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을 이기는 자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것이지 인간의 상식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방법이 인간의 상식으로는 소화하기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그것을 환영해야만 한다. 그리할 때 주님이 함께 역사하심으로 이적과 능력이 따르는 것이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여러 가지 시험에 부딪히게 된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할 것은 ‘하나님은 악으로 시험하지 아니하신다’(약1:13)는 것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신 것은 그가 타락하도록 유혹하신 것이 아니라 그의 믿음이 얼마나 진실한가를 진단하신 것이다(창22:1). 아무리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있고 믿음이 있다 할지라도 그 믿음을 행함으로 나타내 보이지 아니하면 인정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주님은 시험에 든 자들을 용서하지 않으신다. 시험에 들어 주님을 배반하고 처음 믿음을 저버린 자는 아무리 일평생 동안 주님을 믿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다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히10:26~29). 그러므로 시험에 든다는 것은 참으로 무서운 일이다. 이제까지 쌓아올린 공력을 일시에 무너뜨려버리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시험에 들지 않는 최상의 예방책은 바로 교회로부터 멀어지지 않는 것이다. 예배, 기도, 봉사 등 교회에서 모인다 하면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것이 우리를 구속해준 은혜를 망각하지 않는 수단이며 시험에 들지 않는 길이다.
믿음 없는 사람들은 교회에서도 매사 분쟁을 일으키며 언제나 당을 짓는다. 그들은 하나님이 바라시는 수준에서 하나님을 아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바라는 수준에서 하나님을 영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에 속한 자들은 남을 정죄하고 판단하는 것이 곧 자기 자신을 정죄하고 판단하는 것임을 알기에 미움과 분노를 멀리한다.
하나님은 분노한 원인과 이유가 무엇인지 따지지 않는다. 단지 화를 낸 것이 죄라고 말씀하고 있다. 당신에게 분노를 자아낸 상대방에 대한 복수나 처벌은 당신의 몫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실 것이다. 우리에게는 오직 용서만이 있을 뿐이다. 우리가 남을 용서한 다음에는 그 용서를 지속해주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으면 오히려 자기가 시험에 들고 만다.
인내가 없이는 남을 용서할 수 없다. 정신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억울하게 고통을 당하더라도 참고 또 참아야 한다. 용서하는 데는 한계가 없다.
주님은 우리가 일평생 죄짓지 않고 깨끗이 사는데 관심을 두기보다는 한 차원 높은, 오직 누가 하나님의 이름을 존중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느냐에 관심을 두신다. 의를 가지고는 천국에 들어갈 자가 한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 하라”(눅11:4).
신기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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