 될 수 없었습니다.

초등학교에서 반장과 회장을 뽑는 선거는 보통 인기투표로 결정됩니다. 그래서 1학기 때 반장을 하고 2학기 때 회장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초등학생에게 명예스러운 일이었습니다. 1학기 동안 친구들의 신뢰를 잃지 않아야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시기심과 질투를 다스리지 못했기에 다음 해에도, 그다음 해에도 반장은 할 수 있었지만 회장은 될 수 없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서도 여전히 저보다 나아 보이는 친구를 시기했습니다. 친구들이 있었음에도 그 한 명으로 인한 시기심 때문에 하루하루가 고역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 친구가 제게 편지를 썼습니다. 우리는 뭔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으며 저와 잘 지내고 싶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친구의 마음을 읽고 나니 시기와 질투는 동경하는 마음의 못난 얼굴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바로 그 친구에게 답장을 보냈습니다. 사실은 나도 너와 친해지고 싶었는데 먼저 솔직하게 얘기해주어서 고맙다고 말이지요. 그 뒤로 그 친구와 저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친해지고 나서 그 친구의 어머니가 믿지 않는 남편을 섬기며 힘들게 신앙생활을 하신다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 친구는 어머니의 새벽 기도를 자양분 삼아 자라고 있는 하나님의 자녀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빛나게 하신 자녀를 시기하고 미워했던 것입니다.

사람은 저마다 하나님 앞에서의 존재 값이 다르게 매겨져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존귀히 여기는 정도가 사람마다 다 다르다는 것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신앙생활 하는 사람과 하나님 뜻대로 살기 위해 본성을 거스르며 희생하는 사람, 하나님 앞에서 이 두 사람의 존재 값은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치르는 희생이 클수록 존재 값은 높아지며 존귀히 여김을 받습니다. 예수님이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십자가의 희생을 치르시고 난 후, 하나님께서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모든 무릎을 그 이름 앞에 꿇게 하시며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게 하심으로 최고로 존귀케 하셨습니다(히12:2, 빌2:6~11).

우리 주변에는 유독 빛이 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크게 노력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데 사람들에게 사랑과 인정을 받는 사람들 말이지요. 그래서 그런 사람들을 만나면 시기심을 느끼고, 비난하며 깎아내리려고 합니다. 그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지 못한 채, 시기심에 갇혀 정작 중요한 것들은 다 놓쳐버립니다.

시기심은 반드시 처리해야 할 쓴 뿌리입니다. 시기심을 버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하나님 앞에 가서 울었습니다. 어린 저에게 시기심은 너무 독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저를 불쌍히 여기셨고, 그 친구와 좋은 인연을 맺게 하시고 시기심을 가져가셨습니다.

시기심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내 존재 값을 높여야 합니다. ‘왜 내가 이걸 해야 하지?’, ‘굳이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거지?’, ‘왜 나만 참아야 하지?’,

‘왜 나는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거지?’라는 물음들에 대해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라고 답하며 나를 희생할 때, 그때 하나님 앞에서 내 존재 값이 높아집니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보셨는가가 중요하다’는 목사님의 말씀을 떠올리며 오늘을 살아내려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빛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우리가 되길 축복합니다.

박영신

한라에 핀 샤론의 꽃

믿음의 ‘인플루언서’

코로나19는 우리 삶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언택트(Untact·비대면)의 전환으로 크나큰 불편과 고통을 안겨주었고, 한편으로는 변혁과 발전의 기회가 되기도 했다. 그뿐인가? 비대면 사회를 살아가는 지금 유난히도 많은 신조어가 만들어졌고, 그중 하나가 ‘인플루언서(Influencer)’이다. 영향력(Influence)이라는 단어에 사람을 뜻하는 접미 +er를 붙이면서 Influencer라는 단어가 만들어졌다. 독감 바이러스 중 이 말과 비슷하게 불리는 단어가 있는데 바로 ‘인플루엔자(Influenza)’이다. 누군가 이 독감 바이러스를 갖고 있으면 그 주변에 전염되고 독감 바이러스에 걸리게 된다. 사람은 ‘내 주변에 누가 있는가?’에 따라 그 사람의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 가까운 예로 우리는 부모로부터 성격이나 사람을 상대하는 방법은 물론 세상을 바라보는 세계관을 배우게 된다. 그것이 선한 것이든, 악한 것이든 무의식중에 영향을 받는다.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인플루언서’와 ‘인플루엔자’가 있다. 성장기 때 만난 친구, 학교 선생님, 그리고 일상에서 접하는 책, 유튜버, 인스타그램과 같은 미디어 등 참으로 다양하다. 나 또한 다른 이들에게 ‘인플루언서’로, 혹은 ‘인플루엔자’로 영향을 끼치며 살아간다. 이러한 관점에서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인플루언서는 누구일까.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교회를 다니는 부모, 나를 교회로 인도한 사람, 교회 목회자가 인플루언서일까? 아니다. 나의 신앙이 주변 사람들로부터 영향을 받으면 큰일 난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인플루언서는 사람이 아니라 오직 ‘예수그리스도’여야만 한다. 성경적으로 바른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예수님과 인격적인 만남을 가지고 친밀한 관계를 누리면서 예수님에게 직접 영향을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 연약하고 부족하고 때론 추악한 이로부터 영향을 받게 된다면 결국 잘못된 길로 빠져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직 예수그리스도에게 영향을 받아야 하는 것이고, 이를 위해 우리는 예수님과 인격적이고 친밀한 관계를 가져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으로부터 영향만 받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세상에 영향을 미치는 ‘인플루언서’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 이를 통해 하나님이 어떠한 분인지 전하는 인플루언서로 살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이다.

필자가 즐겨보는 [세바시: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란 강연 프로그램을 통해 알게 된, 30만 명 이상의 구독자를 가진 「비글부부」라는 커플 유튜버, 크리스천 인플루언서가 있다. 이 부부는 지난해 6월, 둘째 아들을 심장마비로 천국에 보내야 했다. 그 아픔을 딛고 일어나 [세바시]란 강연 프로에 나와서 「진짜 인플루언서로 사는 법」이란 주제로 강연을 했다. 강연내용 중, 공장을 다니며 돈을 모아 항상 어려운 이들을 늘 도우시던 어머니와 외할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남긴 말이 기억에 뚜렷하다.

“저희 어머니는 단 한 번도 저에게 잘사는 방법을 가르쳐 주신 적이 없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저에게 남이 잘 살게 하는 방법을 더 많이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렇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사람들이 진정한 ‘믿음의 인플루언서’라는 것이다. 그는 외할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이웃을 섬기는 마음을 믿음의 유산으로 받아, 매년 사업과 유튜버를 통해 들어오는 수입의 큰 금액을 어려운 이들을 위해 쓰는 일을 한다고 한다. 나 혼자 잘사는 것보다 누군가를 잘살게 도와주는 사람이 되는 것. 그런 마음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삶이 예수님의 삶이자 성경이 가르치고자하는 최고의 신앙교육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께 영광, 내 삶을 통해 예수님의 선한 영향력을 드러내기 위해 말로만 가르치고 자신의 삶은 엉망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주어진 일상에서 말 한마디, 행동하나, 태도까지 주어진 소임을 다하길 소망한다.

Dr. 권정미 성도

jmgood7@gmail.com

울림 있는 삶

봉사

초신자 시절, 대형 면허증이 있다는 이유로 운전 경험이 전혀 없던 내게 전도사님은 차량 봉사를 하라며 키를 넘겨주셨다. 전도사님의 크나큰 믿음과 신뢰에 감격하여 즉시 도로연수를 시작했었다.

그렇게 8년여 지속되던 차량 봉사는 장사를 핑계로 미련과 회한을 뒤로한 채 접었다. 이후 기도처 예배는 점점 소홀해졌고, 교우 관계도 소원해졌다. 기도의 부족으로 당연히 영혼이 메말라갔다. 나는 그 갈증을 유튜브 예배로 해소하고자 했으나 마음 한켠은 늘 비어있는 듯 허전하였다.

봉사의 중요성을 깨달은 후 음으로 양으로 자원하여 봉사하시는 분들이 한없이 부럽고 존경스러워 오매불망 차량운행을 사모하고 있었지만 기회가 쉽게 올 것 같지 않았다.

소망하면 이뤄진다고 했던가. 지난달 전도사님이 다시 봉사를 권유하였고, 나는 흔쾌히 다시 봉사를 시작했다. 당연히 그 후론 기도처 예배를 빠지지 않게 되었고, 꺼져가는 모닥불이 살아나듯 기쁨과 열렬하게 살 이유를 찾았으며 성취와 보람을 느껴 첫사랑이 다시 타오름을 체감한다.

오늘도 차 안은 교구 권속들이 자원으로 마련한 소박한 선물을 들고 시끌벅적 소란스럽다. 이를 바라보는 내 마음은 한없이 기쁘기만 하다.

봉사는 주만 위한 일이 아니다. 나를 위한 것이다. 봉사를 다시 시작함으로 내 신앙이 깨어났고, 내 믿음에 다시 불이 붙었으니 이 얼마나 좋은가.

‘돈 벌어놓고 나중에 하지.’, ‘정년퇴직하고나 해야지.’ 이러다 내 꼴 난다. 신앙의 불이 가물가물해지고 결국 완전히 불이 꺼지고 만다. 불이 꺼지기 전에, 불씨라도 남아 있을 때 기름을 부어야 한다고 목사님이 누누이 말씀하시지 않는가.

내게 주어진 환경과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는 것이 지혜 중의 지혜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대로 갚아주리라”(계22:12).

추성숙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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